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싸우면서도 그렇게 좋아하는걸까. 그도 아니라면...단지 내가 족쇄가 되어서 어쩔 수 없이 한 침대에 누워 같은 이불을 덮고 사는 걸까. 어른의 사정에 끼어들지 말라는 소리나 듣는 나는 이렇게 무의미한 가정을 쌓아나간다.


“...네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직장 후배와 같은 침대에 있던 아빠.


“그...우리 딸? 아빠한테는...알지?”

 어느 택배 기사와 함께 집을 나서던 엄마. 애초에 뻔한 결론이었다. 몸도 마음도, 이미 서로에게 멀어져. 


 어느 날이라면 두 사람 모두 싸우지 않고 화목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어쩐지 그것조차 거북했다. 뒤로는 서로를 기만하고 있으면서 뻔뻔하게도 저렇게 웃는 것을 받아들이기란 너무도 어려워서 게워내려는 충동을 겨우내 삼키기기만 했다. 이 빌어먹을 공간. 함께하고 있으면서도 못내 저 두 사람이 증오스럽기만 해서 다가갈 수 없었다. 저들도 자신들의 앞날을 막고 있는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직 어린 나는 아직도 두 사람의 손길을 갈구하고 있었다. 혼자서는 쉬이 결론지을 수 없는 유년기의 방황. 물어본다면 답이라도 구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고 부모님의 방으로 향한 날이 있었다. 문 앞에서 한 걸음 발을 떼 문고리를 돌린다면 답을 알 수 있었을테지만. 고성에 붙잡혀,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혐오감에 붙들려 나는 차마 마지막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조용히 내 방으로 돌아왔다.  

 

 가장 의지해야 할 사람들에게조차 기대지 못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별 것 없었다. 기껏해야 나라는 사실을 숨긴 채로, 얼굴 한 번 마주치지 못한 화면 너머 타인에게 동정을 구걸하기만 할 뿐.


‘하루하루가 힘들어서…’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건, 다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비춰주는 순수한 동정은 내게 거절하기 힘든 것이 되어, 나는 탐닉하기만 했다. 무구한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다시 또 나의 불우한 가정을 팔아 넘기며. 그렇게, 그렇게 마음의 부채를 덜고 밤을 지새운다. 


  그런 나날의 사이에서 내 나이 또래의 사람을 만났다. 닉네임 유월의눈. 슬프게도 이 사람의 집안 사정 또한 만만치 않았다.


‘맞아요, 우리는 그렇게 다르지 않아요 ...저희 부모님의 이혼조정도 곧 끝나서. 저는 아마 어머니를 따라 살 것 같은데, 마음이 복잡해지네요.’


‘그렇군요...’


‘그래도 이렇게 결론이 나니까 후련하기도 해요. 맨날 큰 소리로 싸울 때는 무슨 일이라도 날까 무서웠는데, 곧 끝난다고 하니까 두 사람 다 너그러운 표정을 짓기 시작하고.’


‘저도 그럴 수 있을까요...?’


‘예, 그러니까 저기 그...어떻게 되시건 간에 이겨내실 수 있을 거에요. 힘내요.’


 지금 내게 말해주는 이 모든게 거짓일 지도 모르지만. 나는 유월의눈, 이 사람을 믿고 싶었다. 지탱할 수 있는 존재란 너무도 소중했기 때문에 결코 놓치거나 하고 싶지 않았다. 


 아침이 되어, 학교로 향하지만 발걸음은 무거워. 나는 다시 또 유월의눈과의 대화를 바라기만 하고 있었다. 수업 시간이 되어도 창 밖의 하늘을 바라보며, 실없는 시간이 지나 다시 방으로 가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지나, 벤치에 앉아 태양을 피하는 체육 시간 또한 지나 오늘의 마지막 종이 울렸을 무렵.


“가은아.”


 집으로 향하는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루종일 멍하니 있던데, 뭔 일 있었어?”


 고개를 돌린 곳에 있는 것은 반장, 지아였다. 


“아니, 저기 그...별 일 아니야. 그냥 좀 피곤했나봐. 미안, 괜히 신경쓰이게 했나보네.”


“이게 미안할 건 아니지. 뭐, 그래도 별 거 아니라니까 다행이네. 지금 집으로 가는 길?”


“응, 저 정류장에서 버스타고 가면 돼.”


“나랑 반대 방향이네. 조심해서 들어가, 힘내고.”


 그렇게 지아는 나를 웃는 얼굴로 배웅하며, 나도 어색하지만 최대한 입꼬리를 올린 채 손을 흔들었다. 솔직히 거북했던 순간, 왜 지아는 갑자기 내게 말을 걸었을까. 여름 방학도 지난 지금까지 서로 아는 척도 하지 않았는데...어째서. 그저 지아의 단순한 변덕이었을까.


‘그렇게 친한 친구는 아닌가 보네요?’


‘예...맞아요. 애초에 저한테 그렇게 말을 걸어줄 정도로 친한 친구는 없는걸요.’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곳에서 사람을 찾지는 않았을테니. 스스로 말하고도 자신의 처지가 마냥 부끄럽기만 했다. 


‘갑자기 왜 그랬나, 지금 그게 계속 신경 쓰여서.’


‘좋게 생각해요, 이른봄 님. 같은 반 친구잖아요.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는 걸 알게되면 그 친구도 꽤 서운할걸요?’


‘음, 맞아요.’


‘그리고 혹시 알아요? 어쩌면 친한 친구가 될 지도 모르고.’


 정말 그럴지, 어떻게 확신할 수 없었지만 다음 날 부터 지아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의 한 때, 체육 시간의 한 순간, 그리고 횡단보도를 사이로 헤어져야 할 때 처럼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았지만.


“2월 6일이라, 그러면 빠른?”


“그런 건 아니야. 뭐, 부모님이 마음만 먹으셨다면 그렇게 입학 시켰겠지만...”


“그러지 않아서 이렇게 같은 학년이 된 거지.”


“넌 생일이 언제야?”


"이미 지나간 지 오래야."


 우리는 이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었다. 무척이나 특이하지만, 또 소중한 순간. 그런 시간을 보내며 지아의 존재는 내 안에서 점점 커져만 갔다. 


‘꽤 친한 친구가 된 거 같아요.’


‘그거 다행이네요.’


  내 모든 속내를 털어놓지만 못하지만, 그래도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생겨 다행이라고. 유월의눈 님은 다행이라며, 그 친구를 소중히 여기라고 대답해주었다. 


 유월의눈과의 대화, 그리고 지아와 보내는 시간. 얼마전까지만 해도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내게 이 둘은 버팀목이 되어,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안정되어가는 시간 속에서 나름 이런 마음도 먹을 수 있었다. 부모님이 어떻든 이제는 상관 없다고, 나는 괜찮다고. 


 하지만 이는 교만에 지나지 않았다. 어수선한 집 안, 드잡이질을 하고 있는 부모님. 문을 열고 들어온 내 존재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싸움을 이어나가는 둘을 보면, 두 발로 일어설 수 없어. 정신 또한 무너져 나는 바닥으로, 바닥으로 추락하기만 했다.


 쓰러진 내가 눈을 떠 처음 바라본 것은 기억에 남은 천장. 집에서 꽤 가까이에 있는 할머니의 집이었다. 


“아, 할머니...”


“됐다, 지금은 아무 말 하지말고 조금 더 누워있거라.”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일까. 부모님은 기절한 나를 이곳으로 데려와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 가족도 한계를 맞이해 버린걸까. 


 그리고 걸려온 전화는 내 예감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정리될 때 까지 당분간은 거기 있어주겠니?”


 그건 권유였지만, 내게 거절할 권리 같은 건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담담히 긍정의 의사를 밝히기만 할 뿐이었다. 몸이 회복될 때 까지, 그리고 부모님이 관계를 정리할 때 까지 머무르는 할머니의 집. 


“...여기서만큼은 편히 있거라, 우리 아가.”


 그런 배려를 받지만 오히려 내 쪽에서 거북하기만 했다. 순수히 나를 위하는 그 애정이 어색해서, 그런 애정을 못 받아들이는 나조차도 싫어서 어찌 할 줄을 몰랐다. 밤이 되면 다시 유월의눈에게 의존하기만 하면서.


‘힘내요, 어떻게 계속 이런 말만 하는 거 같은데...정말 제가 별달리 할 말이 없네요. 미안해요.’


‘아니에요, 그래도 그런 말을 해주는 유월의눈 님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렇게 말해주시니 그나마 마음이 놓이네요. 그러면 지금 그나마 쉴 수 있을 때 푹 쉬어요. 무리하지 마시고.’


‘예, 그래야죠.’

 

 하지만 나는 그런 조언을 걷어차버렸다. 할머니는 학교에 일주일 후에나 갈 수 있겠다고 연락을 했지만, 나는 고집을 피워 학교로 향했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거북하기는 매한가지일테니.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오늘은 할머니 집에서 살게된 지 3일이 되는 날이었다. 


“자, 여기. 설문지.”


 그래도 역시 무리기는 했는 지 아직 어지러움은 가시지 않아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하루의 반쯤을 보건실에서 보냈다. 학교로 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순간. 지아는 겨우내 몸을 일으키고 있는 내게 찾아왔다.


“담임이 갖다주라고 그래서.”


“아, 그...고마워.”


“아직도 많이 아픈가 보네.”


“응...학교에 오기에는 무리였나봐.”


“무리하지마, 쉴 수 있을 때 쉬어야지.”


“역시 그래야겠지...내일 어떻게 올 수 있을 지 모르겠네.”

 

 그렇게 대답을 한 순간, 기시감을 느꼈다. 분명 언젠가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은 느낌이 머리를 스친다. 


“아무렴 난 이제 가볼게. 힘내고.”


 무어라 한 마디 말이라도 건네고 싶었지만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지아는 보건실을 떠났다. 나는 혼자 번민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를 위로해주고, 내 아픔에 공감해주는 그 사람이 지아일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내 망상에 지나지 않을까.


 그 날 밤,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유월의눈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 무리였어요.’


‘한 번에 푹 쉬고 회복하는 게 좋지 괜히 몸 축낼 필요 없어요.’


‘맞아요, 그런 거 같아요.’


 유월의눈이라는 닉네임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며. 막연한 가정을 쌓아나가며.


‘이만 자러 가볼게요, 힘내세요.’


 그러면서도 용기가 나지 않아 차마 캐묻지 못한 채로 밤을 보냈다. 날이 밝아 해는 떠오르고, 나는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학교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학교에서, 지아는 내게 어머니를 따라 살게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마음이 조금 복잡해지네."


"그렇구나."


 ...나는 강한 예감을 손에 쥐기만 한 채로, 이 하루를 이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