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연재중인 소설의 일부분입니다.

읽을 때 조금이나마 덜 불편할 수 있도록 사전 정보를 알려드리자면

단야 = 다나(작중 가명) 이며 모종의 이유로 전사들과 결투를 진행중인 상황입니다.

왼팔은 단야랑 별개의 존재입니다.


단야 복장은 일반적인 메이드복을 생각해주세요.

당연히 여자입니다.





다른 무기도 없고, 복장도 이것 뿐이다.

어쩔 수 없지. 그녀가 정자세에서 검을 뽑는 자세로 돌입했다.
치마 앞의 천이 들리며 단검이 나타났다. 아까 강도들이 쓰던 단검이었다.

"단검으로...?"

성전사들이 당황했다.
단야가 아까 보여줬던 몸놀림과 실력은 정말 대단하긴 했지만 압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정면 대결에서 단검이라니?

"저는 이 정도면 충분해요."

하지만 단야는 상황을 일일히 설명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어차피 여기서 더 준비할 수도 없으니 괜찮다는 의미로 한 말이었지만...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상대가 듣기엔 영락없이 이렇게 들렸다. 너희 따위는 이 정도로 충분하다!

"...오만하군."

가장 선두의 성전사가 먼저 검을 뽑아들었다.

"그 정도라면 선공을 양보할 필요는 없겠지!"

힘찬 발걸음과 햇빛을 정면으로 받아 빛나는 검. 성전사다운 모습이었다.
그가 잘 다져진 돌길 위에 먼지를 일으키며 낮은 자세로 달려들었다.

"흐아압!"

단야가 뒤로 물러서서 피하자 상대의 다음 발이 더욱 강하게 바닥을 박찼다.
계속해 단야를 쫓으며 연속 공격이 몰아쳤다.

"흡!"

계속해서 뒤로 밀리자 단야가 가볍게 뛰어올랐다. 동시에 몸을 뒤집어 반바퀴 회전하면서 상대의 배후에 단검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검이 짧아 어깨를 살짝 흠집내는데 그쳤다.

'역시 너무 짧아.'

제대로 된 검이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흠집만 낼 수 있을 뿐이다.
고작 그 정도로 인정해주지는 않을 테니 역시 제대로 된 검이 필요했다.
물론 빌릴 수는 없을 테니,

'빼앗는 수밖에.'

단야의 눈빛이 변한 것을 보고 성전사가 긴장했다. 첫 격돌로 누가 더 위에 있는지 어렴풋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머뭇거리는 그를 향해 동료들이 외쳤다.

"전력을 다해라, 루스!"

루스라 불린 성전사는 검을 고쳐잡았다.

'속도가 밀린다면 힘과 정확도로 옭아맨다.'

쿵!
아까보다는 느려졌지만 더욱 힘이 실린 도움닫기였다. 그리고 더 정확해진 검격이 단야를 노려왔다.
피하기 어려운 각도로 정확하게 검이 날아온다.

캉!
마침내 단야의 단검과 루스의 검이 정확히 정면으로 부딪혔다.
루스는 곧장 한걸음을 더 내딛었다. 밀어붙여 틈을 만들려는 심산이였다.
하지만 더 이상 검은 밀려나지 않았다.

'무슨 힘이!'

한 손만으로, 그것도 단검으로 맞대고 있는데 기싸움이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그래도 두손이기에 힘싸움에서는 더 유리하다. 루스는 검을 눕히며 억지로 찍어누르기 시작했다.

"윽?"

그 순간 단야는 비어있던 왼손으로 검 손잡이를 잡은 후 오히려 자신 쪽으로 당겼다.
팔까지는 다룰 수 없어서 몸의 힘만으로 당겼지만 예상치 못한 방향의 힘에 루스가 한발짝 끌려왔다.
동시에 단야는 검을 옆으로 흘리며 단검을 놓아버린 후, 두 손으로 손잡이를 비틀어 버렸다.

"큭..."

손에 힘이 풀리자마자 검이 단야의 손에 넘어가 버렸다.
루스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허전해진 양손을 쳐다봤다. 깔끔한 선 패배였다.

"루스, 뒤로 나와. 끝날 때까지 팔굽혀펴기다."

언짢은 표정으로 수염을 매만지며 장년의 남자가 단야의 앞에 섰다.

"솜씨가 좋으십니다."

단야는 검을 이리저리 기울이며 무게와 균형을 확인해보는 중이었다.
이윽고 남자의 말에 반응하며 검을 몇 번 휘두르더니 자연스럽게 왼쪽 허리춤에 댔다.
그 깔끔한 동작과 자세에 남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실력이 뛰어나군. 루스가 신출내기는 아닌데.'
"악터입니다."

악터라고 소개한 장년의 남자가 검을 뽑아들었다.

"다나에요."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쾅!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이 부딪혔다.

"한 손만 쓰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이게 편해서요."

힘과 표정, 말투까지 흔들림이 없었다. 자신은 두 손으로 밀어붙이고 있는데 쉽게 밀릴 기세가 아니었다.

'한 손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뜻이거나...'

아까의 격돌을 생각한다. 악터가 검을 비틀었다.

'다른 짓을 노리고 있다거나!'

비틀린 검을 옆으로 밀어내고 왼발로 단야의 오른손을 노린다.
하지만 단야는 손잡이를 돌려 검을 쳐내고, 곧바로 틈을 노리며 들어왔다.

캉!
질 수 없다는 듯 악터가 그 전진을 쳐낸다.
대낮에도 검 사이의 불티가 선명할 정도로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흡."


그녀가 숨을 들이 쉴때마다 깔끔한 몸놀림으로 사각을 치고 들어왔다.
쳐내기 까다로웠지만 몇 번 보니 숨소리와 들어맞는 리듬감이 느껴져서, 악터는 그럭저럭 공격을 파훼해내고 있었다.

'검술 뿐 아니라 격투에도 능한 자다. 최대한 견고하게 들어가자.'

악터의 공격이 더욱 치밀해졌다. 변칙적인 몸놀림을 취할 수 없도록 더욱 몰아붙인다.
방어는 오로지 감각으로만 해내고 공격의 비중을 올렸다.

"역시 대단하시군."

치열한 공방의 소리에 루스가 고개를 들며 감탄했다.
단야는 점점 먹혀 들어가듯, 왼쪽 아래로 밀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방어가 무너진 순간이었다.


쾅!
악터의 검이 허점을 노리듯 정확한 궤도로 들어오자, 단야는 검을 아래로 유도한 뒤 강하게 쳐내며 무게 중심을 옮겼다.
동시에 자세를 낮추더니 검을 휘두르고, 다시 몸을 뻗으며 기습적인 하이킥을 섞어넣었다.

퍼억!

"크윽!"

단야의 숨소리에 익숙해졌고 반응을 읽을 때쯤은 확실히 몰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확실한 허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야는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숨소리도 없이 재빠른 발차기로 악터의 목 옆을 가격했다.
숨소리를 확인하며 검을 쳐내느라 순간적으로 발을 신경쓰지 못했다. 찔렸다고 해도 믿을만큼 강렬한 고통이 퍼진다.


그와 동시에 보이는 치마 속.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붙잡으려던 정신이 아득해졌다.

'신이시여, 이런 시련을...!'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쓰러지기 전에 검을 바닥에 꽂으며 몸을 지탱했다.
그리고 외쳤다.

"호위는 기습도 대비해야 하는 법! 하란, 체트, 드레이!"

검이 뽑히는 소리와 함께 등 뒤에서 갑작스런 위협이 느껴졌다. 단야가 시선을 돌리자 세 명이 달려오고 있었다.

"쳇."

단야는 재빠르게 가장 좌측으로 자세를 낮춰 돌진했다.
그리고 충돌하기 직전에 몸을 이완시키며 검을 옆으로 쳐낸 후, 상대를 발판삼아 공중으로 강하게 뛰어올랐다.
강렬한 각력에 상대가 몸을 추스르지 못한다.
그리고 공중에서 날아오는 발차기에 결국 자세를 잃었다.

쾅!
등 뒤를 견제하며 강하게 내리찍듯 오른발로만 착지했다. 그 충격에 바닥의 돌이 툭 튀어 나왔다.
그 감각을 확인하며 상대를 향해 돌을 차버린다.

"이런!"

매섭게 날아오는 돌, 그리고 그 뒤에 연달아 날아오는 검.

'검을 던지다니.'
단검도 아닌 장검을 자연스럽게 던져버리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퍽!
동시에 큰 충격이기도 했다. 검도 엄연한 철 덩어리다.
그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단야가 복부를 주먹으로 강타했다.

순식간에 두 명이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남은 한 명에게 향할 때였다.

"뒤."

방금 일어났는지 왼팔이 잠긴 목소리로 짧게 경고했다.
하지만 단야가 시야를 확인하는 것보다도 악터의 검이 더 빨랐다.
등 뒤가 싸늘했다. 고개를 돌린 이후엔 치명상 판정을 받을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잘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단야의 머릿속을 지날 때 쯤,

"쓰으으읍!"

왼팔이 검을 손으로 잡아냈다.
손에서 피가 철철 흘렀지만, 그래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검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캉, 챙그랑!
동시에 부러진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완벽한 패배입니다."

악터가 손에서 검을 놓았다. 남은 검조각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단독, 연공, 협공, 기습. 모두 막혔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내 살면서 이런 명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움직일 수 있지?!"

구경꾼들의 우레같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이미 주변은 그들이 결투하는 동안 경기장이 된 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