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범위한 정치적 혼란으로 이어진 서방 동맹국들의 붕괴가 이제는 경제 위기로 루스소비아체를 강타했습니다. 셰페르부르크는 폭동과 방화에 휩싸인 채 거의 무정부 상태에 빠져 있으며…]


“으아아악!”


“꺄아아아악!”


창 밖으로 민중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 둔탁한 둔기의 소음, 거리의 경찰들이 시민들에게 몽둥이와 총구를 들이미는 소리 말이다.


[루스소비아체 정부는 이미 사회주의자들의 폭력적인 봉기에 수도를 떠났으며 탈리나슈빌리 사회주의 정부는 콜류치에 새로운 국기를 계양하며 남은 군대를 독립 선언을 하겠다고 그들을 협박하는, 루스소비아체를 그야말로 분열시킨 분리주의자들의 턱 밑에 배치되었습니다…


‘국민들이여, 혼란스러워 하지 마십시오, 국내 소요와 분쟁은 구세대의 낡은 커튼을 불사르고 혁명의 불로 재창조해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루스소비아체를 건설해낼 것입니다. 부하라는 욕심에 눈이 멀었고, 레이라니아는 헛된 꿈을 꾸고 있습니다. 제국의 잔존세력, 망할 종교쟁이들, 그리고 정신나간 파시스트들 또한 각지에서 봉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아버지가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들의 가족과 집, 미래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리드벨트와 탈리나슈빌리의 국기를…!]


라디오에서는 뉴스 앵커의 말에 뒤이어 목청 크고 말에서 선동의 윤기와 울분의 흥분이 뿜어져 나오는 연설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분노해 있었고, 이 대륙의 땅 위에 서 있는 모두가 그랬다. 나 또한 그의 쇳가루가 목에 껴 있는 듯한 목소리에 괜시리 분노가 차올라 급히 라디오의 채널을 넘겼다.


[지지지직…크레멘지크 루스소비아체 무역센터 건물이 지난 3시, 빌딩 중앙에서 폭발한 정체불명의 폭탄에 의해 테러를 당했습니다. 테러는 건물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으며 아나키스트들의 소행으로 추정되고…]


[지지직...루스소비아체 제국의 마지막 공세는 결국 연대한 생디칼리스트들에게 실패로 끝을 맺었고 이는 로자에브카야의 군사 쿠데타로 이어졌습니다. 정부와 의회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로자에브카야의 군정에 선전포고를 하였으며 다른 여타 군벌들도 같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여전히 화합의 마침표는 결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직… 탈리나슈빌리 정부군은 구 루스소비아체 북부의 영토에서 철저히 패배했습니다. 아흐라나 교단의 신부 오몰론 멘살바도르가 일으킨 아흐라나 근본주의 세력들이 슈프립을 점령하고 뉴로미아르 신성 제국을 선언했습니다. 교황은 정부에 대해 공개적으로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전쟁, 전쟁, 전쟁, 모든 라디오 채널들에서는 현재의 혼란과 유혈의 잔상만을 떠들었다. 대륙에서 일어난 최악의 내전이라고, 외국의 방송국들과 사람들은 그렇게 조잘거렸지만 그들의 어투에서는 비웃음과 통쾌함이 묻어나왔다. 


그저 가십거리에 불과한 비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여섯 조각으로 갈라진 비천한 자들의 천국은 이제 살인자들의 지옥으로 변모하였다. 그 누구도 쉽사리 이 수렁을 빠져나갈 수 없으리라.


[리만카가…함락되었습니다. 탈리나슈빌리 연방 동쪽의 마지막 보루가 무너졌으며 잔존한 병력의 완전한 붕괴는 불가피해 보입니다. 그러나 연방 서남부에서는 여전히 저항군들이 남아있습니다...]


[영광스러운 연방의 형제자매들이여, 여러 지방의 뉴스에서 퍼뜨리는 거짓말들을 귀기울여 듣지 마십시오. 진실과 허상, 그 사이의 검은 암막에 현혹되어 절벽으로 스스로 몸을 던지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십시오.]


내가 둥지삼아 살아가는 어두운 방 모서리에는 낡은 브라운관 텔레비전이 또다른 세계의 국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상영되는 부라하이나의 군대의 행렬과 대비되듯, 라디오에서는 연방의 수장, 리드벨트가 어제 있었던 일들을 부정하고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승리의 가능성을 손아귀에 강건히 쥐고 있습니다. 우리는 적들의 예봉을 꺾고 반동적인 죄악의 나라들을 타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2차 루스소비아체 내전이 발발할 것입니다…]


리드벨트 서기장의 사뭇 오만하면서 자신만만한 허언을 가만히 듣고만 있자 헛웃음이 입가 사이로 새어나왔다.


“으흐흐!”


“뭐야, 미친놈도 아니고 뭐가 그리 웃기다고 히죽대는 거야?”


“아니, 웃기지 않습니까? 저 같잖은 선동과 프로파간다를 좋다구나 하면서 믿는 사람들을 보면서? 스스로를 지식인이라고 부르는 이들마저 제 무식을 숨기려 오만을 들어내잖습니까?”


조그만 비웃음이 박장대소로 퍼져가는 걸 보며 옆에서 총구를 마른 수건으로 손질하던 여인이 눈을 흘겼다. 


“그게 다 대가리들이 교활해서 그런 거다, 대가리들이, 몸의 지체들이 뭔 생각으로 움직이겠는가? 머리가 시키니 굽신굽신 내려오는 명령에 따라야지.”


검은 그림자를 커튼의 틈새 사이의 빛으로 채워나가던 젊은 청년이 씁쓸한 입매를 다듬으며 내가 앉아있던 의자의 등받이에 손을 올렸다. 그 뒤로 혈기 넘치는 군인들의 행진 소리가 메아리처럼 집 밖에서 울리는 것을 들었다.


중립을 지키던 비쇼케 남부의 작은 고개에서도, 내전의 광기와 맹신적인 군인들과 정치인들의 마수가 뻗쳐왔다. 이제, 루스소비아체의 땅에서는 그 누구도 편히 잠들지 못할 것이다.


“왜 이 고난을 겪으면서까지 이 짓거리를 하는 건가요?”


나는 군인들의 군화가 땅을 박차는 소음을 오케스트라의 합주 인것마냥 감상하다가 생긴 의문을 고민하지 않고 입 밖으로 뱉어냈다. 우리가 이제 해야할 고민들은 셀 수 없을만큼 넘처나고, 그런 것까지 머리를 쓰기에는 아까울 지경이었다.


“그래야 생디칼리스트, 사회주의자, 파시스트, 복고주의자, 광신도들이 개짓거리를 더 이상 하지 않을 테니까. 나는 혁명을 믿었어, 자비로운 신의 은총을 믿었고, 황제의 지배를 당연시했지.”


그녀는 어둠 속에서도 눈에 띄게 격분함을 들어내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선전을 믿었고, 선동을 따랐어, 거짓이었지만. 그리고 내가 도왔던 모든 것들을 희생시켰지. 나는 내가 만든 괴물을 보지 못했어. 눈뜬 장님에 불과했지. 하지만 이제는 똑똑히 볼 수 있어. 근대의 이성을 깨트린 광기의 괴물을.”


“...저 청년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 알까요?”


“아니, 이제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 지도 모르겠어.”


창가의 청년이 커튼을 완전히 접고 밖을 바라보았다. 전쟁의 업화가 산등성이에서부터 몰려오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벽면에 매달려 있는 소총 한기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방 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깃발을 들었다. 


‘목줄은 달라도 개는 같다.’


나는 우리들의 표어가 적혀있는 검은 바탕의 깃발을 들며 외쳤다.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 지도 모르는 몽매한 자들을 만나기 전에, 


“Ni dieu, ni maître, ni Secrétaire général! (신도, 주인도, 서기장도 없다!)”




설정만 쓰다가 단편 프롤로그 한편 만들어봤는데...

역시 설정 쓰는 거랑 진짜 스토리 구상하는 거랑은 천차만별이다...

훈수 대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