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모든 사람이 분주히 움직인다.

녹색 가운을 입은 의사, 파란색 옷을 입고 환자들을 옮기는 간호사.

의자에 앉아있는 보호자까지. 모두가 자신의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다.

곧이어 내 차례다.

받은 번호표의 숫자가 스크린에 표시된다.

상담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자. 어서 오세요, 이걸로 벌써 네 번째 만남이네요."

"저번과 딱히 달라지신 점이 있나요?"

'직업을 잃었어요.'

".. 죄송하지만, 저번 직업이 무엇이셨죠?"


'소설가였죠.'

"소설가가.. 직업을 잃을 수가 있나요?"

"아, 혹시 계약하던 출판사와 그만두게 되었다던지.."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더 이상 글을 못 쓰겠더라구요.'

'요즘은.. 그냥 비관적인 생각만 드니까 어두운 내용만 쓰게 되고.'

'계속 그걸 반복했었어요.'

'그러다가 문득 제가 쓴 글을 봤는데.'


'음.. 이건.. 아니였어요.'

"아니였다..구요?"

'네. 글에는 의미가 없이 잔인한 내용만 적혀져 있었어요.'

'뭘 말하고 싶은 건 지도 모르겠고, 그냥. 누군가가 죽었다. 살해당했다.'

'자살했다. 뛰어 내렸다. 뭉개졌다. 먹혔다. 부러졌다.'

'이런 내용의 나열 뿐이었어요.'

".... 음."

'이런 건 글을 읽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 뿐이었어요.'

'글이라고도 부를 수 없었죠.'

'그냥, 의미없는 부정적인 감정의 표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그 소설들은 지금 어디있죠?"

'찾아보면 있긴 할텐데, 사실 지우려고 했었어요.'


'하. 근데 또 미련하게 아까워서 못 지우고 있네요. 아직까지 말이에요. 멍청하게.'

"아니요. 자신의 창작물에 애정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가요....'

"최근에 기분이 우울하셨다고 하셨죠."

'네.'

"술이나 담배 끊으신 것 맞죠?"

'네.'

"그럼 아무래도 도파민 때문일텐데.."

"규칙적인 생활은 하고 계신겁니까?"


'... 사실 글을 써요. 새벽마다요."

"그래서 잠을 안 자신건가요? 왜죠?"


'모르겠어요. 글을 그만 쓰고 싶은데, 멈출 수가 없어요.'


'생각 없이 그냥 타자를 두드리고 있었어요.'


'또 그렇게 하나가 완성되면, 그걸 계속 고쳐나가요.'

'이 부분은 자연스럽지가 않아, 이건 맞춤법이 틀렸잖아. 하면서요'


'그렇게 몇 시간을 고친 결과물은 혐오스러운 것들 뿐이었지만요.'

"음..."

'한번은 그걸 깨닫고, 억지로 행복한 이야기를 적는데도.'


'잘 안 되더라구요. 무언가 텅 비어있는 느낌이었어요.'

"... 일단은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일주일 정도는 글을 쓰지 마세요."

"그러고 나면, 분명히 괜찮아질 겁니다."

"이전의 작품들은 나중에 정신이 괜찮아졌을 때 다시 보시는 걸로 하죠."

"무리해서 지우지는 마시구요."

'네...'

'감사합니다. 언제나요.'

"그래요, 조심히 가세요."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밝은 달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노트북을 펴서, 아까 본 꿈 내용을 글로 적어 소설 탭에 올렸다.

그리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왜 쓰는지 이유도 모르는 채, 더 이상 쓴다면 불행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마치 마약을 하듯, 그렇게 끊어낼 수 없는 글을 쓰고 있었다.


계속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