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떤 고민입니까?"



제 재촉에 그녀가 망설이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습니다.



"얼마 전에... 친구들이 파티가 해체됐다고 하더라고요."


"저런. 친구분들은 모험가신 모양이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마침 해체된 때가 다들 비슷비슷하여 오랜만에 한번 만나기로 했어요. 동창회 비슷한 거에요."


"나갔셨어요? 모임을?"


"네."


"으으음...."



얼추 예상이 갔습니다.


그래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단지 마탑의 고시생에게 동창회란 쉬이 추천하기 어려운 것일 뿐입니다.



"친구 중에 엠마란 아이가 있는데."



무서울 정도로 빠른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되어버리니까.


나만 홀로 버려두고 저 멀리 떠나가는 시간을 느끼게 되어버리니까.



"결혼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모험가는요?"


"은퇴하겠죠. 아님 남편도 모험가랬으니 이어나갈 수도 있고."



저 또한 어찌 해줄 수 없는 고민이었습니다.


저 또한 어찌하고 싶은 고민이었습니다.


저도 완전히 동일한 부류의 속앓이를 했으니까요.


동창회에는 나가지 않았지만요. 물론.



"심란하겠군요."


"친구 중에선 이미 자력으로 플래티넘급 모험가가 된 애들도 있어요.

한명은 길드 마스터가 되었다는 애도 있고."


"방금 말했던 분처럼 결혼한 분들도 계실 테고요."


"물론 저도 붙기만 한다면 대마법사에요.

비교해도 그다지 꿀릴 것 없죠. 한데...."



그녀가 말을 멈추었습니다.


저는 그 다음에 어떤 말이 올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그러했으니까.



"오빠, 제가..."


"될 겁니다."



그래서 말을 끊었습니다.


말은 뱉으면 현실이 된다고 했습니다.


싸구려 미신은 믿지 않는 주의였지만 신중을 기하고 싶었습니다.



"될 거에요. 분명히 붙을 거라고요."


"그렇, 겠죠 오빠?"



그녀의 얼굴에 진 그늘은 가실 줄을 몰랐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오빠, 저요... 자랑은 아니지만 고향에선 영재 소리 듣고 자랐어요."


"저도 그랬습니다. 돌이켜보면."


"얘는 커서 용사파티 아니면 마왕군 사천왕이 될 아이다.

촌장님께선 으레 그러셨어요."



그녀의 축 처진 트윈테일이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심정이 그러하듯.



"한데 지금은 이렇게 시간만 썩히고 있네요. 헤헤...."



제 정곡에 다가오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늘 저 자신을 정의하던 문장이었습니다.


저는 겉으로라도 부정했습니다.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시험이요? 해마다 어쨌든 몇명은 붙지 않습니까."


"그래도 꼭 붙는 사람만 붙더라고요."



장담할 수 없는 장담을 선언했습니다.



"저희가 안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거짓임을 알지만 붙으리라 격려하고 싶었습니다.



"단 두명 들어갈 자리는 있겠죠!"



그녀도, 저도.



"저희 열심히 했잖아요."


"하지만 저저번달, 저번달에도 모의고사 결과는 잔인하던걸요."


"대기만성이라잖습니까! 시험 본방에 가서 고득점을 할 수도 있죠!"



누구의 말이 옳을진 빤히 보였지만 그녀는 굳이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쓰게 웃으며 그날의 상담은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그렇죠? 오빠 말 믿을래요. 역시."



거짓을 연이어 장담함이 양심에 찔렸음에도 저는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책임 없는 말이 되어버리는 것보다 두려운 것이 달리 있었습니다.


저는 옆방, 405호처럼 되는 것이 너무나 공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리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와 그녀의 나날에 쓰고 아린 잡담만이 머리를 드밀진 않았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이 점은 그녀도 동의하리라 믿습니다.



"바꾸셨군요."


"네?"



그녀의 머리를 가리키며 제가 말했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상큼한 트윈 테일을 가리키며.



"머리끈 말입니다. 못 보던 것인데요."



그녀의 머리끈은 한쪽은 하얀색, 다른 한쪽은 붉은색으로 변해있었습니다.


기존의 거무튀튀하던 암울한 컬러링은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그녀는 알아주어 기쁘다는 듯 화답했습니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오빠?"


"이정도야 알아채죠. 예쁘네요. 잘 어울리기도 하고."



대뜸, 그녀의 얼굴이 붉은 머리끈처럼 새빨갛게 익었습니다.


저는 장난끼를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머리끈 말입니다. 머리끈."


"아, 아, 알아요! 누가 뭐래요!"



그녀가 제게 성을 내었습니다.



"그래서, 그 머리끈의 의미는 뭡니까? 심기일전?"


"기분전환의 의미도 있고요."



그녀가 품에서 비단끈을 두 조각 꺼냈습니다.


그녀의 새로운 머리끈처럼 붉은색과 하얀색의 한쌍이었습니다.



"자요. 오빠 거에요. 제 머리끈이랑 세트고요."


"머리끈 쓰는 남자는 좀-."


"팔에 묶어서 쓰시라고요."


"무슨 효과라도 있는 겁니까?"


"우리 상징이에요.

오빤 화염 직렬이라고 하셨으니까 붉은 색.

전 회복이니까 흰색."


"그거 꼭...."



커플링.


링은 아니니 커플 '링' 은 아닐지 모르지만.


꼭 커플-뭐시기 같다.


머릿 속을 스쳐지나간 문장.


애써 저는 그 문장을 무시했습니다.



"꼭... 부적 같군요."


"오빠랑 제 부적으로 삼자고요. 행운 효과 올리는 버프도 걸어놨으니."


"몇 프로입니까?"


"0.0001%요."


"그 정도면 의미 없는 숫자 같은데요."


"아이 참! 이렇게 낮추지 않으면 시험엔 못 들고 가잖아요!"



암암리에 우리는 서로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녀를 생각하는 마음도, 그녀가 저를 생각하는 마음도.


생각에 확신을 준 것은 하반기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콜록!"



방에서 혼자 연구를 하던 중에 기침 소리가 들렸습니다.


기침의 주인은 곧이어 "합!" 하며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기침 소리를 들키고 싫었던 것이겠죠.


틀림 없이 옆방에서 난 소리였기에 저는 403호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있습니까?"



노크 한번으로 다 죽어가는 그녀가 나왔습니다.


병색이 만연함에도 그녀는 아름다웠습니다.



"많이 안 좋아보이시네요."


"뭐가요?"


"감기 걸리신 거 아니에요?"


"아닌데요."


"시치미는."



괜히 손 벌리기 싫다며 그녀는 괜찮은 척 하였습니다.


제 눈은 속일 수 없었지만.



"그냥 누워계세요."


"오빠, 저 진짜 괜찮다니까요. 누워서 자면 나아요."


"밥은 먹었습니까?"


"먹, 먹었어요."


"뭐로 먹었습니까."


"식당에서... 제육이랑 김치랑 해서 먹었어요."



명백한 거짓말이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변명을 추궁했습니다.



"저희 탑이랑 제휴한 그 식당 말이죠?"


"네."


"오늘 식당 휴업했는데."


"...."



어째 거짓말을 하였는지 물으니

괜히 남 공부하는 시간 뺏으면 미안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군소리 말고 누워요. 저는 죽이라도 사올 테니."


"진짜 괜찮은데."



한사코 제 손은 벌리려 들지 않는 그녀에게 일갈했습니다.



"이리 끙끙거리는 걸 봤는데 제가 어떻게 공부를 하겠습니까."


"...."


"전복죽 좋아해요?"


"오빠, 저 전복은 잘 못 먹어요."


"알레르기 같은 겁니까?"


"그건 아니고 단순히 향이...."


"그럼 이제부터 고치세요."


"네?"


"벌입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셔야죠.

그래야 뭐라도 도와주든 사오든 할 수 있는데."



답답해서, 서운해서 한아름 전복죽을 사들고 왔습니다.



"아 해봐요."


"제가 알아서 먹을게요 오빠."


"솔직하게 말 안 했던 벌입니다. 아 해요. 빨리."



그녀가 두 볼을 붉게 물들이고 받아먹었습니다.


저는 투덜거리기에만 바빴습니다.



"기껏 옆방인데. 병치레를 하고 있으면 부르란 말입니다."



그녀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오빠 공부하고 있었으면 미안하잖아요."


"뭐 한달에 대여섯번씩 아픈 병약체질입니까?

꼴랑 년에 몇번 아프고 말 일인데, 그 정도 시간도 없겠습니까?"


"감기는 잘 먹고 자면 나아요."


"'잘 먹고' 가 조건이잖습니까. 하루 종일 굶어놓고서 무슨 '잘 먹고' !"


"그래도...."


"그래도는 죽그릇이나 다 비우고 말하세요."



속에서 천불이 이는 것 같았습니다.



"대체 얼마나 못 미더워 하길래-."



한껏 잔소리를 퍼부었습니다.


간병을 하며 느껴지는 두근거림 따윈 뒷전이었습니다.



"고마워요. 오빠."



그녀가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못 들었어요. 뭐라고요?"


"고마워요."


"잘 안 들리는데요."


"고마워요."


"더 크게~!"


"... 오빠 지금 저 놀리는 거죠?"


"그걸 이제야 알았습니까?"



그녀가 저를 흘겨보았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제 할 말을 했습니다.



"아플 때가 제일 외롭잖아요."


"네?"


"아프고 힘들고. 그런 때가 제일 외롭잖아요."



제작년의 좁고 불쾌하던 병치레가 떠올랐습니다.


그와 대비되던, 작년의 좁지만 편안하던 병치레도 떠올랐습니다.


405호의 도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 하나라도 곁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보이는 건 단칸방과 더러운 화장실 밖에 없고."



작년의 기댈 이 하나 없던 쓸쓸하던 병치레였습니다.



"힘들잖아요. 몸이나 마음이나."


"... 오빠 경험담이에요?"


"...."



그녀가 조심조심 물었습니다.


저는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려다 말았습니다.


개인사를 물으면 침묵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습니다.



"그렇죠. 뭐."



잠시 정적이 지나갔습니다.


무거운 공기가 싫어서, 저는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아플 때도 와서 병간호 해달란 거죠."


"그야 당연히-."


"왕창 부려먹을 겁니다.

그러려면 저도 왕창 부려먹혀야 할 것 같아서 오늘 온 거고요."



왔다고 해봤자 꼴랑 벽 하나 넘어온 건데 그리 말해도 될런지 싶었습니다.


그녀가 심사숙고 끝에 요청했습니다.



"그럼 오빠 손 좀 빌려주세요."


"제 손은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을 텐데요."



그녀가 제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방황하던 손이 그녀의 뺨 위에 살포시 안착했습니다.



"이렇게 있다가 열 식은 거 같으면 말해주세요."


"예?"


"전 졸려워서 잘 생각이니까. 이대로 어디 가면 안 돼요."



얼씨구. 감기란 게 대단하긴 했습니다.


사람 하나를 그리 후안무치로 만드니 대단은 하죠.


더욱 붉어진 그녀의 귀를 보며 저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날은 한참을 그리 있었습니다.






저희 사이의 감정은 확실했음에도 연인까진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녀도 불안정한 발판에 서있는 몸이었습니다.


연애를 한다는 행위는 그 아슬히 출렁거리는 발판을 힘주어 밟는 행위입니다.


발판을 부술 지도 모르는 만용입니다.


저희 둘은 잘 알고 있었기에 구태여 연애를 꺼려했습니다.



"어때요 오빠. 제가 말한 그대로 아니에요?"


"정말 우리 식당보다 낫군요. 가격은 비슷하면서 훨씬 맛이 좋으니."


"후후, 전부 제 공로라고요. 뭔가 저한테 할 말 없으세요?"



그녀가 우쭐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써먹을게요."


"오빠, 식권 이번달로 끝나죠?

다음달부터 여기로 오세요. 저도 여기로 옮길 테니."


"먼저 발견해놓고, 입때껏 안 옮겼어요?"


"혼자서 밥 먹으면 별로에요. 입맛도 떨어지고."


"다른 여자분들이랑 함께 드시지."


"그래도 오빠랑 먹는 게 제일 좋죠."



스프를 뜨며 그녀가 말했습니다.


한 술, 스프를 목 너머로 삼킨 후에야 그녀가 얼굴을 붉혔습니다.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그제서야 깨달은 모양이었습니다.


그녀가 황급히 말을 보탰습니다.



"왜, 왜냐하면 오빠랑이면 그... 밥을 먹는 도중에도 마법식의 공부나, 의견을 나눌 수 있으니까요!"



'식사 도중에 나눈 대화에서 마법식 얘기가 나온 적은 없었습니다만... 여지껏.'


기어이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뱉진 않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뱉었던 것도 같습니다.


그녀가 그 다음에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으니.


저는 그녀의 생각에 종종 밤을 설치곤 했습니다.


그녀도 필시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 저희 관계에 종말이 나앉은 것은 의외의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마법식 준비는 대충 이 정도면 될 듯 싶은데, 이상하다 싶었던 점은 없어요?"


"그건 없고... 오빠, 사랑 고민도 들어줘요?"



그녀가 수줍게 말했습니다.



"요즘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애인입니까?"


"아직 정식으로 사귀는 건 아니지만요."



그녀가 제 눈을 깊게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저를 암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의 종말은 연분홍빛의 벚꽃색은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