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다가도 올리는 이유는 본인이 중도하차하지 않고싶어서인데 잘되려나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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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ad Ending #002 : 이젠 교성 밖엔 들리지 않아 (6)

[2] 당신은 돌아섰다. 아무리 남자라지만 모르는 여자와, 그 것도 생명의 위협을 준 여자와 몸을 섞고 싶지 않다. (10) v

[첫 업적 달성 :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미쳤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에서 바지춤을 붙잡고 갈등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런고로 가던 길이나 마저 떠나려던 당신의 눈 앞에 또다른 인물이 나타났다.

"아....."

당신이 대나무 사이에 걸린 여자를 바라보던 중에 몰래 지나가려했던건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눈이 마주친 상태였다. 당신에게 들켜버리자 붉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경계하듯 당신의 반응을 살피는 그녀에게 말을 걸려하자 갑자기 그녀는 인상을 험악하게 굳히며 총을 쏘려는 것처럼 손가락총을 만들어 당신에게 겨눈다.

"멈춰."

뒤에 걸려있는 새 소녀보다 밝은 분홍 장발이 격한 손짓에 찰랑 흔들린다. 그녀의 잔뜩 깐 목소리가 경고함과 도시에 머리 위에 달린 길다란 토끼귀가 주인의 신경이 날카롭다고 알리듯 빳빳하게 섰다.

"다가오지 마."

처음 마주쳤을 땐 꽤 인상이 순해보였는데 당신과 이렇게 마주하니 놀라울 정도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 저 손가락 총이 진짜 총이었으면 분명

피잉!

.........

당신의 발치에 흙이 파밧 하고 튀었다. 진짜 총이었던 것이다! 경솔하게 행동했다간 진짜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어째서 남자가 이 곳에 있는 거지?"

여자는 불쾌감을 겉으로 드러내며 물었다. 그건 이 쪽에서 묻고 싶은 말이다. 왜 당신이 이 곳에 떨어지게 된건지 오히려 묻고 싶었다.

"....환상향 인간이 아닌 것 같네. 환상들이 한건가?"

당신을 살펴보던 그녀가 턱을 짚는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걸까.

당신은 설명을 요구했다. 당신이 말을 꺼내자 여자는 혐오감이 느껴지는 표정을 지었지만 대답은 해줬다.

"아마도... 이 곳의 남자는 그 쪽 한 명 뿐일거야. 적어도 내가 살아온 이 환상향에선 그 외 남자는 본 적 없으니까."

역병 따위의 일로 몰살을 당했나?

"아니. 아예 남자가 있었다는 기록 자체가 없어. 스승님도, 틈새 요괴도 이 환상향이 만들어진 때부터 지금까지 남자가 들어온 적은 없다고 해."

그래서 아까 저 소녀가 환상향에 남자가 없다면서 달려든건가.

"....그럼 이만."

여자는 감색 블레이저의 소매를 매만지더니 손을 풀고 돌아섰다. 아무래도 당신이 위협이 되진 않을거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경계를 푼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보낼 순 없었다. 세계가 어찌되었든 당신은 이 대나무 밖에 보이지 않는 숲을 빠져나가야 했다.

"......모코우를 찾아다 줄게. 그녀라면 데려다줄거야."

토끼녀는 직접 데려다주지 않을 생각인지 다른 이름을 언급했다. 차갑다. 온 세상 모두를 좋아해도 당신만은 싫어할 것 같은 눈빛이 당신의 눈을 피한다.

까직.
콰드득!

돌연 등 뒤에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아직도 바등거리고 있던 새 소녀를 묶던 대나무가... 부서지는게 아니라 망태기가 부서지고 있었다.

피해야한다.

라고 생각하는 잠깐의 순간도 늦어 망태기는 아예 박살이 났고 새 소녀가 당신을 향해 날아왔다.

그리고 머리를 짓누르는 압력.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는걸 억지로 몸을 세우니 자신의 앞을 토끼녀가 착지해 가로막았다. 어느샌가 다가와 당신의 머리를 짚고 넘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피츙!

"꺅!"

새 소녀가 짧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밀려났다. 토끼녀의 손가락 총, 의외로 살상용 무기인지 거기서 나온 총알이 새 소녀의 가슴팍을 꿰뚫어 혈액을 구멍에서 세어나오게 했다. 여태 이 위험한걸 겨누어지고 있었나 생각하니 식은땀이 흘렀다.

"돌아가. 공주님도, 스승님도 이 죽림에 시체를 만들기 원하시지 않으시니까."

차가운 말투에 새 소녀가 움찔한다. 그러나 이내 혓바닥을 내민다.

"붸에~ 잘났다, 잘났어! 치사하다구. 너희 영원정에서 남자를 독차지할 셈이지? 동네방네 다 떠들고 다닐거다, 뭐!"
"빨리 꺼져!"
"꺄아~  폭력 토끼녀다~!"

심술이 잔뜩 난 듯 떠들던 새 소녀는 토끼녀가 한 번 더 위협하자 날아 도망갔다.
하지만 마냥 도망가기는 아쉬웠는지 날아가는 그녀와는 반대로 옅은 붉은색의 구체가 토끼녀를 향해 날아왔다.

"칫...!"

구체가 엄청 빠르지 않았는지 토끼녀는 어렵지 않게 피해냈다.

어.

팍!

당신이 고꾸라졌다. 하필 토끼녀 뒤에 있던 당신은 벽이 사라지자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고 말았던 것.
가슴팍에 약한 통증과 함께 쓰러진 당신. 구체의 속도가 느린 탓에 아프지 않아 다시 일어나려 땅을 짚은 당신은 위화감을 느끼고 주변을 둘러본다.

어둡다.

자신의 손만 겨우 보일 정도로 시야가 좁아졌다. 탁 트인 하늘도, 여기저기 난잡히 손은 대나무도, 블레이저, 와이셔츠, 붉은 넥타이의 교복과도 같은 의상을 입은 토끼녀도 보이지 않았다.

갑작스런 시력 감퇴에 겁을 먹고 허우적거리자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까직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 다가왔다.

"자, 이걸 잡아."

목소리는 토끼녀의 그 냉랭한 목소리다. 손에 쥐여주길래 잡은 것은 매끈한 나뭇가지였다. 아마 작은 대나무를 꺾은게 아닐까 싶다.

"시력 저하탄이야. 저 요괴는 밤참새. 보통은 상대를 야맹증으로 만들어버리지만 그건 밤의 일. 낮에는 탄이 약해져서 시력이 감소하는 것으로 끝나. 원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원상태로 돌아오는데.... 그 기다리는 시간 동안 네가 살아있을지 의문이네. 말했다시피 공주님과 스승님은 이 곳에 시체가 생기는걸 싫어하니까."

오늘 그녀에게서 들은 제일 긴 말이다. 박학다식한걸까.
잡은 대나무가 끌렸다. 대나무를 잡고 있던 당신이 따르자 그녀가 또 입을 열었다.

"영원정으로 갈거야.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워. 얼른 치료하고 나가줬으면 해."

너무 매정하게 굴어 괜히 모르는 사람이지만 상처받는다. 왜 이리 불친절하게 구냐고 물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친절하다고 생각하는데.... 남자는 쓰레기야. 더 이상 말도 섞고 싶지 않아."

공격적인 단어 선택에 당신은 할 말을 잃었다. 시력은 잃었지, 상대는 무기도 갖고 있고 당신에 대해 왠지 모르게 적개심도 갖고 있다.
....가만히 있는게 상책인 것 같아 입을 다문 고행길이 천년만년 이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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