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갑작스러운 깨달음이었습니다. 5시간 전에 세탁이 끝났음에도 아직까지 빨래를 꺼내지 않은 것을 새삼 깨달았을 때와 같이, 무척이나 뜬금없이 든 깨달음이었지요.


저를 이끈 깨달음은 공허였습니다.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 만큼 아름답지 않고, 미래는 불확실하며, 제가 지금 당장 죽지 않아야 할 이유는 지금 당장 죽으면 맞이하지 않아도 될 수 많은 불행의 총량보다 적었지요. 정확히 셈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확신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시련이었습니다. 통과하지 못하면 필연적이고 도피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무척이나 강압적인 폭력이었습니다.


저는 고뇌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지금껏 이정표 삼아오던 무언가가 있었는데, 그 무언가는 깨달음의 순간에 이미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이정표가 사라진 지금, 저는 무너져가는 길 위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뛰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정말 무엇이든 붙잡아야 했습니다. 제가 지금 당장 죽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장 지금 죽지 않으면 맞이할 미래의 수많은 불확실한 폭력으로부터 살아남을 동기가 될 만한 그 무언가는 무엇일까요.


부모님의 사랑. 그렇습니다. 저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 제가 죽으면 분명 부모님은 슬퍼하고 괴로워 하시겠지요.


살아야 할 이유를 한 가지 찾았습니다. 동시에, 죽어야 할 이유를 몇 가지 찾아내었습니다.


부모님을 위해 죽지 않은 채 버티면, 저는 언젠가 슬퍼할 것입니다. 저보다 먼저 떠날 확률이 월등히 높은 부모님의 곁에 머물며, 그들의 사랑을 받고, 그들의 사랑에 보답하고, 그들의 임종을 지켜볼 것입니다.


죽지 않고 살아있으면 괴로운 것은 부모님이 아니라 저였습니다. 그저 죽어야 할 대상이 저에서 부모님에게로, 그 무엇도 해결되지 않은 채 그 시기와 대상을 바꾸어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죽지 않으면, 저는 부모님과 수 많은 불화를 양산해 낼 것입니다. 수 많은 행복 또한 만들어 낼 수 있겠지만, 결국 엎치락 뒤치락 하며 찾아오는 행복과 불행 중 종국에 이기고 홀로 서는 것은 죽음이라는 불행입니다.


지금 당장 죽지 않으면, 언젠가 노쇠해질 부모님을 부양해야 합니다. 아무리 효(孝)로 그것을 포장한들, 그것의 핵심은 결국 희생과 헌신입니다. 부모님이 제게 쏟아부은 그 모든 노력과 희생의 보답입니다. 부모님은 마땅히 그것을 고대하며 늙어갈 자격이 있지만, 제게 강요되는 그것은 분명 언젠가 부담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 모든 부담을 짊어지고 저 또한 저의 부모님처럼 희생과 헌신을 자처하면, 그 끝은 결국 죽음이었습니다. 언젠가 스러져 사라질 것들을 위해, 저는 그 모든 자원들을 쏟아붓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은 무척이나 불합리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든, 그 끝은 죽음이라는 결과만이 남는 것이었습니다.


무척이나 허무했습니다. 저의 이 모든 사고의 흐름이 비약적이고 극적이라는 것은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그 사고의 흐름에 편승하지 아니할 수 없음은, 그저 그것이 그렇게 흘러갔기 때문입니다.


끊어내려 해도 끊어내어지지 않는, 일방적이고 강렬한 물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흐름에서 빠져나오고자 몸을 비틀어도, 종내엔 다시금 그 흐름에 휩쓸려 물속 깊숙히 쳐박히고 마는 탓이었습니다.


죽음은 무척이나 장엄했습니다. 그 거대한 개념이 저를 언젠가는 죽여버리고 말 것이라는 그 사실이 더 없이 버거웠습니다. 그것 또한 흐름이었습니다. 


다른 이유를 찾아야 했습니다. 물살이 저를 이끄는 것이 느껴집니다. 비약적이고 극적인,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사고의 흐름이 저를 죽음으로 이끄는 것이 느껴집니다.


친구. 게임. 아직 그 끝을 보지 못한 만화와 소설과 영화와 드라마.


15000원의 사소한 채무. 냉동고에 들어있는 고급 아이스크림과, 언젠가의 누군가가 내게 갖다 줄지 모르는 미래의 모든 맛있는 것들.


자위. 섹스. 내게 어떠한 종류의 쾌감을 선사할 페티시적인 무언가.


술. 담배. 카페인. 마약. 나의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려줄 즉각적이고도 확실한 약물들.


음악. 동물. 안락한 의자. 진즉에 프레임이 망가져 이전보다 불편해진 침대.


사소하거나 중대한 수많은 이유들. 계속해서 저를 폭포로 밀어내는 그 급류 속에서 잡아낸, 잠깐의 버팀목이 되어줄 크고 작은 나뭇가지들.


사고의 속도가 가속합니다. 육식 동물 앞에선 초식동물처럼, 최대한의 노력을 담아내지 않으면 머지 않아 결국 작동을 멈추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뇌가, 이제껏 없던 속도로 작동합니다.


계속해서 나뭇가지를 찾습니다. 버팀목이 되어줄 무언가를 찾습니다. 생각을 멈추어선 안됩니다. 이 문제를 결론지어줄 무언가 커다란 이유를 찾을 때까지, 저를 끝없이 죽음으로 몰고가는 이 빌어먹을 충동을 이겨낼 무언가를 찾아내기 전까진 생각을 멈추어선 안됩니다.


그렇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른걸까요. 몸에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집니다. 눈치채지 못한 사이 입고 있던 옷들은 이미 땀에 흥건히 젖어있었습니다. 배에서는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나고, 오랜 시간 짓눌려있던 다리에서부터 시작된 찌르르한 감각이 전신을 타고 오르기 시작합니다.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어떠한 위화감도 없이, 마치 마땅히 그리해야 한다는 듯이 저는 어느 순간에 제 상태를 자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자각은 침잠이었습니다. 침잠은 곧 추락이었고, 추락은 곧 죽음이었습니다.


마구잡이로 손을 뻗어 그러모은 나뭇가지들이 흩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버팀목 삼고 있던 것들이 이전에 잃었던 이정표와 같이 이지러지고, 흐르는 급류가 저를 또다시 물속 깊숙히 끌고 들어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어느 순간엔가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피가 통하지 않은 다리엔 아직도 저릿한 감각이 남아있어 한 번의 발걸음을 내딛는 것 조차도 힘듭니다. 상당한 노력을 쏟아부어 성사시킨 내딛음으로부터는 아니나 다를까 찌르르한 둔통이 전해져 와 전신을 휘감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 순간의 저의 발걸음은 의무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불편하고 힘들지라도, 저는 발걸음을 멈추어선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열댓 걸음을 걷자 서서히 발끝에서부터 전해지는 찌르르함이 옅어집니다. 보다 수월해진 발걸음으로, 이제 머지 않은 부엌을 향해 발걸음을 이어갑니다.


그렇게 부엌에 도착합니다. 부엌에 도착했을 때의 그 느낌은 가히 신성하다고도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것입니다. 부엌에 도착한 저는 원형 경기장의 철문을 막 빠져나온 검투사였고, 셀 수 없이 많은 관객들은 그런 저를 향해 뜨거운 환호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의 선택을 존중하고 환호하며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고양감이 몸 전체를 뒤덮습니다. 마땅히 패배가 예정되어있는 결투였지만, 그것이 전투에 나서는 검투사의 고양감을 꺾지는 못하였습니다.


저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 검을 집습니다. 괜히 큼지막한 검들을 한번씩 뽑아들어 휙휙 휘둘러보지만, 이내 너무 무겁다는 것을 깨닫고 얌전히 자리로 되돌려놓습니다. 제게 걸맞는 무기는 이렇게 큼지막하고 실속없는 것이 아닌, 가볍고 손에 익어 확실히 숨통을 끊을 수 있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너덧 번 정도 찬장을 열었다 닫았다 한 끝에, 마침내 손에 익은 검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촌스러운 색깔의 플라스틱 검집을 벗겨내곤, 한 뼘 정도 되는 칼날을 세상에 드러냅니다. 그 검의 손잡이를 쥐자 마자 저는 전율을 느낍니다. 굳이 이전에 집었던 검들과 같이 휘둘러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제가 찾아 해메던 그 검이었습니다.


작고 보잘것없지만, 그렇기에 제게 꼭 알맞는 검이었습니다. 패배자의 말로는 으레 보잘것없는 법이었으니까요.


이젠 모든 준비가 되었습니다. 제가 빠져나온 철문은 진즉에 닫혀, 제 앞엔 오로지 끝을 향해 나아가는 길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지체하지 않고 칼날을 높이 치켜들고는, 곧바로 내려찍습니다. 칼날이 왼 손목 절반 즈음을 파고들고, 날카로운 격통이 전신을 내달립니다.


지나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칼을 떨구고 맙니다. 분명 찔린 것은 왼쪽일텐데, 찔리지 않은 오른쪽 손목이 부들부들 떨려옵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의무였습니다. 죽음을 이겨내지 못한 저는, 오늘 이곳에서 끝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금 칼을 움켜쥐고, 이번엔 손목에 칼날을 올려놓고 지긋이 내리긋습니다. 양 팔이 계속해서 떨려오지만, 뜨겁고 차갑고 날카로운 고통과 생존 본능이 저를 죽음으로부터 구해내겠다고 발버둥치지만, 그럼에도 저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패배를 맞이한 검투사는, 숭고히 죽음을 맞이할 줄 아는 법이었으니까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단숨에 오른팔을 당겨 왼 손목을 그어내립니다. 날카로운 격통이 다시한 번 왼 팔을 타고 올라오지만, 저는 오히려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본능적으로 생각했던 것 보다는 칼이 얕게 베어들어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전보다 떨림이 심해진 왼팔을 뒤집어 책상 위에 올려두고, 상처자국에 조심스럽게 칼날을 올립니다. 칼날이 상처에 맞아 들어갈수록 따끔함이 심해지지만, 그것은 오히려 제가 칼을 올려놓아야 할 곳을 알려주는 또 다른 지표가 되어줄 뿐이었습니다.


다시금 크게 심호흡을 한 뒤에, 이번엔 실수하지 않기 위해 천천히, 그렇지만 강하게 칼을 당겨옵니다. 팔이 당장이라도 통제를 벗어날 것 처럼 떨려오지만, 오른팔을 비스듬히 세워 그 힘으로 떨리는 팔을 누르며 칼을 긋습니다. 베인 자국이 한층 지져분해졌지만 괜찮습니다. 원래 발버둥치는 패배자의 말로는 볼품없는 법이었으니까요.


이번 시도는 꽤나 성공적이었습니다. 상처의 끝 부분을 마저 베어내지 못하고 칼을 손에서 놓쳐버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손목의 상처는 충분히 깊었습니다. 이제 제게 남은 것은, 이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


시간이 흐릅니다. 서서히 몸에 힘이 빠져나가고, 통증에 점차 익숙해지기 시작합니다.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는 다리를 굳이 방해하지 않고, 벽에 기대어 미끄러지듯 자리에 앉습니다.


잔잔한 희열과 함께 느껴지는 나른한 고양감이 통증을 대신하고, 점점 흐릿해지는 시야가 저를 미소짓게 만듭니다.


...


아까까지만 해도 머릿속 어딘가에 자리하여 저를 괴롭히던 수 많은 고민과 괴로움을 이젠 떠올릴 수 없습니다. 버팀목 삼기 위해 떠올렸던 적지 않은 수의 살아야 할 이유들은, 이제는 아주 바스라져 저를 더 이상 삶으로 이끌지 못합니다.


...


머리가 멍합니다. 제가 어째서 여기 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는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제가 이렇게 되었는지, 왜 여기서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


다만, 어째선지 속이 후련한 느낌입니다. 무어라 정확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오래전부터 바라왔던 것을 이제서야 이룬 느낌입니다. 


...


저는, 이대로 죽는걸까요.


...


죽는다는 건, 역시 그렇게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