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이슬만 먹고 자란 귀뚜라미의 맑은 울음소리같은 공기 대신에 온 세상 근심걱정을 뭉쳐 놓은 듯이 매캐한 공기가 내 폐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콜록, 콜록. 켁켁."

"와! 이렇게 단둘이서 외출하는거 정말 오랜만이다!"

마리는 굉장히 들떠보였다. 방학 동안 한 번도 밖에 못 나갔기 때문일까.

"저기 봐! 저 옷 정말 이쁘다!"

"한눈팔지 마 마리. 우리가 뭐 때문에 여기 온 줄 알지?"

"에이. 사람이 너무 재미없게 살아."

그렇게 서로 아옹다옹하는 동안 어느 새 천명시 중앙도서관에 도착했다. 솔직히 도서관 치고는 건물의 모양이 특이했다. 두루마리 휴지같이 가운데가 비어있는 건물에, 그 비어있는 가운데에는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고 천으로 눈을 가리고 칼 두 자루를 머리 위에서 x자로 교차한 동상, '부정의 여신상'이 서서 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저 거지같은 동상은 CCTV, 노바기와 함께 시도때도 없이 보였다. 눈을 찌푸리면서 시선을 문 쪽으로 돌렸다. 문 옆 벽에 포스터가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노바는 국가가 아닙니다. 노바는 공동체입니다. 노바는 자유입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 포스터에서 눈길을 돌렸다.

"마리, 우리 흩어져서 찾아보자. 이렇게 대충 찾다간 한나절이 걸릴 거 같아."

"알았어. 그럼 내가 왼쪽을 맡을께. 넌 오른쪽을 맡아."

마치 짚더미 속에서 바늘을 찾는 기분이었다. 도서관 중앙정원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무슨 고민이 쌓였는지 담배를 피는 사람, 건물 안이 답답한지 나와서 책을 읽는 사람, 서로에게 사랑을 보내는 연인 등등.

'누구부터 조사해야 되지?'

그 때,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다 헤진 옷을 입고, 촌티나는 금속 테 안경을 쓴 초췌한 중년의 남성이었다. 나의 본능은 그를 당장 조사해야 된다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내 이성이 억눌렀다.

'만약 아니면 어떡하지? 괜히 창피하진 않을까?'

"그치? 너도 저 사람이 수상하지?"

광장 왼쪽 끝에 있던 마리가 어느 샌가 내게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정원 반대편 끝에서도 느낄 정도로 매우 수상했나 보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성큼성큼 그 중년 남성에게 다가갔다.

"어이, 마리. 기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혹시 밤마다 치안유지대를 때려눕히고 다니는 자칭 슈퍼히어로에 대해 아는 것 있으시나요?"

맙소사, 내가 못 살아.

"아아. 그곳은 시커맸지. 마치 괴물의 입속처럼 말이야."

"네? 무슨 말씀하시는 거에요?"

그래. 그냥 미친 아저씨야. 헛발 짚은 거라고. 그러니까 사과드리고 빨리 돌아와, 마리.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 아주 아주아주 어두웠어. 별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 24시간이 지났는지 72시간이 지났는지도 몰랐어. 그저 주기적으로 지옥에서 악마가 올라와 날 한계까지 몰아붙였어."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정말 단단히 미쳤군.

"오, 그저 난 알고 싶었을 뿐이야. 요람 밖의 요정들, 엘프에 대해서. 그래서 호기심에 가득 찬 아기처럼 요람을 들추고 밖을 내다보았지. 뭘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악마들이 날 잡아가서 연옥에 가두고 괴롭혔어."

톨킨의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나 보군. 그런데 어떻게 읽었지? 불건전 서적일텐데. 내가 알기로는 노바 공식 지정 불건전 서적들은 천명시 내에선 우리 학교 비밀 도서관에서만 볼 수 있을텐데.

"그런데 한 늠름한 용사님이 나를 구해주셨지."

그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한 사람을 가리켰다.

"아아. 당신은 나의 용사. 나의 구원자. 나의 두 번째 부모님."

그가 가리킨 사람은 붉은빛이 도는 갈색 머리에 앳되지만 다부진 얼굴을 하고 있는 청년이었다. 그 청년은 벤치에 앉아 쓸쓸하게 '전 세계의 정치와 노비즘'을 읽고 있었다. 그래. 분명히 영웅놀이하는 밤의 무법자가 저 사람이다. 라고 확신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또 요동쳤다. 만약 저 아저씨가 단순히 미친 사람이라 그냥 아무나 가리킨 거라면? 마리는 그런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또 망설임없이 성큼성큼 그 청년에게 다가갔다.

"저기, 실례하지만 그 책 어디서 찾으셨어요?"

"아, 3층 A동 '정치'칸을 잘 찾아보시면 2권 정도 있어요."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그쪽도 노바 지방공무원 고시 대비하세요? 아니면 중앙공무원?"

"하하. 아니에요. 그냥 관심있어서 보는 거에요."

이 말을 하면서 그의 눈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번쩍였다.

"우와. 신기해요. 정치학을 재밌어하는 사람이 있다니. 저는 공부할 때마다 어려워서 머리아프던데. 혹시 실례가 되지 않으신다면 저기 스터디룸 가서 같이 공부하시지 않을래요?"

"예? 저희 초면인데 괜찮나요?"

"에이. 같이 공부하면서 차차 구면이 되면 되지요."

마리는 당황해하는 그 남자를 끌고 가면서 내게 신호를 보냈다. 나도 조용히 그녀를 따라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