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섬광이 번쩍인다.


강렬한 빛에 전령들과 대행자들은 흰 망토로 눈을 

가린다.


“이 강렬한 빛은 대체 뭐냐??”

어둠으로 가득 찬 뒷골목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자 대행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손으로 눈을 가린다.


강렬한 섬광은 어느새 힘을 잃고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섬광이 옅어지며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검은 정장, 검은 가면

세간에 알려진 특색 해결사 검은 침묵


검은 침묵이 한명이 아니었단 말인가??

남성 대행자는 대검을 꺼내며 전투 태세를 갖춘다.


“모든 것은 지령의 뜻대로” 

여성 대행자가 검은 사슬과 은색 검을 꺼내 들어

검은 침묵을 향해 겨눈다.


검지에 있어서 지령은 생명과 마찬가지.

그녀에게 사과를 표한 전령들도 하나둘 무기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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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나에게 절망이 찾아오는구나”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는 것조차 안되는가


절망은 사슬이 되어 마음을 옥죄이며

심장을 찌르는듯한 슬픔은 차가운 냉기로 변해

심장과 마음을 차가운 얼음 속에 가둔다.


나에게 남은 것은 차갑고 어두운 검은 눈물뿐

차가운 절망을 머금고 그이에게 위해를 가한 존재들을

없애버리자.


일이 끝나면 사랑하는 이를 만나러 가리라

전하지 못한 선물을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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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령이 검은 침묵을 향해 칼날 달린 사슬을 날린다.


카라랑!!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며 검은 침묵의 다리에 꽂힌다.


잡았다. 

걸려들었다는 듯 씩 웃은 뒤 있는 힘껏 잡아당긴다.


그 순간. 

공중에서 푸른 검이 형성되더니 전령의 목을 관통한다.


“끄으윽”

목을 관통당한 전령은 심히 고통스러워하다

숨을 거둔다.


검은 침묵은 천천히 걸어가며 말한다.

어떠한 수를 쓰는 것은 금기지. 하지만 자비 또한 없기를


말이 끝나자마자 푸른 검기와 사슬들이 

검은 침묵을 향해 날아간다.


날아오는 수많은 참격과 사슬들


안젤리카는 쏟아지는 공격을 쳐다본 후 손을 움켜쥔다.


퍼어엉!!


폭음과 함께 쏟아지던 사슬과 참격들이 소멸한다.


말도 안 돼.. 그 많은 공격을 한순간에 소멸시켰다고??

전령 중 하나가 경악한다.


안젤리카는 눈물로 빚은 검을 잡고

공포에 몸이 굳은 증오스러운 존재들을 향해

겨누며 주문을 읆는다.


고고한 냉기여 겨울의 혹독함이여

시린 겨울의 숲에 들어오라

칼바람!!!


겨울이 찾아온 것처럼 주변의 온도가 떨어지며

차가운 냉기를 머금은 눈보라가 일어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눈보라는 접촉한 모든 것을 얼려가며

전령들과 대행자를 덮친다.


“으악!!”  “내 몸이!!”


고고한 냉기는 대행자와 전령들을 하반신부터

상반신을 타고 오르며 움직임을 봉했고


혹독한 겨울은 자비 없이 몰아치며 살아 숨 쉬는 존재를

얼어붙게 만든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맹렬하게 몰아치던

눈보라는 힘을 잃고 서서히 소멸하며 뒷골목의 모습이

드러난다.


회색빛만 존재하는 길거리엔 하얀색으로 물들여졌다.

전령들과 대행자들은 얼음 속에 가둬진 채 모습을 드러낸다.


검은 가면이 부서지고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며

그녀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달을 바라본다.


어째서일까... 슬픔과 절망은 사슬처럼 여인의 마음을

봉해 놓아주지 않는다.


여인의 눈에서 푸른 눈물이 흘러내며 감정이 요동친다.


남편의 원수를 갚았지만 나를 감싸는 절망과 슬픔은 

오히려 더욱 깊숙이 파고들어 삶의 의지도 하염없이 사라져 간다.


파고드는 절망과 슬픔에 진지하게 고민한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삶을 살 것인가. 편안한 죽음을 맞이 할 것인가.

일반인 이라면 후자를 택할 것이다. 


하지만 해결사는 다르다.

해결사는 타인의 죽음과 제 죽음에 덤덤히 받아들여야 한다.

설령 그것이 가족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약한 정신으론 미처 돌아가는 도시에서 해결사가 될 수 없다.

친구, 친척, 가족이 의뢰나 임무에서 살해당해도 마음에 묻어야 한다.

그것이 해결사가 되기 위한 충분조건이다.


그러나 그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서 해결사들은 자신만의 논리나 신념을 세워 자기합리화를 한다.


수많은 자기합리화 가운데 내가 택한 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란 논리였다.

뭐가 어찌 되었든 간에 남의 사정에 신경 쓰지 않는 것.


임무를 수행하며 내가 하는 일에 의문을 품거나 죄책감이 올라올 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란 논리로 죄책감을 털어냈다.

따라서 남편의 죽음을 태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


하지만


푸른 눈물이 안젤리카의 얼굴을 적시며 쌓인 눈을 파랗게 물들인다. 


나는 그럴 수 없다.


파아앗!!

안젤리카의 감정에 공명하듯이 푸른색의 레이 피어가 형성된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절망과 슬픔은 도저히 견딜 수 없으니까!!!”


레이 피어가 격렬하게 떨리며 한 바퀴 회전한 후 안젤리카를 가리키더니 빠른 속도로 안젤리카를 향해 날아간다,


날아오는 레이 피어를 보며 슬픈 미소를 짓는다.

“조금만 기다려 롤랑 금방 따라갈게”


푸슉!!


레이 피어가 안젤리카의 심장을 관통했다.

선혈의 핏방울이 가슴에서 흘러나와 바닥을 적신다.


“커억” 

순간적으로 찾아온 강렬한 고통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는다.

동시에 비릿한 맛이 느껴지며 피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온다.


하지만 차갑게 굳은 슬픔의 한기와 얼어붙은 절망의 사슬로 매여진 마음이 풀려나

왠지 모를 해방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여인은 은은하게 빛나는 달을 바라보며 의식이 흐려진다.


째깍!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소리가 나며 남편과 함께했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네게는 롤랑밖에 없습니다.” “와 또라이신가요??”

“빡!!!” “끄아악!!! 아파!!!”

프란시스의 시 고통을 사랑하기 위한 기도를 인용한 말을

건네자 또라이 취급받아 꿀밤을 때려준 일


“왜 당신이 도시의 일을 다 떠안으려는지 모르겠어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잖아요”

도시의 별로 등극한 핓빚 밤 엘레나를 토벌하러

갈 때 롤랑 대신 흡혈 당하고 쓰러진 일


“안젤리카 미안해”

빌어먹을 피아니스트가 사랑하는 남편을 살해한 일


눈앞에 아른거리는 과거의 모습들과 순간들을 마주한다.

다른 기억들과 순간들은 쓰라리지만 버틸만하거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달콤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기억만큼은 칼에 찔린 듯이 아팠다.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선명하게 뚜렷하게 나타났다.

너무나도 아프다. 너무나도.. 


의식이 완전히 끊기기 전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소원한다.

“단 한 번만.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시간이 되돌아갔으면

안젤리카는 간절한 애정과 슬픔이 담긴 소원을 빌고

의식이 완전히 끊어졌다.


따르릉!!!

시끄러운 알람 소리.. 하아.. 계슴츠례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흐아암 잘 잤다... 잠깐만... 나는 죽었을 텐데..”

불현듯 기억이 떠올랐다.


피아니스트가 남편을 살해하여 죽음으로 대가를 치렀고

그 슬픔으로 인해 푸른 기사의 모습으로 뒤틀렸다.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사체를 들고 9구로

가던 중 전령과 대행자 습격을 받아 남편의 사체가 훼손되었고 한 번 더 뒤틀려 전령과 대행자들을 모두 죽이고

심장에 칼을 찔러넣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렇다면 오늘이..

 신속하게 움직여 달력을 확인한다.

“오늘은 피아니스트 사건이 일어나기 하루 전”

“그렇다면..”


“안젤리카~~”

현관문을 열고 롤랑이 들어온다.


그 모습에 안젤리카의 얼굴이 밝아지며

롤랑에게 다가간다.


“롤랑!!!”

보고 싶었던 그이가 나타난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랑하는 그이를 영영 잃는 줄 알았는데.

어린아이처럼 쪼르르 달려가 남편을 꼭 껴안는다.


매우 행복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그이의 따뜻한 온기와 부드러운 말을 좀 더 느끼고 싶다. 


“거참 안젤리카~~ 무슨 악몽이라도 꿨어??”

푸근한 말을 건네며 롤랑은 안젤리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죽기 직전 빌은 소원이 이루어진 것일까??

안젤리카는 시간이 되돌아간 것을 해결사의 직감으로 눈치챘다.


“음~~저기 안젤리카~~ 내가 일이 있어서 그런데 이제 놓아줄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남편은 웃고 있지만 어딘가 불안한 기색을 하고 있다.


“롤랑~~ 무슨 일 때문에 그래? 

“아 별일 아니야. 단지 일이 있어서 그래~”


안돼..

남편의 말에 두려움이 몸을 타고 올라온다. 시간이 되돌아갔다면 무조건 막아야 한다.


“당신...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될까??

남편의 절친에겐 미안하지만 소중한 그이를 또다시 잃어버릴 순 없다.


“흐으음...”

안젤리카의 말에 롤랑은 잠시 고민한다.

강인하기만 한 줄 안 안젤리카의 여린 면에 마음이 약해진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


“미안해 안젤리카. 하나 협회에서 명령이 내려왔어.

“25구에 위치한 피아니스트를 토벌하라”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안젤리카??”


어째서?? 피아니스트가 지금 나타난 거지?? 분명 시간상 피아니스트는 내일인데!!

아... 저만 회귀한 게 아니군요.. 빌어먹을 피아니스트.. 

사랑하는 그이를 또다시 지켜내지 못하는 건가요??


지키겠다 맹세했는데 또 이렇게 잃어버리다니...

하하하... 귓가에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리네요. 또다시 지켜내지 못하는 건가요??


“안젤리카?? 괜찮아??”


해결사의 직책을 가진 한 하나 협회의 명령은 절대적입니다.

모든 협회 중 가장 강한 권한을 지니고 있기에 명령을 거부할 시 극심한 손해를 입습니다.

이렇게 남편을 허무히 보내고 나면 저에게 남는 것은 푸른 눈물 뿐이겠죠.


하지만 정당한 사유로 인한 명령 거부는 정상참작 됩니다.

심각한 신체 손상, 해결사 은퇴, 임신 및 출산 등이 대표적인 방법이죠.


다행히도 여성인 저에게 있어서 가장 최적의 사유가 있네요.


안젤리카!! 그만둬!!!!!!


차가운 절망과 슬픔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습니다.  롤랑을 지켜낼 수만 있다면…

약간 뒤틀린 방법이라도 괜찮지 않을까요??


퍽!!


나는 기절한 롤랑을 가슴팍에 앉았습니다. 안방으로 천천히 걸어가 침대에 롤랑을 내려놓았습니다.

휴~~ 무겁네요. 


걱정말아.  이번에는 무사히 보호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