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이 둘 있다.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 아이를 키워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사실이 어느 때보다 나를 괴롭게 하고 있다. 





  그 당시, 그러니까 사고가 일어난 날로부터 꼭 열흘째 되던 날, 나는 어느 정도의 결론을 이미 내린 상태였다. 그걸 남편에게 은연 중에 떠보듯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둘째 아들을 재우고 늦은 저녁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당신 혹시 거기서 종이비행기 같은 거 못 봤어?”

  그러나 남편은 모르겠다는 건지 알 게 뭐냐는 건지 알 수 없는 우물거림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다른 얘기를 꺼냈다. 보험금 이야기였다. 남편은 이런 때일수록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며 그 돈이면 곧장 해결될 문제들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남편 머릿속에서 열심히 써지고 있을 계산서들을 모조리 찢어버리고 싶었다. 남편은 사나이답게 딱 일주일동안 펑펑 울다가 뚝 그치고 다시 회사로 향했다. 그러면서 틈틈이 보험금과 위자금은 뒤에 영이 몇 개 붙는지, 누구의 잘못과 누구의 잘못이 몇 대 몇인지, 최선의 경우와 최악의 경우는 어떤지 같은 숫자들과 씨름했다. 아직도 상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대신 집안일까지 척척 해냈다. 계획적이고 철저한 남자였다. 그래, 그런 면을 보고 그와 결혼했다. 하지만 어떤 때는, 정말 가끔이지만, 그가 남긴 유전자가 초래했을지도 모르는 지금의 결과를 바라보며 혼자 어렵게 증오를 삼키기도 한다.

  그 날 저녁 식사를 마친 후의 내 심정이 그랬다. 헌신적인 남편에게 가져서는 안 될 증오감을 삭히지 못해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자러 들어갔다. 그런데 무의식중에 나는 내 침실이 아닌 둘째 아들 침실에 들어갔다. 둘째 아들이 침대 위에 새근새근 잠들어있었다. 발 끝에 이불이 위태롭게 걸쳐진 채로 침대 아래에 흘러내려져 있기에 이불을 가슴께로 끌어올려주었다. 흐트러진 침대 매무새를 잡아주는 동안에도 둘째 아들은 곤히 잠들어있었다.

  충격이 크면 어쩌나 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은 학교로 다시 돌아간 이후 평소처럼 활달하고 귀여운 아이로 돌아왔다. 나는 둘째 아들이 깨지 않게 천천히 이마를 쓰다듬었다. 주름 하나 없는 어린 피부가 탱글탱글했다. 둘째 아들은 잠긴 목소리로 뭐라 잠꼬대를 했다. 눈꺼풀 아래 눈동자가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을 보니 기분 좋은 꿈이라도 꾸나 싶다. 제 형은 열흘 전에 죽었는데. 

 

 

 

 

   우리가 사고현장으로 달려갔을 때 상황은 이미 어느 정도 정리되어있었다. 둘째 아들은 나이 들어 보이는 경찰관 품에 안겨있었다. 경찰관이 아이를 남편에게 안겨주며 말을 꺼냈다.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 말 그대로였다. 할 말이 없는 사고였다. 60까지 밟을 수 있는 교차선 도로, 시야 사각지대에서 갑자기 뛰어든 아이, 그걸 선명하게 잡아낸 블랙박스 영상. 차주는 우리 앞에서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어깨와 허리는 당당하게 편 채였다. 

  응급실로 느릿느릿하게 가는 구급차에서 간호사에게 내 아들을 덮은 천을 들추어도 되겠냐고 물어봤다. 간호사는 안절부절 못하며 하고 입을 달싹거렸다. “아이가 지금……”

  내 아들이 지금 뭐. 죽어서? 끔찍한 몰골이라서? 쏘아붙이려다 기운이 없어서 못했다. 간호사를 무시하고 천을 들추었다. 천천히 드러나는 찢긴 피부와 보랏빛 멍을 보면서 아까 봤던 블랙박스 영상이 머릿속에 자꾸 반복 재생되었다. 여긴 앞 범퍼에 부딪힌 허리, 여긴 본넷에 박은 이마, 여긴 유리창을 깨뜨린 팔꿈치. 시커먼 상처들이 백내장처럼 내 망막에 아로새겨졌다.

  사실 블랙박스 영상에서 발견했지만 남편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때만 해도 그것은, 백사장의 모래 알갱이처럼 한없이 미약한 가능성에 불과했었다. 그것은 허공을 천천히 가르는 종이비행기였다. 복잡한 세상을 곧은 직선으로 유유히 날아가는......

 

 

 

 

  남편이 지인의 지인이라며 선임한 변호사는 게을러보였던 인상과 달리 열성적이었다. 며칠 밤낮으로 차주의 뒤를 캐고 다니더니 결정적인 것을 찾았다며 상기된 얼굴로 남편에게 보고했다. 그 사람, 알아보니 사건 전 날 회식에 갔었답니다. 그 날 자리에 같이 있던 직원들 말로는 적어도 두 병 정도 마셨대요. 그 사람, 회사에 적이 많아서 다들 술술 불더군요, 요즘 세상엔 전날 밤 술 먹고 다음 날 아침에 운전해도 혈중알코올이 남아서 그거 다 음주운전예요. 증언 좀 모으면 빠져나가기 힘들겁니다.

  남편은 상스러운 욕설을 뱉으며 주먹으로 사무실 책상을 쾅 내리쳤다. 그러곤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송아지처럼 울었다.

  어어어어.

  남편은 고생이 끝나기라도 한 듯 쉽게 무너져내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차주의 혈중알코올이 몇 프로였나 같은 얘기가 아니다. 진실은 그런 것을 따지지 않는다. 진실은 부유하는 먼지 같은 자잘한 문제들은 제쳐두고 당신의 연약하디 연약한, 유일한 약점을 느닷없이 찌른다. 약점을 찔리면 당신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외칠 것이다. 아니야, 그건 사실이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사실 블랙박스 영상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개 한 마리다. 첫째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 직전 크리스마스 날 선물해준 녀석이다. 

  사건 당일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차 앞바퀴에 깔려서 죽은 개같은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첫째 아들을 화장한 날 집에 돌아온 후 일주일 동안 기계적으로 개 밥그릇에 사료를 쏟았다. 그릇이 넘쳐 사료가 바닥에 다 쏟아져내리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나는 녀석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노트북을 열어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꽂았다. ‘사고영상‘ 폴더를 열어 영상을 틀었다. 첫째 아들이 도로로 뛰어들고 차주가 외마디 욕설을 내지름과 동시에 둔탁한 파열음이 들리고 유리창이 깨졌다. 그것이 영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충돌 시점으로부터 영상을 10초 정도 되돌렸다. 영상을 다시 보는 것은 속에 천불을 내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홀린 듯이 눈을 크게 뜨고 그 모습을 다시 지켜봤다. 충돌 몇 초 전부터 스페이스바를 빠르게 누르며 영상을 아주 조금씩 재생시켰다. 아들이 차와 충돌하기 일이초 전, 짧은 찰나에 우리집 개로 보이는 연갈색 물체가 도로에 뛰어드는 것을 영상 구석에서 발견했다. 그 이후 영상에 나타난 첫째 아들은 개를 향해 팔을 뻗으며 달리고 있었다. 도로로 뛰어든 개를 구하려다가 사고가 난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개는 왜 난데없이 도로에 뛰어들었을까. 정지시킨 화면을 노려보는 내 시선이 점차 위로 올라갔다. 화질이 낮은 희뿌연 상공에 회색 사각형 몇 개가 떠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건 종이 비행기였다. 

 

 

 

 

  남편은 대답을 얼버무리고 말했다. 

  “그 돈이면 서울도 가고 의진이 그 학교에도 보낼 수 있어.” 

  “당신이 서울가기 싫댔잖아.” 

  “내가 그랬어? 윤선이가 그랬지.” 

  “……” 

  “당신 마음 알아. 하지만 우린 부모잖아. 남은 애한테 집중해야지.” 

  “……” 

  “그러니까 종이비행기같이 쓸데없는 것에다 신경 쏟지 말고 당신도 이제 정신 좀 차려.” 

  나는 식탁만 바라봤다. 

  “듣고있는거야?” 

  나는 두어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잘게.” 

 

 

 

 

 

  “의진아.”

  잠든 둘째 아들의 이름을 속삭이며 불러보았다. 둘째 아들이 으음, 하며 대답하듯 잠꼬대를 했다.

  “종이비행기, 네가 던졌니?” 

  으음, 

  “왜 던졌니?” 

  …… 

  둘째 아들을 이마를 쓰다듬는 내 손이 점점 이마에서 내려가 뺨을 타고 목덜미까지 내려갔다. 아직 목젖도 튀어나오지 않은 짧달막한 목을 손가락으로 조용히 쓰다듬었다. 둘째 아들이 불편한 소리를 냈다. 내 몸을 도는 모든 피가 손가락으로 빠져나올 듯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갑자기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손을 땠다. 내가 내 자식에게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깨닫자 가슴이 섬짓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둘째 아들은 몇 주 동안 개와 종이비행기를 던지며 놀았을 것이다. 

  형과 개와 단 셋이서 외출하게 되는 날을 기다렸을 것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 시내에 우리가 자주 다니지만 차속이 빠르고 인도측 울타리가 시야를 가려 조심하라고 일러둔 교차로가 있다. 그곳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교차로가 가까워지자 품속에서 종이비행기를 꺼냈을 것이다. 

  차가 다가오는 소리에 맞춰 종이비행기를 던졌을 것이다. 개가 뛰어갔을 것이다. 슬그머니 목줄을 놓았을 것이다.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형이 개를 구하러 뛰어갔을 것이다. 

  형은 차를 피하지 못했다. 

 

 

 

 

  “누가 그랬다고?” 

  나는 알면서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이나 나나 표정이 싱글벙글했다. 

  “당신도 알지? 오늘 의진이 학교에 채플 강사로 온다던 그 화백 있잖아. 뉴스에 심심찮게 나오던데. 그 사람이 의진이 그림을 보고 담임선생님에게 따로 찾아갔다는 거야. 재능이 엄청나대. 개인적으로 가르칠 의사도 있다고까지 했다니까.” 

  “우리 의진이 화가되는 거야?” 

  “아직 모르지. 화가는 벌어먹기 힘들잖아. 디자인이나 뭐 그런거 해도 되고……” 여기까지 말한 남편은 표정이 굳어졌다. 

  “그런데 조건이 있대.” 

  “그 화백이? 뭐래?” 

  “서울에 자기가 애들 가르치는 아카데미가 있는데 거기서 가르치는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난감했다. 서울로 이사가는건 비용도 비용이지만, 애초에 우리가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와 전원생활을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첫째 아들이었다. 첫째 아들은 아토피가 심각했다. 아이가 새벽마다 울부짖으며 온몸을 긁어대는 모습을 견디지 못한 우리는 모든걸 제쳐두고 집을 팔아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했다. 빚이 많이 생겼지만 남편 등에 올라타 사과를 따며 까르륵 웃는 첫째 아들의 깨끗한 얼굴이 그런 걱정을 말끔히 사라지게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서울이라니? 

  우리는 늦게까지 상의를 하다가 결국 서울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내가 한숨을 쉬며 그릇을 모아 싱크대에 가던 중, 아이들은 잠들었을 저녁 조용한 집 어딘가에서 문이 살며시 닫히는 소리가 분명히 들렸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현관문을 연다. 새 집 현관이 차츰 익숙해지려 한다. 신발장 위에 액자가 하나 올려져있다. 나는 구두를 벗으려다 잠시 액자 속 사진을 본다. 

  윤선아…… 

  나는 신발을 벗고 급한 걸음으로 의진이 방으로 걸어간다. 모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벌써 아홉시인데 밥은 먹었나 싶다. 방문을 연다. 아직도 이 방은 낯설다. 의진이가 쓰던 물건이 몇 개 그대로 남아 있지만 예전 집 방에 있던 물건 중 절반은 윤선이와 함께 불타 사라졌다. 의진이는 책상에 앉아 데생을 연습하고 있다. 내가 나가기 전에 먹으라고 깎아줬던 사과 조각들이 그대로 접시에 담겨있다. 무서운 집중력이다. 의진이는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한 회로들이 얽힌 기계 장치들을 그린다. 저런 것들이 어떻게 열 살도 안 된 머리에서 다 떠오르나 싶다. 의진을 가르치는 화백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 아이는 미래를 그리고 미래를 보고 미래에 살아요. 아무도 보지 못한 방식으로 세상을 그리고 있어요. 지금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 할 거예요. 하지만 계속 갈고 다듬으면 장담컨대 머지않아 빛을 볼 겁니다.” 

  난 멍하니 의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던지지도 않은 질문을 이해해보려 했다. 하지만 그 화백의 말 그대로였다. 이해할 수 없었다. 서울에 오고 싶었으면 말을 하면 될 것을. 차라리 떼를 쓰고 물건이라도 집어던지지. 이렇게 힘든 방식을 쓰지 않았어도 됐을 것을.

  아니다. 내가 틀렸다. 그건 힘든 방식이 아니었다. 의진은 종이비행기를 접기만 하면 되었다. 떼를 쓸 필요도 없고 확실하며 결코 의심받을 수도 없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의진이는 바로 뒤에 서있는 나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그림에 몰두해있다. 의진이의 손으로 나사가 조여지고 전선들이 얽혀 복잡한 기계 장치를 이룬다. 일 년 전, 의진이의 손으로 종이가 접히고 날개가 세워진 종이비행기가 윤선이를 죽였다. 나는 둘 다 이해할 수 없고 차이점도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