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당신을 죽였습니다. 당신이 너무도 증오스러워서, 혹은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을 알 수 없어서.
나는 그래서 당신을 죽였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만들어낸 나에 의해 죽임 당했습니다. 그저 그 뿐인 이야기였습니다.
당신이 죽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이었을까요. 사실, 그것이 그리 중요한 질문은 아닐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저 죽어야만 했기에 죽은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삶엔 당신이 더 이상 필요 없었기에. 아니, 이미 아주 이른 시점부터, 어쩌면 내 삶의 첫 순간부터도 당신은 필요 없었기에, 그렇기에 당신은 죽임당한 것이었습니다.
당신을 어떻게 죽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내가 당신을 죽일 때 사용한 흉기는 무엇이었나요? 당신은 어디에서, 어떻게 나에게 죽었나요?
문자로 불러낸 술집에서, 당신이 거나하게 취했을 때 즈음에 그 술병으로 당신의 머리를 몇 번이고 내리쳤나요? 그도 아니면, 화장실에 간 당신을 뒤쫓아가 품에서 꺼낸 과도로 당신의 옆구리를 찔러 죽였나요?
어쩌면, 흉기가 아니었나요? 당신을 너무도 증오한 나머지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던 한 때의 내가, 당신을 숨도 쉬지 못할 정도의 키스로 죽여버리고 말았나요? 당신이 죽은 장소는, 남자들끼리 가기엔 부담스러운 어딘가의 모텔이었나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죽었나요? 약을 먹고 죽었나요? 목을 졸려 죽었나요? 어딘가의 건물에 비치된 소화기에 머리를 맞았나요?
어딘가의 옥상에서 제게 밀려 떨어졌나요? 제가 당신을 차로 치어버렸나요? 제가 당신을 물속 깊이 담그어버렸나요?
사실, 이 또한 그리 중요한 질문은 아닐지 모릅니다. 당신을 어떻게 죽였는지, 당신이 어디에서 죽었는지 또한 제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다만 제게 필요한 것은 당신의 부재였습니다. 과정이나 형식은 어찌되든 상관 없었습니다. 다만 당신이 내 삶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였기에, 나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당신을 죽여버린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시나요? 당신의 죽음은 당신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업의 결과였나요? 아니면, 그저 갑작스럽게 다가온 억울한 재난이었나요?
당신이 당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감히 제가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당신의 죽음은 그저 당신이 쌓은 업의 결과로서 받아 들여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어디선가 가져온 나무 몽둥이로 제 허벅지를 후려쳤을 때를 기억합니다. 제 앞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제게 담배불로 지져버리겠다 위협하던 때를 기억합니다.
당신이 나로 하여금 온갖 거짓을 말하게 한 것을 기억합니다. 당신이 휴일에 집에 찾아오던 것을 기억합니다. 당신이 내 교통비를 빼앗던 것을, 내 자전거를 앗아 탄 후 그것을 부순 일을 기억합니다.
당신이 망친 내 학창시절을 기억합니다. 나의 조부의 죽음을 조롱하던 당신을 기억합니다. 내 동생을 괴롭히던 당신을 기억합니다. 당신이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칠 때 망을 보던 나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나는 아직도 그 모든 순간을 기억합니다. 현재의 나를 만든 그 괴롭고 힘든 그 모든 나날들을 기억합니다.
아아, 그렇습니다. 당신은 그렇기에 죽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당신으로 하여금 만들어진 지금의 내가, 무언가 힘든 일을 맞닥드릴 때마다 내 고통의 연원을 탐색하던 내가 마침내 결론을 내려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이 존재하기에 살아갈 수 없는 스스로를 자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살아가며 맞닥뜨린 모든 힘든 사건의 원인이 당신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깨달은 내가, 마침내 '삶'이란 걸 살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죽었습니다. 잔혹하게, 혹은 다정하게.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모종의 방법으로, 당신은 나에게 확실하게 죽임 당했습니다.
아아, 당신은 죽었습니다. 이렇게 몇번이고 당신의 죽음을 곱씹을 때마다, 드디어 내가 '삶'이란 것을 살게 되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당신의 죽음으로 하여금, 나의 삶은 드디어 활기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었나요. 나에게 아주 죽임당하기 전의 당신은, 어떠한 '삶'을 살고 있었나요.
스스로를 대인배로 포장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던 한 때의 내가 소망했던 대로 크나큰 깨달음을 얻어 갱생한 삶을 살았나요?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고,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삶을 살았나요?
그도 아니면, 당신을 증오해 마지않던 한 때의 내가 소망했던 대로 괴롭디 괴로운 삶을 살았나요? 교통사고를 당해 부모를 잃었나요? 수 많은 세월을 병상 위에서 지냈나요?
...어쩌면, 그후에도 변하지 않는 삶을 살았나요? 당신이 이전에 해왔던 그 모든 악행을 답습하며, 또 다른 수많은 나를 만들어내는데 그 하찮은 인생을 다했나요?
지금까지의 당신의 삶이 어떠했는지 내가 감히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당신의 삶은 그렇게 끝을 맞이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내게서 그것을 아무 이유 없이 빼앗았듯이, 당신이 나에게서 '삶'을 빼앗는 순간에 지금까지의 내 삶의 색은 어땠는지 묻지 않았듯이.
당신의 삶 또한, 그렇게 갑작스레 빼앗겨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그 뿐인 이야기였습니다.
당신은, 그리하여 죽었습니다.
구독자 3296명
알림수신 44명
그대의 꿈을 펼쳐라 그것이 바로 문학일지니
📖소설
당신을 죽였습니다
추천
9
비추천
0
댓글
3
조회수
236
작성일
댓글
[3]
글쓰기
kna1911
쏟아맞추다
쏟아맞추다
최근
최근 방문 채널
최근 방문 채널
번호
제목
작성일
조회수
추천
공지
아카라이브 모바일 앱 이용 안내(iOS/Android)
30954618
공지
[필독] 창작문학 채널 사용 규칙 (2024. 06. 06 ver)
2218
공지
창작문학 채널 가이드 (2023. 06. 19 ver)
2934
공지
2024 산문 총정리
1850
공지
[필독]창작문학 채널 공지 모음
4368
공지
☆☆☆2024년 1분기 이분기의 문학 수상작 발표☆☆☆
1554
공지
☆☆☆2023년 올해의 문학 최종 수상작!!!☆☆☆
1835
공지
아카 대회 모음+우리 동네 이벤트 모음
7229
숨겨진 공지 펼치기(3개)
110
📖소설
문득,
[8]
414
13
109
📖소설
나는 지금 누군가를 진심으로 미워하던 시절을 떠올리고 있다.
[21]
404
9
108
📖소설
엽편) 열꽃
[13]
272
10
107
📖소설
자해
[9]
294
11
106
📖소설
"마왕, 그대의 시대도 끝이요."
[7]
352
11
105
📖소설
운수 좋은날 what if _ 운수 좋은 날, 일 원 오십 전을 받지 않고 곧장 집으로 갔다면
[16]
419
15
104
📖소설
법사(法師)
[4]
394
10
103
📖소설
삼류
[14]
288
9
102
📖소설
"록 밴드를 한다고? 너 지금 제정신이야?"
[15]
385
9
101
📖소설
단편소설 용담
[5]
245
9
100
📖소설
하얀 입
[12]
287
11
99
📖소설
1. 나의 펜(pen)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펜이 처음 한 말은..
[18]
357
11
98
📖소설
늑대와 사과
[26]
370
9
97
📖소설
소설 / 자살 보험금
[11]
437
9
96
📖소설
나무에는 다리가 없다
[6]
507
11
95
📖소설
포근한 눈이 하남 정주를 뒤덮었다.
[11]
313
9
94
📖소설
영원의 동산
[7]
222
9
93
📖소설
당신을 죽였습니다
[3]
237
9
92
📖소설
검은 발의 이방인
[15]
731
14
91
📖소설
김소일 교수의 과제
[11]
504
12
90
📖소설
어떤 당연한 슬픔
[7]
213
9
89
📖소설
창귀는 꼭 보이스피싱 같지 않나요?
[4]
230
9
88
📖소설
실안개
[9]
424
11
87
📖소설
최악이자 최고의 실수
[7]
401
9
86
📖소설
자살
[18]
887
23
85
📖소설
[WBN](창문챈 뉴비)트롤리 딜레마
[8]
320
9
84
📖소설
당신은 뛰고 있어요.
[5]
306
11
83
📖소설
자각몽을 꾸는 법
[5]
275
9
82
📖소설
생각을 중지합니다
[5]
164
9
81
📖소설
소년, 물음의 땅을 밟으라 ~프롤로그~
[22]
299
11
80
📖소설
값싼 봄날의 잔향
[3]
211
9
79
📖소설
[WBN]사흉
[8]
494
12
78
📖소설
별을 보고 싶었던 아이
[15]
668
15
77
📖소설
창문챈을 떠도는 유령
[11]
386
12
76
📖소설
최후의 저항
[5]
185
9
75
📖소설
[WBN] 기묘한 날이다
[8]
249
12
74
📖소설
사랑의 장례식
[6]
226
9
73
📖소설
[WBN] 요절한 예술과 남자
[7]
211
10
72
📖소설
[WBN] 골고타 언덕에서
[35]
3844
88
71
📖소설
가난한 사랑노래
[5]
255
11
70
📖소설
대화 없이 글 쓰기
[3]
227
9
69
📖소설
[WBN] 지우개 밥 이야기 1
[8]
356
11
68
📖소설
창문챈 광고 유입이다. 우리 때 챌린지는 이랬다.
[9]
339
10
67
📖소설
"요즘것들은 왜 책을 안읽는지"
[11]
234
10
66
📖소설
[WBN] 네크로필리아
[6]
30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