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봄날 또한 저렇게 팔려 가는구나.


어딘가에서 태어났다는 것만이 기억날 뿐이지 부모가 누군지는 딱히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소녀의 부모는 소녀가 세 살쯤 되었을 때 빚에 쫓겨 망명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소녀의 눈물을 기억한다.


일반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부모에게서 버려진 소년소녀들은 보육원에 맡겨지는 경우가 잦다. 그렇지 못한 유아들은 대부분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으니까. 그렇다고 보육원이 마냥 좋기만 한 곳은 아니다. 소녀 소녀들을 정성껏 보살펴주는 보육원도 있겠지만, 이 소녀가 들어갔던 곳은 아니었다. 보육원장의 손에는 채찍이 들려 있지 않은 날이 없다시피 했고, 그에 따라 여러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그칠 줄을 몰랐다.


아이의 주변에는, 좋은 어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보육원장에 대해서는 일단 제쳐두고, 감독 교사는 툴툴맞은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고함이나 질러댔으며, 술병을 항상 들고 있던 조리사는 가끔씩 상한 음식을 주기도 했고, 열쇠지기는 께름칙한 눈빛으로 몇몇 아이들을 훑어볼 때도 있었다. 그나마 아이들한테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받던 어른은 한 달에 한 번쯤 와서 열네댓쯤 돼보이는 여자애들 몇몇을 데려가는, 그래도 아이들 앞에서는 친절한 모습을 보였던 운전수였다.


내가 운전수의 트럭에 탑승했던 날은 13살이 되었을 때즈음이었다. 사방이 막혀 있어, 좁은 천정으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푸른 빛의 하늘과 연회색의 구름 정도였다. 덜컹거리는 트럭 소리 속에서도 몇몇 아이들은 서로 대화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몇 명에게는 희망, 또 몇 명에게는 지루함, 또 몇 명에게는 두려움, 그리고 또 몇 명에게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트럭 소리는, 나는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지 못했다.


해가 보이지 않았던 출발 때부터, 해가 하늘 꼭대기 위에 떠있는 도착 때까지, 트럭은 한 번도 쉬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 왔다. 아마 이곳에서 내리겠지, 하고 생각했으나 이건 절반만 맞는 말이었다 트럭에서 내리기는 했으나 그 이유는 이것이 도착지점이 아니라 트럭이 갈 수 없을 정도로 길이 좁아졌기 때문으로, 그 말은 즉슨 이제부터는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짜증 섞인 탄성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나마 도착지까지 도보로 20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게 다행일까, 벽돌로 지어진 3층짜리 집으로 들어갔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이때의 나에게는 이곳이 희망으로 보였다. 여기에는 채찍을 들고 있던 보육원장도 없고, 시끄럽게 소리치던 감독 교사도 없고, 술내음이 진동하는 조리사도 없고, 너저분한 눈빛을 지닌 열쇠지기도 없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새파란 하늘과 녹색으로 물든 나무와 잔디, 깔끔하게 정리된 방의 모습과 방마다 두 개씩만이 놓여진 침대! 이때만큼은 구선에 피어 있는 곰팡이의 쿰쿰한 냄새마저도 기뻤다. 그 보육원만 아니면 된다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제는 더 나아갈 가능성이 생겼으니까.


운전수는 나에게 일을 하라고 했다. 물론 나에게만 얘기한 것은 아니다. 얼마간이 지난 날 저녁 식사 때 운전수는 중앙의 의자에 앉아서 얘기했다. 이제 일을 하지 않는 너희들을 먹여 살려 줄 수는 없다고, 이제부터는 너희가 먹을 음식을 직접 얻거나, 아니면 그만큼의 돈을 벌어와야 할 것이라고, 다른 곳에서 돈을 벌지 못하겠다면 자신이 주는 일을 하라고, 돈을 전부 빼앗아 가는 것은 아니니 걱정 말라고, 그래도 몇 달 간 침대에는 무상으로 누워서 자도 된다고, 아마 소녀들은 이걸 듣고 한 가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자기 자신이 어느 곳으로 가서 돈을 벌기는 힘드니, 이 사람이 주는 일을 하는 것이 더 낫겠다, 그리고 그 생각이 바로 운전수가 원하는 것이었다.


살을 도려 내거나 피를 뽑아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손짓에 이끌려 어느 주점으로 들어갔고, 운전수는 그 곳에서 일을 하라 시켰다. 맥주로 채워진 술잔을 옮기고, 비워진 술잔을 치우고, 행주로 식탁을 닦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며칠간은 그 말대로였다. 신규직원이란 뜻의 노란색 배지 대신, 열흘이 지나 주황색 배지를 달게 된 순간부터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날부로 파랑은 잊혀졌다. 철썩대는 큰 파도는 잊혀졌다. 내 안에서 철썩대며 울리는 파도가 있는데 파랑이 이는 바다를 볼 이유가 무엇이오, 거울에 비친 하늘을 쳐다볼 이유는 무엇이오? 빛을 내뿜는 사람은 하나밖에 없는데, 신을 믿을 이유 따위는 또 무엇이오?


나의 이름이 불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했지? 그래, 서둘러 옷을 갈아입는다. 아마 몇 분 안 남았을 거야, 오늘은 304호. 냄새는 다행히 안 나고, 잿빛으로 물든 머리칼을 베레모로 숨긴 남자가 방문 앞에 서 있다. 침착해야 해, 문이 열리고 석류 내음이 방 안에서 은은히 풍긴다. 이 한 번만으로 닷새어치를, 세명이 겨우 누울 만한 침대와 향초만이 달랑 놓여 있는 작은 방. 그 방으로 들어간다. 두려우면 눈을 막자, 대화는 할 수 없다. 무서우면 귀를 막자, 꺼풀이 하나씩 벗겨진다. 힘들다면 입을 막자,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울음이 터져 나올 때는 무엇을 막아야 하는 걸까?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냄새를 지니고 태어난다. 누군가는 중후한 벽지 냄새, 누군가는 싸늘한 후추 냄새, 누군가는 단큰한 꽃꿀 냄새. 체취는 아니다. 사란의 성격과 행동과 표정과 인사 같은 그 사람에게서 보이는 모든 것과 합쳐진, 그 사람을 보았을 때 간질대는 냄새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여인에게서 나는 내음은 단연코 최상품이다. 마치 봄날 그 언젠가처럼, 내가 그토록 찾고 있었던 이 내음을 지니었으니. 이 향을 감싸안을 수만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큰 행운인가? 그 하나가 내 손 안에서 꿈틀댄다. 오냐, 좋다, 삼켜 주마. 모든 곳, 하나하나씩 전부 삼켜서 지금 여기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잊게 만들어주마.


열여덟 살이 되어서야 그때의 잔향이 매우 값싸게 팔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고작 닷새어치, 열 끼를 먹자고 소중한 봄의 내음을 팔아치워버린 것이라니. 언제가 된다 해도 그날의 잔향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타들어가는 꽃잎의 냄새,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는가, 딱히 꾸짖고 싶지는 않다. 무심한 하늘은 웃는 적이 있었던가, 나는 웃었던 적이 있었던가. 아, 나의 봄날 또한 저렇게 팔려 갔구나.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