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



요괴 부엉이 사냥으로부터 며칠이 지나갔다.


끝날 듯 말듯하던 가을은 명을 달리했다.


꺼드럭거리는 동장군의 계절이었다.


우리는 동장군의 도래 후 며칠이 지나서야 마을을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 거시기."



아침부터 다가오는 것치곤 제법 미적지근하다.


총잡이 여인이 그 푸르른 머리카락을 긁적였다.



"오늘... 나랑 마실 좀 안 나가보갔소?"


"마실이라면 그간 둘러본 걸로 충분하지 않소?"


"그, 그야 글지만서두."


"새삼 고향을 떠난다니 심란한 게요?"



오늘 아침, '또 다른 마을을 하나 들러야 하느니라' 라는 나리의 언질이 있었다.


"왜 진작 말 않고?" 라 묻자, "휴식도 있어야지 않겠느냐." 라 답했다.


총잡이 여인은 고개를 저었다.


추워서 싫은데.



"무당 처자와 가지 그러시오?"


"사랑의 밀회에 초대해주는 건 기쁘지만 사양할게요.

저는 다리가 아파서요. 몸도 무겁고."



무당 여인이 배를 매만지며 답했다.


그보다 지금 걸 어떻게 이해하면 사랑의 밀회로 착각하는 거야.


평소에 그런 생각이나 하니까 남이 말하는 문장을 똑바로 못 주워담지.


저런 마구니 덩어리 같으니라고.



"아님 나리랑 함께 가시오."


"그거는 나도 부탁을 혀봤는디 나리가 거절혀부렀어."


"이 몸은 바쁘니라."



짐을 바리바리 든 나리가 끼어들었다.


높이높이 쌓인 짐덩어리에, 나리의 작은 키는 파묻혀버리고 말았다.



"이 마을에서 있었던 일도 정리해야 하고,

관아쪽 사정도 봐둬야하고,

지금까지 요괴로 인해 있었던 피해도 기록해둬야 하고,

재워줬으니 사또 녀석에게 나름 감사도 표해야 하고....

더 뭐 있더라?"


"그렇게 할 일이 많았소?

저번 마을에서 출발할 땐 안 했던 일 같은데.

특히 기록 같은 건."


"아직 요괴를 처치하기 전이었으니 그랬지.

지금은 그때 잡은 요괴며, 어제 잡은 요괴며, 두 요괴에 대한 기록을 전부 써야 하니 바쁜 게니라.

알아들었으면 애 돌보는 역할은 자네가 하거라."



애 돌보는 역할이라니.


무당 여인도 거들었다.



"나리가 정리되는 대로 마을을 뜰 텐데,

이 마을을 느긋이 둘러보려면 지금이 마지막일 거에요.

갔다오세요."



어째 폭탄돌리기 당하는 느낌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한데 이번엔 어느 마을로 가는 게요?

이번에도 요괴 잡으러 간단 건 알겠는데."


"가면서 설명하마. 지금은 바쁘니!"



어지간히 바쁘시구만.


어깨를 한번 으쓱하곤, 있는 힘껏 생색을 냈다.



"마실 따라가주는 이가 나 밖에 없구려. 감사하시오."



총잡이 여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처음으로 들른 곳은 여인의 본가였다.



"어무니. 나 왔소."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온 거구나.


시간이 걸리겠다 여기려니 금새 여인이 집에서 나왔다.



"인사는 벌써 끝났소?"


"어제 미리 혔네. 오늘은 얼굴만 본 거구."



앞장을 서는 꼴을 보니 따로 들를 곳이 더 있는 모양이었다.


잠자코 따라나서며, 여인이 들고 온 걸 가리켰다.



"그 활은 언제 가져온 것이오?

아침에 나올 땐 못 본 물건 같은데.

자세히 보니 댁 네 집안에 모셔져있던 놈이랑도 다른 것 같고."


"이거? 이건... 성님 거이시."



'형' ? 고인 '김 치국' 이 살아생전 쓰던 물건인가.



"우리 성이 활 한번 잘 쏴부릈제.

어렸을 적엔 성맨치로 되는 거이 내 꿈이었응께."



아니, 님 형 얘긴 별로 궁금하진 않은데요....



"긍디 이 활을 손을 못 대갔드라구.

꼴도 보기 싫구.

성이 죽고서부텀 그랬네."


"이젠 괜찮소?"


"성은... 성이었단 거를 알아부렀응께.

인쟈는 암시랑토 안 혀."



얼마 전 밤에 봤던 집을 들어갔다.


바로 옆집, '김 치국' 의 집이었다.


고인의 아우, 푸른 머리 여인은 옷섶에서 긴 꼬챙이 두조각을 꺼냈다.


일전, 괴조 둥지 근처에서 봤던 그 꼬챙이다!


여인은 꼬챙이를 마당에 나란히 꽂았다.



"도사 양반 혹시 빡주 있능가?

빡주 아니래두 술이믄 괜찮은디."


"술은 없소. 물은 있어도.

떠돌이가 술 들고 다니면 그보다 위험한 일이 어딨겠소."


"그도 그렇구만.

그라믄 물이라도 줘보소."



선뜻 넘기니 물을 꼬챙이에 들이부었다.


여인이 뭐라 중얼거렸다.


내용은 알 길이 없었다.


혼잣말 비슷한 성량이었으니까.


여인이 일어서며 일렀다.



"끝으로 한 곳만 더 갑세."



이번엔 꽤 걸었다.


둥지 가까이까지.


벙어리 딸의 집이었다.


배려한답시고 "밖에서 기다리겠소" 하였다.


여인은 도리질을 쳤다.



"따라오소. 나도 조절 몬 헐까봐 무서웅께."



하란 대로 하였다.



"있능가?"



가벼이 던져보니 바로 미끼를 물었다.


안에서 금방 사람이 튀어나왔다.


벙어리 딸래미, 당사자였다.


아이가 마당에 있던 나뭇가지를 집어 이리저리 땅에 글자를 새겼다.



[오셨어요? 어머니는 외출하셨습니다.]


"고 편지, 읽었다잉."



아이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이 어쩐지,

말을 고르는 듯도 느껴졌고

두려움에 떠는 듯도 느껴졌다.


어린 아이로구나.



[죄송해요.

어머니가 오해하는 거였는데,

김 치국 언니는 버섯이 어디 있는지만 알려준 거 뿐인데,

그때 일만 떠올리면 무서워서 입을 열 수가 없었어요.]



"아야, 그런 말 듣자고 온 거 아녀.

당초에, 우티가 갈기갈기 찢겨왔는디 아가 '오해요' 헌다고 믿겄어?

협박을 당혔구나 하긌지."



'우티' 가 옷인가.



[그러면 저기, 오신 이유는....]


"보고할라구 온 거여."


[보고요?]


"인쟈 쫑이다고.

부엉이 그 놈 잡아다 족쳐부렀으야."



소녀가 멈칫하였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녀가 귀를 꾹꾹 눌렀다.


머리를 이리저리 기울였다.



[그 괴물을요?]


"족쳐부릈지.

관아 놈들한테 고기를 줘부렀응께, 가서 쬐께 달라고 하믄 줄 것이여.

며칠 됐응께 상했을지도 모리지만서두."


[엄청 크잖아요. 그 괴물.]


"그라제. 날아도 당기구.

바람도 막 불어제껴불구."


[눈도 밝고 귀도 밝은데.]


"그란해도 그 땀시 나가 죽을 뻔 혔제.

뽀스락 소리 들리자마자 고놈 눈이 확 돌아가 날 보는디!

아따, 얼매나 두렵던지 속곳에 오줌을 지릴 뻔 혔어."


[정말 처치하신 거군요?]


"어른 말하는디, 참말이지 그짓말이갔냐?"



고개를 떨군 아이는 작은 손바닥으로 무거운 눈가를 지탱했다.



[언니.]



아이는 무언가를 이어쓰려다 관뒀다.


대신 아이는 한손으로 제 목을 감쌌다.


아이의 남은 한손은, 바들바들 떨면서도 용감히 총잡이 여인의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



"거, 것, 거... 거마어여."


"잡기는 나만 잡은 것이 아니여.

이 도사 양반도 항꼬 잡았응께."


"거마어여."



아이가 내게도 말을 했다.


발음이 새지만 고맙단 뜻이리라.


"고마우면 내 약 하나만 사주겠니? 이게 정말 좋은 약인데-." 까지 했다가 총잡이 여인한테 옆구리를 꼬집혔다.


둘이 무어라 대화를 나눴다.


들으면 실례되는 내용이겠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행여라도 나가 화를 내불 적에 잡아달라구 데려온 건디."



다시 집을 나서며 여인이 쫑알거렸다.



"의미가 없었구만."


"화는 왜 치민단 거고,

왜 뱉기는 싫다는 게요."


"그야... 아가 말도 몬 허게 됐으믄 충분하제.

나까장 아를 갈궈서 쓰갔어?

우리 성이 지 땜시로 죽었다고 맘고생도 이만저만이던디."



화를 뱉어내기 싫은 이유만 말하고, 화가 치민 경위는 안 알려주는구만.


이 여인, 설명이 불친절한 구석이 있다.



"그 아니래도 오해야 인쟈 관아에서 풀어줄 거구."



무슨 오해 말이야.


단서를 차근차근 조합해보았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당신네 집안 전통인지 몰라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구려."


"?"


"가령 작명법이라던가. 있잖소."


"'김 치국, 김 찌치개, 김 치만두' 가 뭐가 어때서."



이 당당함!


어처구니가 없군.



"혹시 부친과 모친 이름은 어떻게 되시오?"


"아부지가 [김 장].

어무니가 [배 추]."



참 그럴 듯한 부부다.


천생연분이네.



"지금 얘기, 꼭 나리랑 무당 여인한테도 들려주시오.

혼자만 웃을 수 없으니."


"자네는 남의 이렘이 웃기는가?

괜찮게 봤는디, 이 사람 너무하네!"


"나 뿐 아니라 누구라도 이리 말할 게요...."



티격태격거리며 관아에 다다랐다.


관아엔 미친 듯이 무당 여인을 흔드는 사또가 있었다.


나리는 즐거운 눈빛으로 관람만 하고 있었다.



"왜 안 돌아오는 겁니까! 예?

처치하고 며칠 지났잖아요! 예?"


"긋, 사, 사또, 일단 이거... 놓으, 놓으세요."



기기묘묘한 상황인지라 나리에게 먼저 물었다.



"무슨 일이오? 무당 여인이 또 음담패설이라도 했소?"


"나도 모르니라.

무당에게 먼저 관아로 가두라고 이르고,

사또한테 지난 마을 이야기를 조금 했더니 사또가 부리나케 달려 무당한테 가더구나.

급히 따라와보니 이 모양이었느니라."


"음담, 패, 설이라뇨...! 도사님은 대체 절 뭐라고 생각하시는 거에요...!"


"그대의 평소 언동을 떠올려보시오."



무당 여인의 낯빛은 예사롭지 않았다.


앞뒤로 흔들리는 가슴도 예사롭지 않았다.


대꾸는 저리 했지만 도와주었다.


둘을 떼어내었다.


장난기 많은 나리가 "피이" 라며 볼멘소리를 냈다.



"한참 재밌었는데...."



빨강 꼬맹이가 궁시렁거렸다.


차분히 사정을 읊게 하였다.



"옆 마을에 갔던 녀석이 얼마 전에 돌아왔습니다."


"옆 마을이라면?"


"산회 마을 말입니다."



큰 뱀 잡았던 그 마을?



"그 녀석이 한창 연락두절이다가 겨우 돌아왔는데, 살이 쪽 빠져있더랍니다.

물으니 원인 모를 병인가 뭔가를 앓았다고 그러더군요.

며칠 전에 겨우 병이 나았고."



뱀의 저주에 시달리던 사람인가 보네.


우리가 뱀을 죽여서 저주가 나은 거고.



"신통한 일도 있구나 싶어 이 얘기를 어사님께 들려줬습니다."


"그래서 내가, 뱀 요괴를 잡은 이야기며 저주 얘기 따윌 풀었느니라."


"하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 마을의 여자로 변하는 현상도 부엉이 요괴 때문이었는데,

요괴를 잡고도 어찌 본래대로 돌아오지 않는 겁니까."



응? 정말 그렇네.


총잡이 여인이나 사또나 요괴 때문에 여자로 변한 건데 아직도 그대로였다.


무당 여인이 투덜거렸다.



"여기 저주는 이미 끝난 거라고요.

산회 마을 저주는 진행 중이었으니 막을 수 있었던 거고!

조원의 저주는 이미 완료되어 버렸는데 어떻게 막겠습니까.

관리란 분이 어찌 사람이 말을 하는데 듣질 않으시는지 원!"


"그러면! 이대로 쭉 살 수 밖에 없단 말입니까?"



사또가 악을 쓰듯 말했다.



"저주도 영원한 건 아니니 언젠간 풀리겠죠."


"언제 말이십니까!"


"그, 저기, 한 300년 쯤 후에..."



몇년?


300년?


사또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300년! 300년!

아이고! 300년이면 늙어서 땅에 묻히고 백골이 진토될 시기인데 무슨 소용이란 말이십니까!!"



엉엉 우는 어린 아이 사또.


곁에는 푸하하하 웃는 어린 아이 어사가 있었다.


미안한지, 무당 여인이 머리를 긁었다.



"아, 아니면 저기.... '김 치국' 이 여자가 됐단 마을이 어디였죠?"


"거기도 낙호이니라."


"예, 흐윽, 낙호 마을입니다.

동쪽으로 쭈욱 가면, 흑... 있는 강을 건너면 있습니다."


"잘 됐네요, 낙호! 낙호가 원인이었으니 그 원인을 제거하면 해결될 지도 몰라요!"



응?


무척 의외의 행선지가 추가되는 소리를 들은 기분인데?



"정말이십니까?"


"예, 예! 그럼요!

틀림없어요!"


"... 무당이시라면 모시는 신이 있으시지요?"


"있죠."


"그 신위께 맹세할 수 있으십니까?"


"...."



침묵.


무당 여인의 침묵을, 사또는 퍽 빨리 알아챘다.



"뿌에엥! 끝났다, 이제 다 끝났어!!"


"아, 아아아, 아니아니, 맹세할 수 있어요!

맹세합니다!

저희가 낙호로 가서 원인을 제거하고 다들 남자로 되돌릴게요!"



역에서 말을 빌리고 나온 후, 마을을 떴다.


무당 여인이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죄송해요... 거기선 그렇게 말해야했어요.

불안해하셨잖아요."


"누구랑 말하시오?"


"신이요."



내 질문에 무당 여인이 얼른 대답하고 도로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이어나갔다.


모시던 신이랑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됐다고, 일전에 그러지 않았나?



"안심시켜드려야 했잖아요.

어린애 모습으로 우시는데 얼마나 가여워요.

... 동자님? 제 말 듣고 계시죠?

삐친 거 아니죠?"



무당의 맹세, 그 진위여부는 알만 했다.


300년이겠지 뭐.


무당 여인이 한숨을 쉬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더라니만, 오락가락하네요."


"뭐가 말이오?"


"동자님. 제가 모시는 신이요.

한동안 애타게 불러도 묵묵부답이셨는데 어제부터 갑자기 말씀을 하시기 시작했어요.

근데 띄엄띄엄이라 자꾸만 끊기고, 말을 마시고."



또 신 타령.


더구나 연락이 오면 오는 거지, 띄엄띄엄 오는 건 또 뭐람.


그런 변덕쟁이 같은 신이면 안 섬기고 말지.


나라면 그랬을 터다.



"나리는 괜찮소?"


"뭐가 말이더냐."


"나리가 가려던 방향은 낙호가 아닐 텐데

이렇게 멋대로 행선지가 늘어도 괜찮은 거요?"


"본래 향하려던 목적지가 낙호였느니라.

낙호의 요괴가 소문이 자자하였으니 그 놈을 구축하라는 게 주상 전하의 명이었지.

물론 가는 길에 다른 요괴가 있으면 그들도 처치를 하라하셨지만,

봉남과 산회에 들렀던 목적은 사람을 얻으려던 것 뿐이었네."



산회에서 나를, 봉남에서 총잡이 여인을 얻겠단 계획이었군.


총잡이 여인이 구시렁구시렁 불평을 토로했다.



"행선지가 늘어도 되냐는 걸, 왜 말 탄 놈한티 묻는다드냐.

다리 아프게 이래 걸어가는 사람한테다가 물어야지."



아닌 게 아니었다.


말을 탄 다른 이들관 달리, 총잡이 여인 혼자만 제 발로 걷고 있었다.


무당 여인이 멋쩍게 웃었다.



"아, 하하. 포수님 제 말 타실래요?"


"됐네. 나가 미쳤다고 임산부를 다 걷게 허지."


"어쩔 수 없었잖느냐. 말이 세마리 밖에 없었으니."


"변명은 집어치우소.

나랑 둘이 탔으면 되는 거를 꼭이 혼자 쓰갔다고 빽빽 억지부려놓구선...."


"같이 타면 밀착해야 하지 않느냐."


"어머, 밀착해서 비빈다고요?"


"이젠 비슷하지도 않잖소.

제발 머릿 속에서 마구니 좀 지우시오!"



골머리를 앓게 만드는 이는 언제나 무당 여인이었다.


화기애애한 대화는 맥없이 끊겼다.


어디선가 고음이 울렸다.



'삐이잉-!'


"뭐죠 방금? 피리 소리?"


"어디서 들어본 소리 같구나. 귀에 익으니."



알아챈 이는 갑사 출신이었던 총잡이 여인이었다.



"엠벵! 저거 효시잖여!"


"전쟁터도 아닌데 무슨 효시냐, 효시는."


"산적이여 산적!"



총잡이 여인의 발이 분주히 움직였다.


말 탄 세 사람은 느긋느긋했다.



"산적이면 별 것도 아니로구나.

해치우고 편하게 가자꾸나."


"찬성이에요. 요괴도 잡았는데 산적이 대수겠어요."


"운이 좋으면 산적이 가진 말을 하나 강탈할 수도 있겠구려."


"알도 몬 허믄 씨우리지 마소!

이 동네 산적들이 얼매 징한 놈들인디!"


"그래봤자 산적이겠지, 포수 양반은 어찌 그리 경거망동하시-."


'화르륵'



타오르는 불꽃이, 우습게 얕잡아보던 정신머리를 두들겨패주었다.


무당 여인과 나리도 적잖이 당황했다.



"뭐, 무엇이더냐 방금?"


"웬 불길이 도사님 얼굴 옆을 슥 지나갔는데요...?"


"저거 도술 아니더냐?"



얼핏 봤을 때 도술이었는데?


심지어 짐작이 맞다면,

나도 배우다 포기한 술법이었다.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그대로 하였다.



"달리시오! 얼른!!"


"아, 앗, 이럇!"


"달리거라 이 놈! 어서!"



두 눈이 토끼눈이 된 우리 파티.


핏줄을 발딱 세우고 말을 재촉하였다.


말은 산을 금새 빠져나왔다.


도중에 정체 모를 찜찜함을 느낀 것치곤, 성공적인 도주였다.


이름 모를 강 앞에 이르러서 태세를 정비했다.



"다들 다친 곳 있소?"


"없느니라. 나무에 쓸리긴 했지만."


"저도 문제 없어요.

너무 빨리 달려서 애 떨어질 것 같단 점만 빼면요."


"하면 모두 무사한게로구나. 어찌어찌."


"그렇네요. 안 온 사람 손 들어보실까요?"



농담따먹기나 하며 하하호호 웃었다.


꺼림칙한 불안감은, 약 10초 쯤 후에 정체를 드러냈다.



"아! 총잡이 양반!

그 양반 까먹었잖소!"



*


조원편 끝
산적편 시작

이번화 원본은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