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날, 이웃집 대문이 활짝 열려있고, 바깥에는 숨막힐 정도로 커다란 이삿짐차가 와있고, 노란 모자를 쓴 사람들이 박스를 들고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옆집이 이사 가나 보다.’ 내가 든 생각은 그게 전부였다. 나는 별 감흥이 없었다. 옆집 사는 사람이야 가끔 마주치기는 했지만 얼굴만 언뜻 알 뿐 말도 붙여본 적 없었으니까. 다만 이사를 가는 동안 방음이 안 되는 벽 사이로 들려오는 소음이 짜증났을 뿐이다. 그러나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고 어차피 금방 끝날 일이었으니까 귀찮게 뭐라 할 일은 아니었다. 엮일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한 몇 시간쯤 지났을까 소리는 그쳤고 차는 없어졌다. ‘아 끝났구나.’ 역시 내가 든 생각은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또 어느날, 이웃집 대문이 활짝 열려있고, 바깥에는 숨막힐 정도로 커다란 이삿짐차가 와있고, 노란 모자를 쓴 사람들이 박스를 들고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뭐지? 내가 무슨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아니고, 똑같은 하루를 루프하고 있는 건가? 하지만 아니었다. 노란 모자를 쓴 사람들은 이웃집에 박스를 들고 들어가서 빈손으로 나왔다. 저번에는 이웃집에 빈손으로 들어가서 박스를 들고 나오지 않았던가. 정반대니까 누가 새로 이사를 오는 거였다. 하지만 저번처럼 그 이상의 흥미는 없었다. 이내 무시하고 집에 들어가서는, 소음을 듣지 않으려고 TV를 켠 채로 소파에 누워있다가, 어느새 소음이 그쳤다. 이사가 끝난 거였다. 하지만 나는 귀찮아서 소파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그렇게 눈꺼풀이 막 감기던 순간, 딩동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짜증섞인 목소리로 “누구세요” 하며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서있는 건 젊은 여자 한 명이었다.
“안녕하세요”
그 여자가 처음 꺼낸 말이었다. ‘어?’ 처음 든 생각은 그거였다. ‘뭐지?’ 뭔가 커다란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랬다. 몇 달 동안 못 들었던 말이었다. 아니 더 나아가서 생애 처음으로 들은 말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말은 이전에 들은 것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 예...”라고 얼버무렸다. 똑같이 ‘안녕하세요’라고 말할 재간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부터 옆집에 이사왔어요. 잘 부탁해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 뒤로도 여자는 한참 떠들다가 돌아갔다. 그 앵앵대는 목소리는 여자가 돌아간 뒤에도 귓속에서 울렸다. 내가 받은 게 대체 어떤 느낌인지 한참 뒤에야 알아차렸다. 그 ‘안녕하세요’에는 가식이라는 개념이 담겨있지 않았다. ‘내 착각이겠지.’ 그렇게 되뇌였지만, 그 생각이야말로 착각이었다.
나는 그 여자와 종종 마주쳤고, 그때마다 그녀는 항상 “안녕하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따라 말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는 남들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그 인사를 받은 이웃들은 나와 같은 반응이었다. 여태껏 안 듣던 말을 들어서 그런 거겠지만. 나는 그 말을 계속해서 듣다 보니, ‘나도 똑같이 인사를 해야 하나’, ‘아니, 해야 하겠지, 그게 맞겠지’, 난생 처음 그렇게 생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오래 가지 않았다. 내가 이 낡은 아파트에 익숙해졌듯이 그 여자의 “안녕하세요”에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똑같이 따라하는 걸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맨 처음 만났을 때의 감흥은 더 이상 없었다. 남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똑같이 인사를 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누군가 총대를 매고 똑같이 인사를 하면 다른 이들도 그걸 보고 똑같이 할 것이고, 그럼 이내 모두가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게 될 테니 그것이 정상이 되겠지만, 그런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면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단 한 명만이 이상한 것이고, 나머지는 정상인 것이다. 그러니 남들 생각에 굳이 ‘정상인’의 입장에서 ‘이상한’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심보로 이어졌을 것이다. 나라고 그 심보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 여자는 항상 마주칠 때마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빼먹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했다. 어느새 고개조차 끄덕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여자는 매번 똑같았다. ‘저 사람은 지치지도 않나.’, ‘좀 귀찮게 하지 말지.’ 나는 그런 생각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