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파링의 손목을 물어뜯은 후 죽어 있는 늑대의 입을 분해했다. 다행히도 늑대 녀석은 스파링의 손을 깨물어 짓이기지 않고 혀밑에 고이 간직한 채 널부러져 있었다. 스파링의 손을 헝겊에 감쌌다. 스파링은 스스로 자신의 손목 부위를 지혈한 상태였다.

스파링과 나는 니마카가 주차해놓은 트럭이 있는 지점으로 재빠르게 달려갔다. 나마카는 피범벅인 된 채로 달려오는 우리를 보자 당황하며 굳은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했다. 

"나마카, 빨리 트럭의 시동을 걸으세요. 이곳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최대한 빨리 가자구요."

"아, 알았어요."


스파링과 나는 트럭 조수석에 탑승했다. 

"스파링의 손이 늑대 이빨로 잘렸거든요. 손목 아래가 잘렸는데 봉합수술을 잘 하는 곳으로 가세요."


스파링은 신음소리를 냈다. 용병이 상비하고 다니는 간이 진통제를 먹기는 했지만 손이 잘린 고통을 완전히 상쇄하지는 못한다. 오크가 아무리 육체적인 고통에 둔감한 편이라고 하더라도 신음소리를 낼 만도 하다.

나마카는 항법시스템으로 가장 가까운 병원의 좌표를 찍은 다음 인공지능이 전속력으로 트럭을 몰도록 했다. 트럭 표시등에는 응급신호가 깜박였다. 


트럭은 무서운 속도로 달렸기 때문에 병원까지는 15분 정도가 걸렸을 뿐이다.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소도시치고는 병원이 큰 편이었다. 늑대나 다른 위험한 생명체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다 보니 용병 활동이 많아 사고 또한 다수 발생하는 모양이다. 

트럭을 운전하는 도중에 미리 병원에는 손 봉합 수술을 위한 준비를 대기시켰기 때문에 트럭이 도착하자마자 스파링은 응급환자용 들것에 실려 수술실로 옮겨졌다. 수술실에는 첨단 장비가 충분히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손목을 팔에 붙여 원상으로 회복시키는 수술이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잘려진 두 부위를 맞대어 놓은 뒤 최신 봉합장비를 절단 부위를 지나가게 하면 자동으로 끊어진 신경세포를 잇는 동시에 죽은 세포가 재생하는 약물을 주입한다. 


30분만에 수술이 끝나고 스파링은 입원실로 옮겨졌다. 얼핏 보더라도 팔은 감쪽같이 원상회복된 것처럼 보였다. 다만 세포의 완벽한 재생을 위해서는 하루 정도의 회복 시간이 필요했다. 스파링을 안심시키고 한숨 푹 자도록 했다. 나는 나마카와 함께 병원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는 트럭에 몸을 실었다. 

"나마카, 병원비를 벌기 위해서라도 빨리 늑대 고기를 처분해야겠네요."

"한누리,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늑대 고기를 제값에 팔 수 있는 곳을 알고 있으까. 늑대 고기는 적어도 쇠고기보다 육질이 좋아 인기가 있어요. 더구나 남녀를 불문하고 정력에 좋다는 소문까지 퍼진 상태라 없어서 못 파는 수준이거든요." 

"어디를 가든지 정력을 따지는 인간은 차고 넘치는군요."


나마카는 트럭을 들려 시내 중심부로 이동했다. 그곳은 작은 정육점이 아니라 대규모로 정육을 가공하고 포장해서 개별 소비자에게 배송으로 판매하거나 정육점에 도매로 공급하는 공장이었다. 

"한누리, 아무래도 늑대 고기의 양이 많아 정육점 한곳에서 다 처분하기는 어려울 듯해서 공장으로 왔어요. 앞으로 장기 계약을 하려면 대규모 처리 시설이 좋겠죠? 또 가격이 그리 나쁘지 않아요. 비교적 양심적인 거래처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잘 하셨어요. 저도 장기적인 거래처를 원했거든요. 제 마음을 어찌 잘 파악하셨네요."


정육공장은 자동화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늑대 고기가 쇠고기와는 달리 비표준적인 제품이기는 하지만 소든 늑대는 뼈를 발라내고 고기 부위를 잘 다듬어 포장하는 것은 동일한 과정을 거친다. 자동화설비는 제법 쓸 만한 인공지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고기의 모양이나 상태에 따라 적절한 절단 가공이 가능했다. 우리는 심지어 트럭에서 늑대 시체를 내릴 필요도 없었다. 모든 것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로봇 팔에 의해서 순식간에 끝마쳐졌다. 


일을 다 마치고 나니 시간은 아직 채 오후 4시도 되지 않았다. 오늘도 저녁까지는 상당히 여유가 있다. 나는 단말기를 조작해서 숲 근처에 주차되어 있는 오토바이에 통신을 보냈다. 내가 있는 좌표로 신속하게 자동항법으로 도달하라는 것이다. 


나는 정육공장에 늑대 고기를 넘기기 전에 늑대 눈알을 모두 뽑아 신선보관통에 넣어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늑대 고기로 받은 돈은 1400피코, 즉 1나노400피코였다. 이 정도면 적은 돈은 아니지만 목숨을 담보로 한 돈벌이이기 때문에 아주 거창한 돈도 아니다. 단지 피 같은 돈일 뿐이다. 모든 계산을 마치고 나마카를 보낸 후 잠시 기다리자 공장의 주차장으로 나의 오토바이가 들어왔다. 


나는 늑대 눈알을 판매할 곳을 알려준다고 약속한 도깨비 준코에게 연락을 했다. 준코는 이웃 농장의 늑대 침입 사고를 수습하느라 바쁘다면서 본인이 직접 오지는 못하니까 자신이 찍어주는 좌표로 가서 주인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면 잘 대우해줄 거라고 했다. 준코가 알려준 좌표를 오토바이에 전송하면 자동항법으로 부산물 처리업자에게 갈 수 있었다. 14개의 눈알은 140피코였다. 딱 도깨비 준코가 알려준 금액대로 받았다. 처리점의 주인장한테는 가장 궁금할 것을 물었다. 

"도대체 늑대 눈알은 어디에 쓰이나요? 장신물도 식용도 아닐 텐데요. 물론 1개당 10피코라면 큰 돈도 아니지만 무시할 만한 금액도 아니잖아요?" 

10피코라면 소주 3병을 사고도 1피코가 남는 돈이다. 나라면 조금 흉측스러운 늑대 눈알을 갖는니 소주 3병이 훨씬 더 귀하게 느껴진다. 

"내가 부산물 처리업을 수 십 년째 하고 있네만, 최근 몇 년 전부터 늑대 눈알이 값을 처주기 시작했어. 과거에는 아무 쓸모도 없었거든. 사실 나도 늑대 눈알로 뭘 하는지는 잘 몰라. 언뜻 듣기로는 늑대 눈알에는 특수한 성분이 있다고 하는구먼."

"제가 늑대 눈알로 뭘 어쩌자는 것은 아니고요, 그저 궁금해서 어쭈어보았네요. 그럼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나는 늑대 눈알을 처리한 다음 바로 오크 스파링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갔다. 병원의 원무과 창구에는 인류 여성이 고객을 응대하고 있었다. 대기 순번을 나타내는 대기표를 끊고 5분쯤 기다리니 내 차례가 되었다. 

"스파링이라고 오늘 입원한 환자의 병원비를 미리 지불하려고 합니다. 가능할까요?"

"스파링이라면 오크 환자를 말씀하시는거죠?"

"예, 손목 봉합 수술을 받았죠. 퇴원은 언제 할 수 있나요?"

"수술이 성공적으로 완료되었기 때문에 안정을 취하신 후 내일 오전에 퇴원하실 수 있으십니다."

"수술비와 입원비를 모두 합쳐 얼마가 나왔나요?"

"1나노400피코입니다."

"그럼 결제해주세요."

나는 단말기를 내밀었다.

"보호자님, 결제는 몇 개월 할부로 하실 건가요? 총 6개월까지 가능합니다."

"일시불로 해주세요." 


1나노400피코라면 늑대 고기와 눈알을 판 돈과 비슷했다. 그래도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손을 봉합하는 데 많은 돈이 들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트럭으로 늑대 고기를 팔지 못했다면 용병 보상만으로 치자면 1개월 동안 열심히 일해도 벌지 못하는 돈이기는 하다. 


스파링의 병원비를 다 지불하고 나니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여전히 시간은 남았다. 나는 이 행성에서 별로 아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우주 항해에 관해 전문가가 아니지만 농부인 도깨비 준코에게 연락을 했다.

"준코, 우주선 수리비의 견적을 뽑으려고 하거든요. 아직 돈은 없지만 과연 얼마까지 벌어야 하는 미리 가늠을 하고 싶어요. 혹시 우주선 부품을 파는 곳이 이 도시에 있나요?" 

"한누리, 내가 농사꾼이기는 하네만 우리가 사는 도시가 작아 우주선 부품점이 없는 것쯤은 잘 알고 있네. 우주선 부품점은 아무래도 큰 도시에만 있거든. 자네가 나보다 더 잘 알겠지만, 단순히 견적을 뽑는 것이라면 정보통신망을 통해서 대도시의 부품점을 검색해서 알아보면 쉽게 해결되지 않겠나?"


준코는 농사꾼이지만 지적인 능력이 뛰어나다. 나도 미처 통신망으로 부품점을 검색해서 견적을 뽑을 생각을 못했는데 말이다. 이 행성에 불시착하고 난 뒤로 내 머리가 상당히 퇴보한 느낌이 든다. 단말기를 꺼내 통신네트워크를 통해 적당한 우주선 부품점이나 수리점을 찾아냈다. 단말기에는 우주선이 불시착할 당시에 조사한 우주선의 점검 상황에 관한 정보가 들어있었다. 우주선 점검 상황에서 빨간 표시로 들어온 부분에 해당하는 부품을 추려내게 했더니 크고 작은 부품이 모두 100개가 필요했다. 우주선의 부품은 은하계 안에서는 대체적으로 표준화되었기 때문에 어떤 행성의 수리점이라도 표준부품을 쉽게 구할 수 있다. 가격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여러 부품점을 통해서 100개 품목에 대한 견적을 뽑아보니 평균 100나노 내외의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100나노라면 오늘과 같은 사냥과 고기 판매를 100번쯤 하면 되는 금액이다. 아주 불행한 상황은 아니다. 힘을 내자. 


우주선 견적까지 뽑았겠다 따로 할 일이 있지도 않으니까 오크 스파링의 입원실로 올라갔다. 스파링은 입원실의 침대에서 평안하게 누워있었다. 나는 그 옆의 의자에 앉았다. 생각하면 딱히 오늘 몸을 누일 숙소도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 환자의 침대 옆에 놓인 보호자용 침대에서 잠을 잘 수도 있겠다 싶다. 내가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사람을 기척을 느꼈는지 스파링이 눈을 떴다. 

"한누리, 고마워요. 오늘 수고가 많았어요. 덕분에 제 손도 무사했고요."

"스파링, 친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있잖아요."

"아, 그렇군요. 우리는 친구로군요."

"당연하지. 스파링, 앞으로는 나한테 높일말을 쓰지 말라구. 친구끼리 높임말을 쓰려니까 좀 어색하거든." 

"그렇게 하죠. 아니 그러지 뭐. 다시 한번 고마워."

"원무과에 알아봤더니 내일 오전 중에 퇴원할 수 있데. 손은 완벽하게 치료됐기 때문에 잠시 휴식을 취하기만 하면 된다는군."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퇴원하자. 병원비는 어떻게 지불할까? 내가 수중에 돈이 없는데."

"스파링, 자네가 오늘 많은 돈을 벌지 않았나? 자네가 사냥한 늑대 고기를 팔아서 그 돈으로 병원비를 모두 충당했다네."


순간 스파링은 허리를 세운 채 멍하니 앉아 오크답지 않게 눈물을 글썽인다. 나는 별것 아닌 일로 감정을 나타내는 오크를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내가 더 당황스럽기만 하다. 

"병원비는 얼마 나오지 않았어. 오늘 늑대 사냥으로 충분했다니까."

"자네가 어련히 알아서 했으려구, 친구."

"앞으로는 계속 함께 사냥을 하는 것이 좋겠어. 자네와 같이 용맹한 오크라면 내 목숨을 맡길 수 있겠더군."

"나도 그래. 자네가 아직 숙소를 마련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당분간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함께 생활하지." 

"나도 그럴려고 생각하고 있었어. 둘이 함께 생활하면 생활비를 줄일 수 있겠지. 생활비의 절반은 내가 감당할 테니까."


우리는 평안한 마음으로 앞으로의 용병 생활을 계획했다. 스파링의 실력이라면 용병등급을 D등급으로 승급할 수 있을 것이다. 무리 지어 활동하는 늑대만 조심한다면 늑대 사냥도 아주 위험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실력이 늘어나면 더욱 안전한 사냥이 되어 점차 난이도를 높여간다면 머지 않아 C등급으로 승급도 가능하고 그에 합당한 지위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