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클라호 숲의 깊숙한 곳으로 진입하면서 단말기에 표시된 경로와 중복되지 않도록 주의했다. 이번에 가야할 것은 어제 엘프 리라의 약혼자 카라쿠롬이 향했던 길이다. 오늘 카라쿠롬은 다른 길로 돌아다닐 것이므로 카라쿠롬을 만나지 않을 것이다. 


어제 4마리의 곰을 사냥하느라 체력을 많이 소모한 기억이 났기 때문에 오늘은 가능하다면 곰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점 역시 어제 카라쿠롬이 갔던 길을 걷게 된 이유이다. 곰들이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카라쿠룸이 걸었던 지역에서는 곰들의 씨가 말랐을 수도 있다. 


우리 일행은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곰과 조우하지 않고 4시간을 넘게 걸었다. 그 중간에 점심을 먹은 것을 제외하고는 쉬지 않고 걸었지만 곰은 보이지 않았다. 나무 그늘로 덮이지 않은 사이로 빛이 들어왔고 대체적으로 하늘에는 구름이 약간 끼었을 뿐이었다. 나는 종종 하늘을 쳐다보며 걸었는데, 저쪽 하늘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사모아 형사님, 저쪽을 보세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어요." 

"역시 저 연기는 지성체가 사는 마을에서 올라오는 것이겠군. 저쪽을 향해 가보세."

"우리가 저 마을에 접근하는 것이 발각된다면 마을의 지성체가 우리를 공격하지 않을까요? 지성체를 숙주로 삼고 있는 바이러스라면 우리도 숙주로 삼고 싶어할 테죠? 더구나 우리가 사건을 조사하는 줄 안다면 더욱 우리를 해하려고 할 테고요."

"당연하지. 이 지점부터는 더욱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좋겠군. 저 마을에서 사는 오크가 설사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하더라도 먹고 살아야 할테니까 분명 몇 명씩 무리를 지어 사냥을 하러 나오겠지. 우리가 매복을 하고 있다가 무리를 덥치면 되지 않을까?"

"형사님, 그런데 저 마을의 오크 무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상태라면 우리가 무작정 공격할 경우 살인자가 되겠죠? 오크 장로가 얘기했듯이 늑대는 감염된 생명체를 분별할 수 있다고 하니 늑대를 이용할까요?"

"스파링, 자네는 늑대를 시켜서 저 마을의 지성체가 감염된 자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겠어?"

스파링은 자신이 없어 했다.

"형사님, 늑대는 특히 자신과 교감하지 않는 생명체를 먹이로 생각해서 공격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저 마을의 지성체가 감염되었든 그렇지 않든 늑대의 공격을 받게 되겠지요."

"늑대만으로는 감염 여부를 알 수 없겠군. 그렇다면 우리가 잠복하고 있다가 저들 앞에 나타나 길을 잃고 헤메고 있다고 운을 띄우는 거지. 만약 감염자라면 우리를 감염시키기 위해 공격할 것이고, 감염자가 아니라면 우리를 평화롭게 마을까지 안내하겠지."

나는 사모아 형사의 의견에 반대했다.

"형사님, 감염된 자에게 고도의 지적능력이 있고 그 능력을 바이러스가 활용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수렵을 나온 소수의 무리가 마구잡이로 우리를 공격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를 마을로 유인해서 확실하게 감염시키려고 하지 않을까요?" 

"한누리, 아주 그럴 듯한 추론이군."

"형사님, 제 생각에는 낮에는 숨어지내다가 밤에 저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몰래 잠입하여 한 명을 납치해서 그 혈액을 추출해서 검사하는 것이 어떨까요?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면 납치한 사람을 돌려주며 사과를 하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할 테지요."

"한누리, 조치라니!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마을 사람을 모두 죽이자는 건가?"

"형사님, 저는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할 수가 없네요."
"한누리, 감염된 사람이 지구 동화에 나오는 것처럼 좀비로 변한다면 모르겠지.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돌연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어도 겉모습이 그대로이고 정신지배를 받을 뿐이지 않은가? 수전 박사,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해서 죽었다고 할 수 있나요?"

수전 연구원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대답한다.

"당연히 죽었다고 할 수 없죠. 바이러스에 의해 정신착란이나 정신지배가 발생할 수 있겠지만 그것으로 죽었다고 할 수 없어요."

"박사님, 돌연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도 개발할 수 있는 것이죠?"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죠."

사모아 형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한누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감염이 확대되는 것을 최대한 막는 것뿐이라네. 우리가 선제적으로 감염자를 공격해서 죽인다면 우리는 살인자가 되는 것이지."


내가 좀비 동화를 너무나도 많이 본 탓이 컸다. 지금 바이러스 사태는 동화에서 발생하는 좀비 창궐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형사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합리적인 통제를 받는다면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죠. 하지만 바이러스 군집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존재에 불과하죠. 지금 상태를 방치한다면 이 행성의 모든 지성체가 바이러스 군집의 정신지배를 받게 될 테죠.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자유가 있기 때문인데, 한낱 바이러스의 지배를 받게 된다면 인간의 존재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한누리, 자네는 인간의 존재가치를 따지지만, 법적으로 말하자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생명을 잃지 않은 한 환자일 뿐이라네. 바이러스 감염을 치료할 가능성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 아닌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치료제를 개발할 때까지 감염을 최대한 막는 것으로 국한되어야 할 테지. 자네가 많이 읽은 좀비 동화에서는 사람이 좀비로 변하면서 생명을 잃고 괴물로 변하지.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하기 때문에 좀비를 살해하더라도 죄가 되지 않는 것이겠지. 이번 사태는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네."

"형사님, 좀비 동화를 보더라도 사람이 좀비로 변할 때 생명을 잃게 되는지는 불명확합니다. 간혹 어떤 계기로 해서 좀비가 치료되어 다시 사람이 되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좀비 동화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사람이 좀비를 죽여도 죄가 되지 않아요. 좀비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하는 일종의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한누리, 자네가 정신지배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공격할 수 있겠지. 하지만 감염자가 평화적으로 나올 때는 저들에게 해코지를 할 방법이 없다네."

"알겠습니다, 형사님. 아무튼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저들 몰래 한 명을 납치해서 혈액을 추출하고 검사를 하는 것뿐이겠네요. 우리는 바이러스가 검출되면 검사 결과를 정부에 보고하면 될 테고, 이번 사태의 해결책에 대해서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결정하겠군요."


행성의 미래라든지, 인류의 운명이라든지, 이런 복잡한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나는 그저 내 생명과 존엄성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면 족한 것이다. 


우리는 연기가 보이는 쪽을 향해 걸었다. 아직 어둠이 깔리지 않은 상태에서 지성체가 거주하는 마을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마을에 거주하는 지성체는 오크였다. 이 행성에서 차별을 받아 숲으로 숨어든 종족은 대부분 오크족이다. 오크 마을을 확인한 이상 은밀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 일행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이번 저녁을 맛없는 빵과 음료수로 때우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하늘도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오크 마을에서 흘러나온 불빛도 점차 사라졌다. 

마을의 불빛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뒤 우리는 은밀한 작전을 수행할 사람을 정했다. 오크 청년을 한 명 납치하기 위해서는 한 명으로도 족했지만 사모아 형사와 내가 오크 마을로 잠입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수전 연구원은 배낭에서 약품 상자를 꺼내더니 마취약을 찾았다. 마취약은 헝겊에 뿌려졌다. 

"형사님, 이 헝겊으로 코를 몇 초만 막아도 곧 기절할 거예요."

"박사님, 마취약까지 가져오시다니 만반의 준비를 다 했군요."

"사실은 곰을 생포할 수도 있어 마취약을 준비한 거예요."


사모아 형사와 나는 오크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방벽쪽으로 다가가 보초병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당초 예상했듯 보초병이 몇 명 지키고 있었다. 오크 청년을 납치하는 것이라면 방벽 안의 집안까지 들어갈 것도 없이 보초병을 기절시켜서 납치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사모아 형사는 고참 형사답게 보초병에게 은밀히 다가가 입을 막고 코에 마취약을 뿌린 헝겊을 갖다 댔었다. 얼떨결에 기습을 당한 보초병은 고함도 지르지 못한 채 바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나는 쓰러진 보초병을 등에 업었고 사모아 형사는 주위 동태를 살폈다. 방벽을 순찰하는 다른 보초병의 시야에서 벗어나게 되자 스파링과 수전 연구원이 은신처에서 나와 따라붙었다. 

"박사님, 마취 효과는 어느 정도 지속되나요?"

"대략 30분 정도 지속될 겁니다."


나는 보초병을 최대한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업고 가서 내려놓았다. 수전 연구원은 진단 키드에서 주사기를 꺼내 보초병의 팔에서 혈액을 채취했다. 혈액을 분석하는 검사장비를 배낭에서 꺼낸 다음 그 홈에는 혈액을 넣은 팬트리 접시를 집어넣었다. 몇 분 동안 검사장비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수전 연구원의 단말기에서 홀로그램 영상이 쏟아져 나왔다. 

"여러분, 여기 홀로그램 영상을 보세요. 확대해서 보면... 분자구조상 돌연변이 바이러스가 분명하군요."

"형사님, 보초병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 분명하네요. 삼마 행성의 법에 따르면 중대한 감염병 환자에 대해 격리조치를 취할 수 있죠? 바이러스 증상을 세부적으로 관찰하기 위해서라도 보초병을 데려가야 하지 않을까요?"

"당연하지. 보초병은 감염병 환자로 격리수용을 하면서 증상을 관찰하고 마을의 감염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취조할 수도 있겠지."


이 때 마취되었던 보초병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눈을 멀뚱이 뜨고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사모아 형사가 말했다.

"당신은 중대한 전염병에 걸리셨습니다. 공공의 안전을 위해서 당신에 대해 격리조치를 취하고자 합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사모아 형사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저 자신의 위치파악에 여념이 없는 보초병의 두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수전 연구원은 "조심하세요."라고 소리를 지르며 보초병의 입에 재갈을 물리듯 끈을 묶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보초병이 여러분을 깨물면 여러분도 감염이 될 수 있어요."

사모아 형사와 나는 보초병의 양어깨를 붙잡고 끌고가려고 했다. 그 때 오크 스파링이 갑자기 소리쳤다.

"한누리, 아주 강력한 교감 에너지가 마을쪽에서 이 보초병에게로 방출되고 있어. 이 보초병의 내부에 있는 교감 에너지가 위치를 추적하는 안테나 역할을 하고 있다네. 빨리 차단을 해야해."

스파링은 자리에 멈추어 정신을 집중시켰다. 늑대와 교감을 할 때 취했던 자세와 비슷했다. 스파링은 보초병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보초병은 스파링의 눈길을 회피했다. 스파링은 보초병의 뒤에 서더니 양팔을 펼쳤다. 스파링이 외친다.

"한누리, 내가 마을에서 쏟아지는 교감 에너지를 방해하는 방어막을 쳤어. 자 어서 보초병을 이동해야 해."

그 순간 보초병은 정신이 빠진 얼굴로 가만히 서서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보초병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정신 교감 에너지를 차단하는 실력자가 여기에 있다니.. 하지만 이미 너희의 위치를 파악했다. 너희는 독 안에 든 쥐다. 어서 항복하라. 우리의 위대한 왕국에 편입하라. 그러면 영광이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사모아 형사와 수전 연구원은 마주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우려했던 일이 발생한 것이다. 설마설마했던 나의 가설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보초병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정신을 지배하는 자가 보조병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러스를 통해 정신을 지배하는 자는 우리가 있는 위치를 파악했다고 하였다. 정신지배자는 보초병의 눈을 통해 주변의 사물을 보고 마을과의 거리를 짐작해서 우리의 위치를 파악했음이 틀림없다. 그자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놈들에게 잡힐 뻔했다. 정신지배자의 자만심이 우리에게 탈출의 기회를 주었다. 


보초병은 끌고가려고 하는 우리에게 저항을 했다. 나는 호주머니에 넣었던 헝겊을 수전 연구원에게 내밀었다. 수전은 마취약을 헝겊에 뿌렸고, 나는 보초병의 입을 막고 헝겊을 그 코에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