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지만, 시간은 여전히 아흐멧의 하루를 태우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역 앞에 신발가게가 있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여기며 가게의 외관만 구경하는 사람들을 손님이라고 칭할 수 있다면, 오늘 역시 성황리에 영업을 종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물려오던 이 가게는, 날이 갈수록 가난이라는 상당히 받기 껄끄러운 유산을 눈덩이처럼 굴려가고 있다. 아흐멧은 절대로 그것이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케밥집으로 업종을 변경하였던 아버지 때부터 가세는 기울기 시작했으니까. 아흐멧의 아버지는 옛날부터 그런 분이셨다. 남들이 모두 하는 일은 일단 해야 되는 거라고 아들에게 코란을 외우듯이 부르짖고 다니시던 분이었다. 역 앞에 오롯이 혼자 있던 아버지의 아버지가 하시던 슈퍼마켓을 때려 치우고(지금은 아흐멧의 가게 바로 앞에 있는 상가가 유일한 슈퍼마켓이 되었다) 그 무렵에 역 주변에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기 시작한 케밥 상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역전에 나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바로 잡아 끄는 노점과는 달리 역전과는 좀 먼 위치에 있는 아버지의 가게는, 손님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 옆에서는 당연히 모두가 하고 있는 일이 자신에게는 실패라는 카드를 하나씩 쌓아가자, 아버지는 그렇게 하루하루 늙어갔다. 더 늙어갔다. 더우나 추우나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던 주름살에는 골이 깊어만 갔다. 그리고 정신적인 피로는 병마를 불러왔다. 그나마 할아버지의 유산으로 대학에서 수학을 배우고 있던 아흐멧도, 가게 한 켠에 드높게 꽂아놓은 닭고기 더미에 아버지가 칼을 더 이상 올리지 못하게 되자 가업이라는 깊은 수렁에 뛰어들었다. 적어도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버지 당신은 이유가 있어서 실패한 거라고. 향신료 가득한 붓질로 닭고기를 손질하고, 오전에서 오후까지 그저 말라가는 빵을 준비하는 그 나날의 반복 속에 입 속으로 씹어 삼키듯 내뱉어져 나오는 말을 되새김질 했다. 하지만 늦은 밤 일을 끝내고 돌아올 때마다, 아버지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가시던 그 날에도, 아버지는.
자신이 있어서 시작한 건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된 원인을 일차적으로 케밥이라 여기고 있던 아흐멧에게는, 일단 케밥만 아니면 뭐라도 좋았다. 주변을 수소문하던 도중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신발을 덤핑으로 판매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앞뒤 재지 않고 아흐멧은 신발장사에 뛰어들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것도 매우 고무적인 아이디어였다. 역 앞에서 점포로 신발을 팔고 있던 가게는, 그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반 년이 지나기 전에 아버지 때와 똑같이 기입되고 있는 장부를 보면서, 아흐멧은 이곳에서 왜 아무도 신발을 팔지 않는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하지만 그 깨달음은 정말 어렴풋한 것이었다. 수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장부의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돌리는 수식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신발더미 옆으로, 아흐멧은 담배연기를 흘려 보냈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앞에 신발이 그나마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밥상 하나 정도 크기의 경사진 나무틀이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 같은 짝의 신발끈을 묶어 놓고, 가게 바닥에 마치 조개무덤같이 쌓아놓은 신발더미를 보고 목수일을 하던 그의 친구 한 명이 혀를 차며 만들어 준 물건이었다. 적어도 예뻐 보이는 신발이 잘 보이게 널어놓고는 있어야 팔리지 않겠냐는 친구의 아주 일반적인 조언에, 아흐멧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신발더미를 뒤적였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 진열장에 있는 물건들은 한 번도 팔린 적이 없었다. 어쩌다 오는 손님들은 전시되어 있는 물건들이 아닌 여전히 뒤에 널려 있는 더미 속에서 자신의 물건을 골라 갔던 것이다. 아흐멧의 시선은 진열장이 아닌 그 조금 앞에, 땅바닥을 향해 기었다. 시선의 끝은 지리하게 움직이는 개미를 쫓고 있었다.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개미의 움직임은 그의 눈동자보다 빨랐다. 마치 지나가버린 유성의 궤적을 찾듯이, 개미가 남기고 간 발자욱을 쫓고, 개미가 움직인 자리를 또 쫓았다.
그리고, 그 개미가 지나간 자리 옆에는 자신이 취급하지 않고 있는 신발이 보였다. 아흐멧은 그 신발을 따라 서 있는 살찐 기둥을 따라, 개미를 바라보던 그 속도 그대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Hoş geldiniz”
아흐멧의 시선이 멈춰 나간 곳은 그 이방인의 허리였다. 바지를 잡아먹을 듯이 삐져나온 그의 허리둘레보다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목에서부터 걸려 있는 렌즈가 유난히 튀어나온 거대한 사진기였다. 등에 메고 있는 커다란 가방은 아마도 그 사진기를 위한 것인 듯 했다. 유심히 자신의 가게를 둘러보는 눈길에는 호기심이 가득했고, 날이 더운지 챙모자를 계속 고쳐 쓰는 모습은 쓸데없이 분주해 보였다.
별 기대 없이 아흐멧은 다시 담배연기를 빨아내었다. 지금 자신의 가게를 둘러보는 외국인 청년에게 눈을 고정시켜 놓고 있었지만, 그 시선에서 권태로움을 구태여 걷어내지는 않았다. 이 곳에 오는 손님의 십중팔구는 외국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한참을 가게 내부를 둘러보던 청년은 뒤를 돌아 자신이 왔던 방향을 다시 둘러보았다.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가게 끝에서, 끝으로 이리 저리 움직이며 이스탄불 역을 이 각도, 저 각도에서 찍어 나가기 시작했다. 결국은 그렇지. 대부분 이렇게 사진을 찍고 그냥 가 버리는 놈들이 가장 많았다. 눈 앞에 있는 저 동양놈이 사라지면, 오늘 가게는 접어야겠다 라고 생각하던 찰나,
“May I take your picture?”
예상이 빗나가지는 않았다. 방금 얘기했던 부류의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었다. 아흐멧은 담배를 지져 끄며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셔터가 빠르게 두 번 깜빡이고, 청년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모델에게 자신의 카메라에 찍힌 것들을 보여주었다. 아흐멧은 마음 속으로는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일어섰다.
그의 사진에는 공항에서 내려서부터, 여기까지의 여정이 어떻게 되는지 누가 딱히 질문하여 답을 듣지 않더라도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세심하게 찍어 나간 모습이 보였다. 어느 도시인지는 모르겠지만 면세점에서부터 비행기를 탈 때까지, 공항에서부터 버스, 묵었던 숙소, 보스포러스 다리, 아침에 찍은 그랜드 바자르의 번화함.
아흐멧도 알고는 있었다. 가끔씩 있는 말 많은 관광객들이 마치 자신이 이스탄불의 모든 것을 보고 온 마냥 얘기할 때마다, 20년 조금 넘길 때까지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신발가게의 주인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거려 줄 뿐이었다.
카메라의 작은 화면 안에서 그가 손을 멈췄을 때, 아무 생각 없이 가게에서 몇 시간이고 고개를 든 곳에 있던 풍경이 그 곳에 있었다. 이스탄불 역 앞의 전경. 가로등은 불빛을 뿌리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길거리를 노다닌다. 구름 사이로 느린 걸음을 재촉하던 태양은 이미 대지 아래 숨어 옅은 잔광만을 건물 사이로 내리고 있었다. 지금도 고개를 들면 좀 더 어두운, 좀 더 많은 인파들이 그 앞을 지나가고 있지만 이 사진을 볼 때만큼 자세히 그들을 관찰한 적은 없었다. 번개처럼 자신의 지난날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언제나 타성에 젖어 계시던 아버지. 그리고 그걸 지켜보고만 있었던 그 때. 대학을 다닐 때도 숫자가 빼곡한 전공 서적 외에는 책은 많이 읽지 않은 아흐멧이었지만, 왠지 자기 자신만이 이 곳에 박혀있다는 시적인 표현이 떠올랐다.
그 다음 컷은 아흐멧을 완전히 못박았다. 화면 안에는 어두운 가게 안에 신발무더기를 옆에 끼고 굳이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 자신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아버지. 방금 섬광처럼 지나갔던 아버지의 모습이 자신의 얼굴 안에 덧씌워졌다. 거울을 볼 때도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아버지와의 유전적인 유사성은, 당신이 남기고 간 가게 안에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는 청년의 얼굴에 금형을 찍은 듯 했다. 학교에 다닐 때 가게를 찾아갈 때면 손님이 없어 여위어 가시던 아버지의 그 모습이, 마치 안쪽 어딘가에서 솟아 나오듯 그대로 자신에게 번져나가고 있었다.
아흐멧은 한참 동안 사진기를 들고 목석처럼 서 있다가, 마치 방언이라도 터진 듯이 찍어주어 고맙다고, 이 사진은 어떻게 받을 수 있느냐고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에 터키 말도 섞어가면서, 짧은 영어로 어떻게든 이야기를 끌어내다 보니, 적어도 서너번은 곱씹어봐야 뭘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한국에서 왔다는 동양인 친구는 다행히도 아흐멧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그리 어렵지 않게 파악했다. 고맙게도 그는 신발을 한 켤레 사고, 반드시 보내주겠노라고 악수를 하며 약속을 했다. 작별의 인사를 나눈 동양의 이름 모를 한 청년은 자신이 찍은 배경 속으로 녹아 들듯이 역을 향해 걸어갔다.
PS. 런닝화로 쓰려고 청년이 산 신발은 중국제였고, 한 달도 안돼서 망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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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사진찍는 친구와 협업으로 올렸던 글입니다. 원래는 사진 자체를 제목으로 갈음하는 형식이라 따로 정해진 제목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