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서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죽음 뿐이라고, 관리부에 관한 소문은 그랬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제 498번째 세계가 종료됩니다."


 덤덤한 기계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높낮이 따위도 없이 평서문을 읽는 태도였다. 나는 턱을 괴고서 화면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까지 보이던 화면은 온데간데 없고 까만색 화면만 띄워져 있었다. 498번째 세계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책상 위의 주스를 마셨다. 흐르면 끈적끈적 해지더라도 달다는 이유로는 마실 만 했다. 사실상 서랍 안에 있던 간식거리들은 업무 중에 다 먹어버려서 그 외에는 먹을 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매일 채워 놓지만 퇴근 시간이 되면 다 비워지곤 했다. 단언컨데, 언제나.

 그러다 당뇨로 죽을 거라는 말은 많이 듣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여전히 손은 단 것으로 갔고 그만 두려는 시도는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다. 당뇨가 걱정된다면 당연히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사실상 당뇨 걱정 따위야 하지 않는 게 아니냐 라고 물으면 대답은 긍정일지도 모른다. 항상 당뇨로 죽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적어도 당뇨로 죽을 일은 없었다. 그 외의 이유로 죽으면 몰라도.


"...선배님, 진짜로 종료된 거에요?"


 건너편 자리의 신입이 물었다. 안색이 창백했다. 신입들이 처음 '종료'를 겪었을 때의 흔한 반응이었다. 유난히도 밝은 신입이라 그나마 괜찮을 줄 알았는 데 그러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하면 몰라도.


"'종료'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나 봐?"

"절대로 누르면 안 된다는 것 외에는...... 들어본 적이 없는 데요."

"누르면 안 되는 이유가 뭐라고 했지?"


 신입의 몸이 덜덜 떨렸다. 곧 토해버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면 관리하던 세상이 멸망한다고... 그래서 누르면 안 되는 거라고 배웠습니다."

"맞아, 잘 배웠네."


 나는 보고서를 창에 띄웠다. 제 498번째 세계는 13월 35일 천계 6시에 종료되었습니다. 보고서 말미에 간단한 문장을 써놓고서 전송했다. 오늘의 업무는 더 이상 없었다.


"설명서에는 관리부가 멸망도 담당한다는 설명이 없었나?"

"최후의 순간에만 누른다고..."

"아까 전도 최후의 순간이었지. 그거 의외로 자주 찾아와."


 신입의 머리 위에 있던 헤일로가 사시나무 떨듯이 흔들렸다.


-


 설명서에 쓰여있는 관리부에 관한 설명은 빈약한 편이다. 그저 세계를 관리하며 최후의 순간에서는 멸망시킨다. 이런 뉘앙스의 내용이 전부다. 가장 중요한 사실에 대해서는 극히 일부분만 써 놓았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관리부에 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착각은 세계의 멸망이란 지금까지 일어난 적이 없으며 먼 훗날에나 올 것이라는 것이다. 잘 하면 그것을 막을 수 있다는 착각까지도.

 방금 전에 종료된 세계는 498번째의 세계다. 그 앞 전에만 하더라도 400여 개가 넘는 세계가 멸망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부서는 창설 된 지 800년 쯤 되었다. 세계 하나가 멸망하는 데에는 평균적으로 1년이 조금 넘었다. 꽤 길지 않은 시간이었고, 신입들이 들어오는 때도 그정도였다.


"마지막 까지도 죽는 다는 것은 몰랐을 거다. 대체로 세계가 터져버리는 식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는 마."


 신입은 여전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지켜보던 세계를 다시 볼 수 있다고 믿듯이. 그러나 믿음은 어디 까지나 믿음일 뿐이다. 하기에는 어이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일평생의 사실이었다. 단 한 번도 엇나간 적 없이 옳았던.


"내일 부터는 499번째 세계를 지켜봐야 할 거야. 498번째는 멸망했으니 이제는 499번째 세계를 관리 해야겠지. 종료된 세계에는 더 이상 줄 시간이 없어."


 관리부의 업무는 단순했다. 바라보던 세계가 실제로 존재 했었는 지에 의문이 들 정도로. 세계를 지켜보며 '관리' 라는 것을 하다가 끝에 가까워진다면 종료를 시킨다. 그 뒤의 가능성이 보인다 하더라도 확률이 20%도 되지 않는 다면 '종료'를 실행한다. 가능성의 가치는 판단하지 않으며 성공할 확률만을 본다.

 종료를 실행하면 그 날의 업무는 끝이며 그 다음 날은 다시 새로운 세계를 '관리'한다. 그 '관리'에는 인류의 행동 양식이나 역사의 흐름을 기록하는 것 따위가 포함된다. 가끔씩은 예언자를 통해 예언을 내리는 행위도 해당된다. 인류의 행보가 너무 엇나갈 때에 실행한다. 그 엇나감의 징조는 관련 매뉴얼이 있다. 그 기준이 무엇이었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창설 되었을 때의 사원들은 모두 죽은 지 오래다.


"너무 힘들면 그만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잘 맞지 않는 부서에 오래 있어봤자 좋을 것도 없으니까."

"아니요, 하겠습니다. 할게요."


 그렇게 말하는 신입의 표정이 어딘가 절박해 보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반 쯤은 의심을 가지면서 닿을 수 없는 것을 쫓는 불나방과 비슷한 표정이었다. 그 자신은 모르더라도 그렇게 보였다.


"너무 몰입하진 말고, 그냥 게임이라고 생각해. 데이터 덩어리를 만든다고 생각하는 게 나을 거야."


 그러나 말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등을 돌렸다.

 그 뒤에서 신입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 지는 알 수가 없었다.


-


 삐이익 하는 기계음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새로운 세계가 생겨났다는 신호였다. 나는 길게 내려온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화면에는 구형의 마그마 덩어리가 띄워져 있었다. 한 세계의 시작이지만 저 세계는 과연 얼마나 갈 수 있을까 라는 썩 좋지 않은 생각만이 들었다.

 나는 책상 위의 커피를 마셨다. 쌉살해서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양은 마음에 들지 않았는 데, 종이컵에 탄 믹스 커피라 두 세 모금만에 동이 났다. 나는 혀를 차며 뒤를 돌았다. 휴지통은 부서실의 뒷쪽 구석에 있었다.


"일찍 왔네."


 출근 시간의 5분 전의 시각이었다. 다른 부서에서는 자연스러운 상황일 지도 모르지만 이 부서 만큼은 출근 시간 보다 늦게 오는 사원들이 많았다. 부서의 특징 상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규칙의 일종이었다. 따라서 대다수의 인원이 출근 시간 보다 늦게 도착했다. 그러나 신입은 이미 자리에 와 있었다.

 신입의 눈가에는 다크 서클이 있었다. 어젯밤에는 잠을 설친 듯 보였다. 그러나 빈말로도 안색이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어제 보다는 나았다. 기분 전환이 절실해보였다. 그러나 이 날만큼이나 기분전환이라는 말에 걸맞는 날도 없었다.


"잘 왔어. 일찍 왔을 때만 볼 수 있는 것도 있거든."


 나는 신입에게 작은 카라멜을 하나 주었다. 신입은 나를 올려다 보았다. 설명하지 않고서야 이해 할 수 없겠지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것은 직접 봐야만 이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한 세계의 '종료', 그 다음 날. 역설적이게도 그 날은 세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신입들이 가장 절망하는 날이 '종료'의 날이라면 가장 기뻐하는 날은 그 다음 날이었다. 그것은 잠시나마 그 전의 세계을 잊을 수 있는 이벤트였다.

 새로운 세계가 창조될 때, 그 태초의 모습만은 아름다운 경우가 있었다. 관리부에서도 '종료'의 다음 날에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매사에 무뚝뚝한 사람들 조차도 그 광경만큼은 아름답다고 칭했다. 하나의 탄생은 언제나 아름다웠고, 그것은 세계라 해서 다를 것은 없었다.

 시계의 분침이 움직이면서 몇 분이 흘렀다. 뜨거운 행성은 식어가는 중이었다. 붉은 색 마그마가 굳으면 그 위는 푸른색 바다로 덮였다. 그 때 부터가 생명체들의 시작이었다.


"운 좋은 줄 알아, 이거 본 사원들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거든."

"네?"

"그냥 화면을 바라보면 돼. 굳이 따질 필요는 없어."


 뜨거운 마그마가 식었다. 그와 동시에 화면에는 푸른 행성이 띄워졌다. 행성의 태초의 모습이다. 나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영롱한 푸른색이 눈에 담겼다. 시선을 뗀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푸른 빛 행성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이 세계가 얼마나 갈 수 있을 지에 대한 생각 따위야 단 번에 날려 버릴 정도로. 처음으로 봤었을 때에도 그랬다. 그 전날에 '종료'되었던 세계의 모습을 잊을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신입은 황홀경을 보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에 드나 봐?"


 나는 씨익 웃으면서 신입에게 물었다. '관리'라는 업무를 할 때에, 이 때 만큼은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니, 웃으며 한 세계의 탄생을 축하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이 전의 죽음을 추모하더라도 새로운 생명 앞에서는 그것을 축하해야 했다.


"네. 정말로,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신입은 세계의 탄생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기쁘게 웃으면서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마주하고 있었다. 여태껏 지켜보았던 신입들 중에서 가장 세계를 사랑하는 녀석이었다. 관리부에는 어째서 들어왔는 지를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을 한 적이 없지만 나는 알 수가 있었다. 세계를 '관리'한다는 것은 그 세계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이 세계도 '관리'할 수 있겠어?"

"네, 당연히요."


 신입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으로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축하하고 있었다. 짧은 하얀색 머리카락의 아래. 그 아래의 뺨이 약간은 붉게 물들어있었다.


"한 번 잘해 봐."


 나는 신입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꽤 마음에 드는 녀석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지가 정말로 궁금할 정도로.

 잘해보라는 한 마디는 삐딱한 시선 하나 없는 진심이었다.


-


"벌써 출근했다니, 너무 일찍 온 거 아니야? 안 힘들어?"


 출근 시간보다도 몇 분은 이른 시각. 그러나 신입은 꽤 오래있던 것으로 보였다. 그 날 이후로, 언제나 그랬다. 이만큼의 열정을 붓는 사원은 거의 없다시피 하니 유별나다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말이 좋아서 거의 없다지, 사실 거의라는 말도 떼고 아예 없었다. 나는 창으로 해를 바라보았다. 멀쩡히 동쪽에서 터오르고 있었다. 이상할 것이라고는 없었다.


"괜찮아요, 안 힘든걸요."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은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 신입은 힘들어 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한마디로 천직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잡은 것 같았다.


"...너만큼 유별난 녀석은 또 처음이다. 평소에도 특이하다는 말은 자주 듣지?"

"네, 자주 들어요."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그러다 그냥 자리로 향했다. 신입이야 뭐 밝을 수록 좋긴 했다. 적어도 나쁜 점은 없었다. 일을 좋아하는 사원은 어디에서나 환영이다. 이 부서도 그건 그랬다.

 나는 문서파일을 노트북 화면에 띄웠다. 499번째 세계의 보고서다. 나는 행성을 바라보면서 특이사항들을 적었다. 예를 들자면, 큰 전쟁은 무엇이 있었으며 그 나라들은 어떤 나라들이고 그로 인한 결과는 무엇이 있는 지 따위다. 별로 특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 데, 이전 세계에서도 일어났던 일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물론이고 공간마저 다르지만 그랬다. 사람 사는 것이야 대부분 비슷했다. 그럼에도 적는 것은 똑같지는 않으며 특색이야 작게 나마라도 있기 때문이다. 비슷하다는 것은 정체 모를 것들이 아니라는 뜻일 뿐이었다. 호기심은 가지 되, 그 이외의 것들은 가질 필요가 없었다.

 해가 중천에 떠올랐다. 낮의 열기가 뜨거웠다. 7월달. 벌써 여름이 왔다. 창 밖은 매미들이 울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행성의 남반구는 마찬가지로 여름이었다. 덥기야 덥지만 이만한 생동적인 계절도 없었다.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던 초기의 행성은 생명들을 창조해냈었다.

 나는 부서실 뒷편으로 향했다. 휴지통이고 정수기고 간에 공공으로 쓰는 물품들은 죄다 뒤에 가 있었다. 앞편은 커다란 모니터가 있고 그 뒤에 자리들이 있으니 어쩔 수가 없는 구조 다마는 불편한 것은 불편했다. 나는 종이컵에 물을 받았다. 흐르는 차가운 물이 시원했다.

 대다수의 직원들은 자리에 없었다. 갈 만한 곳은 별로 없으니 탕비실 또는 화장실에 있을 것이다.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열 손가락으로도 다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는 데 신입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역시나 라고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뭘 그렇게 보냐?"

"아, 그냥 한 마을을 보고 있었어요. 꽤 아기자기한 마을이에요."


 신입은 작은 마을을 보고 있었다. 외딴 섬에 자리잡은 마을이었다. 숲은 숨이 막힐 정도까지는 아니게 적당히 우거졌고 날씨도 열대지방은 아닌 듯 꽤 쾌적한 편이었다. 곳곳에는 노란색 등불이 걸려 있고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놀고 있다. 집들은 다양한 색이고 분쟁은 없는 듯 평화로웠다.


"예쁘긴 하네."


 저런 마을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은 고립되었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했고 고립되었다는 것은 위치에 따라 최악이 될 수가 있었다. 운에 운이 거듭되어야만 저런 환경이 만들어졌다. 당연히 볼 수 있는 것에도 천운이 필요한 편이었다. 세계를 관리하면서도 매 세계마다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다른 사원들이 봤다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여태껏 느낀 적 없던 기분이 든다는 말이 단번에 이해되었다. 그것은 태초의 세계를 보았을 때에나 느꼈었지 인류의 행동을 보면서는 느낀적이 한 번도 없는 것이었다.


"운이 좋구만. 저런 마을은 찾는 게 진짜 어렵거든."

"그렇게나 어려워요?"

"저렇게 살려면 저 마을 사람들 조상들 덕을 다 합쳐도 저 정도 운은 못 얻을 거다. 로또 1등을 4번 정도는 맞을 수 있을 운이지."


 부족 사회를 벗어났을 때, 그 뒤로 한참의 시간이 흘렀을 때. 평등하던 사회는 무너진지 오래고 철저한 계급 사회가 만연한 때였다. 계급 간의 이동은 나라가 새로 생긴다거나 하는 일이 아니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불가능했다. 그러나 저 마을만은 제외였다. 유별나다 못해 귀하다고 까지 할 수 있을 상황이다.


"그러면 이렇게 바라보는 저희도 운이 좋은 거네요."

"그렇지."


 그냥 운이 좋은 것도 아니고 정말로 운이 좋은 것이었다. 삭막하지 않은 것은 사람들 손이 닿은 곳에서는 찾기가 어려웠다. 적어도 지금껏 봐온대로는 그랬다.

 그러나 아닐 때도 있었다. 지금이 꼭 그랬다. 499번째 세계는 나중에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물을 마셨다. 여름의 열기가 적당한 정도로 식었다. 그동안 열에 취해서인가 온갖 생각이 들었다. 그 중에서 가장 선명한 생각은 이랬다. 업무에 대해서 배워야 하는 것은 신입이지만, 오히려 신입에게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 같다는 생각. 그러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


 쌀쌀한 가을 바람이 불었다. 벽에 붙은 달력은 11월달의 장이 펼쳐져 있었다. 낙엽들은 거의 다 떨어진지 오래였다. 그냥 가을도 아니고 늦가을이었다. 한 해는 반도 넘게 지나갔다. 499번째 세계도 생긴 지는 그정도가 되었다. 이번 세계는 꽤 순탄한 편에 속했다. 엇나감의 징조조차도 별로 없었다. 유난히도 평탄했다. 나쁘지는 않았고 오히려 좋았다. 심사가 배배꼬여 뒤틀린 사람이 아니라면야 좋아하는 게 당연했다. 세계의 '종료'를 유쾌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동안 세계는 많은 시간이 흘렀다. 신분사회가 정점을 찍던 것은 옛일이 되어 교과서에 실렸다. 기술은 발달해서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태양과 달의 빛에 의존하던 사람들은 스스로 밝힌 불 아래를 걸었다. 예전에는 삭막하다고 칭했을 광경이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보고서에 서술하는 내용은 사실관계야 비슷했지만 그 뒤에 따라붙는 서술의 내용에는 변화가 생겼다. 최근에는 더 긍정적으로 업무를 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이 또한 괜찮은 변화라는 말도 들었다.


"오늘은 또 어디를 보고 있는 거냐?"

"아, 선배님. 선배님도 한 번 보실래요?"


 신입은 어느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이 내린 밤의 도시였다. 그러나 도시는 밤하늘보다도 밝았다. 더 밝다 못해 현란하게 까지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예쁘죠?"

"그래, 예쁘네."


 거리 곳곳에 깔린 네온사인들. 그것들은 영롱하게 빛났다. 살아가는 사람들의 열기로 차가운 밤 임에도 뜨거웠다. 전쟁따위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평범한 도시. 평범하기 짝이 없지만 정말로 아름다웠다. 그 전에도 봤던 적은 있지만 감상은 전혀 달랐다.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그저 좋았다. 감성 따위야 다 메마른지 오래 임에도 그랬다.

 이 세계에서 신입이 찾아낸 광경들은 많았다. 그것들은 하나 같이 아름다웠다. 인류는 정말로 아름다운 존재들이며 더 없이 황홀한 광경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듯이. 지금까지의 상식은 전부 무너져 내리게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일평생 알아왔던 것들이 부정당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지만 불쾌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심 그깟 것들이야 부정 당하기를 바랐기에 그랬다.


"전에도 비슷한 건 봤었는 데, 이렇게 보니 또 색다르네."

"전에는 어땠는 데요?"

"그냥, 지금만큼이나 예쁘다는 생각은 안 들었었지."


 전에는 '관리'하는 세계를 데이터 덩어리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것은 데이터 덩어리라는 것에 비견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 세계에 아름다운 광경들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광경들은 실재했었다. 당연하게도 그것들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 세계는 생명력이 넘쳤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그 세계는 살아있다고 할 수가 있었다.

 가을 날에 바라보았던 풍경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면서 아름다웠다. 관리부에서 일한지는 꽤 오래된 편이지만, 그 중에서 가장 보람찼던 순간이 있느냐 라고 물으면 이 때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499번째 세계는 너무도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었다.


-


 그 날은 차가운 겨울 날이었다. 새하얀 눈처럼 모든 게 창백하게만 보였었다. 무언가 죄다 어긋난 듯이 병적으로만 보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끔찍하게도 그랬었다. 모든 게 잘못되었던 날이었다.

 창 밖에서는 눈이 내렸었다. 그러나 한가롭게 눈을 감상할 시간은 없었다. 스피커에서는 경고음이 울려 퍼지고 화면에는 붉은색 경고창이 불길하게 깜박였다. 순탄하던 세계는 그 안일함을 비웃듯 어느 때보다도 끔찍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멸망의 징조가 이렇게나 빨리 나타낸 것은 처음이었다. 이례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랬다. 더욱 끔찍한 것은 그 뒤의 가능성들이 겨우 10%의 확률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전혀 부정할 수가 없는, 완벽한 멸망이었다.


"곧 종료 시퀀스에 돌입한다."


 부장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밖에서 내리는 눈 만큼이나 냉정했다. 사실일 리는 없지만 느끼기에는 더없이 그랬다. 그 목소리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부장은 부서실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자리한 부장실에서 일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다른 사원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나와 신입 뿐이었다.


"부장님, 제발 딱 한 번만 재고해 주세요. 아직 가능성이 있는 세계입니다. 제발, 딱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신입은 부장실로 연결되는 마이크에 절박하게 외치고 있었다. 그것만은 너무나도 선명했다. 울먹이는 듯한 표정으로 제발 이라는 단어만을 반복하며 중얼거렸었다. 평소에 정돈한 채로 두었던 머리카락은 죄다 산발이 된 채로 그랬었다. 눈가는 엉망으로 붉어졌고 항상 웃던 모습과는 달리 웃음기라고는 단 한도 없었었다.


"단 하루만이라도 기회를 주세요. 제발요."


 신입이 까마득하게 높은 부장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도 되지 않는 일이다. 최악의 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 만큼이나 신입은 간절했었다. 그 뒤에 따라올 징계는 걱정조차 되지 않는 듯이. 저 세계에게 몇 시간밖에 안 되는 시간이라도 허락되게 하기 위해서, 그 이유로 그랬었다.


"...번복은 없다. 실행해라."


 그러나 결과는 변하지 않았었다. 499번째 세계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겨우 몇 분 전까지는 살아있었던 것이라 해서 죽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하나의 세계도 그랬다.

 다른 사원들이 '종료'를 실행하려 했던 때였다. 신입은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렇게 해서라도 막기 위함이었다. 울면서 애원하면서 다른 사원들을 말렸다. 하나 같이 직급이 높은 선배들이었음에도 그랬다. 그 결과가 아무리 끔찍하더라도 한 세계의 멸망에는 감히 가져다 댈 수 없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신입은 그것을 막지 못했다. 회상하기에 결과는 변하지 못했다고 했었던가. 이 또한 변하지 못한 결과였다. 더 없이 끔찍하게도.


"제 499번째 세계가 종료됩니다."


 스피커에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신입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에 무엇이 담겼었는 지는 아직도 생생하다. 절망, 슬픔, 분노. 그리고 죄책감. 수많은 생명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이었다. 더 없이 끔찍하다는 시선이었다. 세계의 '종료'가, 그리고 그것을 막지 못한 자신이. 처음 '종료'를 겪었을 때의 표정도 그랬을 지는 모른다.

 신입은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었다. 그러다 점점 빠르게 걷더니 부서실을 뛰어나갔다. 그 순간에 눈이 마주쳤지만 신입은 계속 달려나갔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신입은 계속 달려나갔었다. 부서실의 문을 넘어서, 계속. 그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를 나는 예측할 수가 있었다. 예언과도 같은 예측이었다. 참으로 참혹한 내용의. 부서실의 문을 빠져나가면 그 끝에는 커다란 창문이 있었다. 신입은 날개를 핀 적이 없었다. 복도에 다급한 발소리가 울렸었다. 그러고는 잠시 정적이 이어졌었다. 위험하고도 불길한 정적이. 나는 헛숨을 들이킬 수 밖에 없었었다. 조용한 적막이 그리도 무서웠었다. 쥐가 죽은 듯이 끔찍한 정적이 흘렀었다. 아주 조용한 적막-

 그리고, 콰직. 뼈가 뭉개는 소리가 울렸다.


 그 부서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죽음 뿐이라고, 관리부에 관한 소문은 그랬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 "제 499번째 행성이 종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