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묻는다
따뜻한 햇살이 잔디를 비추고
여린 바람이 풀을 간지럽힌다.
갓 피어난 새싹은 기지개를 켜고
먼저 피어난 꽃들은 광합성을 만끽한다.
그리고 한 목표만을 좇아
규칙 없이 날아다니는 꿀벌에게
잔디 사이사이 꽃들은 봄을 묻는다.
장마
바닥에는 제멋대로의 모양인 거울이 수 없이 있다.
어두워진 하늘에 밤인가 하며 잠을 청하는 다람쥐도 있고
이때다 싶어 어두운 곳에서 나와 자연의 선물을 만끽하는 지렁이도 있다.
토끼는 상수리나무 밑 옹달샘에서 세수를 하려다 목을 축인다.
그리고 하늘에는 구멍이 뚫렸다.
낙엽은 떨어지고
낙엽은 떨어지고
한 남자는 걷는다.
서쪽에서 찬 바람이 휙 불면
가로수는 탈곡기가 되어
벼 낟알을 한 움큼씩 떨군다.
가녀린 가지 끝에 매달린
단풍잎 하나만이
처절하게 흔들리고 있다.
낙엽은 떨어지고
그 속에서 쓸쓸히
한 남자는 걷는다.
마지막 계절
오랜만에 눈이라도 내리면
아이들과 그들의 친구들은
신나서 언덕으로 뛰어나간다.
큰 택배 상자를 접어서
언덕에서 썰매를 타기도 하고
눈을 둥글게 뭉쳐
달려가는 친구에게 던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한 할아버지는
빙그레 미소지으면서
마지막 계절을 본인의 방식대로 즐긴다.
언제나 웃음이 가득한 언덕이다.
봄 빼고 망한 거 같은 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