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아빠랑 이 게임을 자주 했었어. 어른인 주제에 애한테도 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컨트롤러를 들고 흔들어대던 모습이 얼마나 진지해 보였는지. 아빠는 언제나 나를 이기고 거들먹거리셨고, 내가 분해서 씩씩거리고 있으면 엄마는 철이 없다며 아빠한테 한 소리를 했었지. 


그 당시엔 몇번을 해봤지만 아빠한테 이길 수는 없더라고, 어린애가 그렇지 뭐.


처음에는 으스대는 아빠의 모습이 꼴불견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아빠는 퇴근하고 피곤한 몸으로 항상 나랑 게임을 같이 해주시고 계시더라.


씻지도 않고 엄마가 저녁 먹자고 말할 때까지 아들을 상대하는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잔병치레 하나 없던 분이  자동차 사고로 어이없게.  


하지만 그렇게 슬퍼하기엔 철이 덜 들었던걸까. 아니면 스스로 괜찮다고 허세를 떨면서 강한 척을 했던걸까. 그다지 슬퍼했던 기억은 안나더라.


다만 집에 오고 엄마가 저녁을 차려주시기 전까지 시간이 너무 길어졌어. 하필 아빠는 자동차 사고를 당했으니 레이싱 게임인 그 게임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고, 다른 게임도 있었지만 별로 즐겁지가 않았던거 같아. 


그렇게 시간이 흘렀을까.


방정리를 하다가 게임기하고 게임팩을 찾았어. 몇년동안 작동하지 않아서 먼지가 많이 끼어 있었던걸 닦고 켜보니까 잘되길래 간만에 그 게임팩을 꽂아봤지.


시작화면 배경음악 무엇 하나 변한게 없었는데 그게 뭐랄까. 그렇게 많이 했던 게임인데 정말 낮설게 느껴졌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대충 몇판하고 끌려고 했는데. 그게 있더라고.


타임어택 모드에서 기록을 세우면 그 기록을 세우는 캐릭터가 고스트 캐릭터로 남아서 타임어택 모드를 할때마다 같이 달리는 건 알지?


아빠는 언제 이런걸 남겨 놓으셨던거지?


오랜만이라 머뭇거리는 내 캐릭터를 제치고 독주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거들먹거리는 아빠의 모습이 절로 떠올랐어. 


아들을 그렇게 놀리고 싶었던걸까. 황당한 아빠야.


그리고 매일 같이 이 게임을 켜면서 타임어택을 하는게 일과가 되었지. 처음에는 어린시절만큼도 안되더라고. 한바퀴 차이를 넘어서 다시 제치고선 골인하며 웃고있는 고스트 캐릭터. 망연자실하게 속도가 떨어지다가 멈춰서 그 뒷모습을 보고 있는 내 캐릭터.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인데?


그렇게 한참을 연습했어. 


어느샌가 코너를 부드럽게 드리프트 할수있게 되었고, 모인 부스터를 언제 써야 하는지 타이밍을 알게 되었어. 


점점 아빠와의 격차는 줄어 들어갔고 처음에 한 바퀴 이상 차이나던게 반 바퀴 그리고 코스 몇개, 아빠의 등 뒤까지 보였다?


이 게임광인 아빠를 잡는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라.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아빠와 차이는 거의 없이 두 사람이 엎치락 뒷치락 하면서 레이스를 이어나가고 있었고, 마지막 직선코스에서 부스터를 쓰면 내가 이기는 상황이었어.


근데, 근데 말이지.


도저히 할 수가 없더라.


그대로 추월해 버리면 아빠는 사라지는거잖아. 


나는 아빠의 등을 보는게 그저 분하기만 했던걸까...


아빠... 


손을 놓은 내 옆으로 아빠는 무심하게 휑 지나가버렸고 여느 때와 같이 밉살스러운 제스쳐로 웃고계셔. 


혼자 남은 아들이 외로워 하는걸 아셨던 건지도 몰라. 그래서 이런걸 남겨 놓았는지도 몰라.


그럼 언제까지고 아빠를 보내드릴 수는 없는 일이잖아.


아버지...



그리고 실력이 늘어가. 아빠를 따라잡고 추월하고 격차가 점점 더 벌어져.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아버지 등을 놓아드릴 수가 없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