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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https://arca.live/b/webfiction/99402925?mode=best&category=%EC%A0%95%EB%B3%B4&p=1

2장 https://arca.live/b/webfiction/99621456?mode=best&category=%EC%A0%95%EB%B3%B4&p=1

3장 https://arca.live/b/webfiction/99900332?mode=best&category=%EC%A0%95%EB%B3%B4&p=1

4~5장 https://arca.live/b/webfiction/100076534?category=%EC%A0%95%EB%B3%B4&p=1

6~7장 https://arca.live/b/webfiction/101227351?p=1

8장 상편 https://arca.live/b/webfiction/102918917?mode=best&category=%EC%A0%95%EB%B3%B4&p=1


본 내용은 아주 핵심적인, 다르게 말하면 부분적인 요약임.


<캐릭터 공작소> 안에는 훨씬 더 깊고 풍부한 내용과 아이디어를 마구 자극해 버리는 찰떡 같은 예시들이 한가득이므로, 관심이 생긴다면 구입하여 읽어보길 바람.






8장 사랑받는 캐릭터와 미움받는 캐릭터 – 하편

 

 

 

학대

 

타인을 고문하고 심지어는 즐기는 것은 반감을 사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악당의 가학적 행위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가학적인 욕망의 근원은 고통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사디스트들은 타인의 몸이나 인생을 지배하고 휘두르는 감각을 즐기는 것이다.

 

 

 

암살인가, 복수인가?

 

살인은 학대보다 약한 도구다. 학대는 아무리 노력해도 세탁이 불가능한 반면, 살인은 세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살인의 대상이 히틀러라면 독자는 반감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살인 및 여타 범죄는 캐릭터가 이기적인 동기로 범행을 저질렀거나, 무고한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줬을 때에만 독자의 혐오를 살 수 있다.

 

 

 

자기 주제를 모르는 사람

 

우리는 초대받지 않은 자리에 끼려는 사람을 경멸한다. 예를 들어 순애 소설 속 여주를 짝사랑하는 남자 경쟁자라든가, 중세 판타지 속의 왕위 찬탈자가 이 경우에 속한다.

 

덧붙임) <전독시>의 한명오 부장은 부하 직원인 유상아를 스토킹하기 위해 그녀의 자전거를 훔치고 지하철까지 따라붙는다. 이후에도 김독자를 떨어뜨려 놓기 위해 치졸한 선택을 잇는다.

<글먹빙>의 남궁진 역시 비슷한 예시다. 멋대로 엘레나의 집에 찾아온 그는 다짜고짜 유리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엘레나의 보디가드 내지는 남친 행세를 한다. 실제로는 아무런 관계가 아닌데도 말이다.

 

덧붙임) 이를 역으로 활용하여 연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던 인물이 점차 인정받게 되는 방식이다. 많은 빙의물과 회귀물의 주인공이 처음에는 ‘자기 주제를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게 된다.

 

 

 

맹세를 저버리는 사람

 

캐릭터가 약속을 깨거나 배신을 저지르면 독자는 스스로 배신당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수도 없이 많은 후집피에서 이와 같은 캐릭터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인텔리

 

모든 문화권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독자들은 확실히 남들보다 똑똑하고 교양 있는 캐릭터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이를테면 평범한 악당이 으스대는 것보다, 고학력의 악당이 으스대는 게 더 꼴불견처럼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아는 게 많은 사람을 보면 발끈하고 두려움을 느낀다. 게다가 그 사람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듯이 군다면, 우리는 그를 싫어하게 마련이다.

 

 

 

광기

 

우리는 같은 현실을 공유하지 않거나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을 두려워한다. 공통되는 기반이 없으니 대화를 할 수도, 설득할 수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광기에 사로잡힌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려면, 그 캐릭터의 사소한 행동보다는 이상한 현실 인식이나 망상의 내용을 보여주는 편이 훨씬 낫다.

 

대부분의 경우 그럴 필요가 없겠지만, 광기를 가진 캐릭터가 독자의 공감을 얻어내려면 방대한 분량에 걸쳐 캐릭터가 미친 이유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광기에 사로잡힌 캐릭터는 여타 캐릭터들보다 훨씬 더 공감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태도

 

앞서 소개했던 긍정적 태도의 정반대락 보면 된다.

 

유머 감각이라곤 없고, 자신의 처지를 절대 웃어넘기지 못하는 인물로 만들어라. 나쁜 일이 생기면 징징거리고 불평하고 남탓한다. 일이 잘 되면 전부 자기 덕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성취를 자랑한다.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고 남의 말을 듣지 않으며 부유한 권력자에게 아첨하고 위선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악덕을 보완하는 미덕: 이해할 만한 악당

 

모든 캐릭터는 자기 삶 속에서만큼은 주인공이다. 순전히 악하기만 한 캐릭터도 나름대로는 스스로를 훌륭한 사람으로 여길 테고, 자신만의 인생 이야기를 갖고 있을 것이다.

 

나쁜 놈을 더욱 유연하게 다듬으려면 그의 행동을 부분적으로 정당화해주면 된다. 영웅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사랑스러운 결점을 집어넣듯이, 악당을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그의 악행을 보완하는 미덕을 집어넣는 것이다.

예컨대 악당이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을 등장시킨다든지, 특정인에게만은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준다든지 말이다.

 

그러나 사디스트나 미치광이 찬탈자가 독자의 완전한 공감을 얻기란 불가능하다. 그런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사실 그 경우에는 어느 시점부터 캐릭터가 사디스트나 미치광이 찬탈자라는 위치를 완전히 벗어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알고 보니 모두 환상이나 오해였을 뿐이라든지, 어떤 고귀한 목적을 위해 미치광이 연기를 했다든지 말이다.

반감을 일으킨 요소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그 뒤에 공감을 일으키는 요소를 아무리 사용해도 독자는 그 캐릭터를 결코 지지할 수 없을 것이다.

 

덧붙임) 나는 캐릭터의 반전에서 매력을 느낀다. 같은 반 찐따 녀석이 어느 날 아무도 없는 음악실에서 능숙하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걸 보았을 때 오는 반전 매력. 그중에서도 최고는 세탁이라고 생각한다. 나쁜 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착한 놈이었다. 라는 전개 말이다. 이 전개는 많은 후피집 소설의 초반부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강력한 힘이 된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세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의 말처럼 선을 넘은 악당은 완전히 세탁될 수가 없다. <아집숨>의 우민희가 좋은 예시라고 생각하는데, 주인공 박규는 우민희를 끊임없이 성격 나쁜 싸이코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녀가 어떤 나쁜 짓을 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는다. 캐릭터를 훌륭하게 세탁하기 위해서는 캐릭터가 나쁘다는 것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 ‘나쁜 것 같다’라는 인상만을 심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