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은 개방된 언어의 층 담당을 찾으러 올라간다. 언어의 층... 담당 이름이.. 

지정사서를 찾아 헤매던 롤랑의 앞에 붉은 머리를 한 여성이 다가온다.


붉은 머리를 한 여인은 물고 있던 담배를 내려놓고 사내한테 말한다.

게부라다.


어휴. 담배 냄새. 네짜흐는 술을 퍼먹더니 너는 담배를 뻑뻑 피는구먼.

메케한 담배 연기에 롤랑은 손을 들어 입과 코를 막는다.


걱정 없이 담배 피울 수 있는 이때 마음껏 즐겨야지. 여인은 담배를 쥔 채 말했다.

너는 앤젤라를 돕고 있는 롤랑 이겠군. 게부라는 언어의 층에 찾아온 사내에게 말한다.

맞아. 방금 막 잠에서 깨어났을 텐데 잘 아내. 롤랑이 말했다. 

이걸 막 잠에서 깨어났다고 해야 하나. 꿈꾸는 듯한 느낌으로 지금까지 도서관에 일어난 일을 봐서,

개운하게 잤다는 느낌도 아니란 말이지. 게부라가 말했다.


너 해결사지? 게부라가 말했다. 9급 해결 사지. 게부라의 말에 롤랑이 대답한다.

거짓말을 하지 마. 무슨 속셈이야. 게부라가 말했다. 앤젤라야 순진하게 속아 넘어가겠지만, 난 아니야. 

첫 번째 삶인 붉은 안개 칼리인 나는 사내의 말이 거짓말임을 간파했다.


무슨 소리래... 우리 서로 구면인가? 거짓말임을 들켰다.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나는 첫 번째 삶에서 해결사로 활동해서 알아. 여인은 일침을 가한다. 너는 적어도 어리바리한 9급 해결사는 아니야.

사고 쳐서 강등이라도 된 건가? 게부라가 말했다.


밖에서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말이야. 롤랑이 말했다. 잊을 수 없는 존재. 피아니스트가 기억 한쪽에서 올라온다. 불쾌한 감정을 애써 감추며 롤랑은 붉은 머리를 한 여인에게 말한다. 거참, 잘 나셨네. 너는 몇급이었는데? 도서관의 능력, 감정 증폭. 사내는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못한다. 


사내의 말에 게부라는 대답한다. 붉은 안개.


미친. 붉은 안개라고? 해결사에서 전설이라 불리는 붉은 안개.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줄 안 롤랑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물든다.


흠흠. 계십니까? 책을 몇 권 조금 들고 와봤습니다. 롤랑은 비굴하게 여인에게 말한다.

거기 대충 놔둬. 순서대로 살펴볼 테니까. 여인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한다.


붉은 안개님. 제가 전에는 몰라뵙고 말이 심했습니다. 

롤랑은 존댓말을 쓰며 말한다.


알랑방귀 뀔 필요 없어. 여기선 너나 나나 똑같은 처지니까. 

게부라가 말한다.


나는 붉은 안개의 만담과 명성만 들었지, 활동 구역이 아예 달라서 보지 못했거든.

롤랑은 어느새 반말로 대답한다.


믿든 말든 편하게 생각해. 붉은 안개니, 뭐니, 결국 껍데기에 불과하거든.

게부라는 답한다.


붉은 안개의 전설 중에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됩니까?

단신으로 검지 대행자 5명을 썰었다는 거 말입니다.

롤랑은 존댓말로 바꾸어 여인에게 묻는다.


아. 검지... 오랜만에 듣는데. 뒷골목을 더러운 호칭들

맞아. 정확히는 검지 대행자 5명이랑 전령들 3명을 멱딴 기억이 있지.


크흐. 역시 대단하십니다. 롤랑이 말했다.

 밖에선 10년이 흘렀다고 했나. 그래. 롤랑이 답한다. 

도시의 뒷골목은 여전하지? 여인이 묻는다.


돈 없는 사람끼리 서로 죽이고 빼앗기고, 언제 이렇게 당할지 모른 채 살아가야 하는 거? 

젠장. 여전하네. 난 그걸 바꾸고 싶어서 개지랄을 했는데 헛웃음이 나오네.

변하지 않은 도시의 본질에 여인은 환멸감을 느낀다.


난 뒷골목이 싫어. 그곳에서 태어나 어떻게든 살아남아 온 입장에서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지.

게부라는 피던 담배를 재떨이에 지지며 말한다.

넌 몇구 출신이었는데?롤랑이 묻는다. 23구. 인정합니다. 


넌 몇구 출신이었는데? 게부라가 묻는다. 17구. 뒷골목 치곤 무난한 곳이었지.

진솔한 대화가 이어지던 때 게부라는 자신의 과거를 말한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지. 뒷골목도 뒷골목 나름일 테고. 

난 언제나 누군가를 지키는 싸움만 해왔어. 그리고 완벽하게 지켜낸 적은 없었지.

..갑자기 어린 시절이 떠오르네. 20살 해결사가 되었을 때 난 그동안 신세 졌던 멘션 아저씨,

그 위층에서 살던 구스 언니에게 정말 고마워서 돈을 나눠줬어.


기특한 아이였구먼. 롤랑이 말한다.

그런데 그들이 한 달 넘게 돈을 받아 가며 칼리한테 한 일이 뭔지 알아? 

맨션의 주민들과 작당해서 내가 자는 새에 문을 열고 들어가 칼리를 밧줄로 구속하고 금고를 찾더군.

아. 뭔지 알아. 칼리한테 더 큰돈이 있을 거라 생각한 거네. 롤랑이 말한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어. 모르는 새에 사지가 결박되어 놀란 게 아니야.

바로 눈앞에 추잡한 욕망덩어리가 돌아다니고 있어서야. 어제까지만 해도 안부를 묻던 사이었는데..

그리곤 그들도 상실의 아픔을 겪었는데. 칼리가 가져다준 돈이 그들에게 의미 있게 쓰이길 바랄 뿐이었는데.

힘이 생긴 만큼 그들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나는 언제든 결박을 풀 수 있었어. 하지만 그들이 내뱉는 추잡한 말들..

칼리는 결국 눈물을 흘렸어. 칼리가 지켜낸 이웃들도 결국 힘을 얻으면 손바닥 뒤집듯 다른 누군가에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 였거든


그래서 모두 죽였어? 내가 다 화나네. 롤랑이 말한다. 그래. 이웃들의 피를 뒤집어 쓴채 모두 죽였어. 

누군가를 지켜내도 변함없는 현실, 햄스터가 탄 쳇바퀴 마냥 반복되는 현실에 상처 입은 칼리는 다시 한번

눈물을 흘렸어. 


맞아. 그들을 동정할 필요조차 없다고 느껴. 게부라의 이야기에 동감하며 롤랑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나도 해결사를 처음 시작할 때 무엇이 옮고 그른지 고민했지. 너는 어떤 해결사였어? 게부라는 담배를 한 물며

롤랑에게 묻는다.


나름... 이성적으로 사리 분별하며 행동하던 해결사였지. 롤랑은 잠시 말을 더듬는 듯 했으나 자연스레 넘어간다. 그렇게 평판 좋던 해결사가 9급으로 떨어졌고? 게부라가 묻는다.

앞뒤 안 가리고 깽판 치던 때가 있었어. 눈에 뵈는 게 없어서. 그래서 적도 많이 만들었어.롤랑이 답한다.


역시 너도 이런저런 일이 있었네. 그런 얼굴이야. 게부라가 말한다.

칼리는 완전히 내가 아니지만, 여전히 내 안에 있어. 말을 너무 많이 햇군. 자련다. 여성은 찌뿌드드한 몸을 피며 잠을 자러 간다. 푹 쉬라고 칼리. 지정 사서를 만난 롤랑은 총류의 층으로 되돌아가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딱” 경쾌한 소리가 나며 앤젤라가 언어의 층에 모습을 드러낸다. 관장님. 무슨 일입니까?

롤랑은 언어의 층에 순간 이동을 한 도서관장님에게 다가간다.


앤젤라는 여전히 차갑고 날이서린 목소리로 대답한다. 손님이 찾아왔어, 롤랑.

슬슬 접대할 시간이군. 네짜흐랑 술을 마시는 건 다음으로 미뤄야겠어. 롤랑이 말했다.


층 계방을 통해 인간이 되어가는 앤젤라는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오늘은 언어의 층에서 접대할 거야. 게부라와 함께 접대를 하도록 해 롤랑.

앤젤라의 말에 롤랑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감사합니다. 관장님

앤젤라는 롤랑에게 임무를 부여한 뒤, 언어의 층 지정 사서실로 찾아간다. 무슨 일이지? 앤젤라. 이제 막 잠이 들려던 게부라는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게부라, 손님이 찾아왔어. 앤젤라는 피곤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게부라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한다. “오늘은 롤랑과 함께 접대를 해주었으면 해. 게부라”.


도서관장의 부름에 게부라는 책장에서 미1미크리를 꺼내는 것으로 화답한다. 미1미크리를 꺼낸 게부라는 자칭 9급 해결사를 부른다. 롤랑. 무기를 챙겨라.


전설의 특색 해결사. 붉은 안개의 실력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롤랑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시그니처 무기인 뒤랑 달을 꺼낸다. 전설의 해결사 붉은 안개와 접대를 하게 되니 나야 영광이죠.

롤랑은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딱”


손가락이 튕기는 소리가 나더니 검고 하얀 나비 무리가 나타나 롤랑과 게부라를 감싼다.

눈 깜짝 할새 언어의 층 접대 장으로 순간 이동한 롤랑은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한다.

“앤젤라의 순간이동은 언제봐도 신기하단 말이야”.


 “징계팀으로 근무하던 때가 생각나네~” “이렇게 모인 건 알레프 급 환 상체가 탈출했을 때 이후로 처음이네”

보조사서 들은 왁자지껄 전 직장 로보토미사의 기억을 말한다.  빛으로 산화되면서 죽은줄만 알았던 전 징계팀 부서의

직원들을 보자 그녀의 표정이 밝아진다.

“실력으로 검증된 이들만 모인 징계팀 부서 직원들이 보조사서들이 될 줄이야.”  

게부라는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지진 뒤 보조 사서들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