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짱 천장때렸다.

질문 안받는다 씍발.


이 시리즈도 대충 그라나트에서 끝날줄 알았는데 소재 드럽게 많네.





작은 체구의 말은 불리하다.


경마든 승마든 불변의 사실일 것이다.

본격적인 기수가 되기 전의 소년, 소녀들은 자신의 조랑말과 세계정상을 꿈꾸기도 하지만 현실의 벽을 깨닫고 다른 말을 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더 허황된 꿈같은 일이 터진다.

작은 체구의 말이 영웅이 되기도 하며, 조랑말이 소녀 시절부터 같이해온 기수와 같이 세계 정상의 자리를 다투기도 한다.


그리고 스트롤러(Stroller)는 이런 동화같은 이야기

아니 범접할 수 없는 전설의 한 사례이다.





스트롤러는 일단 크로스드 포니 라고 분류되는데, 정확힌 서러브레드와 코네마라 포니의 교잡이었다.

코네마라 포니는 일단 다재다능한 편이긴 한데 주로 성인보다는 젊거나 어린 기수들이 주로 타는 조랑말이다.

 

보통 체격을 키우기 위해 서러브레드 같은 애들이랑 교잡되는게 특징인 품종인데,

아무튼 1950년에 아일랜드의 한 목장에서 스트롤러가 태어났다.

태어났을때부터 작았기 때문에 목장주는 어린 기수들이 탈법하다 생각해 이름을 유모차 즉 스트롤러라고 지어버렸다.





일단 어릴적에는 정말 두각이고 뭐고 못드러냈다. 

그 덕에 아일랜드가 아닌 영국까지 심지어 정육점까지 가버렸다.


1958년

소위말하는 도축을 목전에 둔 시점에 당시 정육점에 우연히 방문했던 한 남자가 스트롤러를 사갔다.

그 남자는 당시 딸의 11살 생일선물로 조랑말을 찾고 있었는데 스트롤러 정도면 괜찮은 조랑말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남자의 딸이 바로 스트롤러와 같이 훗날 올림픽을 나가게 될 기수 마리온 코크스(Marion Coakes, 1947~. 현재는 결혼하여 성이 mould다.)였다.




(아직 둘 다 햇병아리던 시절)

마리온은 3살때 부터 말을 타는 것을 시작으로 그녀의 오빠들처럼 장애물 비월 주니어 부문 대회에 출전했고

8살에 집에서 기르던 조랑말 뮤직을 타고 우승을 차지한 유망주중 한명이었다. 뮤직이 있는데 왜 스트롤러를 데려왔냐고?


일단 그녀가 타던 뮤직은 13.1h의 작은 조랑말이기도 했거니와, 

마리온의 두 오빠는 물론이고 마리온이 3살때부터 태워준 18세의 나이 많은 조랑말이었다.

마리온의 아버지는 ㅈ간이 아니었던 만큼 충분히 고생한 뮤직을 위해 편한 노후생활을 챙겨주기로 했다.


또한 마리온의 아버지는 기수가 직접 말을 관리하고 조교하며 유대감을 나누는 것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했는데,

도움은 주겠지만 스트롤러는 마리온이 직접 훈련시키고 관리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스트롤러는 거쳐갈 말이었으니 마리온이 앞으로 타게 될 말을 위한 일종의 연습이나 다름없었다.


마리온은 당시에 매우 기뻤고 학교가 끝나면 가장먼저 스트롤러가 있는 마구간에 달려갈 정도로 하루하루가 즐거웠다고 한다.

하물며 소녀들의 꿈인 개인 조랑말이었으니 스트롤러는 2년간 지금껏 받지 못한 정성어린 관리와 훈련을 받게되었다.


이때의 경험이 계기였는지 모르지만 스트롤러의 별명은 프렌드(Friend, 친구)였다. 

마리안은 인터뷰 중에서도 스트롤러를 My Friend나 Partner로 지칭하는 등 스트롤러와 함께 살아오며 쌓은 친근함과 유대감을 과시하곤 했다.





1960년

뮤직이 노후를 즐기기 위해 은퇴하고 그 자리를 이은 스트롤러는 마리온과 같이 주니어부문을 휩쓸었다.

작은 체구의 조랑말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점프력과 소녀라고 생각 안되는 대담함의 조합이었다.


하지만 마리온의 아버지는 그녀가 주니어가 아닌 시니어 그리고 국제대회에서 경쟁하려면 조랑말이 아닌 더 큰 웜블러드가 적합하다 여겼는지,

1963년 마리온이 16세가 되던 해에 스트롤러를 팔려고 했으나 마리온의 간청과 반대로 인해 스트롤러는 마리안과 같이 장애물 비월에서 활약을 하게 되었다.


일단 전에 소개했던 카리스마가 15.3h로 난쟁이 소리를 들었는데 스트롤러는 그보다 더 작은 14.1h였다.

경마든 승마든 체구가 큰 말이 유리할텐데 평균적인 7~8세마들의 체구를 기준으로도 힘든 최정상자리를 다투는 국제대회에서,

그것도 조랑말로 경쟁을 하겠다는 것은 소녀의 허황된 꿈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게 허황된 꿈이었으면 이 글은 쓰지도 않았다.


이미 당시 기수들도 그렇게 비웃었다가 1965년 더블린 호스쇼를 시작으로 장애물 비월에 길이 남을 소녀와 조랑말의 전설을 목격하게 된다.


저 천조국에서 아마추어 기수가 실패한 경주마를 데리고 다른 기수들과 승용마들의 머가리를 부수고 있을때

영길리에선 신인 기수가 체구가 작은 조랑말을 타고 다른 기수들과 승용마들의 머가리를 깨부수고 있던 것이다.







(보면 알겠다만 스트롤러든 마리온이든 담력이 장난 아니다)



(1965년 네셔널 호스쇼 퀸 엘리자베스 2세 컵을 우승하고 찍은 사진)

이 당시 스트롤러가 국제대회를 많이 소화해낸 것도 놀랍겠으나,

스트롤러가 우승한 퀸 엘리자베스 2세 컵을 비롯한 몇몇 대회는 힉스테드 경기장에서 치뤄졌다는 점이다.

마리온 역시 이 힉스테드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에서 스트롤러와 우승한 것을 가장 값진 우승들로 취급했다.


일단 힉스테드 경기장 자체가 종합마술의 크로스컨트리를 축소시켰으니 장애물 비월이라고 하는 꼴에 가깝다.

약 1190m의 코스는 둘째치고 크로스컨트리에서 보이는 장애물들도 배치해놓았다.


여기까진 다 좋은데....

문제는 이 장애물들을 기수와 말을 참 엿맥이기 좋게 배치해놓았단 거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8~9번째 장애물 코스다.


8번째 장애물인 뱅크(인공언덕)가 3.2m고 9번째 장애물인 레일이 1.6m

근데 문제는 이 간격이 짧다. 감속을 무조건 하게 만들지만 점프 후도 문제다.

아무튼 너프를 했지만 현재도 악랄하다고 불리는 경기장 중 하나다.


그 덕에 비슷한 악랄함을 지닌 독일 함부르크 더비에 익숙한 독일 기수들조차 니들 양심 어디다 팔았냐 라고 말하는 경기장인데....





이 구간에서 온갖 말과 기수가 추한 모습을 보일때,

스트롤러와 마리온은 노빠꾸로 진행했고 매년 상위권에 들어 그 결과 1967년에 우승을 차지한다.

(정확힌 1964~1971년까지 힉스테드 더비에서 3위 밑으로 내려온 적이 없다.)


아무튼 스트롤러는 작은 체구라는 약점이 있음에도 누구도 얕잡아 볼 수 없는 조랑말이었고, 

마리온은 허황된 꿈을 품은 소녀가 아닌 실력있는 기수였다.


네이션스컵과 월드컵, 선수권 대회에서 마치 그 적수가 없는 듯 했다.





딱 한 마리와 한 명만 빼고.




미국의 장애물 비월 대표선수

라이언하트를 품은 말인 스노우바운드와 아마추어이자 초인 기수 윌리엄 스테인크라우스.

이 둘만이 스트롤러-마리온과 대등했다.


스노우바운드는 다리 결함으로 많은 대회를 나가는 대신 올림픽 출전 점수가 높게 걸려있는 대회만을 나가다 보니 스트롤러와 겨룰 일은 드물었지만,

이 둘이 겨룬 전적은 비슷했고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둘의 결판은 언젠가 내야했다.







1968년 

멕시코시티 하계올림픽.

승마 경기장은 산소가 부족한 해발 2,300 미터에 있었다.


이 당시 스트롤러의 썩은 윗니를 뽑는 수술이 있었지만 멕시코시티 올림픽에 아슬아슬하게 출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스트롤러는 18세. 이미 말의 육체적 전성기는 훨씬 지난 시점이었다.





멕시코시티 올림픽은 당시 참가자들에게 두고두고 까이는 대회이다.

하필 경기장 근처로 높으신 손님들을 태운 헬리콥터가 착륙한덕에 소음으로 앵간한 말들은 광폭화 상태가 되었고,

저번 도쿄올림픽 당시 난이도를 너무 완화했다고 장애물의 높이를 의외로 높게잡고 시간을 줄여버렸다.


그 덕에 84명의 선수중 4명만이 제한 시간내에 들어왔고

무실점자는 마리안-스트롤러, 윌리엄-스노우바운드 뿐이었다.


세계 최정상의 대회에서 마장마술에서는 압생트가 최후의 불꽃을 태울때,

장애물 비월에서는 스노우바운드스트롤러 둘의 진검승부가 펼쳐졌다.





승리의 여신은 스노우바운드 쪽을 더 총애한게 아닐까 싶다.


스노우바운드가 굴건염이 터졌을지언정 끝까지 집념으로 달려나가 4점 감점이었던 반면,

스트롤러는 마지막 순간 자신의 체구의 한계로 장애물 몇개를 더 넘어뜨려 8점 감점이었다.



(스트롤러와 스노우바운드의 체구를 비교해도 알 수 있듯이 작은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은메달은 대단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조랑말이 세계최정상의 대회에서 메달을 딴 것은 단순히 소녀의 허황된 꿈이 아니었음을,

작은 체구의 조랑말이 품은 실력의 증명이자 그 앞으로도 넘볼 수 없는 업적이었다.


비록 스노우바운드에게 패배했을지언정 스트롤러에 대적할 말은 스노우바운드 말고는 당대에 그리고 올림픽에 없었다.

스노우바운드 그리고 스트롤러, 오직 서로만이 실력을 겨룰 상대였다.

마리온만이 아닌 윌리엄도 둘의 실력은 막상막하로 여겼고 이후 1970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대회에서 스노우바운드는 스트롤러에게 밀려 2위를 차지한다.

(다리다친 퇴역 경주마랑, 늙은 조랑말에게 처발린 승용마들은 뭐가 되는거냐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있을텐데 그냥 당시의 얘네가 괴물인거다.)


다만 스트롤러와 마리온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맞수였던 스노우바운드가 윌리엄의 간청으로 뮌헨 올림픽에 출전하여 은퇴경기를 할 수있던것과 달리,

영국 대표팀은 은메달의 이유가 스트롤러의 작은 체구라 판단하여 스트롤러만 제명시키고 마리온에게 다른 말을 타고 다음 뮌헨 하계올림픽에 나갈 것을 권했다.






함께해온 친구와의 의리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마리온 역시 대표팀을 그만두었다.

이 이후 1971년까지 여러 대회에서 입상을 하는 것으로 스트롤러의 저력과 영국 대표팀의 설레발을 증명하였다.


특히 1970년 독일 함부르크 더비의 우승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일단 이 대회도 힉스테드 더비만큼은 아니지만 악랄한 편에 속하는데 무실점 우승을 해버렸다.

거기에 최초의 여성우승+조랑말의 최초 우승이라는 3단 콤보다. 이 중 조랑말 우승은 지금도 안깨지는 대기록이다.....

다른 국제 대회들도 마찬가지로 스트롤러와 마리온이 남긴 기록중 조랑말 우승은 갱신된 적이 없다.


이후 영국 대표팀은 부랴부랴 스트롤러와 마리온을 대표팀에 다시 초청하지만 마리온은 이를 거절했다.

당시의 표면적 이유는 스트롤러가 21세인 만큼 은퇴해야한다는 이유였지만, 

나중에 윌리엄과 모여서 한 인터뷰에선 영국 대표팀에 너무 화가나서 미련따위 남지도 않았다니 그 빡침이 어느정돈지 짐작이 가능하다.

(이후로도 마리온은 러브콜을 받지만 은퇴할때까지 영국 대표팀 자리를 거절했다.)



(스트롤러와 마리온이 따온 트로피들 일부.)

1971년 

21세의 나이로 은퇴한 스트롤러는 마리온의 목장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며 다른 후배 말들의 리더 역을 하기도 했다.

스트롤러의 팬서비스는 출중했던 편인지라 가끔 자기를 보러온 소녀 팬들이 있으면 일부러 목장 울타리를 넘는 묘기를 보여줬다고 한다.


그리고 1986년 언제나 처럼 농장을 거닐던 도중 36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어릴적부터 함께해온 믿음직한 친구이자 파트너가 눈을 감았으며 그 날만큼은 마리온이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고 한다.


이후로도 마리온은 다른 말을 타고 나가 대회에서 입상을 했지만, 

비록 자신은 다른 말을 타고 있을지라도 그때마다 자신의 친구에게 언제나 감사를 표현했고 

그녀의 노력으로 스트롤러는 2005년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스트롤러와 마리온의 이야기는 소녀와 조랑말의 우정만이 아닌,

위대한 말이 자신의 기수와 이룩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전설이자 업적으로 남아있다.








ps1. 마리온이 결혼하고 나서 정작 스트롤러는 마리온보다 그 남편을 더 잘따랐다고 한다. 그래서 마리온이 살짝 실망했다고....



ps2. TV나 라디오가 보급되면서 생긴 현상중 하나는 경마나 승마의 팬들이 유입되는게 더 쉬워진 것도 있겠지만,

편지를 써서 응원하거나 그들의 갈기나 꼬리털같은 것을 주면 안되냐는 팬레터의 출현이었다.


특히 스트롤러에게 온 팬레터 대다수는 조랑말에 환상을 가진 소녀들이 보낸거였으니 그 인기를 알만하다.

다만 마리안은 그런 소녀들의 꿈을 잘 알았지만 그래도 스트롤러가 소중했던지라 꼬리털이나 갈기대신 일일히 편지를 써서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했다고 한다.


딱 한명 빼고.



여왕님이 손수 쓴 편지 덕에 마리온은 스트롤러를 빗질하다 나온 갈기나 꼬리털을 따로 정리해서 여왕님과 왕족들에게 보내줬다.




64년부터 71년까지 매년 윈저성에 초대받았다 보니 거절하기도 빡세긴 했을꺼다.

심지어 처음 초대받았을때 조랑말에 뭔 환상이라도 가지신건지 스트롤러에 태워달라고 부탁까지 받았다.

공화국각 마려웠을텐데 어케 참았을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