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습마법사의 평범한 나날-1 넌 왜 사냐?


아 디지겠다.......


3000살 드신 드래곤님께 초면에 야자를 깐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드래곤님이 연구하시는 물약을 최초로 복용하는 피실험자가 되었다. 

ㅡ훌륭한 모르모트가 되었다는 말이다.


내가 이계인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두 손에 메스들고 눈 까뒤집으면서 달려오더라. 그나마 이게 타협본거다. 저건 드래곤이 아니라 악마가 확실하다. 아니, 초면에 메스들고 죽이려 하고, 디질거 같은 약 먹이는게 할 짓이야? 악마새키.


"악마라니. 다 널 위한거야. 어쨌거나 건강해지긴 했잖아?"


오, 몸이 건강해진 만큼 정신이 깎여나갔지 아마? 분명 자기가 맛 볼때는 그럭저럭 괜찮은 표정이었다. 드래곤 입맛과 인간 입맛은 차이가 없으니, 나한테 먹이는 거에는 틀림없이 뭘 탄거다. 처음 봤을때 꼬맹이라고 한 거에 삐져가지고 저러는게 틀림없다. 찌질하다.....


"아 참! 여기 하나 더있다. 어여 들이켜! 난 찌질하고 소심해서 아는 사람 아니면 부탁도 못하고 말도 못하거든. 빨리 마셔줘!"


제기랄. 저게 문제다. 드래곤은 사람 마음도 읽는다. 거기에 기억력 좋고 뒤끝이 길다고 생각해봐라. 내가 그래서 몇 병이나 더 쳐 마셨는지 모른다.


"자자. 뻘생각 하지 말고 쭉 들이켜!"


저거 먹으면 진짜 저 죽어요. 어무이.....


그때 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한 줄기 빛 사이로 스승님, 아니 예수님이 들어오셨다.


"오, 에니오님 여기 계셨군요. 마침 우리 제자 놈도 여기있고. 죄송합니다만 에니오님, 얘 좀 빌려가겠습니다."

 

스승님의 복음을 들으며, 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 후에 내 눈에 처음으로 보인 것은, 우리 공주님이었다. 


"오빠 괜찮아? 쓰러졌었다며..."


네 얼굴을 보니 힐링하는 기분이다 리라야. 


"이제 다 나았어. 괜찮아."


"흑. 오빠 아프지마."


리라가 내게 안기자, 나는 리라의 등을 쓸어주며 달래주었다.


"가람아."


"예 스승님."


"공주님 호위하고 어디 좀 갔다와라. 별 일은 아니니까 그냥 휴가라고 생각하거라."


예수 그리스도와 부처, 공자를 합쳐놓은듯 한 스승님의 광휘를 본 순간 내 얼굴에 흐른 눈물은 마치 긴 수행 끝에 진리의 끝을 본 승려가 흘린 감동의 그것이었을 것이다. 우리 스승님의 뒤에 헤일로가 보였다. 그러나 그때의 난 감동에 취하 리라의 그 애매한 표정을 보지 못했다.



"이딴 약골이 공주님 호위라니, 아무리 기밀 임무라지만 마탑에 인재가 이렇게 없나?"


제국 중앙 기사단에서 차출된 기사의 말이었다. 하긴. 내 신분이 알려진거지, 내 얼굴이 알려진게 아니었다. 아마 황족이랑 마탑 수뇌부 빼면 모를껄.


콰콰콰콰콰콰콰쾅!


"그래서, 뭐라고요?"


"죄, 죄송합니다! 제가 유가람 경인 줄 모르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가고일들이 날아올라 집채만한 바윗덩어리들을 우리 머리 위로 떨구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내가 쳐놓은 막에 막혔다. 내가 힘든 내색도 없이 태연하게 앉아있는 걸 보고 대충 내 정체를 눈치 챘나보다.


"뭐, 괜찮아요. 다음부터만 그러지 말길."


"예, 예! 감사합니다."


이들이 놀라는 이유는 당연했다. 보통의 마법사는 한 명에서 두 명을 덮을 정도의 막을 만드는게 우선이다. 게다가 그 상태로는 움직이거나 말을 하지 못한다. 


이 세계의 마법은 자연에 존재하는 무한한 기를 자신의 몸에 일시적으로 받아들였다가 일정한 형태로 의지를 담아 발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한번에 담을 수 있는 기의 양인 '그릇'의 크기와 방출 방식인 '모양'이다. 독특한 것은, 이 '모양'은 한 번 정해지면 거의 바뀌지 않는다. 예를 들어 처음 만든 통로가 불과 관련되어 있으면 불 속성만 쓸 수 있다는 거다. 공간계 마법은 예외지만. 


어쨌든 나는 이 '그릇'이 무한했다. 먼치킨이라는 말이다. 왜. 뭐. 이세계에 왔으니까 이정도는 있어야지. 하지만 나도 한계는 있었는데, 반대되는 속성의 마법은 잘 안 써더라고. 


"그런데 리라, 우리 어딜 가는데 이렇게 돌이 날라오니?"


"스승님이 말씀 안해주셨어?"


"응."


"이번에 발견된 몬스터 종ㅡ저기 날아다니는 애들이랑 협상. 식량을 공급해달래."


.....뭐? 젠장. 스승님은 내가 고통받는걸 보며 희열을 느끼는게 확실하다. 아니 그런데, 다른 대신들은 뭐하고 애한테 이런 걸 시켜?


"내 '황족의 의무'야."


'황족의 의무'. 황족으로 태어났다면 누구나 살면서 한 번의 국가에 헌신하는 일을 해야한다. 내가 알기로 대부분의 황녀들은 정략결혼으로 퉁쳤었는데?


"그럼 리라는 따로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거니?


"응? 난 오빠하고 결혼할건데?"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게 딸 키우는 아빠의 행복인건가. 말만이라도 고맙군.


"황녀 전하? 도착했사옵니다."


"응. 수고했어요. 여기에서 대기하고 있길."


* * 


그래. 스톤 가고일이라. 이딴거하고 굳이 협상을 할 이유가 있나? 어차피 지금 살아있는 애들만 다 죽이면 번식도 못할텐데. 


어쨌든 명색이 협상이니만큼 그들과 우리는 마주보고 앉았다. 여기는 처음에는 하급자들끼리 논의하는게 예의라 해서 우리 호위기사씨가 처음으로 말했다.


"제국은 인간 종이거나 그 유사인길 종 아니면 협상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유사인간 종 아닌가?"


저쪽은 그냥 저기 우두머리가 말했다. 화끈하기도 하셔라. 


"예, 아닙니다."


"어째서인가?"


"당신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이성이 없습니다."


"내가 이성이 없었다면 그대와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오우, 돌대가리가 말은 잘하네? 1대0.


"그건... 하지만 그대들은 사회와 법 제도가 없습니다."


"내 말이 법이고, 내가 이 사회의 중심이다. 그대들의 국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군."


2대0. 그나저나 말빨 오지네?


"좋습니다. 하지만 그대들은 번식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섹ㅅ..."


"미친새끼야! 여기 애 있는데 뭐하는 짓거리야!"


"음? 두 암수가 만나서 섹..."


"닥치라고!"


리라의 귀에 반사적으로 손을 가져다 댄 건 정말 천운이었다. 미친놈들이 진짜 큰일날 소리 하고있어.


이 모든 상황을 둘러 본 리라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가고일씨, 당신은 죽어있는 노루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나요?"


"경쟁에서 패배한 패배자 아닌가. 그걸 왜 묻지?"


"그게 바로 당신이 인간이 될 수 없는 이유니까요. 우리는 죽어있거나 상처입은 동물을 보면 연민을 느껴요. 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며 공감하고 슬퍼하죠. 만약 그대들에게 공감이 있었더라면, 그래서 당신의 처지를 생각했더라면 가고일들이 저희를 공격했을까요?"


"그건..."


"아니었겠죠. 우리가 인간, 유사인종과만 거래를 하는 건 이유가 있어요. 우리는 서로의 처지를 공감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서로의 약속을 어기려하지 않죠. 하지만 공감하지 않는 이들은 그런게 없잖아요."


"그렇다면 인간 소녀여, 이 협상은 결렬인가?"


"아니요. 그럼에도 전 이 협상을 진행할 거에요."


"그 이유가 무엇인가?"


리라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인간이니까요. 싸움을 하기보다는 평화의 나른한 오후를 사랑하는 인간이니까. 모든 생명체는 선힌다고 믿는, 믿고 싶은 그런 인간이니까요. 식량은 내어드리겠어요. 그럼 그대들은 우리 백성들이 피해를 입지 않게 해주세요. 밭을 망치고 사람을 해치는 것 들을 잡아주세요."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렇게 인간과 몬스터의 첫 협상은 마무리 되었다.


"오빠 나 잘했지!"


이런걸 보면 완전 애인데 말이야.


"우리 공주님 진짜 잘했어! 나중에 크면 뭐가 되려고 이렇게 똑똑해?"


"오빠 신부 한다니까?"


허허허. 이제는 진짜로 무서워지기 시작했단다 리라야. 이  오빠는 황제 폐하가 손수 장검을 뽑아드시고 지휘하는 제국 근위대에 쫓기고 싶지 않구나.


그날 밤 나는 약병을 든 싸이코패스 드래곤과 장검과 스태프를 들고 달려오는 황제폐하께 쫓기는 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