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날씨가 쌀쌀한게 분명히 1월이 맞았다. 저녁거리는 별 다를게 없었다.

난 두꺼운 털 잠바를 입고 어느새 한 포장마차에서 자리를 잡았다. 보이는건 길가에 널부러진 사람들의 입김 뿐이었는데, 포장마차에 보이는 저 빨간 김치찌개의 향기와 연기가 이토록 맛나보이는 게 처음이라, 홀린 듯 그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플라스틱 테이블에 정착한 나는, 사방을 보았다. 아직 이른 저녁이라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그중에는 정장을 입은 아저씨도 보였다. 그들은 서로 술을 마시고 눈물과 웃음들을 뱉고 있었다. ‘나도 언젠가는 커서 저런 아재들이나 되겠지.’이런 생각을 하며 그들을 별 다를 바 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 내가 주문하던 김치찌개가 도착했다. 부글부글 끓는 소리에, 점차 거품을 내고 터트리며 흔들리는 김치들과 두부들이 마치 나를 향해 유혹하듯 구애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오냐 먹어주마’라며 난 숟가락을 들어 단숨에 한 입을 먹었다.

입안에서 뜨거움이 퍼지고, 동시에 화끈함이 솟아올랐다. 혀가 뜨거움에 기분이 좋아진듯 이리저리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난 뜨거움에 입을 위로 벌렸다. 이내 삼키고 나니, 차가웠던 목구멍이 금새 서리길이 녹아내리듯 빠르게 흘러갔다.

마침 소주도 왔겠다. 난 작은 잔에 술 한잔을 또르르르 따랐다. 그 특유의 소주 따르는 소리가 날 입맛 다시게 만들었고, 투명하게 보이는 저 작은 컵은 마치 맑은 강물을 마시는 듯한 착각을 주었다. 난 그것을 단숨에 삼켜버렸다. 역시나 썼지만, 이내 뇌는 달콤했는지 난 표정을 찡그림과 동시에 입은 웃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찰나, 누군가가 내 마주편 의자에 앉았다. 수염이 조금 지저분하게 난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날 보고는 

“안녕하십니까. 혹시 같이 좀 먹어도 괜찮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난 갑자기 들어오는 손님에 조금 당황하였지만, 모든 것이 완벽했던 시기에 말동무 하나 없어서, 난 그것을 흥쾌이 수락했다. 남자는 기쁜 듯 마차 주인을 불러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좀 드시겠습니까?”

난 김치찌개를 권유했다. 하지만 그는 거부했다. 오로지 술만 있으면 된다 했었다. 난 거부하는 그의 모습을 쓱 흝어 보았다.보아하니, 그의 차림은 영 아니였다. 낡은 코트에, 얼굴은 많이 피곤에 찌든 것 처럼 보였고, 머리는 많이도 헝클어져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사람은 뭔가가 일어나서 술집에 왔다고.

”저.. 실례지만 혹시 이름이?“

”아, 안** 입니다.”

“그렇군요. 보아하니 저보다 어린 것 같은데, 안 군이라도 불러도 되겠습니까?”

“네 뭐, 상관 없습니다.”

그는 만족한 듯 웃음을 지으며 때마침 도착한 술을 술잔에 따랐다. 그 역시 소주를 따르는 그 물줄기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나도 그것을 따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 술잔을 들고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도 역시 눈은 찌푸리면서, 입 만큼은 웃은 체 그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에.. 안 군은 어찌해서 여기에 오게 됬죠?”

“여기라면, 포장마차 말입니까?“

”네…네, 그쵸. 여긴 포장마차죠.“

”그냥.. 뭐 몸좀 녹일거, 술도 땡겨서 왔습니다.“

”그렇습니까? 혹시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전… 아직 대학생입니다. 그냥.. 학교에서 공부하거나 노는게 전부죠”

“대학생이라… 대학생…!”

“왜,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뇨.. 하하.. 그냥, 좋을 나이여서 말입니다.”

그는 태평하게 웃으며 다시 술잔을 들이켰다. 그는 그 이후로 나에게 개인정보로 서서히 다가오는 질문들을 뱉었다. 무슨 학과드니, 교수는 마음에 드니, 모임에는 자주 가니… 등 별 쓸모 없는 것들을 계속해서 물어보는 것이었는데, 슬슬 이것도 재미가 떨어져서, 되려 내가 그에게 한 번 물어보았다.

“그럼, 즈 아재는 이름이 무엇입니까?“

”저 말입니까? 아.. 전 김**입니다.“

”그렇군요. 그냥 편하게 형씨라고 불러도 됩니까?“

”아유, 네 그럼요.. 모처럼 우리가 이렇게 만났는데, 그거 하나 못할까봐요.“

”네.. 그럼 형씨는 어떻게 여기로 오게 된건가요?“

그는 내 질문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 뭔가 건들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든 느낌이라, 술에 서서히 취하고 있음에도 정신이 조금 차려졌다. 하지만 이내 그는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 안 군. 안 군은 지금 뉴스를 보고 있습니까? 지금 이 대한민국 경제가 꼴이 말이 아닙니다.“

뉴스라… 요즘 경제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은 알 고 있다. 지금이야 하더라도 대학교 통로로 가는 길에는 길가에 정장입은 아저씨들이 벤치에 앉아 꾸벅꾸벅 졸거나, 아님, 아침에서 어서 일로 가야하는 아저씨들이, 유독 길가에서 자주 보이는 것이었다. 난 그것을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다시금 돌이켜 보니, 나라가 뭔가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은 맞았다.

“네.. 저도 뉴스는 봅니다. 지금.. 한국도 뭔가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는 건 맞구요.”

“그렇습니까. 그럼 아이엠에프인가 뭐시긴가도 잘 알겄네요.”

“그것도 언젠가 들어봤습니다.”

“네…”

그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고 있었다. 그리고 묵묵히 술잔을 계속해서 따랐다. 그의 술병은 벌써 반이 사라지고 있었다. 난 그의 술의 줄어듬에, 뭔가가 있음을 확신했다.

“제가… 이 아이엠에프라는 것에 의해서.. 회사에게 배신을 당했지몹니까… 참..”

그의 표정이 서서이 굳어졌다. 역시나, 그는 이상하게 돌아가는 경제속에서 해고를 당한 것이었다. 사회 속에서는 늘 자주있고, 그리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행여나 경제가 서서히 무너지는 경우라면 더더욱. 하지만 그의 마지막 표정은 정말이지 그의 세상이 무너진 것만 같은 절망적인 표정이었다.

“저에게, 처자식이 3명이나 있습니다. 그래서 집이 더더욱 이나 가난한데, 제발 살려달라고 위에서 싹싹 빌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증말.. 무심하기도 하지.. 쯧!”

그는 한탄의 말을 남기고 다시금 술잔을 들이켰다. 그의 얼굴이 금새 빨게지는 것을 느꼈다. 더 마시다가는 얼굴이 터질 것 같다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생각도 해보았지만, 금세 무거워진 분위기에 그런 생각을 하면 안될 것 같았다. 난 그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참 유감입니다.. 그래도.. 이 망가져가는 사회에서, 해고는 흔히 있는 일 아니겠습니끼?“

”…네.. 그렇긴 그렇죠.. 다만 내가 묻고싶은 건, 그들이 고른 게 왜 하필 나였나는 것입니다.“

그는 그 우울했던 표정도 금세 미소를 지으며 술병을 거의 비워냈다. 어느새 포장마차는 음식들의, 그 뿌연 연기들이 사방을 메우지 못하고, 그저 입만 벌리는 사람들의 메음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차가웠던 이곳도 어느세 점점 따듯해져만 갔다. 술을 마셔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전… 그 회사에서 10년을 일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가정을 위해서라면 몸이 망가진다 한들 그 회사에서 모든 걸 바쳤죠. 그런데 하필.. 이렇게 열심히 일한 나는 하필… 내 쫒고…”

이내 남자는 조그마한 눈물을 흘렸다. 난 금방 내 몸을 차지하는 취기에 그것을 잘 느끼지 못하였지만, 상황이 점점 안좋게 흘러가는 것만은 확신했다. 되려 사라져야할 정신이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있었다. 그건, 상심한 사람에 대한 배려였을까. 난 술에 대한 편안함을 잘 찾지 못하였다. 이럴려면 술을 왜 마시려 갔는지 불평했다.

“걱정 마십쇼. 이것도 하나의 폭풍 아니겠습니까. 다 지나가고, 새로운 꽃들이 필겁니다.“

난 그 남자를 조금이나마 위로해줄 덕담을 하나 남겼다. 남자는 이 말을 듣고 또 다시 웃으며 쓸쓸하게 말했다.

”아뇨.. 꽃이 필 땅이… 너무 괴이하게 파졌어요… 이제 저라는 꽃은 없을 겁니다.”

그 말을 하고 난 그의 얼굴은,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이제 뭐가 되도 상관없다는, 그런 얼굴이었다. 술잔을 빤히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 동공들이 한 뜻 모여 서로를 부등켜 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몸 전부 하나하나에 작은 눈물들을 뱉고 있었다.

“…. 그래도 웃는 걸 보니까 잘 버터실 것 같은데 말입니다.”

“웃는거요? 아, 이건 버릇입니다. 그 회사에서 윗놈들 상대할 때, 늘 웃는게 제 형식었거든요. 이제 그 회사에서 짤려도, 이렇게 자주 웃음이 나오곤 합니다.“

확실히, 그것은 버릇이 맞았다. 그의 눈은 이미 눈시울이 붉어져 뺨에는 가느다란 눈물자국이 있었다. 하지만 입은 눈치없이 치아를 다 드러낸 체로 빤히도 웃고 있었다. 난 이런 남자의 처지에, 순간 안쓰러움이 생겼다. 그리고, 이런 처지의 남자가 내 아침에 돌아다닌 그 남자들과 여느 바 다를게 없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모두 하나같이 무표정이지만, 눈빛 만큼은 정말 속일 수 없었다. 그 눈빛들은… 다 하나같이 날 소름끼치게 할 정도로 다 공허했다.

”흐하하핫“

남자가 갑자기 크게 웃었다. 그리고 눈이 눈물을 못 버텼는지 눈물들이 또르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웃으면서 그 눈물을 빨리 딲아냈다. 난 순간 이런 남자의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 눈물이 슬퍼서 나오는 건지, 분명 기쁨의 눈물은 아니지만, 분명 슬퍼서 나온다 치고는 그는 너무나 태평하게 웃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닙니다. 하.. 그냥.. 생각 하나 했어요…“

”무슨 생각 말입니까?“

”… 사실 당신을 만나기 전 까지만 하더라도 죽어버릴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이 포장마차를.. 지나가다 당신을 보고… 한 번 나 미쳤다 생각하고, 하소연이라도 남기고 죽을려 생각했죠.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하소연을 놓으니, 과연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 처자식들과 아내가 너무 힘들어 할거고, 그렇다고 살아버리면 저만 더욱 짐이 되는 꼴이니까요. 어찌저찌 하여 집으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 그래서 이 술이라도 만땅 취해서 죽을지 말지를 제 가슴으로 결정할려 했습니다… 그런데도.. 잘 모르겠습니다.“

남자는 짙은 한숨과 갈라지는 목소리를 남기며 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난 이제 그의 처지를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난 충고 해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였다. 난 아직 이 망가지는 사회에 뛰어든 몸이 아니기에. 뭐라 내가 명령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생명이라 함은 소중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난 내가 최대한 할 수 있는 형식적인 말을 꺼냈다.

”살아야죠. 사람 미래는 여러 갈래길 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지금의 상항이 부서진다 한들, 당신을 반기는 미래는 여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아직 죽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겁니다.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고 바래던 그 자식들과 아내를 생각해서, 다시금 힘을 내고 사회에 살아볼려 해보십쇼.”

남자는 이 말을 듣고, 순간 표정이 구겨졌다. 아차, 내가 너무 티나게 말한거 같다. 난 금방 사과라도 할려 했으나, 이내 남자는 다시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네… 알것습니다..."

남자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나를 두고 자리를 떠나버렸다. 내 앞에는 이제 아무도 남지를 않았다. 이제 그가 순간 남기고 간 그의 입김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나도 순간 뭔가가 불편해져, 영 술을 마실 기분이 아니였다. 난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별로 먹지 않은 김치찌개가 이제 미지근하게 변했는지, 연기를 뿜지 않았다. 

김치가 둥둥 떠있는게, 마치 죽은 것 같았다. 김치찌개도 따뜻함을 잃어버렸다. 그 남자도, 이 차가운 겨울에서 따뜻함을 잃어버렸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한거지, 난 알지도 못한 체 미래도 모를 그 남자를 떠나보낸 것에 심한 혼동을 느꼈다. 그 남자가 다음 날에도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난 모른다. 아니, 모르고 싶다.

난 서둘러 그 포장마차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일부로 사람이 없는 풀들이 널리 퍼진 길로 집까지 걸어갔다. 춥지도 않고, 되려 술을 마셔 더웠다. 난 코트를 벗고 흐느적 거리며 거리를 걸어갔다.

그 때, 한 고양이가 벽에 올라가 날 바라보듯 굳은 체 앉아 있었다. 난 신기함에 그 고양이를 빤히 쳐다보며 걸었다. 고양이는 날 보는게 아니였다. 하지만 시선이 느껴졌다, 날 보는 건, 고양이가 아니라 그림자였다. 

그림자는 날 보고 웃어댔다. 그 순간, 사방이 날 보고 비웃기 시작했다. 분명히 사람은 없었지만, 그 웃음소리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들렸다. 난 무서움에 그 거리를 빨리 빠져 나올려고 빠른 걸음으로 갔지만, 그 웃음소리가 순간 비명소리로 바뀌자 난 귀를 막으며 미친듯이 그 거리를 빠져나왔다. 

“내가 아니야… 난 아니야…”

난 혼잣말로 속삭이며 다시금 시내 거리로 나와버렸다. 이 추운 날씨에도 인공적인 안개가 도사리는게… 분명히 8월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