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멋대로 하는 삼국지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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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윤의 물음에 조조가 말했다.


"요즘 이 조가 몸을 굽혀 동탁을 섬기고 있는 것은 기회를 틈타고자 함입니다. 지금 동탁이 저를 자못 신임하고 있어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듣자하니 사도께 칠보도(七寶刀)가 있다고 하던데, 저에게 빌려주시면 상부(승상의 업무용 공관)로 들어가 찔러 죽이겠습니다. 비록 죽는다 하더라도 한이 없겠습니다!"


왕윤이 말했다.


"맹덕에게 과연 그런 마음이 있다니 천하에 다행인 일이오!"


바로 친히 술을 따라 조조에게 바쳤다. 조조가 땅에 술을 뿌리고 맹세하자 왕윤은 곧바로 보도를 가져와 조조에게 주었다. 조조는 칼을 숨기고 술을 마신 후 즉시 일어나 관원들과 작별하고 나갔다. 여러 관원들은 다시 한차례 앉아 있다가 역시 모두 흩어졌다.

이튿날, 조조는 보도를 차고 상부로 와서 물었다.


"상국께서는 어디에 계시느냐?"


시종이 답했다.


"작은 누각에 계십니다."


조조가 바로 들어가니 동탁은 침상에 앉아 있고 여포가 곁에 서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 조조는 생각했다.


'여포 저 자가 있으면 일을 그르친다!'


동탁이 말했다.


"맹덕은 어찌하여 늦게 왔는가?"


"말이 허약해서 걷는 것이 늦습니다."


동탁이 여포를 돌아보며 일렀다.


"내게 량주에서 가지고 온 좋은 말이 있으니 봉선 네가 직접 가서 한 마리 골라 맹덕에게 하사하라."


여포가 명을 받들고 나갔다. 조조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역적 놈이 드디어 죽는구나!'


즉시 칼을 뽑아 찌르려 했으나 동탁이 힘이 장사인 것이 두려워 감히 경솔하게 움직이지 못했다. 동탁은 너무 뚱뚱해 오래 앉아 있지 못하고 마침내 몸을 눕혀 누워버렸고 얼굴마저 안쪽으로 향해 돌렸다. 조조가 다시 생각했다.


'이 역적 놈! 이제 끝이다!'


급히 손에서 보도를 뽑아 막 찌르려 하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동탁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전신 거울을 보다가 뒤에서 조조가 칼을 뽑는 것이 비치자 급히 몸을 돌려 물었다.


"맹덕은 뭘 하는가?"


이때 여포가 이미 말을 끌고 누각 밖에 와 있었다. 조조가 놀라서 허둥대며 곧바로 칼을 잡고 무릎 꿇으며 말했다.


"저에게 보도 한 자루가 있는데 상국께 바치고자 합니다."


동탁이 받아보니 칼 길이는 1척 남짓하고 칠보로 상감하여 장식했으며 지극히 예리하고 날카로운 것이 과연 보도인지라 여포에게 건네며 거두어들이게 했다. 조조가 칼집을 풀어 여포에게 넘겨줬다. 동탁이 조조를 데리고 누각을 나와 말을 보여주자 조조가 감사하며 말했다.


"빌려주시면 한번 타보겠습니다."


동탁이 바로 조조에게 고삐를 주게 했다. 조조가 말을 끌고 상부를 나가 채찍질하며 동남쪽으로 달렸다. * 여포가 동탁에게 말했다.


"방금 조조놈이 마치 암살하려는 것 같은 자세였는데 들켜서 칼을 바친 것 같지 않냐?"


"나 또한 그것을 의심하고 있다."


말하는 사이 마침 이유가 오자 동탁이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이유가 말했다.


"조조는 도성에 처자식이 없고 혼자 처소에서 거처하고 있습니다. 지금 사람을 보내 부르십시오. 의심 없이 바로 오면 칼을 바친 것이고 핑계를 대고 오지 않으면 필시 암살하려고 한 것이니 바로 잡아다 문초해보십시오."


동탁이 옳다 여기고 즉시 옥졸 네 명을 보내 조조를 불러오게 했다. 한참지나서 보고가 들어왔다.


"조조는 거처로 돌아오지 않고 말을 타고 나는 듯이 동문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문지기가 물었더니 조조가 말하기를 '상국께서 긴급한 공무가 있어 나를 보내셨다' 하고는 말을 몰아 가버렸답니다."


이유가 말했다.


"조조 이 도적놈이 켕기는 것이 있어 도망친 것 같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암살 미수가 분명합니다."


동탁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내가 이놈을 중용했는데 도리어 나를 해치려 했구나!"


이유가 말했다.


"이 일은 필시 공모자가 있을 터이니, 조조를 잡으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동탁은 즉시 도처에 문서를 하달하고 생김새를 그려 조조를 체포하게 했는데, 사로잡아 바치는 자에게는 상금 천금에 만호후로 봉하겠으나 은닉하는 자는 같은 죄로 다스리겠다고 했다.


한편 조조는 성 밖으로 도망쳐 나와 패국 초현을 향해 나는 듯이 달렸다. 도중에 중모현을 경유했는데 관문을 지키는 군사에게 붙잡혀 현령 앞으로 끌려왔다. 조조가 말했다.


"저는 각지를 돌아다니며 물걸을 파는 상인으로 두 글자 성을 가진 황보(皇甫)라 합니다."


현령은 조조를 자세히 눈여겨보더니 한참을 망설이다 비로소 말했다.


"내가 이전에 낙양에서 관직을 구할 때 일찍이 네가 조조라는 것을 알았는데 어찌하여 숨기고 감추려 드느냐! 옥에 가두었다가 내일 도성으로 압송하여 상금을 청해야겠다."


현령은 관문으 지키는 군사에게 술과 음식을 하사하고 돌아가게 했다. 한밤중이 되자 현령은 따르는 심복을 불러 은밀하게 조조를 끌어내 후원에 데려오도록 하더니 그를 심문하며 추궁했다.


"내가 듣기로는 상국이 그대를 야박하게 대하지 않았다는데 무슨 까닭으로 스스로 화를 자초했는가?"


조조가 말했다.


"제비와 참새 따위가 어찌 큰 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알겠는가! 그대가 이미 나를 잡았으니 당장 압송하여 상이나 청할 것이지 구태여 그리 물을 필요가 있는가!"


현령이 좌우를 물리고 조조에게 일렀다.


"나를 얕보지 마라. 나는 속리(俗吏, 평범한 관리)가 아니다. 아직 참다운 주인을 만나지 못했을 따름이다."


조조가 말했다.


"나의 조상들께서 대대로 한나라의 녹을 먹었는데 나라에 보답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금수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내가 몸을 굽혀 동탁을 섬긴 것은 기회를 틈타 해로운 것을 제거하고자 했을 따름이다. 이제 일이 틀어졌으니 이것도 하늘의 뜻이로다!"


현령이 말했다.


"맹덕은 이번에 어디로 갈 생각이었는가?"


조조가 말했다.


"고향으로 돌아가 거짓 조서를 내려 천하 제후들을 불러 모으고 군사를 일으켜 함께 동탁을 죽이는 것이 나의 염원이다."


현령이 그의 말을 듣더니 바로 결박을 손수 풀고 조조를 부축해 윗자리에 앉히고는 두 번 절하며 말했다.


"공이야말로 충성스럽고 의로운 선비요!"


조조 역시 절하며 현령의 성명을 물었다.


"내 성은 진(陳)이고 이름은 궁(宮)이며 자는 공대(公臺)라 하오. 노모와 처자는 모두 고향인 동군 무양현에 있소. 공의 충의에 감격했으니 원컨대 관직을 버리고 공을 따라 도망가겠소."


조조가 매우 기뻐했다. 이날 밤 진궁은 노자를 준비하고 조조에게 옷을 갈아입힌 후 각자 검 한 자루씩을 등에 메고는 말에 올라 고향을 향해 떠났다. **

길을 떠난지 사흘째 되는 날 성고지방에 이르렀을 때 어느덧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조조가 채찍으로 숲이 우거진 곳을 가르키며 진궁에게 말했다.


"여기에 성이 여(呂)고 존함이 백사(伯奢)란 분이 계신데 나의 부친과 의형제를 맺은 분이오. 가서 집안 소식도 물어보고 하룻밤 묵는 것이 어떻겠소?"


"좋지요."


두 사람이 장원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들어가 여백사를 만났다. 여백사가 말했다.


"내가 듣기로는 조정에서 각지로 공문을 보내 자네를 다급히 잡으려 한다고 해서 자네 부친은 이미 진류로 피하셨네.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조조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한 다음 말했다.


"여기 진궁 현령이 아니었다면 벌써 몸이 가루가 되고 뼈가 부서졌을 겁니다."


여백사가 진궁에게 절하며 말했다.


"조카야, 사군(한나라 자사에 대한 존칭)이 아니었다면 너희 조씨 일가가 몰살했겠구나. 사군께서는 마음 편히 앉아 계시고 오늘 밤은 누추하지만 저의 집에서 묵으시지요."


말을 끝내고는 바로 몸을 일으켜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만에 다시 나와서는 진궁에게 말했다.


"늙은이 집에 좋은 술이 없으니 서쪽 마을에 가서 술을 한 준 사와서 대접하리다."


말을 마치고는 급히 나귀를 타고 나갔다. 조조와 진궁이 한참 앉아 있는데 갑자기 장원 뒤쪽에서 칼 가는 소리가 들렸다. 조조가 말했다.


"여백사는 나의 육친이 아니니 아무래도 밖으로 나간 게 의심스럽소. 몰래 엿들어야겠소."


두 사람이 몰래 발걸음을 옮겨 초당 뒤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묶어놓고 죽이는 게 어떠냐?"


"조용히 끝내자."


조조가 말했다.


"내가 맞구나! 지금 먼저 손을 쓰지 않으면 반드시 잡힐 것이오."


즉시 진궁과 함께 검을 뽑고 달려들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죽이니 연거푸 그 집 식구 여덟 명을 죽였다. 여기저기 뒤지다가 부엌에 들어가니 잡으려고 묶어놓은 돼지 한 마리가 보였다. 진궁이 말했다.


"맹덕이 의심이 많아 착한 사람들을 잘못 죽였구려!"


급히 장원을 나와 말에 올랐다. 미처 2리도 못 가서 여백사가 당나귀 안장 앞쪽 턱에 술 두 병을 걸고 손에는 과일과 채소를 가지고 오는 게 보였다. 여백사가 소리 질렀다.


"조카와 사군께서는 왜 바로 떠나시오?"


조조가 말했다.


"죄지은 사람이라 감히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내가 이미 식구에게 돼지 한 마리 잡아 대접하라고 본부했네. 조카하고 사군께서는 어찌하여 하룻밤 묵는 것도 싫어하시는가? 어서 말을 돌려 돌아가세."


조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에 채찍질하며 지나갔다. 몇 걸음도 가지 않아 갑자기 검을 뽑고 돌아오며 여백사에게 소리 질렀다.


"저기 오는 사람은 누굽니까?"


여백사가 고개를 돌려보는 순간 조조가 검을 휘둘러 여백사를 찍고는 당나귀 아래로 떨어뜨렸다. 진궁이 깜짝 놀라 말했다.


"방금 전에는 실수라 하더라도 지금은 무슨 짓을 하는 것이오?"


"여백사가 집에 돌아가면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을 보고 어찌 가만히 있겠소? 만일 사람들을 거느리고 쫓아오기라도 한다면 나는 반드시 화를 당할 것이오."


"알면서 죽이는 것은 커다란 불의요!"


조조는 여백사가 사온 술을 벌컥벌컥 들이 마시더니 소리를 질렀다.


"차라리 내가 천하를 저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버리게 할 수는 없소(宁肯我负天下人, 休叫天下人负我)!"


진궁은 묵묵히 말이 없었다. ***


그날 밤 몇 리를 가다가 달빛이 환한 가운데 객점 문을 두드려 열게 하고 투숙했다. 말을 배불리 먹이고 조조가 먼저 잠들었다. 진궁은 곰곰히 생각했다.


'나는 조조가 좋은 사람인 줄 알고 관직까지 버리고 그를 따라왔는데, 원래는 이리의 심보를 가진 놈이었구나! 지금 살려두었다가는 반드시 후환거리가 되겠구나.'


바로 검을 뽑아 조조를 죽이려 했다. 그러다 문뜩, 진궁은 다시 한번 생각했다.


'내가 나라를 위해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그를 죽이는 것은 의롭지 못하다. 애초에 나 역시 여백사의 가족을 죽이지 않았던가. 일단은 그를 따라가보자.'


진궁은 검을 도로 꽂고 잠을 청했다. 아침이 되어 둘은 다시 진류를 향해 달렸다. 


며칠 밤 계속 달려 진류에 도착한 조조는 부친을 찾아가 지난 일을 상세히 설명하고, 가산을 털어 의병을 모집할 뜻을 전했다.


조조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 까?


* 조조의 동탁 암살 시도: 정사 삼국지에 따르면 동탁은 조조를 높게 사 효기교위로 천거하고 자기 밑에 두려 했으나 조조는 성과 이름을 바꾸고 몰래 도망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조조는 동탁을 토벌할 계획은 있었지만 암살할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조조와 진궁: 실제 역사에서 둘은 이때 만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3년 뒤인 192년의 일이다. 다만 조조가 동탁에게서 달아날 때 중모현에서 붙잡혔다가 어떤 이가 그를 알아보고 도망치게 해주었다는 기록은 있다.


*** 여백사 살인 사건: 실제 정사 삼국지에도 조조가 혼자 오해하여 여백사의 가족 8명을 죽이고 달아났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여백사의 가족을 죽인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여백사까지 죽였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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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사