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우리(우리라고 말하기엔 겨우 방금 만났고 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들은 곧 대화가 없는 차 안에 놓여졌다. 내가 그녀에게 하고싶은 이야기도 떨어졌거니와 도로시도 말이 없어졌다. 운전에 집중하고 있어서일까? 얼마나 운전이 서툴면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운전에 열중인걸까? 나는 그녀의 차에 타고 있는 것이 불안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건 나 스스로가 착각한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에 대해서 너무 아는 것이 없다.

"요즘 살이 빠졌어..."

  도로시는 갑자기 그런말을 했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날씬한 몸을 어필하려고 한 의도의 말인지, 아니면 진짜 머릿속에서 돌아다니는 포착된 사실 하나를 순진하게 말해버린 것인지 판단해야 했다. 그리고 그런 판단을 내리는 것은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집안일이 늘어난 탓이야. 그리고 어제는 빨래를 너무 한번에 몰아서 한다고 주인한테 혼났어. 그리고 청소를 잘 못해서 혼나기도 했어."

'그렇다는 것은 '살이 빠졌어.'라는 말로 자신을 어필한 다음에 그것이 너무 뻔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자신의 단점들을 나열해서 자기 자신을 어필하려고 한 무의식을 발현을 마치 그렇지 않았다는 것 처럼 보이고 싶어서 한 말이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 다음 그 점을 지적하려고 했으나 너무나 지엽적인 것이었기에 망설였으며 또한 나 스스로도 해당 논제를 떠올린 스스로의 '무의식'을 확정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스스로 나의 생각을 폐기. 그렇게 스스로에게 당하고 말았다. 그건 마치 들판에 토끼들이 널려있는 것 만큼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녀가 나의 페이스를 흔들고 있었다. 이건 자신이 보아온 그 어떤 스릴러 창작물에서도 볼 수 없었던 방식의 트릭과 묘기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 스트레스 때문에 살이 빠지고 계신거군요."

  "그런가봐."

 차는 공업단지를 지나고 있었고 그 어떤 건물보다도 하얗고 아름답게 지어진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어떤 회사인가요?"

 "저 건물? 우리 이민시의 가장 큰 회사인 다인 기초공업이란다."

 "기초공업이 무엇인가요?"

 "나도 이름만 알지 그 이름의 해석같은건 몰라.."

 공업단지를 지나서 이번에는 병원과 상가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도 그냥 사람들 사는 곳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토끼들이라는 건 불규칙적으로 무리를 이루고 있어서 토끼 떼가 눈에 들어왔다가도 또 사라지기도 하는 기묘한 풍경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일상적인 모습에 겹쳐지고 있었다.

 "생각해보면요."

 내가 말을 했다.

 "뭐가?"

 "생각해보면 토끼가 이렇게 번성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어요."

 따뜻하게 데워진 아스팔트 위를 토끼들이 마구 뛰어다닌다.

 "왜냐하면 현대의 도시에는 토끼들이 살기 적합한 곳이니까요. 일단 초식동물이고, 도시에 조성된 공원에는 먹을 것 천지죠. 토끼를 위협하는 맹수의 존재도 없어요. 그러니까 생각해보면 토끼들이 도시에 번성할 수 없다는 이유도 딱히 없어요!"

 "그렇네."

 "그러니까 토끼들이 도시에 이렇게 많은 것도 딱히 이상할 일은 없죠. 그러니까 지금 상황은 발생할 만 해서 벌어진 일이에요!"

 "맞아."

 "누나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누나는 바보라서 아무 생각도 못하는군요. 자신의 생각이라는게 없네요. 누나가 충분히 생각할 수 있을 시간을 줄까요?"

 "아니...."

 "그래요. 누나는 늙었으니까요. 나이를 생각해야죠. 아직 젊은 제가 제 생각을 더 전개해 나가보겠습니다. 우선, 현대의 도시가 토끼들에게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바로 겨울을 나기위한 장소에요. 인간들은 토끼들이 실내에 침입하도록 두지 않고 공원 관리인들도 토끼들이 토끼굴을 만들기 위해 구멍을 파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렇다는 말은 토끼들이 어딘가에서 겨울을 나기는 해야된다는 건데 말이죠. 그건 이 도시 어딘가에 토끼들이 대량으로 겨울을 날 만한 거대한 동굴이 존재한다는 거에요."

 그녀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신의 차를 쇼핑몰 입구로 몰고 들어갔다.

 "근데 나는 그런게 있다는 이야기를 못들었는데. 그러니까 토끼가 어떻게 우리 마을에서 겨울을 나는지에 대해서 말이야."

 "그렇다는건 그 토끼굴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죠? 토끼굴이 존재한다면 당연히 관광상품화 했을테니까 말이에요."

 "내 생각엔 정부 차원에서 토끼굴의 존재를 은폐하고 있을수도 있지. 왜냐하면 그건 토끼들 개체수에 중요한 역할을 할 거니까. 보존을 할 목적에서 토끼굴을 발견했어도 그것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겠지. 공익을 생각해서 말이야."

 도로시는 자신이 이민시를 책임지는 사람인 것 마냥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리면서 도로시가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면 이민시에 있는 누군가가 토끼들을 위한 장소들을 제공해주었을지도?"

 "흠... 그거 일리있네요."

 나는 그녀를 놀랍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누나도 결국 의견을 내셨군요. 대단하세요. 가정부치고는 꽤 똑똑하신데요?"

 "그런 나쁜말을 하면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단다."

 그녀가 나를 화난 표정으로 노려본다. 그러다가 다른 곳을 흘겨보고는 다른 생각이 들었는지 표정이 풀렸다.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숨길 생각을 안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것처럼 연기를 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민석아. 우리 쇼핑하기 전에 내려가서 공원에 가서 토끼들이나 만지고 보고 놀다가 되돌아오자."

 나는 그녀가 토끼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로시. 그건 마치 숙제를 하기 전에 게임부터 하겠다는 발상이나 다름없어보여요."

 "민석. 나를 우선 존칭으로 불러줬으면 해. 그리고 쇼핑을 먼저하면 냉장보관해야 하는 식품들이 있으니까 쇼핑을 하기 전에 먼저 공원에 가는거야. 그리고 너가 나한테 스트레스를 자꾸 줘서 그거 해소하려고 공원에 가는거고. 그렇다고 혼자 내가 공원에 가버리면 내가 나쁜 어른이 되고. 너가 아니었으면 공원에 갈 일도 없었을텐데."

 "네 누나."

 "분명히 공원에 가면 좋아질거야!"

 나는 신난 그녀를 따라갔다.

 "지금도 이미 신나 보이시는데요."

  왜냐하면 이미 공원에 도착하기 전인데도 토끼들이 길가에 보였기 때문이다. 새하얀 털. 귀여운 털 뭉탱이들이 길거리에 놓여져 있었다. 검은 얼룩이 잔뜩 묻고 살도 찌어서 돌아다니는 비둘기들보다는 좀 나아보였다.

 "집에 안가져가세요? 키워보시죠?"

 "집안일을 늘이고 싶진 않아. 그저 지켜보는 쪽이 더 좋아."

 그녀는 길거리의 토끼들을 보면서 말하였다.

 "그래. 현대사회에 토끼들이 살지 말란법은 없지. 여러 조건들을 따져보았을 때 말이야. 하지만 일단 토끼들이 보이지 않던 이유도 또한 분명히 있었겠지. 그런데 이 이민시에는 그런 문제가 없다는거야. 그건 마치 어떤 임계점이 존재한다고 하면 거의 모든 상황에서는 그 점을 넘기지 못해서 토끼들이 살아갈 수 없지만, 만약 다른 요인이 개입해서 그 임계점을 넘겨버린 것 과 같은거야. 토끼들이 살아갈 수 있는 요인과 살아갈 수 없는 요인들이 서로  아슬아슬하게 대립하고 있었지만 후자가 더 강해서, 마치 내리막 직전에 위치하였지만 그 내리막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공과 같은 상황이 있을 때 누군가 그 공을 살짝 밀어버린 느낌이라고 할까. 그리고 그 밀어버릴 수 있는 마지막 언덕이 바로 은신처의 존재, 토끼굴이 되는 셈인거야."

음. 그건 마치 우연하게도 달의 지름과 지구와의 거리의 비율이 태양의 지름과 태양과 지구와의 거리의 비율과 우연히 일치해서 달이 아슬아슬하게 태양을 전부 가려버리는 개기일식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때때로 달이 멀고 태양이 가까울 때 달의 겉보기지름이 작아져서 태양을 전부 가리지 못해 금환일식이 일어나버리게되는 상황과 비슷하군... 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면 포인트는 2가지였다. 그런 상황이 어떻게 조성될 수 있었는가? 둘째로, 그 임계점을 넘겨버린 요인 그 자체와, 그 요인을 발생시킨 존재는 누구인가?

 "이민시는 미스테리한 곳이네요."

 뜬금없지만 나는 지금 우리 둘의 상황이 만약 누군가가 읽는 소설이라고 가정했을 때 우리 둘을 좀 더 보는 것이 질리는 일이 아닐 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