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집

1화

어쩌다 보니 2화를 쓰게 되었군요.

그럼, 시작합니다.


5.

그 후 한 달 동안은 병원에서 보냈다.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하자면 길다. 우선은,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나는 너의 몸속에서 살게 되었다. 그 사실을 우리 엄마와, 너의 부모님과 의사에게 설명하는 데에도 꽤 애를 먹었다. 의식-데이터화 기술 방면의 전문가의 의견은, 수조에 들어갔을 때 나의 의식이 너의 뇌에 이식되었다는 것이었다. 어째서 그렇게 된 건지, 너의 의식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답도 나오지 않았다.


"정말 불가사의한 현상입니다. 데이터화된 의식이 다른 생명체에 옮겨 간 것은 이번이 첫 사례입니다. 의도한 것도 아니었고요."


전문가들은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얘기의 다른 표현이었다. 나의 의식이 너의 몸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너의 부모님이 받아들이는 데엔 며칠이 걸렸다. 그들은 내가 차지한 너의 몸속에서 너의 의식을 끌어내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수일을 노력한 끝에, 그들은 지금 너의 몸속에 있는 게 이전의 너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우리 엄마는 그것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엄마는 혼수상태에 빠진 내 원래 육체 앞에서 날을 지새웠고, 내가 다가갈 때마다 원망의 시선으로 보았다. 엄마는 이번 일을 전부 너의 탓으로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걸 설명하려 애썼지만, 엄마는 한 마디도 대화를 나누려 하지 않았다. 정말 슬펐는데, 결국 나는 엄마가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한 달 뒤, 나는 건강상의 문제가 없었으므로 퇴원했다. 너의 몸속에 있는 것의 나의 의식이라는 사실을 가려낼 방법은 없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너에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야 했다. 공식적인 진단은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착각하고 있다나... 뭐 그런 걸로. 그 이후로 쭉 나는 너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


6.

퇴원한 지 다시 일주일쯤 되었을까. 그때는 여름방학이 끝나가던 무렵이었다. 너의 몸으로 살아가는 데에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네 단짝인 현지가 찾아왔었다. 네 걱정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 애와 그렇게 길게 대화해본 건 처음이었다. 현관문을 열어준 나와 마주쳤을 때, 현지는 나를 너의 이름으로 불렀다.


"세연아, 퇴원했다는 얘길 들어서."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 어서 들어와."


남의 집에서 남의 친구를 들이는 상황은 묘하다.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일단 2층의 네 방으로 들였다.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현지에게 나는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렇게 하면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줄 수 있을까 싶었다.


"오랜만이네. 잘 지내?"


"나야 뭐 그럭저럭. 나는 오히려 네가 걱정되어서. 입원해 있는 동안 몸은 이제 다 나은 거야?


"괜찮아. 애초에 크게 건강이 위험한 것도 아니었어."


그렇게 한동안 대화를 나눴다. 도중에 아주머니가 차와 과일을 내주셨고, 마침 현지도 퇴원 선물이라고 가져온 과자가 있어서 그걸 같이 먹었다. 역시나 현지는 우리가 겪은 사고의 자세한 부분을 모르고 있었다. 진심으로 너를 걱정하는 그 애의 마음이 느껴져서, 나는 우리의 부모님, 병원과 연구소의 관계자들에게 애써 설명했던 사실들을 그 애에게도 알릴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적어도 아무것도 모르는 네 친구들 앞에서는 너의 모습을 연기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방학도 곧 끝나가네!"


"그러게."


방학의 끝이라. 나는 그 말에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늦었으니, 오늘은 이만 가볼게."


나는 현지를 다시 현관문까지 바래다주었다. 그 애는 떠나면서 곧 학교에서 보자고 말했다. 무심코 그래. 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정말로 너의 모습을 한 채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학교를 다녀야 할지 고민했다. 개학 전날, 언제까지고 집에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 결국 학교에 가기로 했다. 너의 일상생활을 망쳐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너가 되기 위한 나의 연기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