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의 홍보를 보고 두 채널간의 건전한 교류를 도모함과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내 창작물을 자랑하고자 이렇게 한보따리 싸옴.

그냥 글들을 늘어놓으면 보기 불편하니까, HTML 접기기능을 활용해서 게시하니, 시간날때 하나씩 읽고 비평 한줄씩 남겨주면 감사하기 그지없을듯. 토론 및 시비걸기도 환영.



[노래 모티브 시] REFerence, Lethe, ECToference

모티브가 된 노래 : Gawr Gura - REFLECT

  국문판:

망각의 강 건너가서 영혼은 윤회한다.


나아가는 발걸음은 밖으로, 밖으로-

퍼져가는 발소리는 영혼이 쥔 등불

이어지는 발자취는 강기슭에까지.


긴 흔적을 따라 전파되온 걸음소리가

수면에 반향되어 다리를 옭아매어온다

잊혀졌을 전생의 외침으로 얼룩진채.


풍겨오는 피비린내

뒤돌아가는 시선

희푸른 등불은 수면에

검붉게 반사되어 밝힌다

가려졌던 흔적들을.


시작, 운명, 원죄, 반항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


손에 든 등불을 높이 들어

울려퍼지는 높여진 소리

강 저편으로 불빛을 투사하여

투영되는 그림자가 은판에 새겨진다


나의 두 모습을 반영한채.


  영문판:

Over Lethe, samsara goes.


Pase of steps expand over and over

Song of steps is light of pathfinder

Prints of steps extend to riverside.


Through track of steps, a song transmitted

While interface, be echoed and be in my way

with interference of former existance.


Smelling bleed

Turning sight

Skyblue light spreads to river

Darkred reflection reveals

evidences in oblivion.


At the beginning, Destiny, Sinner man, Rebellion, Cliché.


Pathfinder's light bring way up high

The Song getting louder and higher

Project your sparks over the river

Projected shadow being leaved on silver plate


Reflecting my all.



[소설] 특강: 도서관장의 일반인을 위한 마법·마도·마학 그리고 과학 개론

"있잖아, 굳이 힘들게 저럴 필요 있어?"


손님이 주인에게 물었다.

두꺼운 양장책에서 눈을 떼고 주인이 손님을 돌아본다.

손님은 한쪽 책장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거기에는 사서가 책장에서 책장으로 힘겹게 넘나들며 하나하나 책을 정리하고 있다.

주인이 고개를 기울이며 손님에게 묻는다.


"어떤 의미?"


마법책이 가득한 대도서관의 주인인 마녀와 

마법과는 무관한 그저 도서관에 방문했을 뿐인 손님간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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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이란걸 이용하면 책같은거 한꺼번에 정리할 수 있지 않아? 주문 한번 외우면 이 넓은 도서관에서 원하는 책을 한번에 불러오고, 또 주문 한번에 원래자리로 되돌리고. 굳이 저 사서가 이 무거운 책을 고생하면서 하나하나 옮길 필요가 있냐는거지."


손님의 의문은 얼핏 그럴싸해 보였다. 비전문가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할 법 하지. 일반인에게 마법이란 뭔가 신비한 분위기를 내면서 주문 한번에 뭐든 원하는대로 할 수 있는 그런 만능의 것이었으니.

그러니 화내지는 않는다.

다만 불쌍한 수강생에게 이 학자가 특별강사로서 가르침을 전수할 뿐.

그렇게 도서관은 학문의 장(場)의 역할을 수행한다.


"먼저 물어볼게, 다른 평범한 도서관은 어때? 거기에도 사서가 있어? 아니면 그 과학의 힘으로 자동으로 책을 찾고 정리해주는 기계를 활용해?"


"음, 규모는 여기보다 작지만, 하는 일은 비슷하지. 컴퓨터 덕에 대출이나 재고현황 관리는 도움받지만, 책을 직접 나르는건 사람을 이용할 수 밖에 없지. 자동으로 다 해주는 그런 기계를 만드는건 너무 힘드니까 말이야."


"왜? 컨베이어벨트가 있잖아, 바코드도 있잖아, 로봇팔도 있고, 카메라와 CV(Computer Vision) 등등 기술과 이론은 넘치도록 있잖아."


"그 정도면 이미 도서관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가깝겠지. 개별 기술이야 있지만, 아직 극도로 제한적이고, 그걸 이런 범주에서 사용하려면 그에 맞는 새로운 이론을 확립해야하고, 이 모든걸 이뤄내려면 돈과 시간과 부피 등등 자원제약도 있고, 또 단순 구현하는것과 그걸 실제 적용해서 운영하는건 또 다른 큰일이니 결국 일개 도서관에 적용하기에는 수지타산이 안맞지. 아, 마법도 비슷한 이유야?"


"정확해. 사람들이 보면 그냥 주문한번 외우고 끝나는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몇년의 피나는 노력이 들었는지 상상도 못할거야."


그냥 피나는 노력이라고 압축해서 그렇지, 일일히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그 자체로 맹독인 수은을 다루고, 애초에 수은을 얻기 위해 주사(朱沙, 황화수은)을 정제하는 위험천만한 공정을 거치고, 애초에 그 공정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어떤 역사와 설비가 있었고…


이렇게 힘들게 정제한 수은이 의도한 작용을 하기 위해 정확한 공식을 구성하고, 하나의 공식을 위해 수십가지 공식을 조합하고, 수십가지의 공식의 제반을 이루는 수백가지의 이론을 탐구하고, 그 이론들을 찾기 위해 수천권의 책들을 넘나들고, 그나마도 옳은 정보, 잘못된 정보를 해독해야하고…


심지어 그걸 행하는 술자 역시도, 조금만 흐트러져도 180도 전혀 다른 효과를 발휘하는 마나를 세심하게 조절하기 위해 수년간의 지루하면서도 고통스러운 훈련을 거듭하고, 온갖 비상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항상 보유하고 다니며, 신과 악마, 환수(幻獣) 등등 온갖 마(魔)적인 존재와 마주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정신단련까지...


그러니 하나의 주문은 그야말로 피와 살과 땀을 먹고(정말로 피땀를 재료로 하는 마법도 있지만) 완성되어 행해지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복잡하고도 오묘한 예술적인 기예(state-of-the-art)다.


마도(魔道)를 걷는 입장에서, 여기까지의 과정을 그저 신비하게 분위기잡고 뭔가 신비한 말 한마디면 뭐든지 가능할거라 여기는 비전문가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울리가 없다.


"어라? 그러면 마법은 과학이랑 다를게 없잖아. 근데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 거야?"



그리고 어김없는 클리셰(cliché). 지금까지도, 지금부터도.


"과학이 뭐라고 생각해?"


아니, 지금부터는 수강생에 따라 다르려나?



"음… 뭔가 계산적이고, 딱딱하고, 조금만 다르게 말해도 그건 틀렸다고 불같이 덤벼들며 정확하게 고치려드는것?"


"과학자의 편견도 조금 들어간것 같지만, 뭐 그렇게 보이지. 그런데 왜 그럴까?"


"철학은 이렇게 말해도 맞다, 저렇게 말해도 맞다 그렇잖아, 문학은 맞는게 뭔지도 모르겠고, 신학은 나만 맞고 너는 다 틀렸다 그러고. 근데 과학이나 수학은 이건 맞았다 저건 틀렸다 어떨때는 자기 스스로 지금까지 틀리게 알았고 실제로는 이게 맞다 그러기까지 하는데, 스스로 잘못을 밝히면서까지 맞다 틀리다에 집착하는것 같아."


자기 주관과 편견적 표현이 많이 들어간 편이지만, 이 수강생은 우수한 편이다.


"과학은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학문이야. 철학적 방법론에서도 가장 엄격한것만을 빌려 모순없이 논리적으로 자연을 이해하고 수치화, 공식화시키는 학문이지. 그리고 더 중요한건 이것이 의미하는 바야."


<어떤 아름답고 완벽해보이는 이론이라도 자연현상과 모순이 일어난다면, 그 이론은 틀렸다.>


과학자는 자연에 목숨을 건다.

자연에 자신의 생사 여탈을 맡긴다.

지금까지 알려진 공식을 조합해 새로운 공식을 만들고 그것을 자연에 묻는다.

그러면 자연이 판결한다.

그 공식은 맞았다. 

그 공식은 틀렸다.

합격한 공식과 그 설계자는 고전이 된다.

낙방한 공식은 폐기되고 그 설계자는 지난날의 노력을 되돌아본다.

누군가는 지난 노력이 휴짓조각이었음을 깨닫고

누군가는 노력의 오류를 찾아내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내고

누군가는 다른 공식과 협력하여 전혀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다시 자연에 묻고, 자연은 언제나 그렇듯 판결을 내린다.

그것이 과학의 모든것이다.


위대한 대학자 아이작 뉴턴경이 프린키피아(Principia, 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를 통해 열어제낀 현대적 의미의 과학은 다른 학문에 비하면 짧지만 굵고도 찬란한 역사를 일궈냈다.


"자, 여기까지는 과학이고. 그렇다면 마법은?"


뉴턴은 과학이라는 학문의 시조라 부를만 하다. 그렇다면 마법의 시조라 부를만한 이는 누굴까?


"음… 옛 동화속 마녀들? 마녀사냥? 멀린?"


"시몬 마구스, 그리스도, 솔로몬, 앙그라 마이뉴, 복희, 로키, 토트, 미네르바, 케찰코아틀 이외에 잊혀진 세계 각지의 신화속 신과 마신들. 더 나아가면 이들의 이야기를 경전과 구전에 새겨냈을 샤머니즘, 토테미즘, 애니미즘의 주술사들. 더 나아가면 호모 사피엔스 이전에 마(魔)를 다뤘을 이제는 알 수 없는 생물들."


"아무리 마녀가 신을 모욕한다는 이미지가 있다지만, 너무 대담하고도 신성모독적인거 아니야?"


"자, 이게 마학 이론을 말하고, 마도를 걷는다는 마녀(마법사)의 입에서 나온 소리야. 근데, 이렇게 신성성을 깨부수는게 뭔가 닮지 않았어?"


"흔히 강경한 과학자가 내보이는 이미지같은데?"


"왜냐하면 마학은 당시로는 계량할 수 없었던 자연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다루려 했던 시도들이었기 때문이야."


당시에는 수학이라는 도구가 발명되기도 전이다.

그렇기에 사원소와 에테르, 기, 음양오행, 룬문자, 차크라, 영혼과 정령 등등 여러 체계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현대 마학의 마나(Mana, 魔力)와 통합되었다. 거기에 연금술과 그 후계인 화학기호, 화학과 협력한 물리학의 영향으로 수학공식까지 받아들인 상태.


"즉, 단순히 오래되었고, 수백세대를 거듭하여 상속된 지식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기술과 마법이라는 형태만 다를 뿐, 기본 원리는 과학이나 마학이나 똑같다는 의미야. 그리고 이는 신학과도 통하는 바가 있지. 하지만 신학과 마법 사이의 관계는 현대 마학조차도 첨단의 영역이니 넘어가자고."


여기까지.


수강생의 요구에 의해 강사의 준비된 강연은 여기까지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수강생의 차례.

훌륭한 강연은 논리적 정합성, 지루하지 않을 흡인력,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스토리텔링 그리고 수강생들의 공감으로 평가받는다. 과연 여기 수강생은 어디까지 받아들였을까? 그리고 내 강연은 어떤 평점을 매길까? 

그걸 알 방법은 단 한가지. 강연이 끝난 뒤의 질의시간. 이 시간만큼은 강사가 스스로의 권위를 잠시 내려놓고 수강생을 동료 학자로 대우해주는 시간이다. 

한창 강연이 진행되는 동안은 강사의 권위로 강단을 휘어잡는다. 그러나 일단 강연을 끝마쳤다면, 그때까지 남아있던 수강생은 지금 이 주제에서만큼은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대우해줘야 한다. 이것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학자로서의 겸손. 무지(無知)의 인정. 스스로에 대한 엄격한 평가. 그리고 지성의 확장을 위한 시도. 


지금까지 지식의 일방적인 전달을 통한 학문의 전파 시간에서, 

지금부터는 지식의 쌍방향 공유를 통한 학문의 발전 시간으로 이어진다.


"네 말대로라면, 마법 역시 과학기술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해. 하지만, 과학기술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마법도 분명 존재해. 마법 역시 자연의 일부이니 이 경우에 현대까지의 과학이론은 틀렸다는거야?"


"좋은 질문이야."


강사가 미처 강연에 끼어넣지 못한 부분. 제딴에는 스토리텔링의 완결성과 강연분량을 신경쓰겠다고 생략했지만, 매우 중요한 개념. 강연의 내용과 배경지식만으로 도달할 수는 있지만, 오랜 숙고를 통해야 힘겹게 도달할 수 있는 부분. 이 경로를 단축시키는 촉매재가 바로 강사의 역할인데, 직무유기했던 부분을 놓지지 않고 짚어주었다. 그러니 이것은 좋은 질문.



그리고 이 자리의 문답을 굳이 글로 옮기는 저자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네 말대로, 현대과학은 틀린게 맞아. 하지만 그것은 보편적 진리에 대한 의미이지. 현대 과학기술의 결과물을 봐봐. 원자력 발전과 수소폭탄, 달과의 거리측정을 위한 반사경, GPS, 인터넷, 플래시메모리, 스마트폰, 전 지구에 걸친 항공교통시스템. 과학이 틀렸다면 결코 도달하지 못했을 영역이지. 뉴턴역학부터 상대성이론을 거쳐 양자역학까지. 그런데, 과학은 언제나 틀려왔어.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았지. 뉴턴은 수성의 세차운동을 설명하지 못했어. 그러니 현대 과학은 충분히 많은 것을 설명하지만, 아직 완전하지 않아. 과학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언제나 기존 체계의 붕괴를 일단은 염두하고 있지. 그리고 뉴턴 이전까지 마법은 서로 이론을 공유하지 못하고 씨족단위로 제각각 발전해와야만 했지. 왜냐하면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가지는 의미는 만물을 설명하는 계량화된 공식을 떡하니 눈앞에 가져다 두었기 때문이야. 이것은 마법을 통합시켜주었지만, 동시에 과학과 마법 사이에 엄청난 간극을 보여주었어."


마나(Mana)의 존재. 현대 마학에서는 마력(魔力)이라고 부르기를 권장하나, 여전히 고전 마학의 영향으로 꾸준히 병기되는 용어.


"물질세계는 표준이론, 즉 중력, 전자기력, 강한핵력, 약한핵력으로 설명되지. 그러나 마법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마력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해. 문제는 마력은 표준이론의 힘과는 달리 보편적이지 않다는거야."


마력의 분포는 물질분포와 무관하고 완전히 독립적이다. 심지어 천부적인 재능으로 마력을 타고난 마법사가 존재하는 한편, 부모 모두 마법사임에도 천부적인 재능으로 마력과는 완전히 무관한 일반인도 있다. 분명히 자연을 설명할 수 있는 기본힘이지만, 자연 보편적이지는 않다. 현대 과학은 아직 이것을 계량화하지 못했다. 완전히 똑같은 도구, 똑같은 절차로 진행하는 실험이 단순히 계측하는 사람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정반대의 결과를 내는데, 현대 과학이 도대체 어떤 방법론으로 이를 계량하겠다는건가. 그 황당하다는 양자역학 실험조차 절차만 준수하면 지구 어디에서든 동일한 측정값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마법적 실험은 그렇게 이뤄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현대 과학은 마력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아직 교차검증이 가능한 보편계측조차 확인하지 못했거든. 일단 계측이라도 가능해야 경향성을 파악하고 이론을 도출해낼 수 있을텐데, 그 전제조차 확인하지 못했으니 유사과학에 불과한거지. 하지만, 네 말대로 자연에 마법현상은 실재해. 적어도 우리 마법사들은 그렇게 믿어. 그러니 우리 입장에서 과학은 불완전한 학문이야."


물론, 아직 학문의 확립조차 덜된 마학이 말할 처지는 못된다. 여전히 현대 마학은 고전 마도를 완전히 상속받이 못했다. 이론의 기초조차 모른채 마법을 행사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과학의 힘으로 마법사인양 행세하는 사기꾼들에게 당하는 진짜 마법사들도 끊이질 않는다. 그나마 과학 내에서는 유사과학에 대한 검증이 대체로 잘 이뤄지기라도 하지만, 유사마학에 대한 검증을 사실상 손놓고 있는 마학도 아직 갈 길은 멀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언젠가 마력 역시 표준모형에 편입될거라고 믿어. 그렇게 과학과 마학은 하나로 통합될거야."


나같은 학파를 통일장마학파라 부른다.

이 외에,

마력으로 표준모형을 설명하려 하는 신고전마도파,

표준모형으로 마력을 설명하려 하는 계량적마학파,

마력과 표준모형 모두를 설명하거나 어디에도 끼지 않는 새로운 모형을 개발하려는 재야학파 등이 있다.


사실 재야학파의 경우는 현대 마학을 받아들이지 않은 기존의 마법사들을 묶어 이르는 말이다.

거기에 수를 헤아리는게 불가능한 유사마학자도 포함된다.


"질문에 대답이 되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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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이 끝나면 수강생은 손님으로 돌아간다.

도서관장 역시 원래 읽던 책으로 눈을 돌린다.

수백년 살아온 마녀는 별안간 이 주제가 괜찮았다고 떠올렸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집필을 하였다.

책 제목은 위대한 현대물리학자의 저서를 빌려보자.


[시] 아버지, 아버지, 나를 버리셨나이까

아버지, 아버지, 나의 아버지. 어찌하야 나를 버리셨나이까

여기 당신의 아들이 형제의 손에 죽으려 하는데, 어찌하야 나를 버리셨나이까

아아, 당신은 언제나 그러셨지요

형제들이 서로를 죽여도 보고만 계셨지요

아들들이 당신의 집을 더럽혀도 보고만 계셨지요

당신의 이름을 빌리고도 사이비를 웅변해도 그저 듣고만 계셨지요

아니, 듣기는 하십니까


아버지, 아버지, 나의 아버지. 어찌하야 나를 버리셨나이까

당신들은 내가 우리의 아버지를 욕보였다 했지요

당신들의 아들을 팔아넘기면서 아버지의 이름을 드높이겠다 말하셨지요

당신들의 아버지께 바치는 공물이라며 아들들의 피와 살을 잘라가셨지요

당신은 무엇을 보고 계셨습니까

어찌하야 아들을 버리시고, 아버지 스스로도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야 아버지는 그 가르침을 아버지가 버리셨나이까


아버지, 아버지, 나의 아버지. 어찌하야 우리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야 당신의 아내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야 당신의 아들을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야 당신을 스스로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야 아버지의 피를 스스로 더럽히고,

어찌하야 어머니의 살에 흉터들을 남기셨으며,

어찌하야 집안에서 채찍을 휘두르셨나이까


나의 아버지, 나의 아들, 나의 영

나의 지도자, 나의 율법, 나의 죄

나의 마리아, 나의 요셉, 나 예수


우리 모두 우리의 아버지이거늘, 어찌하야 우리는 우리를 버리셨나이까 

요셉아 어찌하야 가족을 버렸는가

아픕니다 아버지

집조차도 쉴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으니

율법자들아 어찌하야 형제를 버렸는가

아픕니다 아버지

이웃조차 우리에게 돌을 던져댔으니

예수의 아버지야 어찌하야 자식을 버렸는가

아픕니다 아버지

내 안의 아버지조차 귀를 닫으셨으니

우리 모두 아버지이거늘, 어찌하야 우리의 아버지를 버렸는가

어찌하야,

아버지의 가르침을 사랑에서 족쇄로 바꾸었는가

엄한 꾸짖음이 도대체 어찌하야 스스로를 베어넘기는 광기로 변했는가

도대체 어찌하야

아버지가 가부장이 되었는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부디 마지막의 마지막에서 만큼은,

아들을 버리지 말아주시옵소서

형제를 버리지 말아주시옵소서

아버지를 버리지 말아주시옵소서



[노래 & 설화 모티브 소설] 수살귀

나는 강이 좋았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물은 어디로든 갈 수 있어보였고

깨끗한 물과 물고기는 달콤했으며

시원한 온도와 소리는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어릴때는 언제나 다같이 물놀이를 즐겼으나

혼기가 차면서 점점 다리 위에서 강을 내려다 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 날도 다리에 있었다.


문득 눈에 들어온 한 사내

그리고 이어지는 사사로운 이야기들

점점 늘어가는 다리에서의 두 사람의 추억

머지않아 잡힌 혼례일.


행복한 기억은 모두 다리 위에서, 나무의 삐걱거림과 강의 물소리와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 날도 다리에 있었다.


온 몸이 굳고, 머리카락이 쭈뼛서는 낮은 울음소리.


그리고 튀어나온 거대한 그림자.


가려진 낭군님의 모습.


황토색과 검은색 줄무늬.


이야기로 듣고, 그림에서 보던 호랑이가 그분을 내리누르고 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나의 낭군님은 피흘린채 쓰러져 계시는건가.

어째서, 

살을 찢는 기분나쁜 소리만 들리는가.

어째서,

내가 아닌 그분을 덮친건가.

어째서,

저 줄무늬 괴물은 이쪽은 돌아보지도 않는가.

어째서,

나는 가만히 서서 이것을 보고만 있는가.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머리를 묶은 쇠비녀를 뽑아들고 높이 치켜들었다.

가까이 오는 기척을 느꼈는지, 녀석이 뒷걸음친다.

갈기갈기 찢어진 그분이 나타난다.

새빨간 녀석의 얼굴과 이빨이 보인다.

그리고 녀석이 달려들었다.

나는 비녀를 힘껏 휘둘렀다.

너도 죽어버려라.



바로 알 수 있었다.

내 목숨이 끊어졌음을.

그리고 내 영혼이 흩어지지 않았음을.

내 원한이 영혼을 붙잡고 이승에 메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낭군님은 여기 계시지 않았다.

아마 당신께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채, 한순간에 절명하셨을 것이다.

원한조차 가지시지 못하신채.



아아 원통하다.

어찌하여 이런일이…

행복하기만 했던 다리 위에서 이리도 고통스러운 일이...



그때 울음소리가 들려다.

습격을 준비하는것이 아닌, 괴로움에 받힌 소리.



고개를 돌리니 아까 그놈이 있었다.

그러나,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며칠은 굶은듯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


기이함과 원통함과 알 수 없는 감정들에 사로잡혀 녀석에게 다가간다.

녀석도 이쪽을 보며 뭐라 말하려는듯 입을 벌린다.


"네년…. 감...히…."


"웃기구나, 네놈이 감히 그분을 해하였거늘. 그래도 이렇게 다시 보니, 하늘께서도 내 원한을 알아주시고 너를 해하고 돌아오라고 나를 보내신게 틀림없구나."


"네년!!!"


녀석이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호통친다.

그래서 볼 수 있었다.

놈의 목구멍에 가로박힌 비녀가.


하, 

아하하하하하하하!


아아, 정녕 하늘께서 버리시지 않으셨구나!

그때로부터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저것 때문에 녀석은 괴로워 먹지도 못했구나!


이렇게 웃은건 처음이다.


그리고 이렇게 달콤한것도 처음이다.


나도 아주 허망하게 죽은건 아니구나.


원수가 저리도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것이 이렇게 달콤한줄 몰랐다.


한참을 박장대소하며 녀석을 조롱하였다.


"산신님이라 떠받혀지는 호랑이님이, 호환마마라 불리며 두려움을 사는 괴물이, 이 구월산을 호령하던 산군님이! 고작 하찮은 여인의 한뼘의 비녀때문에 이꼴이 되는구나! 그것이 이리도 기쁘게 느껴지다니, 나도 인간이 아니라 원귀가 다 되었구나! 아하하하하"


더 이상 뭔가 할 필요도 없다. 

이대로 놈이 고통받는걸 즐기면서 며칠만 더 지켜보면, 결국 놈은 굶어죽고 말 것이다.


그때, 나무사이로 나그네가 나타났다.

기품있는 옷을 차려입고 몸종을 데리고 튀어나온 사내.

산행중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게 된 모양이다.


그들은 호랑이놈을 보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러나 걱정들 하지 마시게나, 이놈은 그대를 해하지 못할것이니.

그들 역시 곧 호랑이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쯧쯧쯧. 도련님, 이놈 꼴이 말이 아닌데요? 한 삼일은 쫄쫄 굶은듯 삐죽해진게 병이라도 들은모양입니다."


"털이 빠진것은 없으니 병환은 아닌것 같지만, 확실히 뭔가 문제가 있어보이는구나. 그 때문인지 우리에게 해가 될것 같지도 않구나."


글쎄 글쎄 내 말좀 들어보오, 이놈이 내 낭군님을 잡아먹고 나도 잡아먹으면서 그때 삼킨 비녀가 걸려 이꼴이오. 이보시오, 내 말이 들리오? 이보시오, 이보시오?


그때 호랑이녀석이 그들에게 보여주려는듯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그들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치 챈 모양이다.


"어허, 가냘픈 여인을 잡아먹으려다 이리 되었으니 자업자득이로구나."


"쯧, 저 비녀 주인분이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원통함은 달랠 수 있겠습니다."


"가자, 산행중에 이런놈을 만나니 불행중 다행이구나."


그때, 호랑이놈이 괴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배고픈데도 아무것도 삼킬 수 없는 괴로움, 자신의 업이기에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원통함이  묻어나오는듯 한 깊음 울음이었다.


내게는 그저 가소롭기만 한 울음이었다.

그러나 저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그들은 돌아가려는 발걸음을 멈추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산군이라도 이렇게 고통스러워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구나."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저 호랑이의 업인것을."


"안되겠다, 아무리 위험한 맹수이라지만 저런 꼴을 두고 그냥 갈 수는 없겠다."


"네? 말도안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요, 그러다 놈이 도련님을 해하면 어쩌시려 그러십니까?"


"이봐라, 내가 그 비녀를 뽑아주마, 대신 내가 이 산을 내려갈 때 까지 우리를 해하지 말아라. 알겠느냐?"


호랑이녀석이 낮게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보고 도련님이라는 자가 소매를 걷으며 놈에게 다가간다.


이보시오, 안되오, 내가 여기 보고있소, 하지 마시오, 내 말이 들리지 않소? 이보시오, 이보시오.


남자는 내가 보이지 않는듯 그대로 지나쳐 호랑이의 아가리에 손을 넣어 비녀를 빼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내가 죽으며 남긴 저주가…


"나는 삼한공신 대승공 류차달의 아들 류효금이다. 사람말을 알아듣는 호랑이니, 의(義)도 알 터, 오늘의 일은 잊지 말거라. 이 비녀는 마을의 절에 공양하자."


그렇게 그들은 산중으로 사라졌다.

아까까지의 즐거움은 운무처럼 흩어져버렸고, 허탈함만이 남았다.

망연한 내게 호랑이가 말한다.


"저들이 나를 구했으니, 앞으로 나는 저 자와 그 후손을 해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이 땅의 산신이니 저 일족의 자손이 재상에 오를 수 있도록 축복할 것이다."


"아니야, 네녀석은 반드시 죽일것이다. 내 손으로 직접 네녀석을 죽여주마! 죽여서 그 간을 씹어먹어 낭군님의 원한을 갚아주마!"


"원귀야, 네 원한은 풀 곳을 잃었구나. 잡귀에 불과한 네가 이 산신을 죽일 수 있겠느냐? 그만 원한을 희석시키고 조용히 사라지거라."


"아니야, 아니야!!!"


알고 있다.

비녀가 뽑히자마자 놈이 산신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절대 놈을 해할 수 없음을 그때 확신했다.

그러면서도 말로는 온갖 저주를 내뱉었다.


아아 원통하다 원통하다.

이를 어찌 풀 수 있겠단 말인가.


내 눈앞에서 원수의 목숨을 구한자들.

내 힘이 미미하여 내 존재조차 느끼지 못한 자들.


아아, 그래 너희때문이구나, 너희가 나의 복수를 막았구나, 너희가 나의 죽음을 무(無)로 돌려버렸구나.

원통하구나, 너희가 내 복수를 막았으니, 내 원통함도 대신 받아가거라.

류효금, 너희의 후손은 대대손손 이 원귀의 괴롭힘에 시달릴것이다.


나는 그렇게 류씨들의 집성촌으로 내려갔다.


그곳의 다리에 자리잡아 류씨들을 괴롭혔다.



여보시게, 가까이 와보시게, 나와 함께 춤이나 추세,

이보시오, 어딜 급히 가시나, 내 말좀 들어보오,

여기 물이나 한잔 마시게나, 나무아미타불, 신령님이 보호하사.

나는 올해로 꽃다운 열여섯 처녀인데, 다리에서 낭군님과 함께 호환을 당했소만,

당신네 일족의 도련님이 나의 원수를 구했으니, 

당신들이 이 원한을 대신 짊어주시게.


풍덩-



실제 류효금 설화(5. 수호동물 단락 참조): http://unjoru.com/bbs/board.php?board=homemenu12&command=body&no=49



[시] 시대의 샤먼들

잡귀들을 쫓아낸다.

소금물에 목욕재개하여 몸과 마음을 순수히

향신채 묶은 금줄로 부정한 기운을 막아내고

정갈한 소금을 곳곳에 뿌려 부정을 정화하고

신령들이 날뛰는 굿판으로 잡귀들이 도망가도록 한 뒤

틈새마다, 쥐구멍마다 정성을 다한 부적을 붙인다.

깨끗한 종이에 정갈한 기름을 먹여낸

정성을 다해 수십번에 걸쳐 기름을 먹여 어떤 부정도 불허하고

무속의 문구로 삿된것을 몰아내었다는 증표로 삼는다.


말라리아를 쫓아낸다.

순수한 알콜로 손을 씼고

향과 기피제, 그물망으로 모기를 막아내고

웅덩이마다 정화제를, 더러운 물을 깨끗한 물로

주기적인 시끄러운 소리는 짐승이 오지 못하도록

틈새마다, 쥐구멍마다 퍼티와 실리콘으로 메운다.


무언가에 베인 사람에게는 

정갈한 요오드를

청결한 반창고를

식약 당국이 인정한 의약품을.


비록 이론도, 방법도 달랐지만

여러분은 나름의 지식을 총동원해서 우리를 구하려 하였습니다

우리를 살려낸 현자들이여,

그러나 독선과 자만에 빠지지 마시길

당신의 지식의 끝을 날로 날카롭게 하는것을 절대 잊지 마시길

그렇지 않으면, 더욱 첨단의 칼날로 무장한 이들의 손과 혀에 산산히 부서져내릴 것입니다.


[수필] 식전기도

식사에 감사하는 마음.

식재료가 된 동식물에 감사하는 마음.

식사를 준비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나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오니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주의 기도:루가의 복음서(공동번역), 나무위키 열람-


그런데, 이게 맞을까?


내게 주어진 이 식사는 누구의 손으로부터 나왔으며, 누구에게 감사를 표해야 하는가.

내 생각에 적어도 주님은 아니다.

설령 주님이 천지만물의 조물주라 하여도, 그저 시작이 그리하였을 뿐, 내게 여기까지 주어지는데는 큰 일을 하셨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여기 이 고기는 들에 뛰놀던 돼지를 우리 조상님께서 가축으로 삼으셨고, 그 후손들의 손을 타며 공장식 사육장으로 이어졌으며, 사육사분들의 일생의 노력이 담겨진 채 시장으로 나왔다.

여기 이 곡식은 야생벼를 채집하여 경작하신 조상님 이래로 수없는 보릿고개와 흉년들을 넘기며, 대대손손 이 땅에서 이어져내려와 현대식 콤바인과 농부분들, 심지어 농림부 연구원들의 피나는 개량 연구를 걸쳐 시장으로 나왔다.

그들은 대대손손 도축과 도정의 기술을 전승해오신 분들의 손에 가공되어 그 풍미를 깊게 해주었다.

시장은 이 땅의 수없는 사람들의 손과 손을 이으며, 그 이어짐은 이 강산은 물론 세상천지를 아우르는 그물망을 자아냈고, 그 그물망은 수없는 기술자, 행정가, 탐험가, 군인들의 피땀을 먹고 자란 거대한 시스템으로 이어졌다.

그 거대 시스템을 보증하는 기관들은 역사의 흥망성쇠를 거쳐가며 내가 여기 이렇게 안락하게 생활하며 이렇게 한끼 식사를 준비할 수 있도록 보호해주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일까?


언뜻 보면 우리의 이해를 벗어난 너무나 거대하고도 혼돈스러운 시스템이기에 우리는 주님의 의지로 보호받아 이렇게 존재한다 생각해버린다.

그러나 그 구성요소 하나하나는 그저 바로 옆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한 그저 하나하나의 이해 가능한 개개인들이 있었다.

이것들을 싸잡아 주님께 공을 돌린다는것은, 이 식사를 준비해주신 여러분들의 노고를 무시하는 격이다.

노고를 치하해야 할 대상을 망각하고, 그저 아무 상관 없는 제삼자에게 공을 돌려버리는 것이다.

지독하기 그지없는 월권이며, 우물안 개구리이며, 우상숭배이다.


그러니 나는 식전에 이뤄지는 주의 기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식전에는 인간의 희생과 노고를 치하하자.


"농림축수산업과 경제와 운수와 보증과 미처 이해하지 못한 모든 업무에 대해, 과거에 힘쓰셨고 지금도 힘쓰시는 모든 분들께, 그 과정과 여기 놓인 모든 생물들을 기리고, 그 모든것의 일원인 나의 책임을 다짐하며, 남김없이 맛있게 먹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