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하게나마 들어오는 햇빛을 보며 동굴 밖의 세상을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한 사람에게 의지한 채로 벌어먹는 처지에 적응하면서, 그 풍경은 점차 옅어져갔지만 차마 잊을 수는 없었다. 내가 나고 자란 푸른 하늘의 아래. 어떤 일을 겪었다 하더라도, 내가 결국 돌아가야만 곳. 그리고 지금 내가 보는 건, 그 풍경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찬란한 밤하늘이다.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진 별은 눈이 아플 정도로 빛을 내며, 수면이 이끄는 대로 흔들리고 있었으니.

 하지만 나는 그를 보면서 기쁨보다는… 주체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낀다. 내가 벌벌 떨던 어두운 동굴 안, 그곳을 벗어나기 가장 쉬운 방법이 버젓이 있었으면서도 그를 숨긴 사람. 그리고 그를 이제와 알려주는 사람.

“...이렇게 멋들어진 출구가 있다고는 얘기 안 했잖아요.”

“네가 달리 물어보지 않아서.”

 그 순간, 나는 선을 넘어버렸다.

“나는 그따위 말장난을 듣고 싶은게 아니야! 나는… 내가…!”

 도움받기만 하는 주제에 더 큰 꿈을 바란다는 게 잘못인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한 마음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내 눈 앞에 있는 너는 누구인지, 그리고 나는 누구인지. 어째서 나를 그렇게 잘 대해주는지, 그런 나는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날이 올 때 까지 숨겨두었던, 앞으로도 내뱉고 싶지 않았던 말들. 토해내고 싶은 건 그토록 많은데… 넘치는 말이 도리어 목을 옥죈다. 흔들리는 시야, 떨리는 몸. 점차 중심을 못잡는 몸은 천천히 무너져서…

“미안해.”

 저 사람의 품으로 향한다.

“...그런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에요.”

“다르게 할 수 있는 말도 없어. 그러니까…”

 그 다음에 이어질 말이 귀에 들어오기도 전에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동굴 아래로 떨어졌을 때와 변함없이 나약하게. 차마 내보내지 못한 감정은 흘러내릴 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여린 사람에게 안긴 채로, 눈을 떠 바라보는 바깥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이제 진정 좀 됐어?”

“...네.”

“다행이야.”

 바위를 치는 물의 소리는 끊이지 않고. 품에서 떨어져 나와 우리는 그저 서로를 응시했다. 희미하게만 알던 생김새도 옅은 빛의 아래에서는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보다도 작고 여리지만… 아름다운 사람.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어느정도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를 상상한 순간 헛웃음이 흘러 나왔다.

“즐거운 생각이라도 했어?”

“아뇨, 그냥…“

 나는 당장에 이 사람을 욕하고 힐난하기보다 시선을 신경쓴다. 당장에 물어봐야 할 것들은 전부 뒤로 미룬다. 조금 전까지 느꼈던 배신감이며 슬픔이며, 그 모든 게 전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결국 누구도 미워하지 못하고, 바라는 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언젠가부터 나를 붙잡고 있는 이 비참한 습성이… 우습기 짝이 없다.

“별 일 아니에요.”

 그런 나를 바라보던 사람은 일어나 내 옆에 앉는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하지만 오므린 입술은 별다른 소리를 내지 못하고, 귀에는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퍼덕이는 날개짓이 들린다. 

“너를 만난 뒤로 저 달이 얼만큼 떠오르고, 또 저물었을까.”

 그리고 사람은 과거를 말한다.

“그런 걸 세는 법은 못 배웠지만… 많은 날이 지났다고 생각해요. 지금 저 밤하늘의 빛이 너무도 밝게 느껴질 정도여서.”

“역시 그렇겠지. 앞으로 네가 없다고 생각하면 나도 영 어색해져서.”

 지금까지 쌓아 올린 기억의 확인. 이것도 내가 바라던 애정의 일종일까. 내가 눈치 채기 전에도 내 입꼬리 살며시 올라갔다.

 하지만 그 자그마한 행복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그래서 나는 네 숨통을 끊어놓지 못했어."

“지금 뭐라고?”

 잘못 들은 것으로 치부하고 싶었다. 나를 사랑해준 사람. 조건 없는 애정을 베풀어준 사람. 그런 사람이 말하는 나의 죽음. 믿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지만.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러 온 거야. 네게 상처만 준 거 같지만 그래도… 이렇게 꺼낼 수 밖에 없네.”

 내 기대와는 반대로 현실은 슬프기 그지 없었다.

“제가 그토록 미웠나요."

“네 탓이 아니야. 너를 보낸 사람들이… 문제였지."

 나를 보낸 사람들. 나의 가족, 아버지.

"지금까지 얘기 못 했지만, 나도 이 동굴의 바깥에서 왔어. 울타리에 둘러싸인 쉼터와 열매들이 흩어진 수확의 장. 그래, 네가 왔던 곳이야.”

 그건 그토록 알고 싶었던 이야기지만, 여운에 잠길 틈은 없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들어버렸으니. 이 사람도 울타리 안의 사람이라면, 나와 함께했던 가족이었을까. 그래서 더 납득이 되지 않았다.

“가족을 죽일듯이 미워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애초에 저는…”

“나를 본 적이 없겠지.”

 잠깐의 침묵,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할 말을 금방 찾은 모양새였다.

“울타리의 바깥은 모두 사냥감이며 가족을 해하는 적들이 살고 있는 곳. …나는 그 적들에게 가족을 잃고 쫓겨 달아나, 우연찮게 이곳에 굴러 떨어졌어. 우리가 안심하고 내일을 보낼 수 있도록 소원을 그렸던 동굴 속으로.”

“...그건 말이 이상하잖아요. 아버지나 다른 사람들은 바깥에서 잘 살고 있어요. 잃어버린 가족같은 건 없다구요. 게다가 지금 했던 말처럼 이곳은 ‘우리’의 소원을 담는 곳이고.”

 그런 나에게 이 사람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곳은 이제 ‘너희’가 소원을 비는 장소가 되었지. ‘우리’, 아니 내가 아니라…”

 하지만 그 몸짓에 담긴 뜻은 슬픈 부정이었다.

“처음 내가 이곳으로 굴러 떨어졌을 때, 나는 사람들을 기다렸어. 나같은 게 이렇게 살아남을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빠져나와서… 그 중 누구 하나는 여기에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믿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솔직히 갑작스레 혼자 남겨졌다는 걸 어느 누가 받아들일 수 있나 싶기도 하고.”

 나 역시도 품었던 마음.

“점차 선명해지는 그림들에 의지한 채로 기어다니는 것들을 씹어 먹으면서 살았어. 나는 혼자가 아니다… 홀로 남겨지지 않았다… 그 말도 안 되는 상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져버렸지만.”

 최악의 형태로, 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나마 웃어 보이는 사람을 향해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저 사람의 눈동자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고함 소리가 들렸어. 우리의 멱살을 쥐고 흔들어 땅바닥에 내던져 버리던 소리. 무서워서 벽면에 기대 벌벌 떨던 그 때, 고함 소리가 그치고 사람이 떨어졌지. 누구였을 거 같아?”

“그게 저였나요?”

“아니, 전에 이야기했었잖아. 네가 오기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거쳐갔다고. 처음으로 본 건 미쳐버린 사람이었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을 텐데도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벽을 마구잡이로 긁어대고… 말도 안 통했지. 벽에 그려진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너도 알테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그 자식들이 끝내 우리에게서 소원마저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고 말았어. 지금 내게 무엇보다 귀중한 것을. 그렇게 머리가 돌아버리니까 참을 수가 없었지. 저 사람은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 손을 뻗어 목을 옥죄더라도 알 수 있을리가 없다. …그래도 차마 그러지는 못했어. 제 스스로 머리를 찍어 죽어버릴 때까지 바라보다, 그 몸은 저 물결 속으로 흘려보냈고."

 시선은 별이 빛나는 먼곳으로 향했다.

“그 뒤로도 이곳에 떨어지는 건 미쳐버렸거나, 너무 늙어버렸거나. 바깥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 할 것 같은 사람들만 왔었지. …우리랑은 다르게.”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렇다고 고개를 저을 수도 없었다.

"정해진 때 라는 게 있나봐. 구태여 내 손을 거칠 것 없이 하나 둘 쓰러지고, 간혹 오래 버티다 이끌려 나간 사람들도 어느샌가 다시 버려져있고. 몇 번이고 되풀이 된 일이야."

 짐작했던 말로다. 이곳에 떨어지기 전부터.

"..."

"알고있는 눈치네. 마저 이야기하자면 난 복수를 포기하지도 못하고,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지도 못했어. 두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의 사람을 흘려보낼 때 쯤에야 겨우 결심했을 뿐이야. 금새 죽어버릴 녀석이 아니라 제대로 된 사람을 목표로 삼자고.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라고. …그리고 그 끝에 네가 찾아왔어.”

“하지만 저는 이렇게 살아남았어요. …당신덕에."

“그래,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복수는 그토록 부질없었던 거야. 누군가를 죽일듯이 원망하더라도 끝내 손 한 번 댈 수 없었어. 혼자인 게 싫어서, 외로움을 달래주던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서… 우습지 않아?”

"저는…"

 슬피 미소짓는 사람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있는 저 사람을 위로해주고 싶다. 오로지 나만이 이해할 수 있을 감정을 품어주고 싶다. 하지만 무게가 다르다.

"저는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 없어요."

"감사를 받을 자격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닌가. 이제 곧 해가 떠오를 모양이야."

 말에 돌아본 곳에는 붉게 칠해지는 하늘이 있었다. 눈이 타들어갈 정도로 밝은 빛. …진의는 끝내 그 그늘 속에 가려지고.

"저 햇빛을 받으며 나가보는 건 어때?"

 구원의 길이 비친다.

.

.

.

 귀를 찢던 처절한 비명,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연약한 몸. 언젠가의 나와 닮은 그 사람을 동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저 사람을 죽이겠다 마음 먹은 손으로 물을 길어주고, 먹을 것을 가져다 주며 나는 위로를 받았다. 타인과 함께 한다는 행복을 얻었다. 그 결과로 복수는 포기해야 했지만 후회는 없다. 이제는 얼굴도 그리지 못하는 부모님, 친구들보다 당장의 살아있는 저 사람이 더 소중하니까.

"결심은 섰어?"

 저 사람이 빛의 아래에 발을 딛는 모습을 보고싶다. …그것이 내 마지막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