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의 마수가 밤 하늘에도 뻗친 게 분명하다.


진우는 화두에 사로잡힌 마냥 그 생각이 자꾸 났다. 자신의 삶에 무언가 더해지지가 않고 자꾸만 덜어지기만 한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이제는 30대의 중반, 남들은 가정이 생기고 차나 집을 갖기 위해 재산을 모았을 시점이지만 진우에게는 그런 것들이 전혀 더해지지가 않았다. 어떤 날을 기점으로, 그의 삶에는 꾸준하고 지루한 상실이 반복되었다. 천성적으로 수집에는 별 욕구가 없었기 때문일까, 욕심 없이 살면 좋은 게 아니었던가?


긴 시간 후에 돌아온 고향은 진우에게서 마침내 고향을 앗아갔다. 이 낯선 땅에서는 그가 좋아하던 이맘때의 밤하늘이 사라져 있었다. 별 가득한 하늘이 서울 땅에서야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하여도 여기서는 보여야 마땅했다. 그랬을 터였다.


"느는 건 담배 뿐이라더니."


허파에 쌓이는 타르를 봐도 뭔가 쌓였으니 좋아해야 할까? 무의미한 물음을 던지며 진우는 담뱃재를 털었다. 불 씨 몇개가 잠깐 반짝하고 사라졌다. 하늘에선 몇 남지도 않은 별들보다 밝았다.


진우는 발길을 돌렸다. 먼지 앉은 화환 하나 외로이 선 빈소에, 이미 오래전에 잃었던 아버지가 있었다.


"이렇게 가실거면 왜 그랬어요?"


아버지는 표정없이 놓여있었다. 그의 시간에선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진우 본인이 연락을 받는 게 꽤 늦어졌기 때문에, 그는 염이 끝난 아버지의 시신도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진우에게 있어 가장 최신의 아버지는 저 사진 속에 있었다.


아버지는 생전 그랬던 것 처럼 말이 적었고, 진우는 질문을 하지 않은 것 처럼 앉았다. 저기 구석에 아버지와 함께 일했다는 초면의 중늙은이들이 술에 취해 널부러져 있었고, 그 외에는 사람도 없었다. 미니멀리즘이 이토록 지독하다.


그제서야 진우는 빛바랜 기억들을 되짚기 시작했다. 그 어떤 날로부터의 기억이다.


"나 암이래."


저녁식사 중에 나온 어머니의 발언은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병명은 췌장암 말기였다. 그 뒤로 모든 시간은 잃지 않고자 하는 발악이었다. 어머니의 삶을 남기고자 많은 것들을 비웠다. 여윳돈, 여유시간, 사람들이 미래나 내일이라 부르는 것들을 하나 둘 정리했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건 없었다. 반복되는 일상은 기억속에 통폐합되었고 고통과 슬픔도 시간덕에 물이 빠졌다. 채도없는 잿빛 기억은 차라리 기록이라 부르는 게 나았다.


끝끝내 비울것이 사라지고 난 이후에, 어머니는 그만하자 말했다. 일상이 된 병상을 가장 지겨워했던 것은 당신 스스로가 아니었을까. 그 뒤 아주 잠깐은 예전처럼 돌아간 것 같았다. 모두가 끝이란 게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러나 끝은 왔고, 며칠 뒤 아버지는 홀연히 사라졌다. 빚을 남기기 싫고 스스로 갚을테니 연락하지 말라는 전언이 있었다.


진우 역시 병원비에 알바비를 보태고 있었으므로 아버지가 짊어졌을 대강의 빚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진우의 마음에 커다란 짐처럼 쌓여있었다.


뭐든 비워버릇하다보니, 마음에 쌓인 짐도 비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진우는 아버지가 쓰는지 마는지도 모를 계좌번호로 매달 얼마간의 돈을 보냈다. 그만큼 마음속 숫자를 지우고 짐을 덜어냈다.


그러고 살았다. 연락없이 사라진 아버지와 연락없이 돈을 보내는 아들은 부전자전이었다. 가끔 술에 깊이 취한 날에는 이제 아버지가 받지 못하는 옛 번호를 입력했다가, 차마 통화는 걸지 못하고 잠들었다. 그 시간동안 아버지 또한 그랬을거라 진우는 상상했다. 몇년의 시간동안 아버지는 상상의 영역까지 가버렸던 탓이다.


상상속으로 사라졌던 아버지는 지금 저기에 있다. 그 모습이 상상보다 더 초라해도 실망하지는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대여해준 양복 주머니에는 통장과 편지, 인감 하나가 들어있다. 아버지가 비우지 못하고 남긴 것이다. 거기엔 자신이 아주 오랫동안 덜어낸 돈이, 시간이, 어쩌면 내일이 될 수 있었던 것들이 쌓여있었다.


편지에는 짧은 문장 하나가 있었다.


진우야, 내 빚은 나의 것이고 이 돈은 너의 것이다.


문장을 몇번이나 곱씹어도 진우는 도무지 그 돈을 내것이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은 진우의 내일도, 어제도 될수가 없었다.


모든게 지독한 미니멀리즘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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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근무 중에 틈틈이 쓴 글입니다. 퇴고가 부족해 비문과 급전개가 있는데, 수정할 체력이 모자라 마무리합니다. 제목은 마음에 안 들지만 마땅한 제목이 떠오르지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