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기껏 온게 여기냐?"
"뭐? 그럼 니가 언제 북한 땅에 가보겠냐?"
그랬다. 우리가 있는 여기는 함경남도 단천. 동해이다 보니 해안선이 단조롭고 서늘해서 피서지로 좋다. 물론 그런 이유 때문에 온 건 아니었지만.
"뭐래, 한양 근처에 평양하고 개경 있잖아. 존나 먼 여기까지 왜 왔냐고."
"은 사주러 왔다니까?"
"은 사려고 은광에 가는 병신이 어딨냐?"
음, 우리 마님은 내 정성을 너무 무시하는군.
"뭐, 너한테도 주겠지만 아마 네 남동생에게 더 큰 선물이 되겠지."
"뭐? 그게 무슨..? 아, 연은분리법?"
연은분리법. 조선 연산군 대에 개발된 은 제련법. 기존의 제련법보다 최소한 몇 배는 생산력을 보장하는 제련법이다. 조선에서 기밀로 다뤄지다 조정의 관심이 시들해져 곧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일 없을 것이다. 내가, 아니 우리 마님이 개발한 걸로 할거니까.
"아니, 그거 그냥 하는 법 써서 가져다 주면 되는거잖아?"
"아니. 그 현장에 반드시 네가 있어야 돼. 그 기술을 단순히 '고안'한게 아니라 '개발'한 걸로 하려면. 그리고 그 정도는 돼야 신경써서 기밀 관리 할테지."
"뭐, 그래. 근데 설마 그것만 하고 한양으로 복귀해서 일 할건 아니지?"
"응? 안그러면 시간이 안되는데?"
이 시기 조선 남성들의 휴가는 산후 한 달. 여기에서 한양까지 왔다갔다 하기에는 좀 빡빡하지?
"너 그럴 줄 알고 2달 받아놨으니까 천천히 가자?"
와, 젠장. 누님 오늘따라 너무 멋있어 보이는거 아닙니까?"
"고맙지?"
"어. 존나."
"누나라고 해봐."
"누님, 감사합니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우리는 그렇게 휴가를 즐겼다.
* * *
타앙!
나는 손에 있는 머스킷의 무게감과 반동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이정도면 합격이군."
내 앞에는 아직도 연기를 뿜어내는 머스킷과 그 총탄에 뚫린 철판 몇 개가 놓여있었다.
"장전 다 됐습니다!"
"발포!"
콰앙!
지축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대포가 불을 뿜었다. 조선군이 대포를 운용하는 것은 그다지 독특한 장면은 아니었으나, 이 대포는 조금 달랐다. 기존의 대포의 유효사거리가 300m정도였다면, 이 대포는 그 4배인 1200m에 달했다. 게다가 양 옆으로 바퀴가 달려 이동성도 크게 높아졌다.
"....허허."
주상께선 그 위력에 놀라셨는지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셨다. 표정관리 잘하시는 전하가 저런데 나머지 신료들이야 뭐, 저 아저씨는 안 지린게 다행이고만.
이 자리에는 상왕ㅡ태종 또한 나와있었다. 군사권은 아직 상왕전하가 쥐고 계셨기 때문이리라. 무기 시현이 끝난 이후, 상왕전하는 나를 부르셨다.
"경."
"예, 전하."
"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오? 이 정도 무기면 충분히 준비된 것 같소만?"
그래, 이 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아쉬웠다. 진짜, 기술 딱 하나만. 1년만 더 있으면 되는데. 원 역사에서도 올해 정벌을 했으니, 아마 태종 또한 더 기다리기 힘든 모양이었다.
그때 상왕 전하 뒤에 있던 마님이 자신의 머리를 툭툭치며 그냥 전하가 하라는 대로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전하의 뜻대로 하소서. 전하께오서 추천하는 인선이 있으시면 그대로 편성하겠나이다."
"음, 좋소. 내 곧 내려줄테니 준비하고 있으시오."
"예, 전하."
* * *
"너 무슨 생각이냐? 내가 말해줬잖아? 개틀링 기관총 나올 때 까지는 기다리자 했잖아!"
"너 우리 아빠 설득할 수 있어? 없지? 그럼 별 수 있냐?"
"아니, 그래도!"
"정신차려. 조선에서 살더니 조선 사람 다됐냐? 시스템 어디다 팔아먹었어? 너 주위에 있는 위대한 과학자는 안쓰냐?"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다. 요즘 다시 서류에 치여살다 보니 시스템 열어볼 생각 자체를 안했다. 근데 뭐? 위대한 과학자가 있다고?
"진짜 있네."
"됐지?"
"엉... 고맙다."
"앞으로도 잘 모셔라. 알겠냐?"
"예에, 공주자가."
솔직히 쟤가 무슨 소리를 하든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내 정신은 온통 유닛 관리창에 쏠려있었으니까. 내 앞에 떠 있는 유닛 관리창에는,
조선 위대한 과학자- 최해산
조선 최고의 화포 기술자ㅡ최해산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