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비가 정말 많이 내렸더랬지. 우산을 쓴 나는 저 앞에있는 마찬가지로 우산을 쓴 누군가가 빗바람에 몰리면서 꿋꿋이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물론 그녀는 그저 걷고 있었던 것이고 '꿋꿋이'라는건 그냥 내가 느낀 감상이긴 하지만 사실 비가오고 있을 때에는 나는 학원에 있으니 방금의 이야기는 말이 안되는 것이고 그냥 내 상상이라는 것이다. 내가 우산을 썼다는 점에서 또 '우산을 씀'이라는 표현의 반복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마찬가지로'라는 단어를 추가했다는 점에 주목해보라.

 아무튼 비가 정말 많이 왔던 것은 사실이었고 나의 학원은 늦게 끝나서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그 긴 여름의 해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캄캄했다.


 "밤은 깁니다. 그러니 먼저 씻으시는게 어떠신지요."


 도로시의 말이었다. 그는 듣는둥 마는 둥 하면서 현관 앞으로 간다.


 "또 어디를 가시는지요. 사과를 깎아놨다구요."

 "알 필요 없고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누나도 쉬세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요즘 재미있는 사극을 보고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는 어떤 숭고한 정신을 가지고 집 밖을 나선 것은 아니었다. 집 바로 앞에는 수많은 토끼들이 있다. 그는 그 토끼들을 보고 싶어서 밖으로 나선 것도 아니었다. 바깥은 무더웠다. 비가오기 직전의 습함으로 흙의 박테리아가 발생시킨다는 특유의 그 냄새를 맡지 못한 지 오래된 것 같다. 그는 뻔한 상상을 했다. 길거리에 보도블럭 대신에 DDR 발판이 반복적으로 깔려있다면 어떨까. 길거리에서 음악만 틀어준다면 그는 박자에 맞추어서 무한히 포장되어있는 화살표를 이리저리 몸을 틀어가며 밟을 자신이 있었다. 그것 참 재미있는 장면이 되겠는걸. 그는 게임센터에 도착했고 거기에는 DDR머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상한 걔도 있었다.


 "너는 여기서 혼자 뭐하냐?"


 민석은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같이 춤이나 배울래? 취미로 말이야."

 "아 진짜 싫어."


 민석은 기계에 코인을 넣는다.


 "한번 해봐. 내가 보고 평가해줄게."


 현택은 1스테이지, 2스테이지, 파이널 스테이지를 차례대로 클리어했다. 민석이 보기에 현택의 게임실력은 평범해보였다. 일반인치고는 잘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현택은 게임을 많이 하러 오는 편인 것 처럼 보이고, 그런 것 치고는 특별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특별하지 않은 플레이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민석에게는 특별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그는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발판 위를 움직였고 그는 게임의 화면보다 그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민석은 나름대로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DDR의 변속에 맞추어 시선을 적절하게 옮겼다. 마치 이 소설처럼 말이다. 물론 '적절하게'라는 표현은 서술자의 생각일 뿐이다. 실제로는 현택이 DDR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가장 가치있는 감상은 게임을 하고 있는 현택이 아니고 그것을 뒤에서 보고있는 민석도 아니며 더 뒤에서 우연히 멈춰서서 DDR을 하고있는 것을 보고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갤러리의 시선이라고 생각된다.

 조건을 만족하여 엑스트라 스테이지에 진입했다. 그는 More One Night라는 곡을 플레이했고 조건을 만족하여 One More Extra 스테이지에 진입했다.


 "또 할 수 있어? 완전 혜자잖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현택은 그 말투에서 그가 지루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확실하게 그것을 느꼈지만 이번 판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한다면 민석의 반응이 어떨까? 그냥 벙찌지 않을까? 아니면 자신의 생각을 알아봐줬다는 생각에 감동을 할까. 아니면 자신의 말로 그가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에 대해서 미안해할까? 이상한 생각들이 현택의 뇌용량을 점거하고 시작했고 그런 와중에 그의 몸은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시작한 이상, 멈출 수는 없다. 그래야만 했다. 그는 뒤를 흘끗 보았다. 민석 옆에 현민이가 있었다. 현민이랑 민석이랑 알고있는 사이인가? 아마 그렇겠지? 그렇게 곡이 끝났다.


 현택은 한코인을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애초에 게임에 집중이 잘 안되었다. 민석은 자신에게 '엄청 잘했다.'며 칭찬을 했다. 현택은 스스로 생각했다. 내가 그런 자신감을 가져도 될까?


 현택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평범했고 어쩌면 평범함 이하의 사람일 수도 있었다. 남들은 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 줄 모르지만 그는 스스로에게 결함이 있다고 여겼다. 그는 자신의 평범하지 못함에 대해서 슬퍼하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많이 모자르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부족함을 지금은 다른사람들이 특색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언젠가 이 부족함이 결국 나 자신의 발목을 잡아서 나의 일상과 미래를 망가뜨릴지 모른다는 우려는 항상 그를 잠식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를 우울하게 했다. 우울함이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행복의 부재에서도 올 것이다. 자신처럼 스스로의 결점으로부터 비롯될 수도 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삶이 행복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평가를 매긴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별점을 매긴다. 다른 사람은 술을 즐긴다. 술의 맛과 향을 즐긴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가치에 대해서 말하고는 한다. 그러나 현택이 생각하건데 그런 음식에 대해서 과연 해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가 의문이었다. 와인이라는 것, 커피라는 것. 그것을 미학적으로 다루어봤자 달고 쓰고 신 것의 조합일 뿐이지 않은가. 결국에 특정한 '카타르시스'로 생각되는 것에 사람들이 너무 의미부여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거기에 어떤 특별한 것이 있는 것 처럼 여기는 것이다. 그렇게 최종적으로는 문학으로 돌아온다. 지적 활동에 있어서 가장 정적이고 딱딱하며 가장 머리로 와닫는 이 문장들 말이다. 소설을 읽어가면서 독자들은 어떠한 특별한 지점으로 도달했다고 '착각'하곤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문학적 성취'라고 부른다. 웃기는 일이다.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너무 늦게 들어가면 안된다. 도로시 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한소리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