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출장 중 어느 날,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내가 딸을 죽였다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보이스피싱이라 생각했다. 그야 딸은 실종되어 아직도 못 찾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찰에서 계속 연락이 왔고 결국 나는 진실을 알기 위해 회사에 미리 얘기를 하고 귀국하는 비행기를 탔다. 정말 사라진 딸아이가 돌아온 것일까? 그리고 아내는 그 아이를 죽인 것일까?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 전, 나는 회사 동료와 결혼했었다. 전 아내는 윤기나는 검은 머리카락에 눈처럼 새하얀 피부, 그리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으며 나는 그런 모습에 반하게 되었고 서로 마음이 통해 결혼하게 되었다. 그녀는 책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그녀는 항상 표지가 닳은 검은 책을 들고 다녔다. 쉴 때도, 일할 때도 항상 책을 손에 쥐고 있었고, 심지어 아이를 출산하고서도 책을 손에 놓지 않았다. 아이를 껴안으며 아내는 나에게 말했다. 만일 자신이 죽으면 이 책과 함께 태워 달라 말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아내는 원인 불명의 심장마비로 인해 스틱스 강을 건너고 말았다. 나는 그녀의 유언대로 책과 함께 화장을 했다. 아직 어린 딸은 어머니의 장례식에 묵묵히 참석했지만, 아이에게 가혹했던 탓일까? 장례식 중 아이는 고열에 쓰러지고 말았다. 몇 일을 사경에 헤맨 딸은 가까스로 깨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여느 때와 지내던 중 나는 지금의 아내와 재혼을 하게 되었다.

 

 공항을 나온 나는 곧바로 경찰서로 갔다. 도착한 경찰서에서 경찰은 나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딸아이가 맞는지 물어보았다. 사진 속에는 한 여자아이가 가슴팍에 과도가 꽂힌 채 쓰러져 있었다. 나는 사진 속 아이를 자세히 보았다. 윤기나는 검은 머리카락에 눈처럼 새하얀 피부, 그리고 아내를 닮은 신비로운 모습까지 성장했지만 내 딸이 맞았다. 

 

 아이는 새엄마인 아내를 처음에는 꺼려했다. 하지만 얼마 안가 딸은 아내를 친부모처럼 따르고 사랑했다. 아내도 그런 딸에게 고마워하며 친자식처럼 사랑을 주었다. 그렇게 행복한 날들이 계속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아내의 장례식 때처럼 아이가 고열로 쓰러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딸은 또다시 사경을 헤맸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빨리 깨어났다. 하지만 깨어난 딸은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 옛날에 비해 말수가 많이 줄어들었고 하는 행동도 음침해졌다. 딸은 그렇게 좋아하는 아내와 거리를 두었고 나와도 말을 섞지 않았다. 그렇게 단절된 생활을 계속 이어가며 딸은 점점 전 아내와 닮아갔다. 윤기나는 검은 머리카락에 눈처럼 새하얀 피부, 그리고 왠지 모를 그녀와 닮은 분위기. 아내는 그런 딸의 모습에 불안을 느꼈다. 나는 아내에게 무슨 일이냐 물어도 아내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언제나 대답을 피해왔다. 나는 그때 어떻게 해서든 아내에게 대답을 들었어야 했다. 만일 그랬다면, 지금의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죽은 딸의 사진을 보고 나는 아내가 있는 구치소로 갔다. 그녀는 내가 출장을 갔다 온 사이 폭삭 늙어버렸다. 그녀는 손에 손거울을 쥔 채 불안해하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정말 자기가 딸아이를 죽인 것이냐고. 분노도 슬픔도 없이 허망한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이윽고 아내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딸을 죽인 건 맞지만 그건 딸이 아니라고.

 

 딸은 갑자기 사라졌다. 어떤 징조도 없이. 홀연히. 그런 딸의 가출에 나와 아내는 이곳 저곳 수소문도 해 보았고 경찰에도 연락을 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이용해 딸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딸은 찾지 못했고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아내는 환청이 들린다고 호소를 했다. 가뜩이나 딸과의 관계 악화에 마음고생을 했는데, 이번 갑작스러운 딸의 가출이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한 것 같았다. 나는 아내에게 힘들면 주저하지 말고 상담을 받아 보자고 말했다. 그렇게 아내는 정신과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을 받았다. 하지만 약을 받아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매일 꿈 속에서 딸아이가 자신을 찾아 죽여 달라며 애원한다고 이러다가 진짜 무슨 일을 벌일 까 봐 무섭다고 말했다. 불안해하는 아내를 보며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그녀를 꼭 안아 주었다. 하지만 아내는 나아지지 않았다. 나도 지쳐갔지만 제일 지쳐가는 것은 아내였다. 한번은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어 가정부를 고용해 그녀가 끔찍한 일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다시 1년이 지났다.

 

 법정에서 그녀는 같은 말을 주장했다. 딸을 죽였지만 그것은 딸이 아니라고. 거울이 다 말해 줄 것이라고. 결국 법원은 그녀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심신상실임을 인정받아 감옥으로 가는 대신 정신병원에 입원할 것을 판결했다. 그녀는 판결에 승복하고 조용히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런 그녀의 손에는 손거울이 있었다.

 

 딸의 가출한 지 2년이 지나고 그녀의 손에는 손거울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손거울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그녀에게 다가가 무슨 힘든 일이 있냐 물어도 가끔 전처에 대한 질문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손거울을 쥐고 혼잣말을 했다. 이런 나날이 지속되던 중 회사에서 일하던 중 가정부에게 연락이 왔다. 아내가 집을 나간 것 같다고. 나는 그 사실에 전화로 호통을 쳤다. 대체 어떻게 하면 그녀가 나간 거냐고. 아픈 사람이 나가서 잘못된 일을 하면 책임 질 것이냐고. 결국 상사에게 상황을 설명해 반차를 써 집 주변과 경찰서를 돌며 아내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녁까지 그녀를 찾지 못해 아연실색을 하던 중, 가정부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아내가 돌아왔다고. 그 전화를 받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아내를 확인했다. 아내는 처음보는 옷과 이상한 화장을 하고 있었고 큰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순간 못 알아 볼 뻔 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 있는 손거울에, 그리고 그녀를 자세히 보고 나서 그녀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녀를 껴안으며 다시는 이러지 말라고 호소했다. 그녀는 나를 다독이며 이제는 안 그럴 거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 후로 그녀의 불안증세는 많이 나아졌고 이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출장 일정이 잡혀 출장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지금도 후회가 된다. 만일 그녀의 짐을 덜 수 있었다면, 만일 그녀를 두고 출장을 가지 않았다면 이 비극을 멈출 수 있지 않았을까. 그녀의 방에서 이런저런 후회를 하던 중, 그녀의 일기를 보게 되었다. 그녀의 일기를 보게 되자 내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이 일기가 사실인지 아니면 그녀의 망상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내용을 충격적이었다.

 

 (본 일기는 중요한 부분만 서술하고 있습니다.)

 91년 9월 3일

 그 아이가 차갑게 변한 날,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딸아이가 자신을 도와 달라고 애원하는 내용이었다. 지금 저기 있는 딸은 자신이 아닌 자신의 친모라 말했다. 나는 갑자기 차가워진 딸의 모습에 무의식적으로 딸을 배척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 그 아이에게 살갑게 대했지만 그 아이는 나를 철저히 무시했다. 어쩌면 내가 무의식 적으로 배척을 한다는 것을 알고 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더 그 아이를 위해야 할 것이다.

 

 91년 5월 12일

 꿈 속에서 그 아이가 나타났다. 자신에게 ‘corpus asportavit’에 대해 물어보라 했다. 나는 외우기 힘든 이름을 외우고 아이에게 그것에 대해 물었다. 순간 아이의 표정은 굳어버렸고 나에게 그걸 어디서 들었냐며 나를 몰아세웠다. 그 아이가 그렇게 화난 것은 처음 봤다. 그런 모습에 무서워 결국 그날 그 아이하고 그 이상의 대화를 하지 못했다.

 

 91년 5월 13일

 그 아이가 가출을 했다. 갑작스러운 가출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혹시 어제 말한 ‘corpus asportavit’ 때문에 그 아이가 가출한 것일까? 어쩌면 내가 그 아이를 화나게 만들어 가출한 것일 까? 그렇다면 그 아이의 가출은 내 책임이라는 것이다. 대체 나는 그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고작 꿈 때문에 그 아이를 잃어야 하는 것일까? 부디 내일은 그 아이가 돌아오길 빈다.

 

 92년 7월 4일

 그 아이의 환청이 들린다. 상담을 받고 약까지 받았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계속 들린다. 자신을 찾으라고 막을 수 있을 거라고. 그 아이의 목소리가 나를 괴롭힌다. 어쩌면 이건 그 아이를 잃어버린 나에 대한 처벌인 것일까? 그렇다면 끝내고 싶다.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 남편에게 미안하고 그 아이에게도 미안하다. 부디 날 용서해 주길.

 

 92년 7월 10일

 결국 나는 죽지 못해 일주일 정도 미친듯이 울었다. 그리고 진정하고 다시 일기를 쓰기로 했다. 그 아이의 환청은 아직도 들린다. 딸은 내가 죽음으로 편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평생 짊어져야 할 죄일지도 모른다.

 

 93년 4월 15일

 꿈 속에서 다시 그 아이를 만났다. 아이는 자신을 믿어 달라며 자신의 방 책상 두번째 서랍 안쪽의 손거울을 꺼내 달라 말했다. 꿈의 내용을 기억해 딸아이의 방에서 처음보는 손거울을 찾았다. 사준 기억이 없는 오래된 손거울이었는데, 손거울을 비추자 그 곳에는 아이의 모습이 비춰졌다. 그 아이가 고열을 앓기 전의 모습. 거울 속 아이의 모습을 보자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미안함과 후회에 휩싸여 눈물을 쏟아냈다.

 

 93년 4월 17일

 나는 거울 속 아이에서 충격적인 소리를 들었다. 지금 가출한 딸아이의 몸속에 있는 존재와 ‘corpus asportavit’의 뜻. 거울 속 아이는 지금 자신의 몸에는 죽은 친모의 혼이 있다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모두 믿을 수 없었지만,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갑작스럽게 딸의 성격이 바뀐 것과 내가 그 책의 이름을 말했을 때 딸의 반응, 그리고 거울 속 아이가 알려준 전처의 특징이 모두 맞아 떨어진 것을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거울 속 내 딸의 말을 믿기로 했다.

 

 94년 4월 21일

 딸은 내게 하루빨리 전처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를 물으니 전처가 ‘corpus asportavit’의 마술로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어 그들의 몸에 일곱 악마를 강림하려 하고 있으며, 그렇게 일곱 악마가 강림하면 ‘저 편의 왕자’가 나타나 세계를 잡아먹을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찾지 못한 전처를 어떻게 찾을 것이냐 물으니 몸을 빼앗길 때 전처가 가진 금단의 지식 일부가 딸에게 흘러 들어왔고 그 지식을 이용해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 비단으로 된 레이스 끈과 가시 갯 대추나무로 만든 빗, 그리고 사과를 준비해 달라 말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딸을 믿고 딸이 말한 물건들을 준비했다.

 

 93년 11월 15일

 딸이 말한 재료를 모두 준비하자 딸은 나에게 신비한 문양을 만들고 오른쪽에 끈을, 왼쪽에 빗을 놓고 가운데에 사과를 놓으라 했다. 그 후, 딸이 알려준 주문을 읊자 끈과 빗은 삭아버리고 사과는 처음보다 더욱 싱싱해졌다. 딸은 이제 이걸 전처가 있는 곳에 몰래 놓고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내일, 나는 결판을 지을 것이다.

 

 93년 11월 16일

 전처와의 악연을 끊기 위해, 나는 전처가 나를 못 알아보게 짙은 화장을 하고 딸이 알려준 주문을 통해 가정부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 옷가게로 가서 옷을 갈아 입고 딸이 알려준 장소로 곧바로 향했다. 딸이 알려준 곳은 낡고 허름한 창고 같은 집이었다. 주문을 통해 집의 자물쇠를 열고 안에 들어가니 그 곳에는 5명의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아마 악마를 강림하기 위한 노예일 것이다. 나는 냉장고를 열어 수많은 사과 중 하나를 몰래 바꿔치기 했다. 그리고 그 집을 나와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니 남편이 나를 찾자 나를 껴안았다. 나는 남편에게 안기며 이제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93년 11월 17일

 이제 거울 속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것이다. 딸아이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 그리고 일이 끝난 안도감에 나는 오늘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다 사실이야?”

 거울 맞은 편에 앉은 아내는 손거울을 손에 꼭 쥔 채 내 말을 듣고 있었다.

 “말해줘. 이게 정말 사실이야?”

 “모, 모르겠어. 그, 그, 그 아이라면 알 거야. 여, 여기 있는 그 아이라면 알 거야.”

 아내는 불안에 떨며 손거울을 향해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그때 당신이 죽인 건, 딸아이가 아니라 내 전처였던 거야? 부탁이야, 그날의 모든 것을 말해줘.”

 나는 불안하는 아내를 응시하며 간곡히 부탁했다. 아내는 내 눈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눈물을 흘리며 그 날의 비극을 말해주었다.

 

 차를 운전하며 나는 아내가 말한 이야기를 천천히 다시 생각해 보았다. 아내가 말하길, 아내가 죽인 것은 딸도 아니고 딸의 모습을 한 전처도 아니라고 했다. 알 수 없는 무언가. 아내는 그렇게 말했다. 그 날, 집에 혼자 있을 때, 그것은 딸아이의 껍데기를 입고 왔으며 일곱개의 흉측한 괴물들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 그것은 아내에게 진실을 말해주었다.

 ‘corpus asportavit’는 금지된 마술서면서 동시에 예언서였던 것이었다. ‘저 편의 왕자’가 이 곳에 나타날 것을 경고한 예언서. 전처는 이 사실을 알고 ‘저 편의 왕자’가 강림할 때 쓰일 딸에게 자신의 영혼을 넣어 예언을 피하려 한 것이었다. 그리고 전처의 거처에 있는 사람들의 몸엔 이미 ‘저 편의 왕자’의 심복들이 심어져 있었으며 그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거처에서 그들에게 독이 되는 사과를 먹이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눈치챈 ‘저 편의 왕자’는 꿈과 환각을 이용해 아내를 교묘하게 속여 전처를 죽일 계획을 짜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주술로 만들어진 사과는 심복에게 먹이려는 순간, 역으로 심복이 전처에게 사과를 먹이고 전처의 영혼을 딸의 몸에서 추방한 것이다. 그리고 예언의 시간이 다가오자 ‘저 편의 왕자’는 딸의 몸을 빌려 아내에게 나타난 것이었다.

 아내는 진실을 깨닫고 이성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과도를 휘두르다 결국 ‘저 편의 왕자’를 찌른 것이었다. 이성을 되찾은 아내의 주변에는 끔찍한 일곱명의 심복들도, 끔찍한 악마의 속삭임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과도에 찔려 죽은 딸과 미쳐버린 자신만 남아있었다고 말했다. 이제 더 이상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아내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오로지 손에 쥐고 있는 손거울에게 끝없이 되물으며 자신이 미친 것 인지 계속 확인할 뿐이었다. 

 나는 아내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대체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것인지 생각했다. 내가 출장을 갈 때부터? 아내의 정신이 호전됐다 믿을 때부터? 아내가 힘들 때 힘이 되지 못할 때부터? 아내와 재혼할 때부터? 전처가 죽을 때부터?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전처와 결혼할 때부터? 전처가 그 책을 찾았을 때부터? 알 수 없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일지 생각할 때 마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정말 딸의 몸 속에는 전처가 있었던 것일까? 아내는 딸과 이야기했던 것일까? ‘저 편의 왕자’라는 것이 존재했던 것일까? 이 모든 걸 믿을 수 있을 것일까?

 나는 차를 운전하며 나의 가정에 닥친 불행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리 되새겨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딸은 죽었고, 아내는 딸을 죽여 정신병원에 있고, 나는 비참해질 뿐이다. 나는 이 비참한 현실을 돌리기 위해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에서는 창고에서 가슴이 뚫린 채 죽은 일곱 남녀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