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정확히 새벽 4시에 쓰기 시작했다. 지인들과 잡담을 하면서 서로 잠에 취한 채로 잡담을 듣고 나누면서 쓰고 있다. 그렇지만 이 새벽에 나는 내 방바닥에서 엉덩이를 지지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새벽이란 시간을 좋아한다. 혼자고, 어둡고, 혼자 생각할 여지가 많고. 삶을 회상하고. 그리고 모든 감정을 토로하기 좋은 시간이다.


여러분은 MBTI를 아는가? 사실 MBTI는 근거가 없다고 필자는 생각하는 편이다. 사람을 어떻게 2^4=16 가지로 나누는 것은 솔직히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속 편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다. 말 한마디를 갖고 사람은 죽기살기로 싸운다. 사소한 말싸움으로도 사람을 죽이는 시대에 도달한 것이다. 만약 주제가 이상하다면 이해해라. 아무말 대잔치다. 원래 대화란 것은 무한히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하나로 끊어지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이 사실을 대학교에서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듣다가, 어느 순간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듣게 되는 것이 세상이니까.


세상은 내가 원하는 것을 골라 들을 수 있는 권리를 주지만 원하지 않는 것을 받아질 의무를 준다. 그리고 그 권리와 의무의 비율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사는 세상이 모두가 사는 세상은 아니니까. 이러다가 귀가 심심해서 음악을 틀어보았다. 여수 밤바다. 밤에 어울리는 노래인 것 같다. 외로운지 고독한 건지 헷갈리는 감정을 다시 저울질 하면 창작의 영감을 마구마구 뽑아내는 것을 보면 이는 고독이 맞는 것 같다. 내 기준으로 생각하면 말이다. 만약 창작이라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했다면 그냥 사소한 것을 떠올리는 것이다. 모든 것.

예시를 들어보면 머리카락이 빠졌다. 단순한 사실을 말해도 괜찮다. 머리카락이 빠진 이유를 서술하던 머리카락이 빠지고 난 후의 심정을 서술하던 이는 너의 창작의 시작이 될 것이다. ...사실이니까.


시간의 정의에 의해 어제라고 정한 날에 비가 내렸었다. 눈이 녹아 비가 된 것이다. 공기 중의 수증기가 티끌과 뭉쳐져서 구름이 되고, 그 구름이 점점 무거워지게 되면 무게를 덜기 위해 빗방울을 내린다. 공기 중에서 그 빗방울이 얼어버리면 눈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비가 된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니까 많은 것이 생각났다. 비를 맞고 나면 감기에 걸리지만, 나는 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것을 보면 구름이 근심을 버리는 것 같다. 나도 이런 근심을 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근심은 잊혀지기 마련이지만 반추라는 특성으로 인해 근심을 잊어버릴 수 없게 되었다. 쌓이고 쌓인 나머지 그만 제 근심에 배가 불러 죽어가는 생물이 된 것이다. 생물의 진화는 긍정적인 의미로도, 부정적인 의미로도 해당되니까.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어느새 이야기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주제라는 원자가 계속 튀어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정확히는 쿼크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 옳다. 쿼크가 모여서 원자가 되고 원자가 모여서 순수한 물질, 불순물이 되니까. 이야기를 하면서 불순물이나 순수한 물질을 모으면 눈에 보여지기 때문이다. 눈에 보여지는 것이 어떤 것이든 그건 책으로 쓰여질 수 있는 권리가 생긴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만약 책으로 낼 수 있다면 누구나 환영할 것이다. 아마... 그럴 거다. 실록에선 치부도 쓰여졌으니까. 누군가가 보고 판단해주겠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