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이 꽃 뭔지 알아? 되게 유명한 꽃인데... 냄새 한 번 맡아봐. 향기 나는 꽃 중에서 사장님이 추천해 주셨어. 내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향수 향기로도 있고! 돌아오는 길, 교대역 안에 꽃집이 있더라. ‘화분에 있는 파란색 수국을 사 올까’ 했는데, 사장님께서 별로 추천하지 않았어. 수국이 물을 좋아해서 키우기가 힘들다고 하시더라. 너는 뭔가 손 많이 가고 귀찮은 거 싫어할 것 같아서. 다른 꽃들도 많았는데 적혀있는 꽃말을 보고 이 꽃을 골랐어. 뭐라고 적혀있었냐고? 여러 가지인데 하나씩 말해줄게.

 

첫 번째 꽃말은 천진난만이야. 내가 선물했지만, 너랑 참 어울리는 꽃말 아닌가 싶네. 어디를 가도 항상 천진하게 네 모습을 보여주었잖아.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 순수해서 싫다고 할 수도 있어. 하지만 요즘같이 쾨쾨한 세상에, ‘자연 그대로인 듯 꾸밈없이 깨끗한’ 네가 좋았어. 주변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같이 깨끗해져 가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어. 너와 함께 있으며 나도 조금은 깨끗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 않았을까? 때로는 너무 순백한 나머지 각박한 세상에 상처받는 네 모습을 보며 나도 같이 슬퍼했어. 흰색 옷은 관리하기 힘들다고 항상 검은색 옷만 입고 다녔잖아. 누구보다 흰색 옷 같지만, 남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가리고 다녔던 걸까?

 

두 번째 꽃말은 ‘차분한 사랑’이야. 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화끈한 사랑’인 줄 알았어. 만나자마자 고백받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사귀게 되었잖아. 그런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우린 잔잔하고 차분한 사랑을 한 것 같아. 남들처럼 치고받고 싸우지도 않았고, 항상 서로 생각하고 느낀 점들을 말로 공유했잖아. 자주 놀러 다니거나, 밖을 돌아다니지도 않았지. 집에 자주 친구들을 초대해서 이야기하고 놀았었어. 그런데 너무 차분했던 걸까? 우린 헤어질 때도 차분하게 헤어졌네. 나는 네 순백색에 물들지 못하고 다시 거뭇거뭇해진 것 같아.

 

내가 꽃을 주었을 때만 해도 활짝 핀 꽃보다는 꽃망울이 많았는데, 지금은 많이 피어났으려나? 짐보따리가 많은 걸 좋아하지 않는 네가 지금도 가지고 있을지는 사실 의문이야.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아서 헤어진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달랐던 거지. 우리 중 누군가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너는 확신을 바랐고, 나는 확신을 주지 못했으니깐.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헤어지고 나서 하는 너무 진부한 표현일까? 하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서로가 싫어져서 헤어진 것도 아니고, 서로의 가치관이 달라서 헤어졌잖아. 서로가 더 잘 되기 위해서, 더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그래서 떨어진 만큼 나와 지냈을 때보다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노란색 프리지아의 세 번째 꽃말은 ‘새 출발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