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하나의 생명을 짓밟았다. 그것도 아무 감정도 없이 무참히.

가로등에서 내려오는 은은한 불빛이 붉게 물든 가로수길을 비췄다. 나는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분명 나는 이것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지 않은 사물처럼 생각했는데...

 

 

몇십 분 전의 퇴근길에서부터였다. 나는 여느 때처럼 회사에서 퇴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2호선 지하철을 빠져나왔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헤집고 나오는 동안 나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망상에 빠졌다. 이것이 내 인생의 거의 유일한 낙이었다. 잠깐의 망상을 접고 지하철 역을 나와 우리 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로 걸어갔다.

 

찬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내 몸을 감싸 늦가을의 추위를 절실히 느끼게 했다. 나는 내 겉옷을 싸매 최대한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바람은 얄밉게도 그 틈으로 비집고 들어와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내가 무참히 짓밟아놓은 생명은 그러던 중에 발견한 것이었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높은 곳에 있었더니만 지금은 차디찬 길바닥으로 떨어진 채 정처없이 나돌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런 놈도 파릇파릇하던 시절이 있었지. 이번 여름까지만 하더라도 확실히 그랬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시간이 참 빠르고 야속하게 느껴졌다.

 

하나의 생명을 무참히 짓밟은 것은 그 생각을 한 지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다가가 소리없이 생명을 앗아갔다. 옛 생각이 들어 한 번 해보고자 했던 단순한 충동 때문이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가 없었다. 그것으로부터 단발적으로 내뱉어진 자그마한 소리를 제외하면.

 

붉게 물든 가로수길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더 선명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아름답다고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았다. 단순히 누군가가 치워야할 쓰레기에 불과할 뿐.

 

내가 그것의 생명을 짓밟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생명의 존엄성을 생각하지 않는 차가움. 그것이 작고 하찮다고 여긴 무관심함... 이 모든 것이 섞여 내가 무감각하게 그것의 생명을 으스러뜨리게 만들었다.

 

나도 참 이런 생각을 다 한다. 이제 앞으로 걸어가야지. 그러나 앞길은 이제 어두워지겠구나. 불빛이 중간에 간당간당 있을 뿐인 암흑길이겠구나. 지금 내 발 밑에 펼쳐진 붉은 거리가 계속 반복되겠구나. 붉음만이 있을 길바닥에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야지.

 

그나저나 이건 이제 어떻게 할까. 평소처럼 모른 체하고 걸어가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떠오른 왠지 모를 철학적 사고들이 그러기를 거부했다. 그냥 인사라도 하고 갈까. 작별인사라도 남기고 갈까.

 

아니면 이것들을 여러갈래로 찢어놓을까. 아니다. 좋지 않은 방법이다. 최소한의 존엄함은 지켜주고 싶으니까. 집으로 가져가서 전시해놓을까. 아니다. 이러면 그것이 썩기만 할 것이다. 아니면...

 

갑자기 이런 망상을 하는 내가 참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 발에 짓밟힌 생명을 다시 눈여겨보았다. 붉게 물든 다섯개의 손가락이 으스러진 채 차디찬 밤바람을 맞고 있었다. 나는 다시 무감정하게 등을 돌리고 가던 길을 갔다. 가로등이 사라져 불빛이 거의 없는, 어둡고 붉은 길로.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참 한심하다. 퇴근길에 단풍잎을 밟고 이런 망상을 하다니, 미친 짓이 아닐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