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너도 못 받았을 거 아니냐고."



기분도 쿰쿰한데 벌써 몇시간째 전화로 날 볶고 있는 이 여자는 누구인가.

응~ 친구야~.

회로 굴리지 마라. 그냥 친구다.



"받았을 수도 있지 초콜렛."



오늘은 3월 14일.

다른 말로 화이트데이.

연인들끼리 [사실 내가 선물이야] 라는 헛소리를 지껄이며 우후후꺅꺅한다는 그런 날이다.

솔로들은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날이고.



"내가 받았는지 아닌지 네가 어떻게 알아."



물론 나도

우후후꺅꺅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기에

여자에게 무언가를 받거나 하진 않았다.


그냥 허세다.

남자가 가오 좀 있어야지 않겠어.

솔로 인생 20년이 21년으로 변했습니다 라곤 말 못 하잖아 그야.



"네가? 초콜렛을? 받아?

말이 되는? 농담을? 해야? 하지 않을? 까?"



... 바로 들통나버렸지만.

얄미운 년.

저가 줄 거도 아니면서 왜 난리야.



"그럼 네가 좀 주던가. 우정초코 뭐 그런 거 없냐?"


"초콜렛은 발렌타인이고. 화이트데이는 하얗기만 하면 다 된다니까. 사탕이든 뭐든."


"하... 그렇다고 하고. 왜 전화했어."


"짜장면 먹으러 가자고."


"짜장면? 짜장면 왜."



예상치 못한 제안에 그만 목소리가 커졌다.



"너 발렌타인 때도 뭐 못 받았지?"


"..."


"발렌타인도 땡이고 화이트데이도 땡이면 블랙데이라고 짜장면 먹는 거 있잖아."


"그거 4월 며칠 아니냐."


"그렇지. 아직 블랙데이까진 시간이 좀 남았지. 근데..."



솔직히.

말 흐리면서

목소리 작아지던 거.

조금 귀여웠던 것도 같다.


내용은 떼놓고 생각하면.

아니 그야

뱉는다는 말이 그따구인데 그런 생각이 들 리가 없잖아.



"블랙데이까진 아직 한참 남았지만..."


"남았지만?"


"나는 지금 배가 고프다."


"뭐?"


"'지금' 배고프다고."




*




"왜."


"응?"


"너 나한테 왜 그래."



톡 톡 톡 톡 톡.

내 손톱이 조금만 두꺼웠더라면

아마 지금쯤 책상 모서리에 구멍이 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맹렬히

열심히

열정적으로

식탁을 두드렸다.



"내가 산다니까 그러네."


"그거야 고맙지. 고마운데."



중국집 도착하자 마자

여사친이 했던 말이

이번엔 자기가 사주겠다고.


전에 한번 나한테 돈 빌린 걸 갚는 거라나 뭐라나.

솔직히 기억 안 나는데.

그런 적이 있었나.



"날 죽일 셈이슈?"


"에이, 왜 자꾸 툴툴거려. 새로운 시도 좀 해보라는 거였는데."


"단무지 한조각 없이 짜장면 집어삼키기 같은 시도는 필요없거든?"



단무지는 나오자마자 벼락 같이 여사친이 쓸어담았다.

한번 없이도 짜장면을 먹어보라면서.

느끼한 거 못 먹는 줄 뻔히 알면서 왜 심술이야.

이럴 거면 그냥 내 돈 내고 짬뽕을 시켰지.



"그래서, 올해도 진짜 못 받은 거야?"



여사친은 갑작스레 화제를 돌렸다.

누가 봐도 어색한 타이밍이었는데.

듣기 싫다 이거지?



"그렇다니까 그렇네."


"아무 것도?"


"어."


"그 왜, 너 전에 여친 있다고 하지 않았어?"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얘는 나 오늘 물 먹이려고 부른 게 분명했다.



"없어."


"없어?"


"하도 다들 귀찮게 구니까 둘러댄 거지."


"썸은?"


"썸녀가 있었으면 내가 지금 여기에 왔을 리가?"


"그렇지, 없겠구나 참."



한차례의 검문.

이후 여사친이 한참을 떠들기 시작했다.


내용은 뭐 대단한 건 아니었다.

또 모솔 경력에 한줄이 더해졌냐는 둥

너는 숫기가 없어서 큰일이라는 둥 하는 것들이었다.


한데 이런 건 보통 썸탈 때 얘기하는 거 아니냐고.

왜 내가 여사친한테 이런 소릴 듣고 있어야 되냐고.

네가 내 엄마냐.


하여간 쟤는 저게 문제다.

얼굴이야 그냥저냥 예쁜 상인데

조금 시끄러운 게 아니니.



"애초에 야."



듣기 싫은 잔소리는 끊어버리는 게 상책이다.

벌써 밥 먹고 30분 째 이러고 있는데 걔는 지겨워하는 기색도 없었고.



"화이트 데이는 남자가 여자한테 주는 거 아니냐? 왜 내가 못 받았다고 잔소릴 하는 거야."


"그럼 주기라도 하던가. 마음 있는 애들은 성별 구분 안 하고 주고 받던데."


"요새 과자 값 비싸다."


"그럼 사탕을 사서 주든. 하얗기만 하면 되는 게 원래 화이트데이라니까? 너 뭐 정말 마음에 드는 애 없어?"


"... 조만간 절로 도망을 가든가 해야지 원."


"어? 좋아하는 애 있다고? 누구?"



중얼거리듯이 한 말을 잘못 들은 거 였을까.

여사친은 연신 "누구?" 를 외쳤다.

도대체 뭘 어떻게 들으면 저렇게 들리는 건지.



"없어. 없으니까 죽을 맛이라는 거지."


"그래? 없다고? 정말 없어?"



갑자기 침착해지던 목소리.

네가 내 현황을 알아서 어디다 쓸 거냐고.



"헛소리 그만하고 일어나자. 시간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벌써 가려고?"


"집 가서 롤 할 거다."


"어..."



뭐가 아쉬웠던 걸까.

마지 못해 일어서던 여사친은 먼저 카운터로 달려가 계산을 했다.

이때까지도 해도 나는 짜장면의 느끼함에 메슥거림을 느끼고 있었다.

씹을 거 하나 없이 기름칠만 했으니 당연한 것이겠지만서도.



"혹시 뭐 껌 같은 거 있어?"



여사친은 은근히 예민한 구석이 있어서

밥을 먹고 나면 항상 입가심 거리를 씹곤 했다.


그때 쓰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것은

보통은 껌이었고

때로는 사탕이기도 했다.



"껌은 없고 박하사탕 하나 있지."


"그거라도 줘. 영 입안이 텁텁하네."



박하사탕을 들여다 보며

어쩐지 기묘함을 느꼈다.



"이것도 사탕은 사탕인데... 하, 참."


"뭐라고... 했어...?"


'질겅질겅'


"아냐 아무 것도."



됐어. 내가 너한테 받다니.

농담이라도 재미가 없다.


그럴 리가 없지.

그냥 올해도 기나긴 솔로 경력에 1년을 더 얹을...


...?


'질겅질겅' ?


??



"너 뭐 먹냐?"


"응? 껌."


"껌 없다며."


"... 아."


"껌 있으면 나도 껌으로 줄 것이지 왜 이걸로..."



오른손.

여사친의 오른손에 껌 통이 보였다.


껌 통에는 아직 개봉하지 않은 껌이 3조각 있다.

지금 씹고 있는 껌까지 포함하면 4조각.


3초.

3초간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머리 속을 스치는 수많은 물음표.

그리고 평소부터 이상하게 생각하던, 오늘 따라 더더욱 이상하던 여사친의 행동들.



- 화이트데이는 하얗기만 하면...

- 껌은 없고 박하사탕 하나 있지.

- 여친 있다고 하지 않았어?

- 진짜 못 받았어?

- 썸은?

- 좋아하는 애 있어?

- 없다고? 정말 없어?



손 안에는

하얀색 박하사탕.

아직 뜯지 않은 박하사탕.

하얀색 사탕.

화이트데이.

왜 굳이 이걸로.


고개를 돌렸다.

여사친을 보았다.

여사친의 뒤통수를 보았다.


이거 설마...

아니지? 내가 너무 예민한 거지?

네가 아무리 꼼꼼한 성격이래도 이건 내가 오버한 거 맞지?
그냥 오늘이 그런 날이라 내가 망상 돌리고 있는 게 맞지?



"뭐, 뭐해? 집 가서 롤 한다며? 빨리 가자."



답지 않게 말을 더듬던 녀석의 얼굴은

저녁 시간이라

노을 빛을 받고 한껏 붉어져 있었다.


... 뭐냐고 헷갈리게.




*



https://arca.live/b/lovelove/46317068?p=1
순챈 홍보용으로 돌린 건데 일단은 여기다가도 올려 놓음.
문제 생기면 수상은 포기하지 뭐
어차피 굇수들 많아서 받을 일도 없어보이지만. 애초에 글 퀄이 급하게 써서 영 별로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