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수필 편에서 예고했던 대로, 시 11선수필 5선에 이어 이번에는 소설 10선을 작성해보고자 함.

소설은 시와는 또 다른 읽는 맛이 있는 창작 작품이지.

특히나 이런 곳에 올라오는 순문학류 소설들은 참 작자에게 의도가 있어서 좋아.

지난번에도 언급했듯이, 여기 선정되는 기준과 한줄평은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에 따른 것이니 너무 섭섭해하지 말아줬으면 함.

앞으로도 더 많은 문학인들이 생기기를 바라며 시작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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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골고타 언덕에서 - @한아름


무슨 말을 덧붙일 수가 있을까.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거를 타선이 없는 주옥같은 문장, 자살에 대한 훌륭한 은유..

불우한 한 가정의 비극을 훌륭한 언어로 그려낸 명작.



2. 검은 발의 이방인 - @FM0905


까뮈의 이방인을 이렇게도 접근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 감탄사 하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이 이분법적 세상에 대한 극렬한 풍자에 감탄사 둘.

창문챈 소설 치고는 굉장히 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했던 필력에 감탄사 셋.

이방인 뺨치는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에 감탄사 넷.

1인칭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객관적인 관점으로 보여줬다는 것에 감탄사 다섯.



3. 값싼 봄날의 잔향 - @wertox


참, 창문챈 소설들 중에서도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기억에 남는 소설들이 많다.

위에 놓은 "검은 발의 이방인"도 그렇고, 이 소설 또한 정말 첫 문장이 기억에 남는 소설이다.

시가 한 구절이나 소설 한 문장을 외우는 것이 현학의 수단 밖에는 더 되지 않는 이 사회에서 "창문챈"의 소설의 문장을 기억하는 것이 큰 의미는 없겠지마는, 정말 다른 여러 명작들의 명구만큼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이 소설은 제목이 기억에 계속해서 남았다.

어느 보육원 출신 아이가 억지로 창녀가 되어, 성숙하고 나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며 값싸게 팔려나간 봄날의 잔향을 그리워하며 쓰인 이 글은 정말 명작이라는 말을 듣기에 충분했다.

냄새와 연관짓는 부분, "두려우면 눈을 막자"로 시작되는 부분은 작자의 뛰어난 문장력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나는 이 작자의 문체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다양하고 적확한 어휘를 사용하며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능력까지.. 정말 부러울 따름이다.



4. 폐선 - @accomplish0501


깔끔한 언어의 훌륭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노인을 폐선에 비유한 것은 정말 "대단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지하철 첫차가 피로를 싣다", "노인은 그 자리에서 한참을 가라앉고 있었다" 등의 재치있는 표현은 정말이지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아름다운 표현들이다.

따옴표가 없는 점은 흠결이라면 흠결이고 장점이라면 장점이겠으나, 나는 장점으로 받아들였다.

작품 내부의 분위기를 더 잘 살릴 수 있었기 때문. (따옴표가 들어가면 왠지 모르게 작품이 산만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종반의 침몰하는 노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슬픈 일은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켠이 시려오는, 훌륭한 서정소설.



5. 영수증의 악마 - @띠뚀#45219244


솔직히 문체가 내 취향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가볍고 의성어나 의태어를 많이 사용하는 게 마치 팔려야 하는 소설의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과 기승전결은 너무나도 뛰어나서 소설 10선 안에 들어오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 소설은 영수증의 출력에 따라 순행적으로 전개되는데, 기승전결이 이렇게도 확실한 소설은 나는 창문챈에서 더 보지 못했다.

그런 만큼 시작과 끝, 그리고 중간의 흐름이 소설 흐름의 정석에 가까우며, 특히나 이런 연애소설의 경우 결말부에 독자의 감정이 최대치까지 유도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효과적인 방식이다. 

이 글의 작자는 이 부분을 잘 파악하고, 결말부의 '포텐'을 위한 흥미진진한 빌드업을 잘 쌓아주어 이 소설이 내용면에서 정말로 훌륭한 소설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전반적인 문체는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언정 중간중간에 눈에 띄는 명구들도 있었다.

특히 "나의 추억에 대한 환급", "아름다웠던 너의 잔해를 주워나갔다" 등의 부분은 정말 훌륭하게 표현됐다.

영수증을 갖고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다니, 작가의 창의력이 대단하다고 밖에는 할 수 없겠다.



6. 이분법 세계 - @accomplish0501


솔직히 나는 이 글의 댓글에 달린 혹평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숨은 맛집을 찾아와놓고선 미쉐린급 음식이 아니라고 욕하는 것과 다를 것이 뭔가?

창문챈에서는 창문챈에서만의 기준이 있는 것이고, 출판 작품에서는 출판 작품에서만의 기준이 있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저 소설은 "창문챈치고"를 넘어서서 보편적인 잣대를 대어보아도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한다.

댓글에 지적이랍시고 달아놓은 장문은 물론 하나하나씩 따져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겠지만, 솔직히 나에게는 그냥 사소한 부분으로 트집을 잡는 것이라고 밖엔 보여지지 않는다. (물론 의미가 있는 활동이었지만, 그게 글 전체를 그 정도로 폄하할만한 충분한 동기가 되어주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소설 자체는 굉장히 잘 짜인 소설이었다.

문장이나 단어 한 군데, 두 군데 쯤에서 어색한 부분은 분명 있었으나, 주제의식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훌륭했기 때문에 그런 정도의 미스는 충분히 참작될 수 있었다.

소재와 주제의식에 글 전체가 끌려가는 느낌 또한 있긴 했으나, 아무렴 어떤가.

결국엔 작가가 소재와 주제의식을 적절하게 선택했다는 얘기밖에는 되지 않는다.



7. 식물 없는 정원 - @accomplish0501


"항상 순박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상처입고,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며, 타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차갑디 차가운 현대 사회.

그런 사회에서 얼어가는 제 삶 속의 윌슨은 무엇인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본인이 저 소설을 읽고 댓글에 적은 내용.

윗 소설도 그렇지만, 작자가 참 사회의 부조리나 불합리를 이색적인 소재를 통해서 은유하며 비판, 풍자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서정적이면서도 사회 비판의 메시지가 분명한 수작.



8. 오르톨랑 - @포올콰


나는 개인적으로 창문챈에 올라오는 공포 소설들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작자들의 필력은 굉장히 좋으나 그냥 '오싹'하고 마는 느낌이어서, 마치 어렸을 적 여우누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처럼 의미 없는 공포만이 엄습해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들의 필력이나 공포감을 조성해내는 능력이 너무나도 뛰어나서, 10선 안에 꼭 창문챈표 공포소설 하나는 넣어야겠다는 생각에 가장 내 몸을 오싹하게 만든 소설 하나를 넣었다.

노파가 무언갈 먹는 장면까지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오 느낌 좋다" 하면서 읽다가, 종반부에 주인공마저 참새를 잡아서 희열을 느끼는 장면에서 정말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정말 그 정도로 잘 쓰인, 온몸이 오싹하게 된 공포소설.



9. 색의 향기를 맡는 법 - @Schlange


"아름답다"

소설을 읽고 딱 든 생각이었다.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주인공과 아람이의 관계도, 심지어는 마지막에 병원이 불에 타오르는 것마저도 "아름답다"고 느꼈다.

"냄새"라는 수단을 통한 가스누출의 암시는 훌륭했으며, 그것을 종반부까지 끌고 가서 "색의 향기를 맡는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아름다웠다.

마지막에 주인공의 독백에서 사계를 운운하는 부분도 아름다웠고..

그냥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아름다웠다.


읽으며 "영수증의 악마"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어느 소설이 먼저 쓰였는지는 중요치 않다. 표절이 의심된다고 적은 게 아니다.)

아마 문체나 장르가 비슷했기 때문일 수 있다.

"영수증의 악마"에서는 여주인공이 주인공과 이별했을 뿐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세상과 영원히 이별했다는 점이 내용적인 차이점이겠다.

그러나 "영수증의 악마"에서는 읽고 나서 가슴이 어딘가 아파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면, 이 소설에서는 가슴이 아프다기보다는 그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10. 이른 아침의 휴게소. 트럭을 모는 남자. - @아무것도모른다


수필 문학 5선의 글에서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크게 서너가지가 있다"고 소개한 것 같은데, 그 계기 중 하나가 됐던 글임.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봤을 때는 여기 있는 다른 작품들보다 조금 떨어진다고 평가할 수 있겠으나, 나에게는 마치 수필처럼 쓰인 이 담백한 글이 타오르는 위를 진정시키는 듯한 훌륭한 작품이었다.

특히 "우동은 칠천원이었다" 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여전히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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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읽기만 할 줄 아는 병신의 감평이었슴다...

이번 건 좀 더 길어졌네.

이 글로 상처받으시는 분들 없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