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노래를 부르다 쉬는 사이에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잠들어버렸다. 

창틀로 스미는 아침 햇빛에 눈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창문을 여니 산들바람이 나른하게 불어온다. 그래도 모처럼 푹 잔 것 같다. 우주선에서 잠을 자는 것과 행성이라고 하는 안정된 공간 내부에서 잠을 자는 것은 육체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고 하더라도 심리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약간 찌뿌둥하지만 그래도 개운함을 맘껏 느끼며 팔다리를 길게 뻗었다. 

도깨비 준코와 마코 형제는 진작에 일어나 음식준비를 모두 마쳤다. 역시 농부다운 부지런함이다. 나는 옆에서 자고 있는 스파링을 깨웠다. 어제 되지 않는 노래를 부르느라 어지간히 피곤했던 모양이다. 

"스파링, 얼른 일어나세요. 곧 식사가 대령될 것 같으니까."

오크 스파링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어나 정자세로 앉는다. 마치 도교나 선불교에서 수련을 하는 도사가 참선을 하는 듯하다. 무슨 자연의 정기를 호흡하는 모양새가 자못 엄숙함을 선사한다. 나한테는 잘 잤냐는 인사조차 하지 않고 무엇이 급한지 참선수련부터 하는 것인가? 노래 못 하는 음치인 것까지는 오크의 이미지와 부합하지만 이렇게 참선하는 것은 내 기대를 거스르는 행동이다. 


방문은 두드려지고 준코가 들어와 식사하라는 말을 남기고 식당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의리없게시리 스파링을 참선하도록 놔둔 채 혼자서 아침식사를 하는 것이 께림칙했다. 식당에서 기다리는 준코와 마코 형제한테 걸어가며 말했다. 

"스파링이 정좌한 채로 무슨 깊은 명상에 빠져 있는 것 같은데요. 혹시 오크가 참선하는 것을 보셨나요?"

"역시 스파링은 남다른 데가 있군. 될성부른 떡잎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명상호흡법까지 익히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든."

"명상호흡법요?" 

"자네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 삼마 행성에는 다른 행성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무예 전통이 내려오고 있다네. 그것은 바로 자연의 에너지를 몸에 축적하여 신체능력을 강화시키는 방법이지."

"준코, 그건 그렇다고 쳐도 명상호흡법을 아침마다 해야 하는 건가요? 또 시간은 오래 걸리나요?"

"그거야 수련자마다 다르겠지. 또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을 배려해 수련을 줄일 수도 있겠고. 자네도 눈치가 있어서 스파링의 수련을 방해하지는 않았군." 

"스파링의 수련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군요. 준코, 마코, 먼저 식사하세요. 저는 스파링의 수련이 다 끝나면 함께 식사할 테니까요."

"우리도 어제 모처럼 배가 터지가 먹었더니 아침에 그렇게 배가 고픈 것도 아니네. 조금 기다렸다 모두 함께 먹지."


"명상호흡법이란 것이 전투력을 향상시키는 데는 효과가 있나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경험상으로는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더군요. 명상호흡을 한다는 사람도 별로 보지 못했고. 사실 도깨비는 천부적으로 육체적인 힘이 강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필요도 없으니까 말이야, 나야 관심도 갖지 않았지." 

참선이라든지 명상호흡이라든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오크 스파링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나는 스파링의 수련 모습을 자세히 지켜보기 위해서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스파링은 별다른 움직임도 없이 정좌한 모습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달리 특이한 호흡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도깨비 형제가 명상"호흡"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 알고 하는 말일 것이다. 스파링의 가슴이나 배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이 깊은 상념에 빠져 있는 듯했다.


나는 한 동안 스파링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의 매서운 눈초리에 쑥스러워졌는지 스파링은 살며시 눈을 치켜 뜨며 벌떡 일어섰다. 

"한누리, 그럼 식사하러 갈까요?"


스파링은 다른 잡념을 물리치고 명상을 한 것이 아니라 밥생각을 한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스파링, 뭔 생각을 그리 깊이 했어요. 호흡명상을 한 건가요?"

"사실 호흡도 아니고 명상도 아닙니다. 그저 내 몸이 가벼워지고 있으며 강해지고 있다는 상상을 하는 것에 불과하죠. 영이 몸을 지배하는 것이니까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거든요." 


아무튼 요지경과 같은 말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얼른 식당으로 가서 도깨비 형제가 차려준 간단한 아침상을 받아먹었다. 계란을 곁들인 식빵 토스트도 오랜만에 맛보는 것이기에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음식물을 없앤 뒤 부풀어오른 배를 두드리며 제안을 했다. 

"준코, 이곳 마을에는 농장이 많군요. 시골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네요. 아침을 마쳤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마을 주변을 산책할까요?"

"그렇게 하지. 자네도 우주 여행을 하느라 농장을 거니는 한가로움을 오랜만에 경험하는 것일 테니까."


마을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채소밭이 나란히 놓여 있고 가끔씩 소나 돼지는 기르는 가축사육시설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 외곽 쪽의 외양간에는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궁금해서 그곳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진다. 어깨 너머로 외양간을 둘러보니 소 우리의 벽에 무너져 있고 그 안에는 소가 모조리 죽어 있었다. 벽이 할퀸 자국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늑대 무리의 짓이 틀림 없다. 외양간 주인의 말에 따르면 없어진 소가 다섯 마리이기 때문에 최소한 다섯 마리 이상의 늑대가 출몰했을 것이라고 한다. 


늑대의 발자국을 따라가면 사냥이 가능할 것이다. 나와 스파링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코, 저와 스파링은 늑대 사냥을 떠나야겠어요. 발자국을 따라가 놈들을 잡는 것이 낫겠어요." 

"놈들은 무리를 지어 행동하는 것 같은데, 조심해야 할 걸세." 

"걱정하지 마세요. 늑대라면 어제 충분히 많이 잡아봐서 문제는 없을 겁니다." 


우리는 도깨비 형제의 앞 마당으로 되돌아왔고 스파링과 나는 주차된 오토파이에 탑승했다. 오토바이에는 성능이 좋은 이미지 센서가 부착되어 있기 때문에 늑대 발자국을 쫓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추격시스템 작동. 늑대의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저 흔적을 저속으로 쫓아가라."


오토바이는 발자국을 쫓아 순항을 했고 머지 않아 타클라호 숲에 당도했다. 오토바이로 울퉁불퉁하고 경사가 있으며 나무가 우거져 진행을 방해하는 숲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였다. 우리는 오토바이를 주차한 뒤 늑대의 발자취를 따랐다. 숲길을 30분 정도 걸으니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어스름한 그늘막이 펼쳐지며 희미하게 빛나는 맹수의 눈빛이 보였다. 스파링과 나는 재빠르게 전투 준비를 취했다. 나는 소드를 꺼냈고 스파링은 방패와 도끼를 꺼냈다. 


늑대는 우리가 추격하던 놈들이 아니었고 무리로 행동하지 않았다. 개별적으로 행동하면서 스파링과 나에게 각개격파를 당했다. 나는 늑대 사냥에 떠나기에 앞서 트럭 운전수 니마카가 정오 12시에 기다리기로 약속한 지점을 단말기에 표시했었다. 늑대의 시체를 옮기기에 적당한 크기로 토막을 내기는 했지만 니마카가 있는 곳까지 무거운 고기를 옮기기 힘들었다. 나는 단말기를 통해 니마카와 통화를 했다. 

"니마카, 저와 스파링이 늑대 사냥을 해서 고기를 모아 놓기는 했는데 우리가 만나기도 약속한 장소와는 좀 거리가 떨어져 있네요. 저희가 있는 지점으로부터 트럭이 들어올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도 트럭을 주차해서 저한테 위치를 전송해주시겠어요?"

"그렇게 하지. 수고했네." 


니마카는 선뜻 승낙을 했다. 니마카는 15분쯤 후에 내 단말기로 트럭의 위치를 전송했다. 스파링은 단도를 활용해서 늑대 가죽을 벗겨내 넓게 펼친 후 그 위에 고기를 쌓아 끈으로 묵었다. 스파링이 가죽을 끌어 고기를 운반하는 모습을 따라서 나도 니마카의 트럭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니마카는 트럭 적재함의 바닥을 비닐로 깔고 대기하고 있었다. 또한 손으로 조종할 수 있는 간편한 리프트를 활용해서 늑대 고기를 적재함에 차곡차곡 실었다. 늑대 고기 운반을 여러 번 해본 솜씨였다. 


스파링과 나는 숲속의 늑대 고기를 모아놓은 지점으로 되돌아가 가죽 위 고기를 쌓아올려 트럭으로 운반하기를 시작했다. 수차례 왕복한 결과 트럭의 절반쯤까지 늑대고기를 채울 수 있었다. 

"니마카, 저희가 잡은 늑대 고기는 대충 다 실었네요. 아직 시간은 오후 1시도 채 지나지 않았죠? 아무래도 트럭을 다 채우는 것이 좋겠어요. 저희가 다시 숲에 들어가 사냥을 계속할 테니까 여기에서 기다려 주세요. 트럭 위치를 이동시킬 필요가 있으면 다시 연락을 드릴 테니까요."


우리는 잠시 놓쳤던 늑대들의 발자국을 쫓아갔다. 농장을 습격했던 늑대들은 숲속 깊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한참을 가다 보니 나무 그늘에는 소가죽과 뼈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늑대가 먹고 버린 소의 찌꺼기들이다. 스파링은 방패와 도끼를 꺼냈다. 

"직감상 놈들은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군요. 이곳 주위에 있어요. 늑대 울음소리조차 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뭔가를 기다리고 있나 봅니다."

나도 검을 꼬나들었다. 수풀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가운데 약간의 빛이 들어오는 공터가 보였다. 우리가 공터에 들어서 옅은 햇빛을 얼굴에 느낌과 동시에 으르렁거리는 늑대의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스파링은 방패를 던졌다. 방패는 나무잎으로 가려진 쪽으로 날아갔으나 쓱 하며 짐승의 털과 피부를 가르는 소리를 냈다. 나에게 늑대가 덮쳐왔다. 나는 발바닥의 추진력을 활용해서 높이 발돋음을 한 뒤 내 특기를 살려 늑대의 목을 내리쳤다. 일격으로 늑대의 목을 잘라냈지만, 마치 나의 노림수를 기다렸다는 듯 다른 늑대 한 마리가 내 머리를 삼키려고 입을 크게 벌리며 달려왔다. 늑대의 목을 내려칠 때 충격으로 손끝이  저려오기는 했지만 생사가 달린 문제있기 때문에 아파할 새도 없이 팔을 옆으로 휘둘러 늑대의 벌린 입을 칼로 찢었다. 늑대는 나를 입으로 물지는 못했지만 그 육중한 목무게로 나에게 덮쳐 내 어깨를 짓눌렀다. 


한편 스파링은 던진 방패를 회수한 후 다시 방패를 던지고, 덤벼드는 늑대의 앞발을 도끼로 찍어냈다. 하지만 연달아 달려드는 늑대의 입을 온전히 막아내기는 역부족이었다. 방패를 던지고 미처 회수하지 못한 사이에 어떤 놈이 스파링의 왼손을 물어뜯었다. 스파링은 악 소리를 지르며 오른손에 든 도끼로 늑대의 두개골을 부수었다. 나는 늑대의 몸에 깔려 스파링을 도울 수 없었다. 입이 찢긴 늑대는 고통속에 울부짖으며 몸을 이리저리 뒹굴었다. 나는 장검으로 놈의 옆구리를 깊이 찔러넣어 빙글 돌리며 일어났다. 옆구리가 뚫린 늑대는 몸부림을 치며 숨이 멎었다. 나는 스파링쪽으로 달려가 스파링과 등을 맞댔다. 이제 넘은 늑대는 두 마리였다. 스파링은 오른손에 든 도끼를 옆 자리에 떨어뜨린 후 대신 방패를 집어들었다. 우리는 각자가 맞아선 늑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스파링은 방패를 날렸고 나는 장검을 비스듬히 휘갈겼다. 사실 늑대와의 1대1 싸움은 싱겁게 끝낼 수 있는 것이었다. 늑대를 모두 해치우자 스파링은 손목 아래를 잃은 팔을 들어올리며 고통스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