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함께 케이크를 해치운 단과 유나가 잠시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주로 유나가 묻고, 단이 대답하는 일종의 문답과 같았다.

 

자신 옆에 앉아 계속 조잘조잘 물어오는 유나를 뒤로 하고 시간을 확인한 단이 유나에게 이제 자러 갈 시간이라고 타일렀다. 

 

실망한 표정의 유나가 단에게 응석을 부렸지만, 단의 단호한 태도에 이내 수긍했다.

 

‘왜 유나가 자신을 따라오는 거지?’

 

자신의 방으로 향하던 단이 유나에게 물었다.

 

“유나, 네가 자던 방은 여기가 아녔는데?”

 

“단이랑 같이 잘 거야”

 

“유나”

 

“응?”

 

“남자랑 여자는 ......”

 

자신이 무슨 말을 할지 알았던 걸까

유나가 팔소매를 끌어당기며 달라붙어 왔다.

 

“싫어, 단과 함께 잘 거야 ......”

 

응석 부리듯, 유나가 투정 부렸다.

 

“유나”

 

“...... 싫어”

 

“혼자는 이제 싫어 ......”

 

어떤 말을 해도 떨어지지 않을 거란 예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어쩔 수 없이 방에 함께 들어온 유나를 침대에 뉘이고, 자신은 바닥에 누웠다.

 

유나가 침대에서 옆으로 누워 자신을 내려다봤다.

 

“단, 잘 자”

 

“그래, 유나”

 

“단, 사랑해”

 

“나도 사랑해”

 

그렇게 말하던 유나가 조용한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 들었다.」

 

「유나가 천천히 눈을 떴다. 

 

으스름한 게 아직 새벽인 듯하다.

 

점점 선명해지는 시야로, 이부자리를 걷어 차 버린 단이 누워있다.

 

몸을 일으켰다.

 

잠시 느껴지는 현기증에 정신이 몽롱하다.

 

어느 정도 현기증이 가시자 머릴 가누던 유나가 조용한 발걸음으로 침대에 내려오더니 단의 옆에 누웠다.

 

볼 품 없이 널브러진 게 널어놓은 빨래 모양이지만, 그래서 그 품에 파고들기 더 좋았다.

 

얼굴이 닿을 듯 붙은 유나가 단의 옆모습을 잊지 않게, 새겨 놓기라도 하겠다는 듯 쳐다봤다.

 

“...... 사랑해”

곤히 자고 있는 단을 깨워선 안 되니까,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자 단이 조금 뒤척인다.

 

자신 때문에 깬 걸까, 그건 싫어

 

단이 자신 때문에 잠을 설치는 건, 원하지 않는다.

 

조용히 그의 품을 벗어났다.

 

이제 어쩐다.

 

잠시 고민하던 유나가 방을 나섰다.」

 

「“그래서, 실험체 W1 용도 파기 및 폐기, 승인 해주실 거에요?”

 

헤은이 앞에 놓인 잔을 매만졌다.

 

깍지 쥔 양손으로 턱을 괴던 교수가 물었다.

 

“왜, 그러는 거지?”

 

“SRB에서의 실험이 끝난 대상, 폐기해야 하지 않나요? 뭐, 지금은 교수님이 힘 좀 쓰셔서 보행기에 태우고 있긴 하지만”

 

교수가 대답 없이 침묵에 빠져 들었다.

 

그런 교수를 잠깐 살피던 혜은이 커피를 조금 머금고서 이어 말했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겠어요?”

 

“자네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저와는 상관없죠, 상부에서 얼마나 용납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말이지?”

 

“그 보행사 놀이, 상부에서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더라구요? 저도 마찬가지지만”

 

“이유가 뭐에요?”

 

“그건 ,”

 

혜은이 입을 호선으로 그리더니 교수의 말을 끊었다.

 

“아, 뭐 그런 건가, 19년 전, 신경 제어 장치 개발 중 딸을 잃은 아버지가 딸이랑 닮은 복제품에게 부성애를 느꼈다. 뭐 그런 이유로 지금 가족 놀이를 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될까나”

 

“하긴, 16년 동안 딸이랑 닮은 복제품을 곁에서 계속 지켜봐왔으면 그럴 수 도?”

 

얼어붙은 교수의 태도에 혜은이 싱긋 웃었다.

 

“맞나보네?”

 

“그러면 뭐, 자신의 실수로 잃은 딸에 대한 속죄인가?”

 

교수가 책상을 내리치더니 소리쳤다.

 

“닥쳐”

 

입가에 웃음을 지운 혜은이 정색했다.

 

“그런다고 지은이가 돌아오는 건 아닐 텐데, 더군다나 그게 교수님 잘못도 아니잖아요?”

 

“거기다, ‘물건’이 지은이랑 좀 닮았답시고 그러시는 거 좀 역겨운데”

 

“실험체를 실험 외에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 잘 아시지 않나, 딸 닮은 ‘물건’ 좀 더 숨 붙여 놓겠다고 보행기 조종사로 만든 것도 참 .......”

 

“그럴 일 없다. 그 아이는 보행기와 완벽한 동기를 이루지 못해, 그 날과 같은 사고는 일어나지 않아!”

 

“그건 저한테 설명할게 아니라 윗분들한테 설명해주셔야 할 거 같은데요. 납득할진 모르겠지만, 그런 일 한 번 더 일어나면 뒤집어 질 테니까요.”

 

“저한테 넘기세요. 그 아이”

 

“네가 말한대로 상부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SRB에서 네 부서로 넘어간다고 뭐가 달라진단 말이냐?”

 

“폐기하자니까요?”

 

“장난치는 거냐?”

 

“아뇨, 진심인데 ......?”

 

교수가 자릴 벌떡 일어서더니 혜은의 멱살을 쥐어 잡았다.

 

“누가 진짜로 폐기하잔 거에요? 교수님만 동의하시면 문서 위조 하자는 거지, 도와 드릴게요”

 

혜은의 말에 진이 빠지는 듯 멱살을 놓고서 다시 의자에 주저앉은 교수가 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뭘 어떻게 도와준단 거냐, 이 병동이 아니면 개가 지낼 곳도 없어”

 

“도와줄 친구 한 명 있어요, 거기다 개, 그 ‘물건’한테 관심 좀 있어 보이던데”

 

“유나가 어디 있는 지도 몰라 ......”

 

“어머, ‘물건’한테 이름도 지으셨네, 그래도 괜찮아요. 그 유나라는 ‘물건’ 제 친구가 맡아 놓고 있는 거 같으니까“

 

교수가 날카롭게 혜은을 쏘아봤다.

 

“네가 사주한 일이냐?”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런 일까지 계획해서 밀어붙이겠어요. 우연, 우연이에요.”

 

“그 남자애냐?”

 

“교수님도 아시는가 봐?”

 

빈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혜은이 웃었다.

 

“맞아요. 걔”

 

“어쩌자고 이러는 거냐? 너랑은 하등 상관없는 일인데, 네가 이렇게 깊숙이 개입해서 위험 살 이유가 없어”

 

잠시 장난스럽게 고민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던 혜은이 답했다.

 

“글쎄요. 저도 아저씨처럼, 지은이 생각나서 그런 걸까, 근데 그건 아저씨도 마찬가지잖아요?”

 

교수가 눈을 크게 떴다.

 

“너 ......”

 

“제 잘못 아닌 거 알아요. 하지만 아저씨 잘못도 아니잖아요? 그 날의 사고는 .......”

 

잠시 혜은의 얼굴에 슬픈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튼, 그렇게 하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합시다. 한 지욱 교수님?”

 

그렇게 말을 마친 혜은이 자릴 박차고 사무실을 나섰다.」

 

「‘13:41 혜은 씨?’ 단이 전화기에 걸려온 전화를 확인하며 시간을 봤다.

 

이런 시간에 무슨 일인지 생각하던 단이, 서점의 휴게 공간을 찾았다.

 

“단이야?”

 

“네”

 

“어저께, 네가 한 부탁 들어줄 수 있을 거 같네?”

 

“네?”

 

“그 꼬마 애랑 같이 살고 싶다며?”

 

“아니, 저기 저는 그런 말한 적이 없는데 ......”

 

“그 말이 그 말 아니야, 애도 참, 어쨌든, 신분증도 만들어줄 거고, 이것저것 해줄 거야 여기서 네가 알아야하는 점은, 이런 게 아니라 이것보다 더 중요한 거니까 지금부터 하는 말 명심해야한다?”

 

마른 침을 삼키며, 전화기 속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 애를 행복하게 해줘”

 

예상하지 못한 혜은의 말에 단이 잠시 굳었다.

 

“...... 예?”

 

“행복하게 해주라고, 따라 해”

 

“그거야 .......”

 

“따라 말하라구”

 

“아 네, 행복하게 해줄게요.”

 

“...... 그래”

 

왠지 젖어 보이는 혜은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그나저나, 너 뭐하고 있니?”

 

“아, 유나랑 같이 서점에 왔습니다. 백과사전을 가지고 싶대서”

 

“흐응, 그래? 방해는 그만 해야겠네, 그럼 나중에 보자”

 

“아”

 

자신의 대답도 듣지 않고 혜은이 전활 끊었다.

 

도대체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단”

 

휴게실까지 졸래 졸래 쫓아온 유나가 자신을 불렀다.

 

“그래, 가자”

 

그렇게 말하고 유나와 손을 맞잡고 다시, 서점으로 돌아간다.」

 

「전화를 끊은 혜은이, 살짝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웃었다.

 

“이 나이 먹고 이게 뭐람 ......”

그 날의 사고로 지은이를 잃었다.

 

그 ‘물건’이 지은이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쯤은, 그녀 자신도 잘 알았지만, ‘물건’을 봤을 때 들은 감정을 지울 수 없다.

 

그리운 추억을 보는 듯 한 그 감각, 아무튼 그런 감상에 젖기엔 너무 이른 시간에 다가 할 일이 많다.

 

눈물을 훔치고서 혜은이 ‘물건’ 즉, 유나를 위해 준비해야할 서류를 정리했다.

 

서류를 작성하다가 매스꺼움을 느꼈다.

 

단더러 유나를 행복하게 해주라고 했는데,

 

정작 자신도 그저 용도 폐기에서 건져 주었을 뿐이다.

 

유나는 계속 보행기에 타야할 것이고, 보행기에 탄다는 건 언제나 죽음에 노출되어 있다는 의미니까, 자신도 결국 자신이 혐오하는 애들 등 떠미는 어른들의 일원일 뿐이니까, 부정하고 외면하던 사실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그 날의 사고에 대한 면죄부를 원함으로 그 ‘물건’을 도와주는 사실 또한 자신을 좀 먹었다.

 

가증스럽고, 역겨운 자신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출 순 없다. 그런 것들이 사실이더라도, 이런 행동이 조금이나마 마음을 덜어줄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을 마친 혜은이 멈춘 손을 움직이며 다시 서류의 빈 칸들을 채워 나갔다.」

 

「“단”

 

백과사전을 이것저것 펼쳐 읽던 유나가 백과사전 하나를 손에 꼭 잡고서 다가왔다.

 

‘저걸 사고 싶구나’

 

“응?”

 

“이거”

 

그러면서 들이밀어진 책을 받아든 단이 유나의 손을 잡았다.

 

“또 뭐 읽고 싶은 건 없어?”

 

곰곰이 생각하던 유나가 입을 연다.

 

“요리법”

 

“요리법은 왜?”

 

“단에게 해주고 싶어”

 

앞치마를 두르고, 자신을 위해 음식을 해주는 유나를 상상했다.

 

자신이 해주는 음식을 기쁘게 먹어주는 유나도 좋지만,

 

자신에게 음식을 해주며 기뻐하는 유나도 분명 사랑스러우리란 생각에, 유나의 머릴 쓰다듬었다.

 

“그래, 사자”

 

그렇게 유나를 위한 백과사전 한 권과 요리법 관련 두 권의 책을 종이 가방에 넣은 단이 뻗어오는 유나의 손을 잡고서 서점을 나섰다.

 

예상보다 서점을 빨리 돌아본 걸까, 시간이 꽤 많이 남았다.

 

단이 손을 잡고서 옆을 걷는 유나에게 말했다.

 

“어제 영화 보러 가자고 했지?”

 

“응”

 

“지금 갈까”

 

“좋아”

 

결정됐다.

 

맞잡은 손을 이끌고, 가까운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란 걸 보는 내내, 마음이 이상했다.

 

그들의 슬픔이 자신에게 사무쳐 와, 자신들은 그런 상황이 아님에도 묘하게 계속 단을 쳐다보며 감상에 젖었다.

 

순간을 기록한 장면을 연속적으로 촬영하여 기록한 동영상을, 같이 기록한 음성과 함께 편집하여 어떤 내용을 전달하게끔 꾸며서 만든 영상물, 영화

 

처음엔 진짜 사람들이 나와서, 실제로 죽고, 다치고, 기뻐하는 줄 알아, 단에게 계속 물었다.

 

“...... 저 사람들 진짜?”

 

그럴 때 마다 단이 한사코 아니라며, 연출된 장면들이라는 설명을 했지만, 그들이 보이는 감정은 자신에게 전혀 거짓 없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남자가 여자를 남겨두고서 죽음을 맞이할 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눈물을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당황한 단이 자신을 달래려고 애썼지만, 스스로도 왜 눈물이 흐르는지 몰라, 그칠 수 없었다.

 

틀어놓은 수도꼭지처럼 흘러나오던 눈물은 영화관을 나오고서 집에 가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았다.

 

왜 울었던 걸까, 집에 도착해 씻으며 기억에 잠겼다.

 

왜, 그들의 아픔이 자신의 것도 아닐 텐데,

 

그렇게 생각하다 문득, 그 남자를 단과 동일시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이 그 남자와 같이 죽어버린다면, 자신이 그 여자처럼 남겨져버린다면, 하는 마음에 울어 버린 게 아닐까

 

그리 생각하니 다시 사무쳐오는 마음에 눈물을 흘릴 뻔 했다.

 

단은 살아있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있다.

웃어주고, 기뻐해주고, 같이 울어주는 단,

 

그를 너무 사랑한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 불현 듯 이곳에 얼마나 더 머무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생각의 수면위로 튀어 올랐다.

 

얼마나 단의 곁에 있을 수 있는 걸까, 자신이 언제까지고 이 곳에 머무를 수 없다는 사실 정도는 자신도 알고 있지만, 억지로 외면하더라도 현실은 다가오는 법이니까, 다시 돌아 가야하는 날이 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상상조차 하기 싫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