" 이야~ 역시 해외의 우마무스메짱 또 느낌이 다르네요! 나고 자란 환경이 달라서 그런지, 일본의 우마무스메들과 비교해도 독특한 개성이 있어서... 국제 G1인 만큼 다양한 나라의 우마무스메짱들을 볼 수 있는것도 너무 행복했어요. 흐흐흐... "


특히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힘을 박차며 달려나가던 프레스턴 씨의 뒷모습은... 흐흐..

그런 생각을 이어가며 자신도 모르게 침이 흘러나와 버리네요. 저의 트레이너님은 익숙한 듯 쓴웃음을 지으며 손수건을 건냅니다.

조금 멋쩍은 기분으로 그 손수건을 받아들어 입가에 흐른 침을 닦아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가지고 다니는 손수건으로 닦곤 했지만, 어느순간부턴 트레이너님도 본인의 손수건을 들고 다니더라구요.

'네가 가진 손수건은 너무 비싼 물건이라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고 했던가요?

하지만 이전에 '네가 내 최애야!'라고 말한 전적도 있는만큼, 제 전우(트레이너님)가 최애의 침이 묻은 손수건을 갖고 싶은 마음도 잘 이해하고 있기에 절찬리 협력중입니다.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트레이너님니까요!


" 네? 슬슬 다시 레이스에 출전하지 않겠냐구요? 아아. 하긴... 지난번 해외원정 이후로 오래 쉬기는 했죠. 애초부터 올해부턴 다시 레이스에 나가려고 하기는 했고... 본격화의 시기도 끝나가는것 같지만, 아직 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그리고... 관중석에서 보는 레이스도 좋지만... 역시 바로 옆에 뛰면서 보는 그 감동은 다른 무엇에 비교할 수 없으니까요.

아! 거기까지 생각해주신거군요! 역시 제 전우! "


이 사람과 우연한 만남을 걸쳐 계약을 한지 올해로 5년째. 이 불초소생에게 먼저 다가와 수년째 연이 이어지고 있는 둘도 없는 전입니다. 아마 트레이너님 아니었다면 이만큼 많은 레이스를 달리거나, 많은 우마무스메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기회도 없이 제 본격화시기는 지나고 저는 그저 일개 우마무스메 덕후에 불과했겠죠. 제가 우마무스메와 함께 '달리는' 덕후가 된 것은 오로지 트레이너의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 그러니까... 봄까지는 적응훈련을 걸치고, 나고야의 카키츠바타 기념에서 컨디션 테스트를 한 다음 야스다 기념과 타카라즈카 기념에 출주하자는 얘기죠? 좋아요! 이 스케쥴이라면 올해 주요 G1경기를 직관하러 가는데도 문제 없겠어요! 네? NHK마일컵 정도는 중계로 만족하고 휴식에 전념하라고... 당연히 그 러 니 까 직관해야죠! 우마무스메를 사랑하는것이 저의 숙명! 운명! 아무리 트레이너님라 해도 그것까지 막을 수 는 없어요! "


제 열변에 트레이너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마지못해 넘어가줍니다. 물론 적극 반대하신다면 아무리 저라도 트레이너의 의견을 따르겠지만... 그만큼 우리는 서로를 영혼 깊숙한 곳까지 이해하는 전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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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러 5월 1일. 카키츠바타 기념의 경기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트레센을 떠나 나고야까지 온 건 저 혼자였어요.

트레이너님이 갑자기 몸상태가 안좋아졌다며 같이 가지 못하겠다 했기 때문이죠.

좋아요! 그럴 수 있죠! 이래뵈도 데뷔한지 벌써 5년차! 국제경력을 포함해 G1 5회 우승에 빛나는 명 우마무스메니까, 지방 원정정도는 트레이너 없이 혼자서도 문제 없어요!

문제 없지만... 트레이너님 심한 독감에 걸려도 제 경기를 보겠다며 현장까지 기어서라도 올 만큼 중증의 덕후 중의 덕후인데, 그런 트레이너님 오지 못할만큼 몸상태가 나쁘다니...

패덕에 들어선 순간에도, 게이트에 들어간 순간에서도 머리 한켠에 그런 생각이 들어버립니다. 상태가 많이 심각한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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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신세이키가 선두! 비와 신세이키가 선두! 1착은 비와 신세이키다!!!]


레이스 결과는 4착. 평소에도 기복이 심하긴 했으니 이 정도 등수면 나름 선방했다는 수준으로 이상한 일 까진 아니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오늘 레이스는 만전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1착을 달성해 누구보다 뿌듯하고 행복한 얼굴로 미소짓고 있는 저 우마무스메를 보더라도 큰 감동이 들지 않아요.

트레이너님은 지금 괜찮은걸까?


위닝라이브가 끝나자마자 트레이너님에게 전화를 걸어봅니다. 레이스 중계는 보았느냐고, 오늘 기분이 이상하다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하지만 트레이너님 연락을 받지 않습니다. 잠이라도 자고 있는걸까요?

너무나 걱정되는 마음에 저는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않고 곧바로 도쿄행 신칸센에 몸을 실었습니다.

트레센보다 먼저 향한건 트레센 인근의 트레이너님의 집. 몇번이고 와봐서 익숙해진 계단을 올라 트레이너님의 집 초인종을 누릅니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몸이 괜찮아져서 잠시 외출이라도 한 걸까요?

가지고 있던 여벌키로 문을 열고 들어갔어요.


" 트레이너님~? 당신의 최애가 왔어요~? 몸은 괜찮나요~? "


혹시 잠에 들어있거나 할까봐 조금 작은 목소리로 트레이너님을 부르며 방까지 들어가자 그 앞에 있던건...

방 바닥에 쓰러져있는 트레이너님 이었습니다.


온몸의 피가 차게 식는 느낌이었습니다. 눈 앞의 우마무스메에 정신이 팔려 레이스를 10착 밖의 등수로 마무리 할 때도 느끼지 못했던 느낌. 그런 와중에 정신줄을 놓지않고 구급차를 부른건 수년간의 코미케 참가로 단련된 멘탈 덕분이겠죠.

트레이너님은 무사히 병원에 도착했고, 각종 검사들이 끝날 때까지 저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 급성간부전으로 인한 간성혼수상태입니다. 간염이나 암은 아니고, 아무래도 유전적인 질환이지 않나 싶은데 지금으로선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볼 수 밖에 없습니다. 언제까지 잠들어 있을지 모르고, 정신을 차리더라도 혼미한 상태여서 원활한 의사소통은 힘들겁니다. 우선 상태를 지켜보고, 차도가 없으면 최악의 경우 간이식까지 고려해야합니다. "


의사선생님의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트레이너님이 깨어날 수는 있는걸까요. 함께 레이스를 보러가기로 했는데. 다른 우마무스메의 레이스는 커녕, 제 레이스조차 보지 못하는건 아닐까요.

자신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차 오릅니다.


담당 우마무스메라는 관계로 억지로 우겨 보호자 신분으로 의사선생님께 들은 결과는 최악이었어요.

저는 병실에 누워 의식이 없는 트레이너님의 곁에서 밤새 있었습니다. 제발 눈을 떠달라고.


" ... ... "


몇시간이나 그러고 있었을까, 이미 새벽중 트레이너님이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때까지 잡고 있던 손에 조금씩 온기가 돌아오는 느낌이었어요.


" 트레이너님? "


트레이너님은 눈을 떠 저를 보았습니다. 다행히 누군지 알아보는 눈치였어요. 무어라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 저... 이번 레이스는 4착이었어요. 제대로 달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


천천히. 오늘, 아니면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어요. 트레이너씨의 눈은 저를 향해 있었고, 담담히 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 아버지한테 부탁해놨어요. 내일부턴 전문 간병인이 와서 돌봐줄거에요. 다음 목표는 야스다기념이죠? 있죠 트레이너님. 만화같은데에선 그런 클리셰가 있잖아요? 병원에 입원한 누군가를 위해 우승을 해온다던가 하는 그런 거. "


트레이너님의 손을 잡고 밤새 생각했던 이야기였습니다.


" 다음 야스다기념. 당신의 최애가 반드시 1착을 해낼테니까. 그러니까.

트레이너님도.. 이겨내 주세요.. "


잡은 손에 힘을 꼬옥 주며 말했습니다. 어쩐지 트레이너님도 고개를 끄덕인듯한 느낌이었어요.

트레이너님은 다시 눈을 감았고, 다시 잠에 든 듯했습니다.


다음날 아버지가 보내주신 간병인이 도착했어요. 저는 조금 늦게 나마 트레센에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한 눈 팔 여유는 없었어요. 야스다 기념까지 남은 기간은 고작 한 달. 저는 반드시 1착을 당신에게 바치겠다 약속해버렸으니까요.

정말. 돌이켜 생각해보면 무슨 소년만화의 주인공이나 할 법한 말이었습니다. 디지땅은 주인공이 아니라, 밖에서 주인공을 덕질하는게 어울리는데요. 하지만 내가 당신의 최애라는 생각을 가지고 트레이너님 없는 자율훈련을 하다보면 정말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었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어요. 다른 우마무스메짱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조금 시간이 흘러 야스다 기념의 출주일이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트레이너님은 의식을 차렸다가, 아니었다가. 정신을 차렸어도 말을 하지 못하거나, 주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등 혼미한 모습을 보였지만, 언제나 저만큼은 똑바로 바라봐주었습니다. 최애를 향한 열정이란 역시 이런걸까요? 그러니 저도 그 기대에 반드시 부응해야겠죠.


"와... 오늘 디지털은 이전과의 레이스와는 뭔가 다른데? "
"그렇지? 평소였으면 패덕에도 안들어가고 같이 우마무스메들을 감상하거나... 정신사납게 산만한 모습을 보였을텐데 오늘은 꼭... 귀신같아. "


무례한 팬들이 있네요. 우마무스메짱은 귀가 좋다는 사실을 모르는걸까요? 디지땅을 보고 귀신같이 흉흉한 별명으로 부르다니. 하지만 오늘 제 트레이너님에게 승리를 안겨주기 위해서라면 귀신이든 도깨비든 상관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늘 함께 출주하는 우마무스메짱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오늘만큼은 이 디지땅. 진지하게 달릴게요.


[ 전통의 후츄 마일, 제 53회 야스다 기념 스타트! ]


1600m의 익숙한 마일 거리. 2년전의 같은 경기에선 11착이라는 결과를 맞이했지만 오늘은 그때와는 달라요. 이 경기장에 몰려든 수천 수만의 인파중 우마무스메짱들에 대해 가장 잘 아는건 저라고 단언할 수 있으니까. 오늘 이 경기에서 승리를 따내기위해. 저를 최애로 여겨주시는 트레이너님을 위해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었을만큼 오늘의 경기에 몰입했으니까.


[ 결국 미스 캐스트 늦은 출발 기미인가?! 나아갈 수 있는가? 뒤로 내려간다!!
낙마! 6번의 단츠 져지가 낙마입니다! 파란의 전개.. 스타트가 되었습니다. ]


한 분은 늦은 출발. 한 분은 실족을 했는지 따라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반에 이르러 제 위치는 대략 6번째. 평소의 포지셔닝을 생각해도 역시 베스트에요. 안쪽위치에 자리잡은 것은 걸리지만 600미터 이후엔 코너가 거의 끝나고 긴 직선거리가 남아있는 만큼 기회는 충분히 있으니까요.


[ 침착하게, 침착하게 춘추 스프린트 여왕 빌리브가 3위로 따라 올라온다. 바깥을 도는 후지타 신, 단츠 프레임!

그리고 바깥에서 타이키 트레져, 그리고 밀레이엄 바이오, 어드마이어 맥스도 올라오고 있습니다! ]


초중반에 뒤쳐진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우마무스메들이 비슷한 선단에 위치하며 맞이한 최종직선

모두 쟁쟁한 경쟁상대이고, 이 위치에서 1착을 거머쥐는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 자 남은 거리, 언덕 중간의 300m를 지나는 지점! 

대혼전! 대혼전!! 대혼전!!!

미데온 비트, 아직 버티는 건가!

가운데를 가르며 올라온다! 가운데를 가르며 올라온다! 가운데를 가르며 올라온다!

자아 선두 로엔 그린이다! 로엔 그린이다! 바깥에서 어드마이어 맥스! ]


하지만 제 목표는 '최전선'이에요! 트레이너님을 위한 마음 충전, 풀 MAX!!


[ 그리고 바깥에서! 바깥에서! 아그네스 디지털도 올라오고 있다!!! 

아그네스 디지털이 바깥에서 우세! 제치는가?! 제치는가?! 두 마리 나란히 골! 

아그네스 디지털인가! 안쪽의 어드마이어 맥스인가! ]


거의 나란히 들어온 저와 맥스씨. 하지만 직접 레이스를 뛴 우리는 이미 누가 승자인지 알고 있었어요.

보고 계신가요 트레이너씨? 당신의 최애가 당신을 위해 승리를 거머쥐었다구요?


[ 1분 32초 1의 기록으로 레코드! 아그네스 디지털! 오구리캡의 기록을 0.3초 갱신하며 G1 6승째를 달성한다! ]


하하. 이정도 일줄은 몰랐는데. 트레이너님. 레코드래요! 디지땅이 클래식때를 이어 또 한번 G1 레코드를 달성했어요!

...... 트레이너님도 이곳에 함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누구보다 절 이해해주는, 모든걸 함께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사람.


그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외치는 제 이름 가운데 무엇보다도 또렷하게 들려오는 당신의 목소리.

제 이름을 연호하는 당신의 목소리가.

마치 그 외에 다른 소리는 모두 사라진듯한 느낌을 경험하며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자

그곳엔 트레이너님이 있었어요. 간병인이 끌고 와준 휠체어에 앉아있는 체로. 하지만 또렷한 정신으로 지켜봐주고 있었군요. 당신의 최애가 달리는 모습을!

그리고 그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지금 제 마음속 가장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 최애가 누구인지. 그 사실을 깨닫자 저는 곧바로 관객석을 향해 달리는 수 밖에 없었어요.

나의... 존귀한 트레이너님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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