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수필을 군에 적응하지 못해 공익이나 면제 판정을 받으려고 하는 불쌍한 젊은이들에게 바칩니다.

저는 성공했으며, 이 글을 읽으면서 저와 같은 처지에 있으신 분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병역 기피의 목적으로 쓰는 글이 아니며, 사람은 인생의 기로에서 선택을 한 후 후회를 느낄 때, 

다른 길을 택하며 주장을 할 권리가 있음을 교훈적으로 쓰고자 하는 글입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나오는 몇 페이지의 기록들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학교생활기록부이다.

이 생활기록부가 성인이 되어서 이용될 것이라는 생각은 상상도 못했고,

그 날을 위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쳐갈 것이라는 생각 또한 하지 못하였다.

막상 가보니, 수련회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 

훈련소의 침대에서 시계를 밤마다 계속 보았다 말았다 하며 

일종의 공황 증상을 느꼈었고, 끝내 햄버거를 먹고 

5일만에 귀가했던 그날이였다.

그곳에 있었던 소대장님께 

조용히 말씀드렸다.

"집에 가고 싶다." 

중간 중간 훈련소 옆에 있는 의료원에 가서 

각종 신체검사와 정신건강의학과를 오갔고

밤마다 잠이 안와도 비정상적으로 오지 않았고,

심장이 극도로 벌렁 벌렁 거렸던 무시무시한 5일이 지나고

다행히도 집에 왔다. 

부모는 한숨을 쉬었고, 나 또한 속이 울렁거려 편히 자지는 못했다. 몰랐다.

그때 처음으로 대학교 정신병원에 방문할 것이라는 일도 말이다.

버스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 처음 심리검사를 했다.

종이에는 사칙연산과 데칼코마니 등 

초등학교 1 2학년 수준에서 풀 수 있는 문제들이 보였고,

거침없이 풀어냈다. 

"이곳에 순돌씨와 같은 상황으로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학창 시절때 따돌림을 당해 화장실에서 점심시간을 보냈던 이야기와

고등학교 수련회 때 베개 싸움을 하다 너무 아파서 방 밖으로 나와 혼자 시간을 보냈던 이야기,

중학생 때 핸드폰을 입에 물려지고 사진을 찍게 했었던 이야기 등 

암울한 수련회 당시의 이야기가 오갔다.

이때부터 나는 남자들의 삶에 회의감을 느꼈던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모르겠다. 너무 폭력적인 과거였다. 토로하니까 더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다.

그 후 나에게 처방되는 약은 먹지 않았다. 먹을 이유가 없었고,

처방되는 즉 즉 땅바닥에, 화장실 변기에 부어 버렸다. 

부으면서 스트레스가 풀렸고, 최대한 자연적으로 정신 건강을 회복하려고 시도했다.

그때부터 그림을 그리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으로 예술을 시작하게 되었고, 

사이버 수사대라는 장래 희망은 저 멀리 가버리고 

나의 삶을 위로하는 그림으로 나의 삶을 칠하게 되었다. 

시작은 암울했다. 그림을 그리며 정신이 혼란해졌음은 물론이요,

마음속 가장 깊이 있었던 응어리가 꺼내지는 느낌과 더불어 

그렇게 그림을 토해내고 나니 너무 상쾌했다. 

그렇게 나의 감성을 담당하는 구순이와, 

이성을 담당하는 구돌이라는 캐릭터가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그 친구들은 가끔 슬럼프에 걸려 마계로 갈 때도 있지만,

본질은 평화와 달동네, 학교, 요괴, 일상적인 감성을 추구하는

착한 친구들이다. 

앞으로 순돌이가 이 인간의 인생을 어떻게 문학적으로 표현하며 

과거에 겪었던 일을 몇 번이고 재탕할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 인간의 인생을 응원한다. 제 3자의 요괴로서 보는 

뭐라고 하지 못할 복잡하고 이상한 이 철없는 인간의 인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