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날 다비드 조세프 블랑이라고 부르지만, 그대는 날 다우드 유수프 알 자자이르라 불러주오. 사람들은 나를 피에 누아르(Pied-Noir)라고 부르지만, 이 더운 곳에 살다 보면 발은 저절로 검게 될 수밖엔 없는 법이다. 터번을 두른 무슬림 동지들부터, 코 큰 프랑스인까지 모두의 발은 까맣다. 이곳 알제는 그런 곳이었다. 프랑스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지만, 이곳은 프랑스가 아니다. 사람들, 특히 아랍인 동지들은 나를 프랑스인이라 부른다. 내 부모가 프랑스인인 탓이다. 내 조부모는 프랑스 리옹에서 왔다고 한다. 하지만 내 정겨운 고향은 알제이다.

이곳에는 많은 사람이 있다. 혈통, 민족, 조국이 그들을 다르게 만들었다. 카페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면 긴 수염에 하얗고 기다란 옷, 까무잡잡한 얼굴과 두 눈을 지닌 사람들과 동시에 검은 정장에 머리에는 중절모를 눌러쓰고, 콧수염을 기른 푸른 눈의 신사가 동시에 지나가는 법이다. 사람들은 피에 누아르와 원주민, 다른 말로 프랑스인과 알제리인을 나누는데, 내가 그 이분법에 들어가야 한다면 나는 후자를 택하겠다. 태어났을 때부터 집에서, 학교에서, 자랑스러운 리옹 출신의 프랑스인이라는 정체성을 교육받았지만 내가 태어난 곳은 알제인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아랍어를 배웠다. 다들 내가 아랍어를 배우는 것을 알았을 때, 나를 매우 이상하게 보았다. 그런 “열등한” 언어는 그들 기준으로 배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내 이름을 “다우드 유수프 알 자자이르”라고 지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그 검은 발과 아랍인의 틀에 갇힌 내 부모도 이를 내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다비드, 넌 프랑스인이야. 아랍인 애들이랑 어울리다 보니 아랍인이라도 된 줄 아니?”

나는 아랍인이 된 것이 아니라 아랍인이다. 아랍인이라는 것은 그렇지 않은가? 저 멀리 수단의 아랍인들은 흑인이다. 그런데도 아랍어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아랍인이지 않은가? 나는 아랍인이다. 사람들은 갈색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내가 당연히 프랑스인이고, 프랑스인이기를 소망하고, 프랑스인이기를 바라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내 혈통이 프랑스인이기 때문이고, 내 조부가 리옹에서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거부한다. 물론, 그것이 내가 프랑스인과 친하게 지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이곳엔 프랑스인들이 살고, 그들은 내 이웃이다. 내가 내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보아라, 내가 이 카페에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내 프랑스인 친구 알베르다. 그는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인물이었고, 무엇보다 글을 잘 썼다. 축구도 잘했다. 알베르와 내가 막역한 사이가 된 것은 리세에서였다. 리세에서 나는 그를 처음 만났고, 그가 하는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이야기에 나는 그와 이야기를 조금씩 나누기 시작했다. 그래서 처음엔 알베르가 그냥 철학을 좋아하고, 글을 좋아하는 범생이라고만 생각했다. 체육 시간에 열심히 축구를 뛰던 그의 모습은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나와 알베르는 같은 알제 대학교에 진학했다. 나는 법학과에, 알베르는 철학과에 진학했다. 사실 법학과에 진학한 것 자체가 그다지 달갑지는 않았다. 나는 예전부터 작가를 꿈꿔왔지, 법관을 꿈꿔왔던 것은 아니다. 물론 나의 부모는 내가 아랍인을 자처하는 “일탈”을 넘어서 작가가 되는 길을 택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할 수는 없었는지, 내가 리세에 들어가자마자 내 진로는 법학과로 확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에 들어간 후 자그마한 반항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듣기보단 나는 글을 쓰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물론 그 글은 아랍어로 쓴 글이었다. 나는 내 언어로 나만의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으므로, 가족과 국가에 의해 강제된 프랑스어보다 더욱더 편하고 가치 있는 언어인 아랍어가 내게는 제격이었다. 물론, 매번 다른 사람에게 비평받기 위해서는 밤을 새워서 퇴고까지 마친 원고를 프랑스어로 번역해 가야만 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알베르와 나는 대학교에서부터 지금까지 작은 문학 동호회를 만들어서 모였다. 비록, 이름도 회장도 없지만 매번 서로가 쓴 원고를 가져와 같이 읽어보고 비평하는 일상을 보내왔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알베르와 내가 만나 서로의 원고를 교환해 보는 날이었다.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있는 동안에, 익숙한 기침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안녕, 다비드.”

”그래, 알베르. 몸은 좀 괜찮고?”

“늘 그렇지. 이 병이 낫는 병인가.”

“몸조심해.”

“자, 여기…”

알베르는 오자마자 원고를 내밀었다. 원고엔 “이방인(L'Étranger)”라는 제목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들어온 첫 문장은 나를 꽤 놀라게 하였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Aujourd'hui, maman est morte. Ou peut-être hier, je ne sais pas.)”

“흥미로운 도입부네. 그리고… 너 “est morte”라고 쓴 거… 그거 의도한 거야?”

알베르는 그저 싱긋하고 웃음 지을 뿐이었다. 확실히 그는 프랑스인인 만큼 프랑스어 문장에만큼은 일가견이 있었다. 나는 가끔 내 프랑스어 문장을 볼 때면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낄 때가 있었다. 아마 내가 원본을 프랑스어로 쓰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내가 프랑스어를 쓰는 게 구미에 맞지 않아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끔은 내가 봐도 잘 보일 정도로 이질감이 들기도 하였다. 반면, 알베르의 문장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항상 깔끔하고 정갈한 프랑스어 문장을 썼으며, 그가 기자로 활동하던 “콩바”를 읽을 때도 그의 기사는 항상 수준급이었다. 나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의 소설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알제에 사는 한 청년인 뫼르소, 그의 감정은 제법 메마른 것처럼 보인다. 그 청년이 “햇빛이 눈 부셔서” 사람을 죽이게 되고 그는 재판장에 넘겨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감정이 메말라 어머니의 죽음에도 슬퍼하지 않았다는 것을 빌미로 잡은 데다, 그의 “햇빛이 눈 부셔서 사람을 죽였다”는 불충분한 자기변호로 인해 결국 뫼르소는 사형을 언도받는다. 사람들은 그에게 참회하기를 요구하지만, 그는 자신의 죽음이야말로 진실된 것이라면서 참회를 거부하며 소설은 끝난다.

알베르는 평소에 자주 부조리에 대해 역설하곤 했다. 이 또한 그것의 일환일까? 뫼르소가 왜 햇빛이 눈 부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였다고 진술했을까? 나는 철학엔 크게 관심이 없었고, 그다지 철학적인 사람이 아니었기에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는 역으로 한 사람에게 주목해보기로 했다. 아무런 감정도 없고 목적의식도 거세된 프랑스 청년이 아닌, 자신의 여동생이 프랑스 남자에게 폭행당한 원한을 가지고 이름 없이 죽어간 한 아랍인 청년, 그의 삶에 주목해 보기로 했다.

알베르의 작품을 다 읽고 그와 평론을 나눈 후, 나는 집에 돌아가 종이를 가져와 타자기에 넣었다. “순교자(الشهيد)”라는 제목을 적은 뒤 첫 문장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오늘, 형이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잘 모르겠다. 방금 경찰로부터 형의 죽음을 통보받았다.(أخي توفي اليوم، أو ربما أمس، لست متأكدًا تمامًا. تلقيت للتو إشعارًا من الشرطة بوفاةه.)”

먼저, 이름 없이 죽어간 한 아랍인 청년에게 유수프라는 이름을,  폭행당한 둘째에겐 미르얌, 고등학교에 다니는 막냇동생에겐 아흐마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가정사를 설계했다. 알제에 살던 지주였던 그들의 조부는 프랑스의 지배 이후 땅을 뺏겨 밀려난다. 그 후 그들은 알제의 빈민촌에서 살기 시작한다. 미르얌과 유수프는 학교에 다니는 동생 아흐마드를 위해 일을 하며 가정을 부양한다.

미르얌은 레이몽이라는 사내와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일을 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그를 만날 정도로 그에게 헌신적이었다. 다만, 가난했던 지라 그는 레이몽에게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고 레이몽은 미르얌이 그에게 돈을 뜯어내기만 한다고 생각해 뫼르소라는 사내를 통해서 마리얌을 꾀어낸 뒤 폭행하고, 유수프는 그런 미르얌의 복수를 하러 갔다가, 그 뫼르소라는 사내에게 단지 햇빛이 눈 부시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한다.

그 후 레이몽에게 따지러 간 미르얌은 더 심한 폭행을 당하지만, 경찰은 아랍인인 미르얌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에 분노한 아흐마드는 달이 뜬 밤 해수욕장을 거닐던 레이몽을 살해한다. 아흐마드는 달빛에 눈이 부셨다. 아흐마드는 어떻게든 항변해 보았지만, 결국 그에게도 사형선고가 내려진다.

“…내가 바라는 마지막 소원은 내가 사형을 당하는 날 보다 많은 구경꾼들이 나를 순교자로서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أمنيتي الأخيرة هي أن يكون هناك مزيد من المشاهدين الذين يحتفون بي كشهيد بشكل أكبر من عدد المشاهدين في يوم إعدامي.)”

소설의 집필을 마쳤다. 시계는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피곤했지만 다른 타자기를 꺼내, 아랍어로 된 소설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번역은 평소와 다르게 매우 오래 걸렸다. 한 글자, 한 글자, 단어 하나하나를 엄선해서 번역했다. 나는 단지 알베르에게 그가 어떤 이야기를 외면하고 있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이름 없이 쓰러진 아랍인에게도 이야기가 있음을, 그가 소설에서 외면하고 있던 우리 알제리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번역하다보니 벌써 4시였다. 잠은 자지 못했을지언정, 속은 후련했다.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번역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나는 순교자(Le martyr)라는 제목이 적힌 원고를 들고 알베르의 집으로 찾아갔다. 노크를 하자, 알베르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다비드, 잘 지냈어?”

”물론. 저번에 네가 쓴 소설을 패러디해서 소설을 하나 써봤는데 말이야.”

“한번 보여줄래?”

“여기.”

알베르는 원고를 받아들더니 소리 내 읽기 시작했다.

“오늘, 형이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잘 모르겠다. 방금 경찰로부터 형의 죽음을 통보받았다(Aujourd'hui, mon frère est mort. Ou peut-être hier, je ne sais pas. Je viens d'être informé de son décès par la police.)”

그리고 알베르는 몇 시간 동안 말없이 원고를 정독했다. 그러면서 그의 표정은 가면 갈수록 오묘해졌다. 과연 자신의 작품을 패러디한 게 저급해 보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새로운 해석에 감탄한 것일까? 자세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가 입을 떼기엔 상당히 입이 무거워 보였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다비드.”

그의 무거운 입술이 드디어 떼어졌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야?”

“네가 보지 못했던 이야기. 이름 없이 죽어간 아랍인, 그리고 이 알제리라는 땅에서 소외되고 있는 원주민들, 그들의 이야기.”

“다비드, 우리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야. 나는 그런 인간의 목적 없는 삶의 모습과 그 속의 부조리를 담고 싶어서 이 소설을 썼어. 너는 그저 복수극을 쓴 게 다가 아니야?”

아무래도, 본인의 철학을 담은 소설의 “다른 해석”이 어떤 철학적 의미를 내포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알베르에게는 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이 소설을 쓴 목적이 명확했다. 이 알제리, 프랑스가 아닌 이곳에서 주인이어야 하고 본토 사람이어야 할 사람이 이방인으로서 소외되고, 이름도 없이 죽어가야 했던 부조리, 그 부조리를 나는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알베르, 철학도 좋아. 그러나, 문학은 약자를 비추고, 부조리에 목소리를 내야 하는 법이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원래 아랍인이 살던 이곳에서 아랍인이 이방인인 것이?”

“다비드, 나도 아랍인이 차별받는 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그러나, 나는 그저 하나 궁금한 것뿐이야. 그 부조리를 다루는 게 단순한 복수극에 주인공을 순교자로 만드는 게 다란 말인가?”

“그는 순교자가 맞으니까. 이 부조리한 환경 속에서 정당방위라 해도 될 상황에서 아랍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었으니까.”

알베르와 나는 그러고는 한참 논쟁을 벌였다가, 결국 헤어졌다. 이 논쟁이 철학적이었다거나 정치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알베르는 그저 자신의 작품이 단순한 복수극이 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나는 이 이야기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닌 숨겨진 이야기이자, 또 다른 부조리의 표시라 주장했다. 하지만, 서로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려 결국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그 대화가 있고 얼마 되지 않아 알베르는 갈리마르에 그의 역작인 “이방인”을 투고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유명 인사가 되었고, 노벨상 수상자로 점쳐지기까지 했다. 나 또한 “순교자”를 한 사우디의 출판사에 투고했다. 알베르가 받은 관심에 비하면 작은 관심이지만, 그래도 나도 관심을 받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점쳐지는 인물의 데뷔작을 그의 친구이자 같은 프랑스 작가가 아랍어로 패러디한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도 관심을 받기엔 충분했다. 하나 아쉬운 점이라 하면 나는 분명히 내 이름을 “다비드 유수프 알 자자이르”로 밝혔지만, 사람들에겐 “다비드 조세프 블랑”으로 알려진 것이다.

그 후로도,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몇 년이 지난 후 우리를 혼란스럽게 했던 전쟁이 끝나자, 나의 고향, 알제리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아랍인들은 참 많았다. 어찌 되었든 프랑스에게는 알제리란 프랑스의 일부였고 우리에겐 프랑스가 “조국”이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역설적으로 우리를 이방인 취급했다. 돌아온 아랍인들은 매일 프랑스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들은 전쟁 중에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당했는지, 그리고 참전용사를 얼마나 찬밥 대우를 하는지 증언했다. 또한, 프랑스는 전쟁이 끝나고 나서 아랍인들을 더 모질게 대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أعتذر! أعتذر)”

우리 집 앞 길거리의 한 아이가 프랑스인에게 맞고 있었고, 그의 아랍인 어머니는 빌고 있었다. 지나가던 순경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그저 지나갈 뿐이었다. 나는 그 광경을 목격하자 참을 수 없어서, 뛰쳐 나가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왜 아이를 이렇게 패는 거요!(Qu'est-ce qui se passe? Pourquoi frappez-vous l'enfant de cette façon!)”

“이 아이가 제 지갑을 훔치려고 했소!(Cet enfant a essayé de voler mon portefeuille!)”

“저는 저 아이의 삼촌입니다. 아마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놀라셨을 테니, 여기 소정의 사례라도 받으시지요.(Je suis l'oncle de cet enfant. Il semble qu'il y ait eu un malentendu. Néanmoins, étant donné que vous avez été surpris, prenez au moins ce petit geste en reconnaissance.)”

그리고는 50 프랑을 그에게 건넸다. 프랑스인은 이번 한 번만 봐준다는 듯이 아이에게 화를 내더니 돌아갔다. 아이의 어머니는 만신창이가 된 아이를 안으며 내게 인사했다.

“감자합니다. 감자합니다.(Merci. Merci.)”

그녀의 r발음은 처참할 정도였다. 아마 프랑스어를 하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아이의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아랍어로 말했다.

“천만에요, 제 이름은 다우드입니다. 다치신 곳은 없나요?(عفوًا، اسمي داود. هل تعرضت لأي إصابات؟)”

아이와 어머니는 내가 아랍어를 하는 것이 놀라웠는지 끄덕였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아이가 뛰어가다 저 프랑스인과 부딪혔어요. 그런데 갑자기 지갑을 훔치려 했다면서 아이를 두들겨 패지 뭐에요!”

“그런 못된 사람이 있죠. 아이가 많이 다쳤을 수도 있으니, 병원에 꼭 데려가 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느꼈다. 만약 나와 같은 “검은 발”인 아이가 부딪혔으면 저 프랑스인은 그렇게 아이를 폭행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저 프랑스인들은 점점 우리 아랍인들을 얕잡아 보는 것이 분명했고, 아랍인들도 그러한 움직임에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어느 날, 내 친구 무싸는 나한테 한 전단지를 건넸다.

“다우드, 이거 봐.”

“뭔데 이게?”

“이번에 알제에서 아랍인들이 다같이 시위를 할 거야.”

“나도 오라고?”

“안 올 거야 그럼?”

무싸는 당연히도 내가 오리라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나로서도 안 갈 이유가 없으나, 하나 우려되는 점은 그들이 나를 받아주냐이다. 나는 다우드 유수프 알 자자이르이지만, 그들에겐 다비드 조세프 블랑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가보기로 했다. 무싸를 따라 아랍인들의 모임으로 가는 길에 사람들은 나를 수상하게, 또는 경계하는 태도로 보는 듯했다. 아랍인들이 주로 사는 구역에 프랑스인이 무슨 일로 왔는지 경계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싸와 함께 지하 으슥한 건물로 들어가자, 흰 터번을 두른 아랍인 원로들부터 젊은 아랍인들까지 모두 모여서 반불 집회 계획을 논의하고 있었다. 무싸는 그중에 한 명에게 다가가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브라힘 어르신.”

“그래, 무싸. 그런데… 저 친구는 누구인가?”

나를 바라보더니만 경계하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다우드 유수프 알 자자이르입니다. 여기 알제에서 태어났고요.”

“그래, 자네는… 알제 출신인가? 가문 말이네.”

“어… 저희 조부모님은 리옹에서 왔습니다.”

“프랑스인인가?”

대답하기가 막막했다. 분명히 나는 저 “검은 발”들 사이에서도 이방인이지만 여기서도 이방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떼어 말했다.

“네, 저희 조부모님은 프랑스인이시지만, 저는 이곳에서 태어났고 어릴 적부터 아랍인 친구들과 어울렸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알제리인, 아랍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싸와 함께 투쟁하러 왔습니다.”

“그래, 그래, 반갑구만…”

“저기 어르신, 저 친구가 생긴 것만 프랑스인이지 완전 알제리 사람입니다. 후무스를 얼마나 잘 먹는데요!”

“그래. 일단 들어오게.”

이곳은 일종의 비밀 결사와 같은 곳이었다. 수많은 아랍인 지식인과 원로들이 모여, 조국의 독립을 위한 투쟁의 방법을 논의하고 있었다. 무싸도 의견을 내는데 열중이었다. 다만, 나는 도무지 대화에 끼어주지가 않아서 조금 서러웠다.

“프랑스 경찰과는 어떻게 대처할 것입니까?”

“아, 그건 제가 경찰서 당국에 집회신고를…”

“프랑스 경찰은 허락하지 않을 거요. 자네는 우리 아랍인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모른단 말인가?”

“그래도, 한 번 시도는…”

“됐네.”

그렇게 열띤 토론이 이어진 결과, 일주일 뒤에 이곳에 모여 알제 시내를 행진하기로 결정되었다. 나와 무싸는 돌아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들이 나를 못 믿는 것 같아.”

“아니야, 너 같은 경우가 워낙 특이해서 그렇지. 그날 다 같이 투쟁하고 나면 믿어줄 거야.”

“그러겠지?”

“그럼.”

일주일이 지난 뒤, 무싸와 나는 아랍어로 “독립 아니면 죽음을!(!الاستقلال أو الموت)”이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접선 장소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다우드, 무싸. 반갑네. 자 행진하도록 하지.”

“독립이 아니면 죽음을!”

구호 아래 단결한 우리들은 피켓을 들고 행진하였다. 우리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고, 어느새 사람들이 점점 모여만 갔다. 프랑스인들은 야유하며 돌을 던지지만, 아랍인들은 점점 더 뭉치기 시작했다. 프랑스 경찰들은 갑작스러운 그들의 기준에서 바라보면 불법인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뭉친 듯했다. 그들은 진압봉과 방패를 찬 채로, 확성기를 들고 소리쳤다.

“당국에 신고되지 않은 불법 집회를 멈추고 해산하라. 해산하지 않으면 강제로 진압하겠다.(Arrêtez immédiatement et dissipez la manifestation illégale non déclarée aux autorités. Si vous ne vous dispersez pas, nous interviendrons par la force.)”

“우리는 물러나지 않는다! 독립 아니면 죽음을!(!لا نتراجع! الاستقلال أو الموت)”

“저 새끼들 뭐라는 거야?(Ces petits cons, qu'est-ce qu'ils disent?)”

나는 “저 새끼들”이라는 말을 듣자, 내 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끓어오르는 마음을 담아 격렬하게 외쳤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는다! 독립 아니면 죽음을 달라! 프랑스 놈들은 알제리에서 꺼져라!(Nous ne reculerons pas! Indépendance ou la mort! Bande de Français, dégagez de l'Algérie!)”

“진압해!(Réprimez!)”

프랑스 경찰들은 곤봉을 들고 우리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독립”이라는 말에 그토록 예민한 것은 그들이 독립을 두려워하고 있고, 또한 그들 자신도 이런 상황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내 부모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다비드, 다른 곳들과 다르게 알제리는 데파르트망(Départements)이야. 프랑스의 일부라고. 우리는 프랑스 사람이고, 여기는 프랑스야.”

그러면, 경찰들이 왜 우리를 두려워하는 것인가? 이곳 알제리가 그렇게도 당연한 프랑스의 땅이라면 왜 많은 동지들이 독립을 부르짖고 있는 것인가? 그들의 모순은 여기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한 편, 프랑스 경찰들은 더욱더 폭력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진압해 갔다. 곤봉을 넘어 물대포, 곧이어서는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최루탄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푸쉬이이이 하는 소리와 함께 뿌옇고 메케한 연기가 피어올라 우리의 코를 덮쳤다.

“독립 아니면… 콜록! 죽음을!”

“다들 도망쳐요! 다우드, 이만하면 됐어. 도망쳐!”

다들 일사불란하게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최루탄의 눈과 코를 따갑게 하는 연기 속에선 프랑스 경찰이 우리를 추격하고 있었고, 몇몇 동지는 붙잡혀 가혹하게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 혼란 속에서 나는 한 골목길로 달리기 시작했고, 한 프랑스 경찰이 나를 뒤따라 뛰어오고 있었다. 나는 순간 멈추어 힘차게 경찰을 걷어찼다. 경찰은 몇 번의 발길질 이후에 나가떨어졌고, 이때를 기회 삼아 나는 앞으로 쭈욱 달렸다. 경찰을 따돌린 후, 나는 우리의 아지트로 돌아가 동지들과 다음 기회를 도모해 볼까 생각하여 아지트를 향해 뛰어갔다.

아지트로 들어가자, 내부는 혼란스러웠고, 시끌시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때, 내 머리를 무언가 단단한 물체가 가격했고, 나는 곧장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러고는 경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잡았다. 이 새끼! 너를 집회 및 시위와 관련된 법 위반으로 긴급체포한다.(Attrapé. Espèce de salopard! Je t'arrête en flagrant délit de violation des lois relatives aux rassemblements et aux manifestations.)”

그리고는 내 손에는 수갑이 채워졌다. 다른 동지들도 마찬가지로 프랑스 경찰들에게 체포되고 있었다. 무싸, 이브라힘 어르신, 그 외의 많은 사람들까지 나보다 더 심한 폭행을 당하며 경찰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분명 그들은 이미 제압된 후일 텐데 경찰은 짓밟고 곤봉으로 패고 있었다. 두들겨 맞는 와중에 무싸가 이렇게 외쳤다.

“다우드!”

“무싸!”

서로의 이름을 간절히 불러봤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두 손이 묶인 나는 별다른 저항을 할 수 없었고, 무싸 또한 경찰의 무력 앞에선 무력했다. 결국 우리들은 모두 경찰차를 타고 알제 경찰서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알제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가 며칠이 지났다. 경찰은 사건 조사를 하기 위해 우리를 심문하는 듯 했다. 여러 동지들이 조사를 받고 난 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54111번, 나와.”

경감으로부터 끌려 나와 심문실로 왔다. 경감은 타자기에 종이를 끼워 넣더니 이름을 물었다.

“이름은?”

“다우드 유수프 알 자자이르.”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던데. 이봐, 자네도 결국 피에 누아르 아닌가? 어쭙잖은 아랍 이름 대지 말고 자네 이름이 뭔지 말하게.”

“다우드 유수프 알 자자이르다.”

다비드 조세프 블랑이라는 프랑스 이름은 대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내가 아랍인임을, 나는 프랑스인이 아님을 밝히고 싶었다. 죽어도 다비드 조세프 블랑이라는 이름을 대서 내가 프랑스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형사는 조사실 밖으로 나가더니 조금 있다가 들어오더니 말했다.

“다비드 조세프 블랑, 네 소지품에서 신분증을 찾았다. 알제 출신 맞지?”

“그렇다.(.نعم)”

“아랍어 쓰지 마, 이 새끼야! 네가 조사를 방해하면 방해할수록 안 좋다는 거 몰라서 그래?”

“무슨 언어를 쓸지는 내 자유다.(.ما اللغة التي سأستخدمها هي حرية شخصية)”

“아오, 참. 모하메드!”

경관은 그러더니 누군가를 불렀다. 경찰 복장을 하였지만 생긴 것은 누가 봐도 아랍인인 한 남자가 들어왔다.

“네가 이 새끼 말 좀 통역 좀 해라.”

“네, 경감님.”

그러고선 본격적인 취조가 시작되었다. 경관은 내게 간단한 신상을 물은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왜 불법시위에 참여했나?”

“내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이다.”

“네 조국? 조국이 어딘데?”

“알제리.”

그러자 경관은 일어나서 내게 뺨을 갈겼다.

“이 조국의 배신자 새끼! 너는 프랑스인이야. 알제리는 프랑스라고! 알제, 오랑, 콩스탕틴, 본! 모두 프랑스의 데파르트망이야.”

“무슨 소리! 애초에 원래부터 아랍인이 살던 땅을 쳐들어온 게 누군데! 이곳은 알 자자이르, 와흐란, 콰산티나, 아나바야!”

그러자 다시 한번 내 뺨을 때린 경관은 내게 신들린 듯이 외쳤다. 알제리는 프랑스의 일부이며 내 조국은 프랑스여야 한다고. 리옹 출신 조부를 둔 피에 누아르가 어째서 조국의 반역자들의 손을 잡고 있냐고 내게 일갈했다. 나는 그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지금 전 세계적으로 피식민 국가들은 독립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 추세다. 그런데도 그들은 구시대적인 제국주의적 사상으로 알제리를 지배하고자 하는 것이란 말인가? 나는 다시 한번 그들에게 소리쳤다.

“틀렸다! 이 제국주의자야! 이곳은 알제리였고, 알제리일 것이고, 알제리여야 한다! 내 조국은 알제리고, 나는 아랍인이다!”

그 이후로도 지루한 조사가 이어졌다. 왜 알제리인으로 스스로를 생각하는가, 알제리 독립엔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는가, 이 불법집회를 직접 기획했는가 등의 질문이 이어졌고 나는 내 신념에 따라 이야기했을 뿐이다. 조사를 마치고 독방으로 돌아와 나는 다시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이데올로기가 저 경관처럼 미친 사람을 만들어 냈는가? 왜 저들이 무엇인데 내가 생각하는 나의 조국을 부정하는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감방에서 그저 바깥만을 바라보고 있던 중 경관이 다시 찾아와서 말했다.

“54111번, 너는 훈방 조치다. 다음에도 이런 짓거리를 하면 반역죄로 잡아 넘길 줄 알아라.”

“퍽이나 고맙수다.”

그는 수갑을 풀고 나를 감방 밖으로 꺼내줬다. 한편 무싸 또한 감방에서 나와 조사실로 끌려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조사를 마친 이브라힘 어르신이 나오고 있었는데, 그의 외양이 만신창이가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잔혹한 고문을 당한 듯했다.

“이브라힘 어르신!”

나는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그는 그저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뿐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경관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씨발,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거야! 왜 사람이 저렇게 만신창이가 되어서 나오냐고!”

“네가 알 바 아니다. 입 닥치고 집으로 돌아가기나 해.”

집으로 돌아가자, 알베르의 편지가 한 통 와있었다. 알베르는 나와 무싸가 며칠간 연락이 되지 않자, 걱정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알베르의 집에 찾아가기로 마음먹고 길을 나섰다. 알제의 한 골목길로 가던 중,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왜 동지를 팔았나?”

“그게 무슨..”

그리고 그는 그대로 칼을 내 등에 찌르고 내 멱살을 잡더니 소리쳤다.

“왜 동지를 팔았냐고!”

“내가… 무슨… 동지를 팔아!”

당시 내가 있던 걸 탐탁지 않게 여겼던 수많은 아랍인 중 한 명이었다.

“우리 아지트, 프랑스 경찰에게 팔아넘길 게 프랑스 새끼인 너밖에 더 있어? 다른 동지들은 잡혀가서 고초를 겪을 때 너만 풀려난 것도 그렇고, 네가 팔아넘긴 게 아니야!”

“헛소리하지 마! 나는 알제리 독립을 위해 같이 투쟁했어. 내가 아닌 다른 놈이 불었겠지. 너는 비겁하게 도망쳐놓고 잡혀가서 조사받은 나를 뭐라 해?”

“개소리하지 말고 죽어!”

한 번 더 내 배에 칼을 찔렀다. 마침, 이 주변을 순찰하던 순경에 의해 내가 발견되자 그는 재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순경은 쓰러진 나를 발견하고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네.. 네…”

“병원으로 모시겠습니다.”

병원으로 실려 가 간단히 치료를 받았다. 병원 전화를 통해 알베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알베르, 나야 다비드.”

“다비드, 그동안 어디 있었어?”

“일이 좀 있었어. 지금 무스타파 파샤 병원인데 와줄 수 있나?”

“무슨 일이야? 다쳤어?”

“일단 와 줘.”

“알았어.”

알베르는 내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달려왔다. 알베르는 칼에 찔린 내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나는 알베르에게 그동안 있었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반불 시위에 참여한 일,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은 일, 배신자로 몰려 칼에 찔린 일을 모두 설명하자 알베르는 내가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내게 말했다. 그리고는 무싸의 안부를 내게 물었다.

“무싸는… 아직 거기서 못 나왔어. 이 개자식들이 나만 프랑스인이라고 풀어준 것 같아.”

“저런, 알제 경찰서에 한번 찾아가보자.”

“그래, 알베르.”

나는 칼에 찔린 몸을 이끌고 알제 경찰서로 향했다. 알제 경찰서의 직원은 그들이 이미 구치소로 이감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구치소로 가서 접견 신청을 했다. 그러나 직원은 안 된다고만 했다.

“접견이 불가능합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요? 형법상 보장된 당연한 권리를 당신네들이 뭔데 막는단 말입니까?”

“접견이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당신들 내가 고소해 버릴 거야!”

“자자, 다비드, 진정하고. 그럼, 편지는 전해줄 수 있습니까.”

“편지는 가능합니다.”

“그럼, 이 편지를 전해주십시오.”

그렇게 우리는 편지만 간신히 전달하고 나왔다. 한 2주쯤 지나자, 무싸의 답신이 왔다. 자신들은 지금 반역죄로 기소를 당한 상태고, 변호사는 그들을 변호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나는 이 현실에 분개해 변호사를 새롭게 소개해주려 했으나, 아무도 무싸와 우리 동지들의 변호를 맡으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와 무싸는 한 두세 번 편지를 주고받았다. 한 달쯤 지나자, 무싸의 편지가 끊겼다. 그리고 또 2주가 지나자, 무싸의 어머니가 내게 찾아왔다.

“다우드, 프랑스어로 편지가 왔는데 해석해 줄 수 있나?”

“네, 어머니.”

편지를 받아 든 나는 통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싸가 감옥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무싸의 어머니께 말했다.

“저, 어머니… 무싸가… 감옥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뭐, 뭐라고…!”

무싸의 어머니는 충격을 받고 거의 쓰러지다시피 했다. 나는 무싸의 어머니를 간신히 진정시키고 무싸의 시신을 인계받으러 알제 구치소에 갔다. 그런데, 그들은 이미 화장을 마친 상태로 무싸의 유골만 전해주었다.

“지금 누구 동의를 받고 화장을 한 겁니까? 부모님 동의도 안 받고 화장을 해요?”

“규정상 어쩔 수 없습니다.”

“부검은 제대로 하든지 해야지 부검도 안 하고 그냥 시신을 화장해요? 이거 고문치사 아닙니까?”

“그런 적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무싸의 사인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무싸를 떠나보내야 했다. 무싸의 장례식 날 알베르는 내게 말했다.

“참으로 안됐어, 다비드.”

안됐다니, 그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그는 매번 부조리를 얘기했지만, 진짜 부조리에 대해선 침묵했다. 뫼르소가 죽인 아랍인은 이름도 없이 사라져갔고, 그는 레지스탕스로는 활동하면서 알제리 독립을 위해 활동하지는 않았다. 나는 순간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을 수 없어 알베르에게 달려들고 멱살을 잡으며 외쳤다.

“네가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 뭐, 던져진 존재로서의 인간? 삶의 부조리? 진짜 부조리는 나는 할아버지가 리옹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풀려나고, 무싸는 구치소에서 죽어야만 하는 이게 부조리야!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주변 사람들은 흥분한 나를 말렸지만, 내 분노는 식지 않았다.

“알베르, 너는 위선자야. 너는 위선자라고! 그 유명한 네 소설에서 아랍인은 이름 하나 나오지 않더라?”

나는 그대로 뒤돌아 집으로 향했다. 무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선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나는 피켓에 “내 친구 무싸를 살려내라!”라는 문구를 쓴 뒤 알제 경찰서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로 하였다. 내가 시위를 하러 나가려 하자, 무싸의 어머니와 친구들이 찾아왔다.

“다우드, 무싸의 죽음을 밝히려 한다며? 우리도 같이 할게.”

“맞아, 무싸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야 해.”

“그래, 좋아요. 같이 가요.”

우리는 피켓을 든 후 알제 경찰서 앞에서 소리쳤다.

“경찰은 내 친구 무싸를 살려내라!”

“경찰은 내 아들을 살려내라!”

순경은 경찰서 앞으로 나와서 우리에게 얘기했다.

“선생님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당신들이야말로 이래도 되는 겁니까?”

“선생님!”

그렇게 실랑이가 벌어진 후 서장이 나와 엄중히 경고했다.

“이렇게 불법 시위 계속하시면 체포합니다. 귀가하세요.”

“우리는 물러설 수 없다.”

“야, 끌고 가.”

우리들은 강제로 귀가 조치가 내려졌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포기할 수 없었다. 해가 진 밤, 나는 다시금 알제 시내로 가 무싸의 이름을 부르짖기 시작했다. 그러자, 술에 취한 한 취객들이 내게 술병을 던지기 시작했다.

“조국의 배신자! 죽어라! 부끄러운 줄 알아라!”

그러더니 단체로 달려와 나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에게 구타당하는 와중에도 이렇게 외쳤다.

“경찰은… 무싸를… 살려내라!”

“경찰은…. 무싸를… 살려내라!”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프랑스인들은 오히려 그들이 정당하다는 듯이 환호했고, 아랍인들은 프랑스인이 폭행당하는 것 따위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취객들은 나를 실컷 두들겨 패더니, 조국의 배신자를 처단했다면서 의기양양해진 채로 돌아갔다. 조국의 배신자라는 말은 역설적이었다. 나는 한 번도 프랑스인인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그들은 나를 배신자라고 불렀다. 프랑스에서도 나는 더 이상 프랑스인이 아닌 이방인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했다. 검은 발, 피에 누아르라는 명칭은 참으로 비극적인 명칭이다. 프랑스인에게도, 아랍인에게도 나는 배신자였다. 나는 다비드 조세프 블랑도, 다우드 유수프 알 자자이르도 아닌 그저 검은 발의 이방인, 영원히 어딘가에 속할 수 없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