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써뒀던 단편소설입니다.



Simulated



“어, 이번 모델은 꽤 괜찮은 것 같은데?”

“네. 개발팀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렇죠?”

“뭐어... 전보다는 훨씬 규모가 작네만.”

“하하, 그때에는 연구팀도 무리라고 생각했어.”


온갖 자료와 장비가 널려 있는 어지러운 연구실에 활력이 돋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선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각 분야의 석학들이 모여, 이번 가상세계의 모델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겠나?”

“음... 만약 여기 있는 사과가 박사님 눈에 들어온다면, 그때만 ‘사과’라는 것을 만들어 보여주는 거죠. 이때, 사과의 겉모습만 구현하는 겁니다.”

“겉모습이라? 그럼 만약 사과를 자른다면?”

“사과를 자르는 즉시 사과의 안쪽, 즉 과육과 씨앗 등을 만드는 겁니다.”

“개발팀도 참 대단하군 그래.”

“하지만, ‘만약’도 대비해야하지 않는가?”

“만약이라니요?”

“오브젝트가 이 세계가 가상이라는 것을 알아챈다면 말일세.”

“어휴, 워낙 정교해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즉시 오브젝트를 지우거나 세계를 ‘리셋’해야죠.”

“그렇게 되면 쓸 만한 데이터가 모조리 날아가잖습니까.”

“그래서 1시간 이내의 모든 로그와 데이터를 보관하게 설계했습니다.”

“오, 그렇다면야 연구팀에서 걱정할 건 없겠군. 혹시 지금 시뮬레이션을 보여줄 수 있나?”

“저희 개발팀에서 초기모델로 구현해놓은 게 있습니다. 살짝 불안정할 수도 있습니다만...”

“작은 오류야 뭐 잡으면 되니까요. 자, 이제 화면을 봅시다.”


곧이어 거대한 스크린에 푸른 행성이 나타났다. 화면이 뒤로 당겨지면서 거대한 항성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대여섯 개의 행성들도 보였다.


“여기 행성계 모델은 이전 모델의 것을 갖고 왔습니다. 이제 확대해볼까요?”


화면을 한 푸른 별에 초점을 맞추고 확대했다. 점차 자세한 모습이 화면에 비추어졌다. 건물이 들어서 있고, 가상세계의 주민들은 그 속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저번 모델과는 똑같습니다.”

“음, 내 생각에는 더 빨라진 것 같은데?”

“이번에는 겉모습만 나타나서 그럴 걸세.”

“박사님 말씀대로 모습은 별반 차이 없지만, 속도나 성능 면에서는 월등히 빠르죠. 그럼 이제 메인 테스트를 진행할까요?”

“기대되는군요.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연구원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곧이어 무서운 크기의 운석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과연 행성 주민들이 막아낼 수 있을까요?”

“아, 손에 땀이 줄줄 흐르는군요.”


한순간에 주민들이 건물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건물이 튼튼한 철옹성처럼 운석을 막아줄 것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도 실패인가?”

“아직 두고 봐야 합니다. 중앙시스템이 남아 있거든요.”


그 말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커다란 미사일 한 기가 날아와 운석을 격추시켰다. 그와 동시에 ‘쾅-’ 소리의 어마어마한 굉음이 연구실에 터졌다. 폭발음이 잦아들자, 연구원들은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날 연구소에서는 한바탕 시끄러운 파티가 벌어졌다.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한 것을 이뤄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앞으로 다가올 모든 상황을 테스트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설령 그게 극단적인 멸망 시나리오라고 해도 말이죠. 자, 소개합니다! 프로젝트 <EARTH> 입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