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사과

프롤로그



 세 개로 나뉜 부족 사이에서 한 무리의 우두머리가 말했다.

 

 “저는 단지 우리 아버지들이 닦아놓은 뒤만 쫓을 뿐입니다. 하지만 올바른 길이 그것뿐이기에 그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조들의 말이 곧 믿음이요 진리이지 않겠습니까?”

 

 무리의 사람들은 함성을 질렀다. 두목은 그들의 기세를 확인하고 채비를 명령하였다. 목적지는 근처 다른 동굴이었다.

 

 구성원과 사는 장소의 변화가 있었지만, 삶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선조들의 식물 채집법, 선조들의 사냥법, 선조들의 주거 선택법 등 모든 것을 선조의 뜻에 따르니 이게 그들이 운영하는 부족인지, 선조들의 부족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선조의 지혜도 무색하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맹목적으로 그것을 추종하며 당최 고칠 생각을 안 하였다. 

 

 이러한 정체에도 부족이 유지되었던 것은 그들의 생활 방식 변화를 강제할 만한 사건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어제, 오늘, 내일이 다 거기서 거긴데 왜 바뀌려고 노력하겠는가.

 

 언젠가 한 아이가 족장에게 찾아갔다.

 “족장님, 족장님. 이 꽃을 보세요. 아버지들의 가르침이라면 분명 보름 뒤에 피어야 할 텐데, 왜 지금 피는 건가요?”

 

 “그 꽃이 이상하단 생각은 안 해 보았느냐?”

 

 “하, 하지만 거기엔 이 꽃이 자안-뜩 피었던데요. 분명 날씨가 바뀐 거라니까요!”

 

 족장은 아이를 째려봤다. 아이는 겁을 먹었다.

 “그러면 그것들이 개화기도 모르고 쌍으로 미쳤나 보지. 고작 꽃 하나 때문에 우리의 아버지들을 의심한단 말이냐?”

 

 그러고는 밖에다 대고 손짓하더니,

 “부족장은 어디 있느냐.”

 

 “왜 그러십니까?”

 

 “이 녀석이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하더군. 한데 그것을 저 스스로 생각해 냈을 리는 없을 터. 제 애미 애비가 하는 말을 보고 들어서 이렇게 된 거겠지. 그러니 이 조무래기를 제 부모와 함께 추방하도록!”

 

 부족장은 아이를 끌고 나갔다. 곧 아이의 부모와 함께 밖으로 내쫓겼다. 부족민들은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일에 호응하였고, 몇몇 반발심이 있는 자들도 제 목이 달아날까 두려워 감히 입을 놀리지 못했다.

 

 여느 때처럼 부족민들이 수렵 활동을 하던 무렵, 누군가 돌무더기 사이에서 천으로 감싼 보따리를 발견했다. 그들은 그것을 족장에게 들고 갔다. 

 “산딸기를 채집하다가 돌들 사이에 이런 걸 발견했습니다.”

 

 “이리 줘 보거라”

 

 족장은 보따리를 들어 잠시 쳐다보았다.

 “허어, 근데 이 물건은 무엇으로 쌓여 있는 것인고. 이제껏 보지 못한 가죽인데...”

 

 그들은 농사를 지을 줄 몰랐다. 그러니 식물 재질인 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요사스러운 가죽을 사람이 만들었을 리는 없다. 필히 신적 힘이 개입했을 것이야.”

 

 그러곤 헝겊을 불에 태우도록 명령했다. 그런데 그 속에 있는 물건들은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이 가죽에는 기묘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구나. 어느 부분은 나뭇잎 색으로 칠해져 있고, 또 어느 부분에는 하늘색으로 색칠된 것에 참으로 머리가 어지럽도다. 이것이야말로 사악한 악귀들의 장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야.”

 

 족장은 그 근방을 표시한 지도를 앞뒤로 뒤집어 보았다. 사람들은 겁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 족장은 부족민들에게 그것을 당장 강에 흘려보내라고 말했다.

 

 “이 물건은 손에 들기 적당한 크기 하며 딱딱한 것이 필히 무기라고 할 수 있도다.”

 

 족장은 기다란 호밀빵을 붕붕 휘둘렀다. 부족 사람들은 ‘역시 족장님. 우리 족장님 최고’라면서 감탄해 마지않았다.

 

 “하지만 어찌 인간이 감히 신의 도구를 사용하랴. 이건 불로 태워버려라.”

 

 족장이 다음 물건을 꺼내려던 그때, 한 사람이 말을 가로막았다.

 

 “그 물건들을 제대로 조사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분명히 배울만한 점이 있을 겁니다.”

 

 족장은 당황하였다. 그러곤 한숨을 쉬었다.

 “이런 말은 한 자는 원래 같았으면 즉시 추방인데 내 자네를 몹시 아끼니 이번만 봐주는 것이야. 더는 그런 말을 하지 말도록.”

 

 “저는 부족을 망하게 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들이 내포하는 기술을 배워 쇠락하는 우리 부족을 부흥시킬 수 있단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족장님께서는 이 기회를 놓치시면 아니 됩니다...”

 

 족장은 매우 노하였다.

 “허어, 네가 우리 부족을 망치려고 작정하였구나. 단단히 악귀가 씌었어. 여봐라, 장졸들은 들어라. 이놈을 당장 추방... 아니, 팔다리를 묶어 땅에 묻어버리도록 해라! 괘씸해서 못 봐주겠느니라.”

 

 족장의 형별로 인해 그들이 문명으로 나아가는 길은 완전히 막혔다. 곧 부족은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