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사이에 사령관이 대장에서 중장으로 바뀐 건 아무래도 좋았다. 늘 상 있는 일이었으니까. 우리 대대장도 이름뿐인 대대를 이끄는 대위지 않은가. 적군의 주공은 카이로의 남쪽으로 향할텐데 어쩌면 이곳에 남는다면 조금이라도 목숨을 부지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마치 시체처럼, 무표정하고 퀭한 표정을 지은 채 가지각색의 자신의 검과 머스킷을 묵묵히 부여잡았다. 한숨하나 나오지 않았다.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죽음을 묵묵하게 받아들이는 사형수의 심정일까 아니면 도망가는 백성들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용단일까? 그들에게선 일말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 또한 어느새 삭아버린 가죽끈을 확인하고 구식 머스킷의 총열을 점검하고 있었다. 나도 나 자신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시간이 되자 언제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딱딱한 톱밥빵 따위를 먹다 만 우리는 자리에서 하나 둘 일어났다. 대대장이 들어왔고 자칭 타칭 중대장과 소대장들이 수군거렸다. 시청과 시청옆 성채를 잇던 작은 땅굴은 몇 일 전 시청이 공세를 받기 시작할 때 무너뜨렸다. 우리는 군장과 낡아빠진 군복, 그리고 머스킷을 챙긴 후 성채로 올라갔다. 성채 문부터 대로변까지 신음하는 부상병들과 미처 피난하지 못한 사람들이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마치 거대한 노숙자의 소굴과도 같았다. 초췌한 사람들은 앉은 채로 허공을 응시하다 우리를 올려다 보았다. 연민일까 동정일까. 그들은 그런 시선으로 우리를 올려다 보았다.
성채에서 나오니 어지러운 도로 사이로 펼쳐진 조잡스러운 방어선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이사이에 병사들이 나무통과 밀포대로 만든 조잡한 진지를 등지고 앉아있었다. 대충 거치된 구식 머스킷은 축 처진 채 하늘을 향해 있었다. 그 아래에 녹슨 활이 굴러다니고 있었으며 그 옆으론 머스킷이 총열이 빠진 채로 거치되어 있었다. 방어진지에 기댄 낡은 군복의 한 노병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제지 하지 않았다. 노병 옆에는 아무리 봐도 어린애로 보이는 병사가 자신의 몸집만한 검을 안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귀하는 전투에 참가하여 빛나는 무공을 세웠음으로 훈장을 수여함”
방어벽 뒤쪽에서, 몇 명의 병사들이 도열한 채 장교로부터 훈장을 수여 받고 있었다. 그 옆에선 병사가 훈장이 가득 담긴 꾸러미를 들고 있었다. 한 병사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난 뒤 그에게 훈장증을 되돌려받고 다음으로 훈장을 받는 병사에게 들려주었다. 훈장증엔 받는 사람의 이름이 없었다. 훈장증은 세사람을 거치고 나서야 다시 장교에게 돌아왔다. 조잡하게 찍어낸 훈장은 꾸러미에 담긴 채로 뿌려졌다. 이윽고 말이 끌고오는 마차소리가 들리더니, 온 사방이 그슬린 대포 2문이 도착했다. 1문은 12파운드 대포였고 나머지 1문은 놀랍게도 24파운드 대포였다.
용케도 살아남았구나 생각했었는데 대포에 ‘시험용’ 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불타는 조병창에서 빼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