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이틀은 괜찮지만…벌써 일주일 째다.


퇴근 후 담당이 날 따라온지…


난 뒤를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본인은 들키지 않겠다고 숨은 거겠지만 마치 나의 조그만 낌새라도 감지하기 위함이라는 듯 전봇대 뒤에서 쫑긋 튀어나온 연갈색의 두귀과 나를 향하고 있다.


지하철 타는 법을 모르는 귀한 집 영애인지라 트레센 주변 역에서 어떻게든 떼어낼 수 있었는데, 일주일째가 되니, 기어코 지하철 타는 방법을 익혔는지 자취방이 있는 역까지 따라왔다.


이걸 어떡하지…

그대로 자취방으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단 공원으로 갈까."





사람이 없어 텅 빈 공원은 한적했다.


동그란 수풀 위로 튀어나온 두개의 연갈색 귀를 보며 생각했다.


'평범한 인간인 내가 그녀에게서 도망칠 수도 없으니…우선은…'


곧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난 크게 소릴 질렀다.


“으악! 괴한이 날 쫓고 있어!!!”


“누군가요! 제 사랑하는 트레이너씨를 괴롭히는 못된 사람이!!”


곧 수풀 속에서 내 담당 '사토노 다이아몬드'가 나타났다.


"트레이너씨, 그 괴한은 어딨나요! 당장이라도 드럼통에!!"


무서운 소릴 하던 와중 나와 눈이 마주치는 사토노.


“너요, 너.”


"어…"


“에헤헤 트레이너씨… 이렇게 만나다니 우연이네요 헤헤…”


“우연한 만남인 척 가장하지 마!! 저번주부터 왜 따라오는 거야! 오늘치 트레이닝은 진작에 끝났다고!”


“그야 물론, 트레이너씨 집이 어딨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죠!”


“확인해서 뭐하게!!”


“알면 많은 걸 할 수 있잖아요!”

“화분 밑에 숨겨놓은 열쇠를 몰래 복사한다든가, 집에 전기를 끊어 갈 곳이 없어진 트레이너씨를 저희 집으로 데려온다든가!”


“...어째 하나같이 범죄스러운 거 밖에 없냐…”


“돈으로 해결하면 적당히 넘어갈 수 있어요!!”


“하 어디부터 잘못됐는지 지적하기도 머리 아프네, 이거…"


“아 범죄가 아닌 것도 있어요.”


“뭔데?”


“제가 트레이너씨 집으로 들어가서…”


사토노는 점차 얼굴을 붉혔다.

 

“트레이너씨와 그렇고 그런 걸...”


“왜 내가 너랑 그렇고 그런 걸 하는 게 기본값이야!? 싫다고 하면 어쩌려고?”


“선배님들이 가르쳐줬어요. 그렇고 그런 상황에서 트레이너의 ‘안돼’,  ‘싫어’, ‘하지마’  는 OK의 의미라고!”


"아이고 두야….”

"아니 근데 왜 하필 나냐고!!!"


"알고 싶으신가요?"


"뭐, 뭣!?"


의미심장하게 웃는 사토노.


"그 말은 제가 밤마다 트레이너씨를 생각하면서 무얼 하는지 궁금하시단 얘기시네요!"

"일단 침대에 속옷-"


"아냐! 그런 건 전혀 알고 싶지 않아!!!"


"트레이너씨께서 여름 합숙 때 알려주셨잖아요! 좀 더 자신에게 솔직해지라고!"


"이런 것까지 솔직해지지 마!!"



"뭐 암튼, 어떻게든 따라오겠다 이거지?"


"네."


"포기할 생각도 없고?"


"맞아요!"


"하 이걸 어떡하냐…"


"그럼 저랑 게임 하나 하시죠!"


"이기시면 더 이상 따라가지 않고 얌전히 집으로 보내드릴게요."


유순하게 생긴 사토노지만 그녀는 나카야마와 골드쉽에 버금가는 승부사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사토노와 대치하며 공원에서 있을 수도 없으니까…


"좋아."


난 긴장에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그래서 뭘 하면 되는데?"


"묻는 문제에 답해주시면 돼요!"


"알았어."


"자 그럼 갑니다."


"저와 함께 집에 간 트레이너씨는 저에게 그렇고 그런 짓을 당하기 직전의 상황에 놓였습니다."


문제내용하고는…


"자 그럼 여기서 트레이너씨가 어떤 말을 해야 제게 그렇고 그런 행동을 안 당할 수 있을까요?"


1.그래! 당장 하자!

2.트레이너와 담당 간에 그런 짓을 하면 안돼! 


"과연 정답은 뭘까요?"


"아까 말한 것처럼 '안돼'라고 했다고 OK로 받아들이지 않는 거지?"


"물론이죠.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말장난은 있을 수 없으니까요"



"..."


"..."


"왜 아무 말도 안 하시죠?"


"이게 정답이니까."


"이유를…물어도 될까요?"


"1번을 고르면 넌 옳다구나하고 날 덮칠 거야."

"그렇다고 2번을 고른다 해도 넌 '담당과 트레이너간의 그런 징크스 우리가 깨버리죠.' 하며 똑같이 덮치겠지."


"!"


"어떤 걸 골라도 덮쳐질 바엔 가만히 있는 게 정답이겠지." 


"네…트레이너씨의 승리에요."


사토노 녀석 날 뭘로 보고, 지 불리할 때마다 징크스 타령하는 걸 내가 몇번이나 봤는데 이런 함정 문제를 내? 얕은 수 쓰긴…


"역시 제가 고른 트레이너세요…"

"약속대로 얌전히 집으로 보내드릴게요…"


"그래, 그럼 밤 늦기 전에 돌아가고, 내일 보자."


그렇게 사토노를 지나치던 참이었다.


"어?"


어째서 공원의 사방을 리무진 네 대가 막고 있는 거지?


당황하고 있는 가운데 뒤에서 사토노가 속삭였다.


"트레이너씨 저는 집의 정의를 이렇게 생각해요."

"사랑하는 이와 편히 쉴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


-턱!


말과 함께 사토노는 두 팔로 날 감싸 안았다.


"놔! 얌전히 집에 보내준다며!!!


"후후후, 사토노 그룹의 이름을 짊어진 제가 거짓말을 할 리 없잖아요."

"자, 그럼 어서 가요. 우리의 집으로."




곧 네개의 리무진이 떠나고 공원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한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