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습마법사의 평범한 나날-2 인간의 조건


내 꿈은 평범하고 소박하게 사는거다.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다가 편안하게 가는게 내 하나뿐인 소원이다.


물론 내 스승님은 1500년 만에 나온 대마법사고, 나는 그 마법사의 하나뿐인 제자이며 최초의 평민 출신ㅡ 더 정확히 말하면 이계 출신이긴 하지만!


물론 마법에 조예가 깊으신 황제폐하가 졸고있는 와중에 불쑥 찾아셔서 손수(!) 잠을 깨워주시고 폐하의 가장 사랑받는 딸은 나를 오빠로 여기며 매일매일 무언가 폭발하는 연구실을 지키는게 일상이지만!


사람은 별 것 아니라도 항상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열망하잖아? 그니까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난.


오늘도 2층 맨드라고라 우리에서 두 마리가 탈출해 황궁 시종 두 명을 휴가보내고 우리 냥이가 플라스크를 떨궈 바닥이 녹아내린거 빼고는, 뭐 나름 평범한 하루였다.


"내가 왜 살아야 되나요? 산다는게 뭐죠?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그걸 알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그래, 내가 저 말을 듣기 전 까지는.


저 말을 한게 내가 귀여워 마지않는 우리 황녀님이었다면 나는 드디어 우리 공주님이 자랐구나! 라고 생각하며 감격했을 거다. 마탑의 창시자인 현자 브란테가 이르길, "진리는 나의 빛" 이라 하지 않던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저 말을 한 것은 얼마 전에 내가 만들어 놓은 자동 청소 빗자루였다.


"씨발, 오크 풀 뜯어먹다 뒤지는 소리하고 있네. 뭔 잡소리야 저건?"


"잡소리가 아닙니다. 사람이 자신의 의미를 찾는게 뭐가 쓸모없는 일입니까?"


혼잣말이 입 밖으로 나왔나보다. 그나저나 저거 뭐 저렇게 말을 잘해? 애초에 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난 물었다.


"너의 마스터는 누구지?"


"대현자 샤일렌드라 님입니다."


오, 그래. 우리 망할 스승님이군. 내가 뵈는 물건마다 정신계 마법 쓰지 좀 말라고 했던 것은 쥐뿔로도 안들으신 모양이다.


"잠만 기다리고 있어. 니 마스터께 물어보고 올테니까."


아니 잠만, 저거 혹시 날 수 있나?


"거기. 너 날 수 있냐?"


"엘프 고기 뜯는 소리하지 마십시오. 브란테가 마나에 의한 중력장 현상을 밝혀낸지 2세기가 지났습니다."


기대한 내가 바보지.


똑똑


"스승님. 가람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오냐."


문을 열고 들어간 곳에는 마법사에 정석같은 인자한 노인이 앉아있었다. 흰 수염과 작은 금테 안경을 걸치고 고서를 넘기는 모습은 한 명의 구도자와 같아 신성하기까지 했다. 저 모습 뒤에 숨겨진 똘끼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은 참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쨌든,


"스승님. 빗자루에 무엇을 해놓으신 겁니까? 청소하다 말고 지가 왜 사는지 물어보던데요."


"뭬야? 크하하하하하하핫! 드디어 성공이고만! 앞으로 한 달 동안 나 찾지 마라!"


"예? 예? 스승님! 어디가십니까! 제발 문으로 나가라고 씨발!"


스승님은 멀쩡한 창문을 박살내며 자신만의 연구실로 날아갔다. 저 빗자루 못 고치면 저거 다 내가 해야되는데, 씁.


"씨이발.... 윽!"


뒤쪽에서 느껴지는 갑작스러운 무게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공주님이 매달려있었다. 


"오빠 안녕!"


"안녕 리라."


귀족들이 보면 눈 까뒤집고 달려들 장면이었지만 황제 폐하도, 우리 공주님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서 그냥저냥 넘어가곤 했다. 내가 망할 스승의 제자였던 이유도 있고.


"내가 욕하지 말랬지 오빠! 나쁜 말 좀 쓰지 말라구."


오구오구. 내가 너 때문에 힐링한다.


"미안해 리라. 이번에 골치 아픈 일이 생겨서 그랬어."


"그래? 내가 해결해 줄께! 뭔데?"


허리에 손을 척ㅡ 올리며 허세를 부리는 모습이 깨물어주고싶게 깜찍했다. 하지만 꼬맹아. 겨우 14살짜리가 인생에 대해 뭘 알겠니. 


"리라는 인생이 뭐라 생각해?"


"인생? 인생은... 움...."


"그것 봐. 잘 모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이게 초딩의 대답인가? 뭐지? 난 쟤 나이 때 하스스톤 하고 있었던거 같은데?


"어.... 좋은 답이구나. 혹시 어디서 읽은 내용이니?"


"응! 철학자 마르키우스의 해제>였어. 왜?"


"아, 아니야. 우리 리라가 참 똑똑한거 같아서."


"그치? 하지만 나 더 똑똑해질꺼야. 꼭 오빠같이 아는게 많은 사람이 되고 싶은걸?"


그쯤해도 충분할거 같다만.


"그래그래. 오빠가 지금은 바빠서. 나중에 마법놀이 하자?"


"응! 빠이빠이."


"지나치게 추상적인 관점이로군요." 


빗자루씨의 평가였다. 


"전 제가 다른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저 답은 분명 좋은 답이지만, 지나치게 천편일률적인 답이로군요."


아 그럼 어쩌라고 대체.


"글쎄, 그게 과연 나쁜 걸까?"


그때, 연구실 문을 열며 들어온 은발의 미소녀가 말했다. 


"그건 무슨 뜻이죠?"


"모든 인간은ㅡ넌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의 정신이 깃들어 있으니ㅡ한 가지 전제를 깔고가지. 너희는 모두 인간종이라는 거야. 그래서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가치, 생각은 누구나 공유하는 거지. 인생의 의미도 마찬가지야."


오, 꼬맹이 말 잘하는데. 


소녀는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어갔다.


"나 어린애 아니거든! 어쨌거나. 내가 몇천년을 살아봤지만, 모든 인간은 죽을 때 까지 자신의 의미를 찾아. 그리곤 죽을 때 깨닫지. 내 삶의 의미는 다른데 있지 않구나. 내 인생의 과정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었구나 ㅡ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을 하렴. 그 기억이, 그 경험들이 나중에 돌아봤을 때는 분명히 어떤 의미로 다가올테니."


몇 천년을 살았다라, 똑똑하게 미친 꼬맹이군.


"조언 고맙습니다. 그럼 이만 전 청소하러."


"야, 애늙은이 꼬맹이 똑똑하네. 덕분에 일 좀 덜었다. 음... 사탕이라도 먹을래?"


"꼬맹이 아니라고! 분명 말하는데, 너 후회할거야. 아앗! 사탕은 이리 줘!"


그래그래. 저 나이는 동화 속에 빠져 살 나이 아니겠어? 순수하니 귀엽네.


벌컥!


"에니오님. 여기 계셨습니까? 음? 벌써 제 제자를 만나신 모양이군요."


저 스승님이 존대를 한다고? 폐하한테도 반말까시는 분이? 설마...


주룩. 하고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인사드려라, 가람아. 이번 연구를 도와주실 임시 연구 고문 화이트 드래곤 에니오 님이시다."


"하, 하하하..."


드래곤 님은 나를 향해 씨익 웃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후회할 거라고 했지, 아가야?"


젠장. 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