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0. 만나볼까요

1. 저와 그녀

2. 광인을 만나다

3. 망치 돈가스

4. 사건, 3년 전

5. 방황 속에서

6. 잃은 것과 얻은 것

7. 빛나는 사람



0. 만나볼까요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입니다. 

 [광교 호수공원에서 재수생 투신 소동... 구조 후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확인돼-20XX.11.20, 어흑마이갓뉴스]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다 모처럼 본가에 내려온 저. 폰으로 저번 주에 올라온 기사의 제목을 확인하면서 저는, 오랜만의 만남을 위한 외출을 준비합니다. 

 ‘이 녀석,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한 줌의 한숨을 내쉰 저는 어깨까지 오는 단발머리를 빗질하고, 까만 리본이 달린 흰색 블라우스에 곤색 치마를 입었습니다. 

 그러면서 기사의 내용을 또 한 번 읽어 봅니다. 

 ‘광교 호수공원에서 한 20살 여성이 투신 소동을 벌이다 구조되었다. 여성은 인근의 A대학을 다니다가 자퇴 후 이번 수능을 치른 재수생으로 확인되었으며, 신고받고 출동한 구조대에 의해 구조된 후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으로......’

 ...기사 어디에도 이 재수생에 대한 자세한 신상 정보는 없었지만, 기사에 적혀 있는 행적만으로도 저는 그녀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검은색 스타킹과 갈색 단화를 신었습니다. 아, 그리고 앞머리에 검정색 실핀도 하나. 이 정도면 외출 준비는 끝입니다. 

 저는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현관을 나섰습니다. 

 저의 친구, 20살짜리 재수생을 만나러.


 1. 저와 그녀

 집을 나선 게 오후 5시 30분쯤. 약속 시간은 6시이니 천천히 걸어가 보려 합니다.

 그녀와 만나기로 한 곳은 우리 동네 맛집인 양식집입니다. 구 시가지 골목에 위치한, 망치 돈가스가 일품인 곳. 예전에도 그녀와 함께 종종 가곤 했던 곳입니다. 

 그곳으로 걸어가면서 저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떠올려 보겠습니다. 그야 그녀와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기도 하고, 심심하니까.


 그녀의 이름은 권아현. 저와 그녀는 같은 중학교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둘도 없는 찐친입니다. 

 그녀와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의 권유로 간 영어마을 캠프에서 룸메이트로 그녀를 처음 만났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바로 옆 동네 학교에 다닌 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뭔가 죽이 잘 맞아서 캠프 이후로도 쭉 친하게 지냈는데... 시골에 살았던지라 인근에 중학교가 하나밖에 없어서 몇 년 후 같은 중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오타쿠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친해진 우리는, 하굣길에서 ‘은발 벽안 캐릭터가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같은 주제로 진지한 토론을 하거나, 같이 오타쿠 행사(AGF라든지)에 다니기도 하며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그대로 고등학교까지 같은 곳으로 진학. 다만 저도 그녀도 대학 진학에 있어 확고한 목표가 있어서, 공부에 열중하느라 관계가 조금은 느슨해졌습니다. 그래도 매일 같이 밥을 먹으며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했던 우리. 

 그러고 보면 둘 다 내신 망한 정시파이터라는 동질감에 오히려 우리의 결속력은 높아졌던 것도 같습니다.

 였는데...

 대망의 수능을 치르고 정시 합격자 발표가 진행되는 이듬해 2월. 저도 그녀도 목표에 애매하게 도달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목표와 같은 학과이지만 다른 대학에, 그녀는 목표와 같은 대학이지만 다른 학과에 붙어버린 것이지요. 

 저는 ‘뭐, 이만하면 만족’이라 생각해 대학에 입학했고, 그녀 또한 그래 보였으나... 

 그녀는 입학 3주차에 갑작스레 자퇴 후 재수를 선언했습니다.

 그때 그녀가 저에게 보내온 문자가 분명
 ‘의대 목표 재수 フトスト~’
 였습니다. ‘의대 진학을 목표로 재수하기 위해 자퇴를 희망합니다‘라고 쓰인 자퇴원서 사진과 함께 그런 문자를 보내왔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그런 결정을 한 사정을 아는 거의 유일한 친구였기에 응원해주었습니다. 


 공부하느라 바쁠까 봐 자주 연락하지는 않았지만 잘 지내고 있을지, 혹시 너무 힘들게 공부하고 있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어 안부 전화도 종종 했었습니다. 

 전화로 옛날처럼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공부는 할 만하냐고 물으면, 그녀는 항상 “잘 하고 있으니 걱정 마~”라고 했는데... 저런 행동을 저지르고 뉴스까지 탄 것을 보면 결과가 좋지는 않았나 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열심히 걷다 보니, 어느덧 약속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2. 광인을 만나다

 천연색 통나무로 되어있어 꽤 빈티지한 문을 열고 들어가자, 현관문 종소리가 맑게 울림과 동시에 점원분이 저를 맞아주셨습니다.

 “어서오세요~ 몇 분이세요?”

 “네, 두 명인데 먼저 온 일행이 있습니다. 아, 저~기 있네요. ”



 구석진 창가, 조금 푸스스해 보이는 중단발에 가을용 교복을 입은 소녀가 있었습니다.

 옆에 놓인 에코백에는 오타쿠들이나 달 법한 아크릴 키링이 몇 개 달려 있고, 왠지 모를 찐따미를 풍기고 있는 걸 보니 제가 찾는 그녀가 확실합니다.

 저는 그녀에게 다가가며 천천히 손을 흔들어 보였습니다. 양손으로 물컵을 들고 홀짝이던 그녀도 저를 눈치챘는지 손바닥을 작게 흔들며 인사했습니다. 반가워서 미소 짓는 그 모습은 뭔가 집에 돌아온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 같았습니다. 

 생각보다 밝은 그녀의 모습에 안도한 저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모처럼 만났는데 시작부터 어두운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평범한 인삿말로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만나는 건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고생이 많았았을 것 같은데.”

 “아냐아냐, 나야 뭐 잘 지냈지.”

 호수에 몸을 던지는 게 잘 지내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무언가 사정이 있겠지, 이야기하다 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들을 수 있겠지.

 일단 주문부터 해야겠습니다. 소심한 그녀를 위해 주문은 제가 해야겠지요. 제가 쏘기로 하기도 했으니 왠지 제가 주문해야할 것 같은 느낌도 있고... 뭐, 아무튼.

 “음... 망치돈가스로 두 개 시키면 되려나?”

 “아, 응.”

 벨을 눌러 점원분을 부르고, 망치돈가스 두 개를 주문했습니다.

 “주문 감사합니다. 샐러드랑 수프 먼저 내어 드릴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점원분이 샐러드와 수프를 가져와 저희 앞에 놓아주셨습니다. 

 얇게 썰린 양배추에 딸기 소스가 뿌려진 샐러드는 달콤하고 아삭했으며, 따듯한 수프는 한 숟갈 떠 먹으면 속까지 따듯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맞은 편의 그녀 또한 샐러드를 오물오물 씹으며 음미하고 있습니다.

 그럼 메인 디쉬를 기다리는 동안 수다나 좀 더 떨어볼까요...

 그러고 보니 그녀는 고등학교 다닐 적에 입던 교복을 입고 왔습니다. 재수생에게 교복이라니... 이제 곧 21살인데.

 “근데, 웬 교복이야? 여고생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서 코스프레라도 한 거야?” 

 저는 농담조로 그렇게 말하며 키득 웃었습니다.

 이어지는 대답.

 “아, 그런 불순한 의도는 아니거든~ 그냥 입을 옷이 마땅치가 않아서...”
 “나 원래 옷 자주 안 사잖아. 게다가 재수하는 동안은 매일 같은 츄리닝만 입고 다녔어서 더 그랬지.”
 “그래서 마땅한 외출복이 교복밖에 없었어...”

 저런... 그래도 아현이에게 교복이 잘 어울리긴 합니다. 키도 그리 크지 않고, 마른 편에, 피부도 하얘서 그야말로 아싸찐따 미소녀 여고생의 전형. 라이트 노벨의 여주인공으로 나올 법한 비주얼입니다.

 한 마디 놀려줄까요.

 “뭐, 잘 어울리고 귀여우니 됐나~”

 제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얼굴을 조금 붉히며 "아, 고마워..."라고 수줍게 답합니다. 기분이 좋은지 배시시 웃기까지 하는군요.

 이렇게 칭찬에 약한, 권아현입니다.



3. 망치 돈가스

 오늘의 메인 디쉬, 망치 돈가스가 나왔습니다. 

 “매번 볼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커...”

 제 앞의 그녀는 방금 막 나온 돈가스에 대한 감상평을 하는 중입니다.

 그녀의 말대로 이곳의 망치 돈가스는 꽤 큽니다. 그렇다고 해서 터무니없이 큰 것은 아니고, 보통 사람 한 명이 먹었을 때 딱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는 정도. 하지만 시중의 다른 돈가스와 비교해 보았을 때는 큰 편입니다. 

 너무 과하지도 너무 모자라지도 않는 딱 그 정도 크기의 돈가스.

 피망과 치즈가 들어간 돈가스 옆에는 동글동글 귀여운 밥 한 덩어리와 감자 튀김, 스위트콘, 콩조림, 그리고 약간의 마카로니 샐러드도 있습니다. 먼저 나왔던 샐러드와 수프까지 생각해보면, 이곳의 음식은 참으로 혜자스럽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음~ 맛있어!” 

 거기에 훌륭한 맛까지! (권아현 「20세, 무직」 보증.)

 방금 막 튀겨져 나와서 소스를 듬뿍 부어도 바삭한 튀김옷은 너무 두껍지도 너무 얇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 속의 치즈와 피망, 촉촉한 등심이 어루러져 자아내는 맛은 그야말로 경양식의 진수. 이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맛집인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돈가스 바이럴은 이쯤 하고... 이제 주 요리가 나온 만큼, 그녀와 좀 더 대화를 나눠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녀석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가, 그리고 도대체 왜 자퇴한 대학 근처의 호수에 가서 뛰어들었는가, 라는 이야기를요.

 제가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그녀가 포크와 칼을 잠시 내려 놓고 멋쩍게 웃으며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그... 아무래도 그동안 서로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해야겠지? 오랜만에 보기도 했고~ 또 나는 요전에 이상한 짓을 벌이기도 했고...“

 “응, 그렇네.”

 아무래도 풀어낼 이야기가 짧은 제가 먼저 이야기하는 게 맞겠지요. 

 “음, 나는 평범하게 대학 생활을 했어. 기숙사랑 강의실을 오가며 캠퍼스를 노니는 평범한 대학생.”

 제 이야기를 듣고 조금 실망한 듯 물음을 던지는 아현이. 
“헤에에ー 뭔가 재미난 일은 없었던 거야? 그도 그럴 게, 나도 예비 대학생이니 궁금하다고~ 대학생의 썰 같은 거.”

 “동기들이랑 술도 좀 마시고 놀았고... 아, 피아노 실기 과제도 준비했지.”

 “오~ 역시 음대생~”

 참고로 저는 음대생이 아닙니다.

 “음대가 아니라, 음악교육과.“

 이에 태연하게 대답하는 그녀.

 “뭐, 아무렴 어때~ 그리고 또, 다른 얘기는 없어?“

 자유와 청춘의 대학생이라 한들, 제가 인싸가 아니라서 할 만한 이야기는 이게 전부이지만... 재밌을 것 같으니 장난을 조금 쳐 볼까요.

 “아, 하나 더 있다. 나 다른 과 남자 선배한테 고백했었는데...”



 “으잉?!?!?!”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는지 아현이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녀는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왠지 불안해하는 목소리로 제게 물었습니다.

 “누... 누군데...? 그래서 어떻게 됐어...?“

 “......”

 믿고 싶지 않지만 궁금하기는 해서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그녀의 모습이 꽤 귀엽고 보는 재미도 있었기에, 저는 일부러 대답하는 데에 조금 뜸을 들여보았습니다.



 이쯤 끌었으면 됐겠지요.

 “사실 장난이야. 전부 거짓말이었습니다~ 아하하.”

 그녀는 엣, 하고 잠시 벙찌더니 그제야 자신이 농락당한 것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뭐야...! 놀랐잖아... 휴.”

 끝에 붙은 안도의 한숨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아무튼 그렇게 별 볼 일 없는 제 근황 이야기와 권아현 놀려먹기까지 했으니, 이제 제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차례인 것 같습니다.

 저는 돈가스를 몇 조각 더 잘라 먹은 뒤,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지낸 거야?”

 제 물음에 그녀는 ‘마침내 이야기할 때가 된 건가...’ 같은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이윽고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말하자면 긴데, 음... 우선 개괄적으로 이야기해 보자면, 자퇴-재수-망함! 이려나 하하하...” 

 “역시 그렇게 된 건가...”

 아직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한 대로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후의 이야기도 얼추 예상이 가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기 위해 좀 더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습니다.


4. 사건, 3년 전

 “흠흠, 그럼 재수를 결심하게 된 시점부터 이야기해 볼까나. 내가 고1 때부터 의대에 가고 싶어 했던 거는 알고 있지?”

 

 “응, 당연히 알고 있지.”

 그녀가 의대를 목표로 잡고 공부를 시작했다는 것은 잊어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아현이와 수 년 간 알고 지냈지만, 그때만큼 진지한 아현이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소심하지만 항상 밝고 건강한 그녀에게 충격을 주었던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3년 전, 저와 그녀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적에 일어났습니다. 

 가정사와 관련된 일인 만큼, 그녀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할 것 같습니다. 

 아현이네는 한부모가정입니다. 아현이가 어릴 적에 어머니가 주식으로 집안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빚더미에 올라 이혼을 하게 된 이후로 아버지와 아현이 둘이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현이네 아버지가 상냥하신 분이기에 둘이서도 화목하게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으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돈 문제.

 아버지가 직장을 다니고 있기는 했지만 어머니의 주식 투자 때문에 집안에 재산이 전무해진 상태여서(집도 차도 전부 압류되었었다고 합니다), 한때는 아현이네 친할머니댁에 얹혀 살기도 했다고...

 그러다가 어렵사리 독립하여 15평짜리 공공임대 주택으로 이사하여 아버지, 아현이 둘이 살고 있던 게 고1 때의 상황. 

 형편은 좀 나아졌지만, 아현이는 항상 아버지를 걱정하곤 했습니다. ‘아빠가 요즘 야근에 추가근무에 무리해서 일하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나 대학 갈 때 돈 보태주려고 그러는 것 같다’면서요.

 그러다가 고1 가을에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유독 쌀쌀했던 10월의 어느날, 저는 아현이와 점심을 먹고 식당에서 나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교내 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1학년 1반 권아현 양은 지금 1학년 교무실로 오세요.”

 “엥, 나?”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그녀는 당황했습니다. 반에서 방치되듯이 겉돌기만 하던 그녀가 교무실에 불려갈 일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던 저도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뭐지... 이상하네. 그래도 일단 빨리 가 보지 그래?”

 “오케이, 알았어. 금방 다녀올게”라고 말한 그녀는 야자 시간이 되어서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인지 걱정하던 차에, 그녀로부터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혹시 걱정할까봐 문자 남겨 놓는데, 나 지금 병원에 와 있어! 아빠가 일하던 중에 쓰러져서 응급실에 와 있는데... 오늘 밤은 내가 곁에 있어드려야 할 듯. 내일 학교에서 보자’

 저런...

 무언가 위로의 말을 전해줘야할 것 같았으나, 적당한 말이 떠오르질 않아서

 ‘응, 힘내.’

 라고 보내주었습니다.

 다음날, 아현이는 응급실에서 간밤을 지새웠는지 초췌해진 얼굴로 학교에 왔습니다. 

 아현이가 제게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들어줄 수 있냐고 한 것은 그로부터 몇 주 후였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라는 게 어떤 이야기야?”

 저는 아현이에게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물었습니다. 저번에 있었던 일도 마음에 걸리고, 그녀가 진지한 이야기라고 언지를 줬기에.

 “하하, 그게 말이지, 저번에 우리 아빠 쓰러졌을 때 병원에서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했거든? 그래서 대학병원에도 가 봤는데... 아빠 심장이 안 좋대.”

 “......”

 아현이는 울음을 참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아빠가 어제 말했는데... 자기가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을지도 모른다 하더라고.”

 저는 그런 아현이가 안쓰러워서, 안아주었습니다. 토닥토닥.

 “그래서 말이지... 나, 의대에 갈래.”

 “엣, 갑자기?”

 참고로 그녀는 문대가리 돌돌이에 내신도 좋지 않았습니다. 저와 비슷한 4~5점대.

 “설마, 의사가 되어서 아버지의 병을 고치려고...?”

 아현이는 울다 말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아, 그런 건 아니야.”

 “쓸데없이 냉철하구나. 나의 감동 돌려줘... ”

 그렇다면 왜 의대에 가고 싶은 걸까요.

 “있지, 우리 아빠는 여태까지 나한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뭐 이런 얘기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확실히 아현이네 아버지라면 그럴 것 같았습니다. 거의 방임주의에 가깝게 자식을 키우시는 분이라... 물론 애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요. 무엇보다 자식의 뜻을 존중하시는 분으로 보였습니다. 아무튼.

 “근데 말이지. 그런 아빠가 예전에 나한테 딱 한 번 바람? 소망? 같은 걸 얘기한 적이 있거든. ‘아빠는 아현이가 의사가 되면 잘 어울릴 것 같아~’라고...”

 “이번에 아빠가 쓰러지고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안, 문득 그게 기억났어.”

 그랬구나.

 “내가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 정도겠지. 또, 의사가 되면 지금처럼 돈에 쪼들리며 살 일도 없을 테고... 해서 말이지. 한번 도전해 보려고 해.”

 “아무래도 내 내신으로 수시는 답이 없으니, 이과 수능을 준비해야겠지... 이것도 죽어라 해도 될까 말까려나...”

 저는 큰 결심을 한 듯한 표정을 짓는 아현이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던져주었습니다.

 이때의 저는 ‘죽어라 해도 될까 말까’라는 그녀의 말을 그리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나도 한 명의 정시파이터로서, 문대가리돌돌이 권아현의 이과수능도전모험기를 응원할게.”

 “뭐야 그게... 응원 맞아?”

 아현이는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더니, 이내 “그래도 응원해줘서 고마워.”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그녀가 의대를 목표로 삼게된 이야기는, 여기까지.



5. 방황 속에서

 “히야, 그때가 벌써 3년 전인가~” 


 자식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부모님처럼 말하는 그녀가 지금 여기 있습니다.

 그 소녀는 대체 누구일까요?
 그렇습니다, 권아현입니다.

 ...그녀는 입 속에 돈가스 한 조각을 집어 넣고는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렇게 말도 안 되게 높은 목표를 잡고서 꽤나 열심히 공부했지, 나...”
 “앗, 자기 입으로 이렇게 말하니 뭔가 쑥스럽네...” 

 저는 그런 그녀의 말을 은근히 옹호해주기로 했습니다.

 “틀린 말도 아닌데 뭐.”

 그렇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제가 지켜봐온 그녀가 노력하는 모습, 그리고 2등급과 3등급이 섞인 첫 수능 성적표라는 결과. 

 물론 누군가가 보기에는 별 것 아닌 성취일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과목 등급이 5 이하였던 그녀에게는 나름 고귀한 성취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학원도 못 다녔는데 그 정도의 성과를 냈으니까요.

 “그치만 의대 정시의 벽은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아주 높았지... 그리고 공부 외의 것들을 배제하려고 했지만 결국 덕질을 못 버렸고...”

 그렇습니다. 그녀는 고교 재학 중에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덕질도 열심히 한 것입니다. 아현이의 가방에는 항상 인강 교재들 사이로 만화책이나 라노벨이 한 권은 꼽혀있었습니다. 

 “그랬지. 너 결국 대학 원서를 쓸 때도 ‘이렇게 된 이상 덕업일치로 간다!!’며 애니과나 디지털미디어 쪽으로 원서를 냈고, 그렇게 간 곳이 A대학교 미디어학과였잖아.”

 “응, 맞아. 그랬었지.”

 제 말에 그녀가 답했고, 이어서 말하기를.

 “근데 말야, 대학에 가서 첫 수업 들으러 가는 길에 우리 대학교 의대 건물을 봤는데 문득... 없는 형편에 비싼 사립대 공대를 다니는 내가 너무나 죄스럽더라고. "
 "그리고는 ‘죽어라 해도 될까 말까인데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지? 덕질을 버려냈다면... 그때 내가 조금 더 열심히 했다면, 의대에 갈 성적을 받아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 재수를 결심하고 그대로 자퇴를 해버렸지, 하하하...”

 “그렇게 된 거구만...”

 “응. 참... 지금이야 이렇게 웃으면서 말하지만 정말 미친 짓이었어.”

 제가 봐도 무모한 짓이 맞았습니다. 물론 배수진은 좋은 전략적 선택이 될 수도 있지만, 망했을 때 돌아갈 곳이 없다는 리스크가 너무 크니까요. 

 실제로 그녀도 제게 전화할 때마다 “으앙... 왜 첫학기 자퇴생은 재입학이 안 되는 거냐고오...”라며 자퇴를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리고는 환불받은 등록금으로 인강 패스를 사서 집 앞 작은도서관에서 매일 공부를 했어. 첫 한 달은 매일 코피가 나도록 공부했었네.” 

 꽤 본격적으로 공부를 했나봅니다. 하루에 6시간 정도 자는 시간 외에는 계속 공부를 했다고...

 “정말 공부만 했지, 그때는...”
 “그런데 재수를 시작한지 한 달만에 자퇴한 걸 후회하고 멘붕이 와버렸지~ ‘어라, 나, 왜 여기에...’라고 생각했었어. 그도 그럴 게, 진짜 하고 싶었던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에 갔다가 제 발로 박차고 나왔으니까 말이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덕질 없이 사니까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았어.” 

 그랬구나.

 “해서 여태까지 해온 것처럼, 재수도 공부와 덕질을 병행했어! 매일 몰루아카 출첵하고 방송 중계 달리고, 날 잡아서 메인스 인연스 정주행에 수능 직전에 봇치 봤고 아하렌도 재밌더라. 그렌라간도 누가 추천해줘서 봤는데 진짜 보면서 울부짖었어. 아 맞다 뉴게임 원작 정주행에 마녀의 여행도 출간될 때마다...... 마리얼레트리도...... 어쩌구저쩌구”

 덕질 얘기가 나오자 들뜬 그녀는 재수 중에 감상한 작품들을 열거하기 시작했습니다. 

 8개월밖에 안 되는 수험생활동안 저것들을 다 즐겼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공부와 병행하면서 저 정도의 덕질을 할 수 있다니!

 저는 괜히 일침을 넣어봤습니다.

 “이래서는 ‘병행’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아, 물론 공부도 제대로 했어.”

 본인이 앞에서 말한 수많은 작품들은 잊어버린 건지... 양심이 있는 걸까요.

 “덕질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6평, 9평에서는 역대 최악의 성적을 받아냈지만 말이야, 하하하...”

 그럼 그렇지...

 “뭐,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수능은 꽤 잘 본 것 같아. 대충 H대학교는 갈 수 있을지도?”

 ...납득하긴 어렵지만 정말 병행을 하긴 했나 봅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는 분명 ‘자퇴-재수-망함’이라고 했었습니다. H대가 망한 거라니... 아니 애초에 수능에서 커리어 하이를 찍어놓고 망했다니. 이건 기만이 아닐까요.

 그런 생각에 저는 그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럼 망한 게 아니지 않아?” 

 이에 그녀는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그치만 결국 의대에는 못 갔는 걸. 그런 관점에서 보면 망한 거지.”

 “...그런가.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니까 수긍할게.”

 그나저나 무언가를 잊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 호수공원!
 재수 생활을 그리 무겁지 않게 이야기하는 그녀이지만, 이 이야기는 그녀에게 있어서 아픈 부분일 터. 그래서 저는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그럼 그... 광교에서 호수에 뛰어든 것도 그거 때문이야...?”

 “응? 광교...? 아, 그 기사 뜬 거 말하는 거야?”

 “응, 그거.”

 “……”
 “그거 나 아닌데.”

 "에...? 아......?"

 그게 무슨 소리니, 아현아... 

 정말 무슨 소리일까요.

 “아니 그럼, 올해 A대 자퇴-재수-망함 테크를 탄 사람이 적어도 둘씩이나 있었다는 거야??”

 “응, 신기하게도 그런가봐.”

 뭐, 아현이 같은 녀석이 또 하나 있었을 수도 있겠죠. 참 별의 별 일이 다 일어나는 세상이니까... 

 하지만 아현이의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도 한때 그런 생각을 했었어.”

 그런 말을 하며 그녀는 휴대폰으로 자신이 재수 도중 쓴 일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너무 힘들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A대 입학처에 연락해서 재입학시켜달라 해도 소용없고...... 그리워, A대......」

 제가 일기를 다 읽어갈 때쯤, 그녀는 “...어떤 때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호수공원 투신’을 키워드로 포털 검색을 하고 있더라고. 심지어는 어느 날 갑자기 실제로 A대학교를 찾아가기도 했어... 이건 그때 쓴 일기인데, 읽어볼래?”라며 어떤 블로그 게시물 링크를 제게 보내주며 말했습니다.

 “수능 한 달 전쯤에 자퇴해버린 학교―학과의 과잠을 입고서 3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가 A대 캠퍼스를 활보했다니까. 하하하...... 미친 짓이었지, 정말.”

 그녀는 머쓱한 듯 살짝 웃음지어 보였습니다. 

 A대 캠퍼스 곳곳의 사진과 그녀의 감상이 담긴 일기는 실제로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었습니다. 

 「의대 건물 송재관.
자퇴할 즈음에는 의대, 병원을 볼 때마다 뭔가 가슴에 맺히는 게 있었는데
다행이게도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진작 이랬어야 됐는데. 아. 」

 「기숙사 지하에는 용지, 남제관 사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다. 세탁기 위에 세제를 올려두지 마라는 경고문이 있는데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진동이 생각보다 강하기 때문에 올려두면 100%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 그냥 떨어지면 다행인데 떨어지면서 뚜껑이 열리고 세제액이 흘러나오면 당신은 ㅈ된 것. 어떻게 아냐고? 으윽 머리가..」

 「산학원(산악원).
누가 알아볼까봐 계단이 아니라 옆의 찻길의 가장자리를 따라 갔다.
그러나 내심 누군가가 나를 알아봐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대면 강의를 시작한지 일주일도 안 되어 자퇴를 해버린 탓에 아는 사람도 없겠지만...」

 「시간이 좀 촉박했던 탓에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원래 호수공원에도 가보려 했는데 시간 상 가지 못했다.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이런다고 재입학을 시켜주는 것도ー학교로 돌아가게 해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일 테다. 무의미 그 자체.

 우리집에 돈이 많았다면ー아니 부족하지만 않았어도 자퇴는 안 했을 텐데
아니 애초에 의대에 목을 매는 일이 없었을 텐데
뭐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다.

 다만 누군가가 도와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러나 누구도 만나지 못했고, 도와준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

 「 길이 막혀서 좀 늦게 도착했다. 6시 30분쯤...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가려 했는데 버스가 나를 버렸다. 아...

 결국 언제나처럼 국도 옆 갓길을 걷게 되었다. 씨발, 씨발, 거리면서 걸었다.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도와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이야기했다가는 상대방 머리만 아프게 할 뿐이라는 게 뻔했다. 그래서 이야기할 수 없었다. 이야기하고 싶지만ー이야기할 수 없었다. 

다리가 아픈데, 혼자 걸어가야겠다.」


 ...일기는 애틋하고 씁쓸한 이야기로 가득했습니다
.



6. 잃은 것과 얻은 것

 “뭐 아무튼, 그런 생각을 했던 때도 있었지. 수능이 끝나고 나서는 좀 괜찮아졌지만 말이야.”

 그녀는 후식으로 나온 디저트를 먹으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디저트라고 해봐야 오렌지 주스지만요.  

 그런데 한편, 저는 이런 생각이 들어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근데 말이지, 만약 덕질을 정말 버려냈다면, 어쩌면 의대에 갈 수 있었을지도 않을까― 그런 생각, 그런 후회를 한 적은 없어?"

 "......당연히 했지."

 그녀는 얼굴을 조금 찌뿌리며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재수 중에도 그런 생각을 계속 했어. 죽어라 해야 될까 말까다, 덕질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성공할 수 있다, 라고 말이지..."

 흠...

 "그치만 결국 버리지 못했고, 어쩌면 그 때문에 의대에 갈 만한 성적을 받아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재수를 하면서, 내게 있어서 덕질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어. 이게 내가 믿는 바야."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덕질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잃어버린 어떤 미래, 즉 어찌어찌 의대에 가 의사가 되는 미래를 부정하고 싶은 건 아니야. 단지 내가 선택한 미래를 믿고 있을 뿐."

 "오호."

 목이 탔는지 잠시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 홀짝인 뒤, 이야기를 계속하는 그녀. 

 "그러고 보니 재수를 하며 꽤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르겠어. 20대의 1년. 그리고 어떤 미래. A대 미디어학과를 계속 다녔을 경우의 미래와, 덕질을 버리고 몇 년이고 더 공부해서 의대에 갔을 경우의 미래. 그리고 정신 건강도 많이 나빠졌지."

 "하지만 무언가를 잃어버리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아. 재수를 하며 얻어낸 것들도 분명 있어. 이런저런 애니메이션, 라노벨, 만화와의 만남을 얻었고, 책과 영상을 통해 이런저런 사람들과 만나기도 했지. 가령 마루야마 겐지 할아버지나 MX 스튜디오의 게임개발자 분들. 

 "겐지 할아버지를 통해서는 내 힘으로 내 뜻대로 제멋대로 살아가자는 생각을 했고, MX 스튜디오 분들의 영상을 보면서는 게임개발자로서의 꿈을 키워갈 수 있었어. 이렇게 매체를 통해 사람들과 간접적으로나마 만나면서 사유하고, 나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뿐이 아냐. 계속 얘기했던 것처럼 자신에게 있어서 덕질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어려울 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달았어."

 "마지막으로, 재수 내내 비관했던 것과 달리 나쁘지 않았던 재수 결과를 통해 인생이 꼭 그렇게 비극적이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

 "그러니까, 앞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너무 비관하지도 않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고 싶어."

 "아, 물론 소중한 사람에는 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너도 포함이야."

 싱긋 웃으며 허심탄회한 소회를 마친 그녀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7. 빛나는 사람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 새 창밖이 어둑어둑해졌습니다. 

 "음료수도 다 마셨고, 슬슬 갈까?"

 "아, 응."

 식사를 마친 저희는 카운터로 향했습니다.


 "계산은 내가 할게. 재수 끝난 선물이야."

 "앗, 고마워, 헤헤..."

 계산을 마치고 식당을 나선 저와 그녀는 거리를 걸으며 시덥잖은 이야기를 조금 하다가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그녀가 먼저 입을 뗐습니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오늘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웠어."

 "별 말씀을요. 그럼, 나중에 다시 보자."

 "응.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이야~"

 바이바이,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녀에게 저도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별자리가 빛나는 늦은 저녁, 어느 촌 동네의 구 시가지. 

 한 소녀의 에코백에 걸린 아크릴 키링이, 별빛에 반짝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